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3th prescription

b님 :

전 26살 남자고, 현재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작년 2학기 부전공 수업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특별한 감정 같은 건 없었습니다.
수강 인원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서 다른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냥 똑같이 친하게 지내는 정도였고
동갑이긴 했지만 전 빠른 생일이라서 학교를 1년 일찍 다니는 케이스였고 그녀는 재수를 해서 저랑은 두 학번 차이였죠.
그러다 보니 아직 서로 존대말을 하는 사이였습니다.

다음 학기가 됐는데 같이 수업듣던 사람들은 어학연수니 졸업이니 다 흩어지고
저랑 저와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남), 그녀 셋만 남았더군요.
마침 수업이 겹치는 게 몇 개 있어서 같이 수업도 듣고 조발표도 하고 했습니다.
그래서일까, 점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하더군요.
폰번호야 이미 알고 있었으니 문자가 가끔 주고받고 통화도 한 번씩 하고.
제 쪽에서 먼저 하는 편이긴 했지만.....
(딱 한 번 울면서 저한테 전화한 적이 있습니다. 겨우 달래서 얘기 들어주다 끝냈는데.....)

편하게 부르라고 했더니 자기는 그런 건 좀 그렇다면서 조심스러워 하더군요.
그래도 나중에는 호칭은 ~상(부전공이 일본어였습니다-_-)을 붙이긴 했지만 그냥 편하게 하는 정도까지 갔지요.

그녀 곁에 언제부턴가 웬 남자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가끔씩 둘이서 얘기를 나누는 광경을 봤는데, 어째 불안헸습니다.
둘이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것도 봤고.
나중에 통화하다가 넌지시 물어봤는데 그냥 4살 연하 아는 후배고 별 관심 없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흘러 그녀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해 고백을 히려 했습니다.
그런데, 생일 며칠 전, 학교에서 중요한 시험이 있었고 그녀가 학교에서 밤샘공부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커피를 자주 마신다고 들어서 저녁에 커피라도 하나 사서 전해줄까 하고 학교로 올라가면서(전 기숙사 살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혹시나 했지만 억지로 보자고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시험을 치러 올라가는데 그녀가 누군가와 손을 잡고 지나가는 걸 봤습니다. 역시나 그 후배더군요.
가슴이 찢어지는 거 같았죠. 멎을 것만 같은 숨을 내내 억지로 쉬며 힘겹게 시험을 쳤습니다.
나중에 통화할 기회가 있어서 그제서야 뒤늦게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연애상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제가 마음을 너무 감추는 게 문제라고 하더군요.
사실 제가 속마음 같은 거 남한테 잘 이야기 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고, 결국 실패한 셈이죠.
아무튼 한동안은 웃는 게 웃는 거 같지고 않고 아무런 의욕도 없었습니다.
방학을 해서 집에 내려왔지만 여전하더군요.
그래도 그녀와 가끔 연락을 하고.

근데 한 번 통화를 하면 꼭 길게 하게 됩니다.
한 시간씩 하는 건 보통이고(그 전에도 이랬습니다) 4시간 넘게 했던 적도 있네요. 사귀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내용이라면 일상적인 것부터 해서 이것저것이었죠.
그 와중에 알게 된 거라면, 집안 사정이 좀 복잡해서 힘든 일이 많고
자기도 원래 꿈이 있었는데 집안 때문에 지금 접은 상태고
남자친구랑 얘기를 하다 보면 저랑 대화할때랑 다르게 어린 티가 난다고 했습니다.
주로 그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제가 들어주는 편이었습니다.
전화하면 항상 제가 얘기를 잘 들어줘서 기분이 풀린다며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가끔 연락이나 하며 지내다 다시 개강이 되었습니다.
잊으려면 일단 안 마주치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됐습니다.
게다가 한 수업에선 같은 조까지 돼버려서 학기 끝날 때까지 그 상태로 가야 했지요.
어영부영 지내다 작정하고 대화를 아예 안 했습니다. 자리도 일부러 떨어져서 앉고.
일주일 쯤 지나니 전화를 해서 나한테 섭섭한 일 있냐고 하더군요.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음 접고 싶은데 잘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좋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지금까지 사귀었던 게 다 좋게 안 끝나서 정말 누굴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이때부터 남자친구랑 조금 안 좋아 보였습니다)
그 사이에도 한번씩 연락을 해왔고 이젠 존대말 대신에 편하게 대하더군요. 이름 대신에 제 별명을 부르고.
그러다 올해 초 졸업을 하고 전 작은 개인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그녀는 일단은 집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다시 잊어보려고 일체 연락을 안 했습니다.
똑같이 가입해있던 사이트가 있었는데 거기서도 조용히 탈퇴했었는데
한 달쯤 지나니 전화가 오더군요. 안 받았습니다. 연거푸 세 번을 울리고는 멈췄습니다.
참다 못해 두 시간쯤 지나 전화를 해봤습니다.
그동안 뭐 하고 지냈냐길래 그냥 연락 끊고 지내고 있었다고 대답했더니 자기도 요즘 힘들어서 그러고 있었다고 그랬고
웬일로 전화했냐 물으니 그냥 안부가 궁금했다고 했습니다.
또 힘들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의외로 밝은 목소리더군요.
괜히 전화했다 싶어서 그냥 아무 말 않고 있다 조용히 끊고는 전화를 안 받았습니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받아보니 말하는 중간중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사실 너한테서 마음 접으려고 일부러 연락이고 뭐고 다 끊었었는데 도저히 안 된다.
지금도 너 힘든데 내가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갑자기 막 울기 시작하더군요.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도 내가 힘들어 하는데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미안해서 그랬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친구랑 계속 안 좋아 보였는데 남자친구가 그 전부터 거의 일방적으로 기다려 달라고만 하고 연락도 잘 안 하고
아직 군대도 안 갔는데 그러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될 거 같다고 힘들어서 끝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럼 저한테 오라고 했더니 사람하고 관계 끊는 거 힘들어서 잘 못 한다고 하더군요.
전 안 그러면 너 혼자만 힘들건데 뭐하러 그러냐고 했지만.

지금까지 연애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돌이켜보니 그전까진 연애에 별로 신경을 안 썼더군요.
그런데 마음은 지금 타들어가고 있는데 연래 경험이란 게 없으니 어떻게 해야 될지도 잘 모르겠고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왠지 제가 보기엔 그녀는 저를 정말 힘들때나 기댈만한 사람으로 보고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전 지우기가 힘드네요. 제가 정말 바보같기도 하고...
과연 제게 가능성이란 있는 걸까요?













1. 보통 캠퍼스에서 연애하는 것을
여자들은 밝히기 싫어합니다.
언제까지 사귈 지도 모르고, 자신의 팬들을 줄이기도 싫어서죠.

저는 94학번입니다만, 그 옛날에도 여자들의 행동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졸업 때까지 연애를 밝히지 않은 커플도 있었고,
저 역시 누군가와 학내에서 사귈 때는 내색을 안했었습니다.
물론, 학교 밖에서 사귈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크게 연애 자체에 빠져있지도 않았구요.
그쪽이 좋다고 하니까 사귀는 거지,
특별히 뭐가 뭔지 모르고 사귀는 연애도 허다합니다.

사실 누군가가 좋아져서 사귀기 시작한 연애는,
저는 28살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정말 퐁당! 하고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흔치 않답니다.


2. 저 역시도 고백하자면...
B군과 잘 사귀고는 있지만, 제가 남자친구가 있어도 여전히 좋다는 C군에게 연락이 오면,
평소에는 그냥 안부만 주고받고 끊다가도,
B군이 저를 속상하게 하면,
C군하고 전화 통화를 1시간도 넘게 합니다.
그냥 누구에게라도 위안받고 싶어지니까 그런 거죠.

보통 여자들은 여자친구들하고 수다 떨다가 연애할 때의 불안을 덜어냅니다만,
이 여자분은 자신에게 좋아하는 감정이 있는 사람에게 하소연을 하는 타잎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C군과 대화하면서, B군이 아직 어린 것 같다... 하고 흉도 봅니다.
그러나, 정말로 B군이 어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B군보다 철없는 30대도 많으니까요),
B군과 헤어질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3. 이 여자분은 친구가 없는 걸까요.
왜 좋아하는 마음에 답해줄 수도 없으면서, 전화하는 걸까요.
이것이야말로, 희망고문이네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여자분은 매우 많습니다.
잔인하게 표현하자면, 남자친구도 있고, 스페어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 지도 모르죠.
요즘 유행하는 말로, 어장관리인가요?
저도 대학 다닐 때는,
이 오빠도 만나고, 저 동생도 만나고,
그렇다고 진지하게 사귀는 것은 아니었지만,
데이트도 하고, 같이 놀러가고, 선물도 받고, 그러다가 감정이 조금 달라지기도 하고,
고백도 받고, 거절도 하고,
짝사랑도 해보고,
좋아했다가 말았다가 그러면서 컸답니다.
이런 철없는 여자아이가 좋은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빨리 알아채면 좋은데,
보통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감정이 드라마틱한 여자에게 휘말립니다.

철없는 여자아이 본인은 본인이 좋은 여자인지 아닌지도 모르구요,
이런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분들도
좋은 여자인지 좋은 여자가 될 여자인지 분간할 수가 없답니다.
어떤 분은 일찌감치 데려다가 좋은 여자로 키워냅니다만,
보통 실패율도 높지요.
여자들이 철없는 남자친구 만나서 키워서 남편감으로 만드는 과정과 유사할 거에요.

저처럼 쑥쑥 자라서
올바른 연애인이 되면 좋겠습니다만,
알 수 없죠.

4. 나에게 오라는 말도 힘들게 하셨을텐데, 이 여자분은, 오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푸념만 하다 전화 끊으셨군요.
사람하고 관계 끊는 거 힘들어서 잘 못한다면, 그냥 계속 힘들게 그 연하남과 사귀라고 하십시오.
그건, b님께서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정기적으로 이런저런 상담 받아주신 것에 대한 상담료라도 받아야겠군요.

힘들긴 한데, 위로는 받고 싶고, 그렇다고 연하남을 버리긴 싫고,
그렇다고 b님과 사귈 생각도 없는 상태네요.
사실, 인생이 힘들어, 라고 하면서,
괜한 남자를 흔들어놓는 여자의 예를 저는 부지기수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여자로서, 화가 나는 스타일의 여자기도 합니다.
너무 욕심쟁이 아닙니까?

연애는 한번에 한 남자 하고 하는 거잖아요.
이 남자의 애정도 저 남자의 애정도 놓치기 싫고,
혼자 되는 것도 싫어서 연애를 끝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남자와 만나는 것도 싫은 거죠.
페어 플레이가 아닌 겁니다.

5. b님께 드릴 처방은 이겁니다.

좀더 멋진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 노력을 시작해봅시다.
본능의 안테나를 다시 높이 세워서, 멋진 여자를 찾아봅시다.

세상은 넓고 멋진 여자도 많답니다.
b님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직장 생활 잘 하고 계시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따뜻한 마음도 있으시구요.
게다가 이렇게 올바르고 아름다운 국어를 사용하실 수 있는데,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많은 분들이 20대의 초반에 첫 연애를 경험하지만,
사랑은 서른에도 찾아오고, 마흔에도 찾아온답니다.
저는 서른 둘에야, 처음으로 2주년 맞이하는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답니다.

이제 겨우 26이시잖아요.
전혀 늦지 않았답니다.

단,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곧 연애혼을 불태울 멋진 여자를 만나시게 되길 바랄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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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 | 2008/05/24 18:22 | LOVE&MEMORY(~100th)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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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5/25 02: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라엘 at 2008/05/25 15:33
ㅠㅅㅠ 친구로서 진지하게 얘기해주세요! 아님 이 포스트를 출력해서 보여드리는 건?
Commented by findwonder at 2008/05/25 02:18
답변 한번 제대로 굿 입니다. 저도 L님 생각이랑 비슷해요.

그 여자분은 B님을 남자친구로 사귈 마음이 없어요.
물론 B님의 마음과 다정한 행동을 좋게생각하는지라
남자로 느끼려 노력은 이미 했을거에요.
근데 그게 안되니까 아직도 저 상태인 거여요.

관계를 끊는 걸 잘 못한다는 건 B님과도 못끊는 단 소리에요. 나 좋다는데 굳이 끊을 필요를 못느낄지도요.. ; 저 여자분은 B님의 마음을 알아도 그다지 크게 고민하지 않으시는 듯 해요.
Commented by 순수로의회귀 at 2008/05/25 03:41
하지만 결국 여자는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을까요.. 저는 여자분이
아직 자신의 감정을 깨닫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모든 연락을
끊고 절대 연락하지 않으면 여자분이 뭔가 액션을 취할거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라엘 at 2008/05/25 15:38
findwoder님> ㅠㅅㅠ 사실 저도 저런 입장이 되어본 터라... 저는 남자애에게, 나는 순정파라 앤 있을 때는, 앤하고만 쭈욱 간다, 그래도 좋냐, 라고 물어봅니다. 그래도 좋다, 그러는 친구들 있지요. 그럼, 저는 어찌됐든 그 녀석하고는 그냥 친구인 것이지요. 연락이 한동안 없고 그러면, 안부 문자 정도는 하게 되더라구요.

순수로의회귀님> 나이 들면 기다리는 남자에게 갈 지도 몰라요. 어디든 기대고 싶어서. 그런데 어릴 때는, 뭐, 저도 20대 초중반에 평생 기다릴 거야! 라고 장담하는 남자들 많았습니다만, 지금은 연락도 안됩니다. 20대란, 그렇게 감정이 빨리 또, 많이 변하는 시기인 걸요. 물론, 30대도 내맘몰라요,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데 저는 여자분이 자신의 감정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는 절대절대 생각 안해요. 그 여자분은, 그냥 감상에 젖어있는 것 아닐까요. 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할 뿐인 것 같아요.

모든 연락을 끊어도, 역시 난 너 없으면 안되나봐... 하고 갑자기 사랑을 깨닫는다든지, 이런 드라마틱한 상황은 힘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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