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1th prescription

F양 :

안녕하세요, 20대 초중반의 휴학생 처자랍니다.
워낙 이런 일은 친구들에게 곧잘 상담해 왔는데,
이번엔 정말 누구한테도 털어놓기 힘들어서 라엘님의 조언을 빌리고자 메일을 보내 봅니다.
딱히 특별한 일도 아닌데 왠지 털어놓기 그렇네요.

친한 선배 오빠가 있답니다.
05년도에 처음 뵌 이후로,
사는 동네도 가깝고 해서 같은 버스를 타고 통학하던 게 인연이 돼서 아직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취향이 잘 맞아서 서로 흉금없이 이것저것 얘기도 하고, 서로 부르면 쪼르르 잘 나와서 만나는.
덕분에 서로 참 이것저것 추한 모습도 많이 봤고(주로 후배인 제가 일방적으로 보여드렸지만),
신경써서 자주 연락하지는 않더라도 항상 편하게 대하고 그런 사이예요.

그런데 제가 이 오빠를 좋아하고 있어요.
친하게 지낸 기간에 비해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전 계속 호감은 있었지만, 이 오빠가 연애에 대해서 전혀 미련이 없으신 데다가, 저도 그전까진 연애관계로 발전시켜 보겠다는 의지가 없어서 그냥 허물없이 지내는 그런 사이였거든요. 게다가 작년 초까진 전 다른 사람과 커플이었구요. 그 때는 정말 남자친구에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더더욱 그런 쪽으로의 발전은 없었죠.

그래서 많이 고민했어요. 이제와서 이런 맘을 가져봤자 너무 새삼스러운 것 같기도 해서 더더욱 남들한테 얘기 못 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대체 이 오빠한테 새삼스레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까요.

분명 아끼는 후배, 동생으로 생각하고 계실텐데 T_T 언제나 자기가 제일 아끼는 후배라고, 정말 여동생같다고 하셔서 그쪽으로 어필하기 더욱 부담스러워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니까 더더욱.
맘에 많이 걸리는 점도 몇 가지 있구요.

일단, 오빠는 연애에 그다지 큰 미련이 없으신 것 같아요.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적극적으로 원하지도 않으시고, 그냥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시지 데이트나 이런 건 안 하시는 듯 해요. 그 많은 오빠의 친한 사람들 중에 첫번째가 된다는 게 무척 어려워 보여요. 누군가 한 사람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오빠라서 더더욱 그렇구요.

그리고 그동안 저는 남자친구도 두 번이나 있었고, 더군다나 길게 사귀었던 첫번째 남자친구는 과 CC였기 때문에 그 닭살스런 애정행각과 파국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이후에 제가 힘들어했던 걸 전부 바로 옆에서 보신 게 오빠예요. 제 넋두리도 들을 만큼 들으셨고, 술도 사주시고. 이리도 알 건 다 아는(?) 사이를, 어떻게 이제와서 절 좋아하게 만드나 생각하니 한숨이...

게다가 차라리 가까이라도 살면 모를까, 이 오빠가 제가 휴학하는 동안 또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 버리셨어요. 그냥 심심하다고 불러내기도 정말... 뭣해져 버렸어요.

이제 짝사랑은 정말 힘들어서 안 하려고 생각했는데 사람 마음이 또 마음대로 안 되네요.
엘님, 좋은 조언 부탁드려요.





From. 고민하는 F양



F님,

먼저 용기 낸 방문 감사드립니다.
허락해주셔서 처방전 내용을 포스팅합니다.

제가 짐작한대로, 남자친구가 있었던 때에도
이미 그 오빠에게 본능적인 호감이 있었던 것이 증명되었군요.

그렇다면, 할 수 없죠.
그대로 감정도 연애도 이제 시작입니다.

아래는 처방전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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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드리기 조금 조심스럽지만,
F님이 이 오빠에게 갖고 있는 연애 감정은 어느 정도로 강력한가요?
그 감정은 진지한 연애 감정인가요, 아니면, 현재의 연애 부재를 타개하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의 발로일까요?

이 점부터 먼저 정리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해요.

F님의 상황부터 정리해 보자면,
F님은 지금 연애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없는 외로운 상황이잖아요.
그리고 주변에 매력적인 다른 이성이 많지 않아 보여요.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이성, 나를 잘 이해해주는 남자, 기댈 수 있는 오빠로서 그 분이
F님의 연애 레이다망에 걸린 것 같아요.

그래서, 빨리 연애 부재의 상황을 연애 상태로 돌리기 위해
그 분에게 F님의 연애 감정이 모락모락 피어난 것일 수도 있어요.

만약 그 분에게 처음부터 내 남자다! 싶은 느낌이나 예감이 (무의식중에라도) 있었다면,
아마 남자친구가 있었더라도 그 분을 만날 때 자신의 태도가 조금은 달랐을 거에요.
남자친구가 있어도, 내 눈에 더욱 매력적인 이성이 들어올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나의 윤리관과 도덕 관념이 의식적으로 막고 있는 거죠.
그래서, 본인의 행동을 잘 생각해보면, 내가 그동안 이 오빠를 마냥 편한 오빠로만 대했나
가늠해 볼 수 있을 거에요.

만약 이 가정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성 카테고리로 분류하지 않았던 남자가, 갑자기 이성 카테고리에 진입하게 된 이유는,
어떤 사소한 계기로,
번쩍!!! 하는 뭔가가 생겨서,
그 남자를 이성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거든요.
그런 사건이 있었나 없었나 생각해보세요.
그 최초의 이성적 호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아마, 그걸 파악해내고 나면,
F님의 감정이 실제로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게 될 거에요.

제가 왜 본인의 감정부터 먼저 정리해야한다고 말씀드리냐면,
저 역시 연애 부재의 상태일 때는, 주변의 다른 후보자들을 재빨리 검색해보는 습관이 있거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론은 언제나 만약 사귈 것이었으면,
애시당초에 사겼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만약 내 인연이고 내 남자였다면,
나의 감정이나 예감이 그렇게 무감각하게 잠들어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연애라는 것이 일방적인 감정 만으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고,
상대의 호감과 나의 호감에 불꽃이 붙어야지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인데,
나의 감정이 미적지근했다면, 상대방의 감정도 비슷한 정도라는 것이죠.

이런 사고의 과정을 거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연애감정은 이미 불타고 있다~!라는 결론에 다다른다면...
다음으로 넘어가보지요. ^^

2. 이 오빠는 연애 경험이 별로 없으신가요?
이런 타잎의 남자는,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 혹은 재능이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죠.
사랑을 원하지 않는 남자는 거의 없지만, 희귀하게도, 여자보다 성공, 여자보다 친구, 여자보다 술, 이런 분들이 간혹 있기는 하답니다. 이런 분들에게, 연애의 필요성을 설득시키고, 그 대상이 나다! 라는 결론으로 이끌기는 굉장히 힘들지요.

3. 한가지 희망은, 이 오빠가 계속해서 F님의 곁에 있어주셨다는 것이지요.
그게 이성적인 호감이든 인간적인 호감이든
F님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하군요.
아니면, 사람이 워낙 좋아서,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스타일이 아닌 이상(아님 단순히 술이 좋고 부탁을 거절 못하는 성격이라든지),
같은 과 후배를 그렇게 챙기는 사람, 잘 없거든요. 특히나 요즘같은 세상에 말이죠.

4. 그러므로,
심심하다고 불러내지 말고, 할말 있다고 하고 불러내세요. ^-^

구체적인 방법은,
1. 먼저 그 오빠가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본다. (없다고 한다면)
2. 연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한다. (있다고 한다면)
3. 좋아해요! 하고 말한다. (이후 반응을 본다)
4. 나랑 사겨요! 하고 말한다. (이후 반응을 본다)

3번과 4번에서 예상 가능한 상황은
1. 응, 나도 너 좋아.(그러나 너는 내 여동생)
2. 헉, 내가 왜 좋냐? (당황)
3. 난 너 싫은데.(사귀기는 싫은데...)
4. 그래? 너 취향 특이하구나 (무반응)
5. 나도 예전부터 네가 좋았어. 사귀자.

정도 밖에 없어요.
용기내서 확인해보시기 바래요.
5번이면 금상첨화, 1~4번의 반응이 나온다면,

1. 농담이에요. (대시 포기)
2. 다시 생각해보세요, 24시간의 시간을 드리겠어요. (꿋꿋 밀어붙이기)

의 루트로 진행이 가능하겠군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오빠를 원하나요?
그렇다면, 불러내세요! 그리고 말하세요! 뭘 망설이시나요! 인생은 짧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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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 | 2008/06/11 18:58 | LOVE&MEMORY(~100th)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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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가난한귀족 at 2008/06/11 19:43
옛날에 연애를 시작하기 위해..7일간 릴레이 협상!을 하던 기억이 나네요 =_=;;
사귀어야 하는 이유와 아닌 이유, 장점과 단점, 마음에 호소하기 등등을...
오래전 헤어지긴 했지만, 괜찮았었어요. ㅋ
Commented by 라엘 at 2008/06/11 22:52
우와 낭만적이다!!!!!!!!!!!!!!!!!!!!!! >ㅅ<//// 저와 B군은 하룻밤 정도의 서너시간 정도였던 것 같아요. 전날 밤에 시작한 얘기가 새벽녘의 고백으로 마무리. 아마도 밤이고 새벽이어서 가능한 마법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해요.
Commented by 가난한귀족 at 2008/06/12 05:14
당하는 쪽엔 고문이었겠죠. ㅋㅋㅋ. 한밤중에 전화하다가 끊고 다음날 이야기 하자길래..."지금 전화를 끊고 내일이 온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라고 하면서 못자게 괴롭혔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ㅋㅋ
Commented by 라엘 at 2008/06/12 11:01
오옷!!! 멋져요!!! 멋져멋져. B군도 내 마음은 달라지지 않아요, 라고 했었죠. 지금 돌아보면 B군, 정말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어요. 불타오르는 마음은 언제나 최고에요!!!
Commented by 이적 at 2008/06/13 11:58
야밤에 술먹고 다짜고짜 불러내 사귀자고 말한 저를 보며 그녀는 당황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녀도 좋았던거군요.!
이런 내숭쟁이~_~
Commented by 라엘 at 2008/06/15 18:53
당황스러우면서도 좋았을 거에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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