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th prescription_안드로메다로 떠난 프로포즈의 추억

A님 :

(아래는 요약 내용입니다.)

몇 년 간 지인으로 술친구로 편하게 지내던 어느 날 취한 상태에서 사귀자 프로포즈를 했는데 기억은 가물가물. 대답은 못 들었지만 이후에도 우리는 잘 지냈죠.  


그러다 또 몇 달 전 상대의 손을 잡고 사귀자 했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거절하더라고요. "지금 만나는 이성이 나 밖에 없어서 이러는 거죠." 지금까진 느슨한 우정이어도 좋았는데, 이제부터는 더 만나지 않는 게 좋을까 생각도 합니다. 


전 그냥 같이 있는 게 좋았고, 좋아한다는 마음을 전했고, 딱히 '애인'이라는 굴레가 아니어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혼자 너무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렸던 것 같습니다. 


 

















A님, 엘입니다. 

누구라도 하늘로부터 절대적인 계시를 받지 않는 이상. 프로포즈를 받을 때의 분위기와 상황도 대답에 대한 판단 요소로 고려합니다. 평소에 늘 편하게 안부를 주고받고 가볍게 술을 마시는 편한 사이였다면, A님이 상대에게 새로운 관계를 제안할 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어필했어야 합니다. 상대는 A님을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늘 연락하고 같이 술도 마셨겠지요. 하지만, 편한 지인과 연애 상대는 종류가 전혀 다른 부류랍니다. 

프로포즈 할 때 무슨 말을 정확하게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나신다고 했죠. A님의 당시 프로포즈는 그냥 평범한 프로포즈가 아니라, '술김에 프로포즈'입니다. 다시 말해, "프로포즈의 나쁜 예" 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전 '술김에 프로포즈'를 프로포즈로 카운트 할 수 없다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술김에 프로포즈를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 아세요. 그걸 일일이 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간, 저는 연애를 수십번도 더 했을 지도 몰라요. 

두 사람이 동시에 비슷한 신의 계시를 받아 애정이 싹트는 경우라면, 술을 마셨든 담배를 피웠든 재채기를 하다 얘기하든 프로포즈의 분위기와 상황은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편한 술친구라는 이쪽 편에서, 연인 관계라는 저쪽 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루비콘 강이라도 건너겠다는 각오가 필요하죠.

아마도 당시의 프로포즈는 차마 카운트 될 수 없었겠죠. A님은 다시 한번 사귀자고 프로포즈한 분위기와 상황은 어땠나요. 혹시 또 음주 상황은 아니었나요? 아니면, 정말로 진지하게 장소와 시간을 선택하고, 상대가 A님의 진심을 받아들일만한 심리상태일 때, 그 때 온 마음을 다 바쳐서 프로포즈 했나요? 

늘 편하게 만나서 술을 마시며 온갖 화제를 주저없이 꺼낼 수 있고, 가끔은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도 보여주는 그런 지인이 아닌, 연애인으로서 어떤 연애관을 갖고 있고, 어떤 연애 비젼을 펼쳐갈 것이고, 어떤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셨나요? 상대가 A님에게 유일한 운명으로서 선택될 수 있었던 모든 특별한 신화와 운명의 증거(-> 물론 프로포즈의 필수요건은 아닙니다만, 성공확률을 높여주죠.)들을 준비하셨나요? 감정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좋고 굳이 연애가 아니어도 좋았다면, 사귀자는 제안의 '사귀자'에 대한 의미를 본인은 알고 프로포즈 한 건가요?

만약 제가 드린 질문에 하나라도 NO가 있었다면, 상대의 NO는 당연한 결과겠죠. 

A님. 

진정으로 상대를 원하는 지, 상대가 거절한 이유대로 주변에 이성이 그 사람 밖에 없어서 잠시 자신의 감정을 착각했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성찰의 시간 후에도, 정말로 상대를 원한다면, 술친구로서의 모습을 완벽하게 벗고, 전혀 다른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세요. 

그리고, 정식으로 프로포즈한다면, 상대도 다시 한번 신중하게 대답하겠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신이 주신 선물과도 같은 기적이지요. 하지만, 그 인연이 이어지는 행운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귀한 행운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 걸맞는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더 좋은 인연 만나시기 바랍니다. 













(2014년 6월 19일 리라이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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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폭주무면허 2008/12/27 04:45 #

    어렵네요
  • 라엘 2008/12/27 13:36 #

    진심을 다하면 돼요. 용기를 내면 되지요.
  • 오오 2008/12/27 09:11 #

    신이 주신 선물.. 사랑이라는 걸 발견하는거 그거 참 어려워요.. 사랑이라고 자기암시를 통해 생겨난 거짓된 사랑이야 넘쳐나지만 말이죠.
  • 라엘 2008/12/27 13:37 #

    혼자라면 외로우니까요. 우리는 모두 사랑하면서 살아야할 의무가 있잖아요. ^^
  • 가난한귀족 2008/12/27 12:40 #

    확실히 나이가 들 수록...이것저것 다 귀찮아지는....이렇게 고민하기도 싫어요. 흙 ㅠㅠ
  • 라엘 2008/12/27 13:37 #

    귀족님은 고민 좀 하세요!!!!!! 한창 좋을 나이에!
  • 2008/12/29 01:3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라엘 2008/12/29 16:54 #

    사랑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이끌리고 고민하고 찾아가는 그 과정 모두가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어렵지만 표현을 하고,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거절당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사랑의 속살 깊은 곳에 있는 달콤함은 영원히 알 수 없겠지요. 스스로에게 용기가 안 생기는 것을 너무 탓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잘하고 능숙하고 자신만만한 사람은 없어요. 저 역시 가끔은 내가 잘 사랑하고 있나 고민도 하거든요. 시간이 흐르고 고민도 하면서 스스로가 자라나는 걸 잘 지켜보세요. 그리고, 용기가 가득 차오르면 다시 한번 말을 해보시기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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