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23rd prescription

M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저는 나쁜 남자를 만나본 적도 없고 오히려 나 하나만 보는 남자에게 6년간 사랑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와의 사랑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한 3년 정도는 공기같은 존재가 되었고, 결국 이별을 고했죠. 끝날 땐 저도 아팠지만, 지금은 덤덤합니다.

주위에서는 그 남자와 결혼할 줄 알았다고 하던데, 저는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식었어요. 결혼해서 몇십년을 같이 사는 사람들도 신기합니다. 지금은 연애를 하지 않고 이럭저럭 잘 삽니다. 저는 초딩 때부터의 오랜 친구도 있고, 남자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모든 관계가 지속하는 것이 힘들고 지쳐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잠깐 즐거운 것은 좋지만, 그 관계를 지속시키려는 노력은 싫고 지칩니다. 아는 사람은 정말 많은데 예전처럼 신경쓰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심지어 남자를 만나도 일회성 만남이 낫다고 생각하기까지 되었어요. 저는 지금 사람에 지쳐서 하루 혹은 일주일이 차라리 부담없고 좋습니다.

그러나, 사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목숨을 바친 사랑을 원하기도 해요. 한번도 그래보질 못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과한 애정을 받는 게 힘들고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진심어린 사랑을 원하기도 하지만, 제겐 불가능하겠죠.

저는 지금 짧은 시간만 서로에게 충실하고 그 뒤로는 끝인 관계를 생각 중입니다. 그런데 이 상태라면 더 피폐해질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날 것 같지도 않고, 미치겠어요. 결국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요.











M님, 잘 찾아오셨습니다. 마치 과거의 저를 보는 것 같아요. 사람은 넘치고 원치 않는 관계도 넘치고, 진짜 사랑은 없고, 그래도 사랑은 원하고, 과연 그런 게 있기나 할까 절망스럽고.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답니다. M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일단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M님이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거나, M님에게만 불운이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저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피로에 시달립니다.

M님은 지금 활발하게 사회와 관계맺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자꾸만 늘어나고 연락이 오고 신경을 써야 하고 깊이는 없는 것 같고 내 마음도 온전하지 않지요. 너무 가까이 다가와도 싫고 모두가 무관심하다고 해도 즐겁지는 않을 거에요. 하지만, 안심하세요. 지금은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가 몇백개가 되어도, 어느 순간 내가 아무 시간에 전화해서 나를 받아달라고 말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다섯개도 안되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아무리 인간관계를 잘 해도 그렇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고, 흐름이 있고,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합니다. 언제나 손에 닿을 듯,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서 멀어져갑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랍니다. 다들 사랑을 하고, 가족을 만들고, 미래를 준비하고, 다른 삶을 선택하면서 어른이 되어가지요. 친구보다 연인, 지인보다 내 가족이 먼저가 되지요. 너무 조바심내지 않아도, M님의 인간관계는 점차 단촐해진답니다. 당장 사람 사이에 치이는 감정소모가 없어야겠다 생각하면, 먼저 말걸거나 연락하거나 안부를 묻지 않고, 약속에 나가지 않는 룰을 몇달만 지켜보세요.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바운더리가 점차 정리가 될 것입니다. 진짜 내 친구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돈 백만원만 오늘 입금해달라고 하고 계좌번호 불러주고 전화 끊어보세요. 물론, 정말로 미칠 듯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 방법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M님은 고민하고 있지요. 사랑이 있는지 나에게도 다가올 지 알 수 없는데 왜 나는 사랑을 원할까. 이미 모든 것을 다 받는 행복한 연애도 해봤는데, 왜 나를 그것을 버렸을까. 지속될 지도 모르는 관계는 왜 다 두려운 걸까.

이 문제도 그렇답니다. 완벽하게 이타적이고 완벽하게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없습니다. 목숨걸고 불타오르는 사랑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있죠. 현실에서는 전쟁도 잘 나지 않고 불치병에도 잘 걸리지 않죠. 매일매일 학교가고 회사가고 혹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일상의 하루가 갑니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부족하고 외로운 나를 보듬어줄 진짜 사랑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지금 이 사랑은 그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토피아는 언제나 저 너머에 있으니까 말입니다.

사랑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혼자 고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고민은 누군가와 같이 하는 거랍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일상을 보내고, 사랑을 찾아서 함께 대화하고, 때로는 의견대립으로 싸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사랑이 옆에 있는 것 같지만, 또 어떤 날은 완벽한 타인이로구나 절망도 하고, 그렇게 찾아가는 것이랍니다. 사랑은 머리 속에서 백번을 곱씹어봐야 알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개념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는 에너지이고 사람을 향한 지향성입니다. 혼자서는 어떤 답도 찾을 수가 없답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실험하고 체험하면서 알아가는 것이랍니다. 하지만, 도대체 완벽한 그 누구와 그 성스럽고 위대한 작업을 같이 하냐구요?

M님은 지금 누군가가 무척이나 필요합니다. 지난 그 남자친구와는 사랑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죠. M님은 그와 연애하면서 얼마나 사랑에 대해서 연구하고 고민하고 함께 질문하고 답했나요? 그에게 얼마나 마음을 주었나요? 그의 마음을 읽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나요?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표현할 수 있었나요? 아마도, M님은 그와 이 모든 작업을 충분히 하지 못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희구만큼 사랑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지요. 사람에 지친 M님은 지금 그것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시면 됩니다. 데이트를 할 에너지가 있다면, 데이트를 하세요. 하지만, 러닝타임을 미리 정해놓지는 마세요. 짧은 시간만 충실하려고 노력한다고 하셨죠. 그렇게 하세요. 순간에 충실하세요. 그리고, 짧게 만나는 동안만이라도, 그 사람과 사랑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세요. 아니라면, 정중하게 이별을 고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 또 다른 인연을 찾아서 떠나시면 됩니다. 그러다보면, M님의 피곤을 이해하고 함께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너무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고, 순간순간에 충실하다보면,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오래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거에요. 그러면, 그 때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사람에 대한 피곤과 사람에 대한 애정은 번갈아 찾아온답니다. 그러니까, 지금 M님은 괜찮은 거에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걱정되시죠? 저도 그랬어요. 심지어 연애를 하면서도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늘 의심하고 도망가려고 했지요. 하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도망치지 못하고, 그 사람의 옆에 남았답니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그 사람과 같이 사랑이 무엇일까, 우리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실험해보고 그 모든 과정을 즐기고 있답니다. 완벽한 사랑이 단지 이상에 불과하다면,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닿으려고 노력하는 그것 자체가 최선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랑이랍니다.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내 옆에 사람이 있고 사랑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이랍니다. 내 안에는 사랑이 없었잖아요. 하지만, 그 사람과 내가 만나면 그 사이에서 사랑이 생겨난답니다. M님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면, 모든 짧은 만남을 끝내고 나면, 그 때 만나는 사람이 바로 인연일 거에요.

언젠가는 M님도 이 위대한 실험에 동참하게 되실 겁니다. 단지 마음의 준비가 조금 필요할 뿐이에요.









by 라엘 | 2009/01/21 09:43 | LOVE&MEMORY(101st~) | 트랙백 | 덧글(3)

트랙백 주소 : http://LUVnLUV.egloos.com/tb/186255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09/01/21 11: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9/01/22 00:2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라엘 at 2009/01/22 15:27
제가 조금 급한 마음에, 빨리 빨리 써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나와 똑같은 고민이 있구나 생각하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모잘랐어요. 그래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비공개님은 조금씩 움직이셔도 됩니다. 많은 것은 시간이 흐르면 더욱 좋아질 거에요. ^^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