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01일
160th prescription
H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저와 자고는 싶지만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는 남자와 연애하고 싶어요. 1년 전 쯤 갑자기 친해져서 만날 때마다 스킨쉽 진도가 빠르게 나갔죠. 그런데, 중간중간 몇달 정도 연락이 되지 않기도 했어요. 저는 그러는 사이, 남자친구가 생겼죠.
그러다가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고, 우린 지난 스킨쉽의 연장전을 치루게 되었어요. 그는 섹스를 원했고, 나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말했죠. 저는 괜히 심술이 나서, 나와 연애할 건지, 나는 당신도 남자친구도 둘다 중요하다, 고 했어요. 그는 마음이 상한 것 같았어요. 저는 이후 남자친구와 헤어졌죠.
그리고, 몇달 뒤 그가 다시 연락을 해왔어요. 그가 원하는 대로 저는 그와 밤을 보냈죠. 저는 그와 연애를 하고 싶고, 그는 연애를 원하지는 않는대요. 어떻게 하면 그와 연애를 할 수 있죠?
H님, 닥터 엘입니다.
건강한 연애란 서로의 사생활도 오픈할 수 있는 관계에서 시작된답니다. 물론, 피상적인 데이트만 할 때는 그럴 필요가 없죠. 보통은 데이트하는 기간을 거치면서 상대가 진짜 연애상대가 될 지 맞추어보게 되고, 그리고, 몸으로 하는 대화도 가능하겠다고 가늠하게 되어요. 그러나, 어른이 되면 이러한 과정을 생략하기도 하죠. 어떤 어른들은 짧은 꿈과 같은 이런 섹스를 즐기기도 해요. 몸이 즐겁고 부담도 없어요. 그러나, 결국은 영혼 어딘가가 생채기가 나죠. 가끔 바람이 불면 시려요. 물론, 평소에는 알지 못하죠.
서로 진심을 꺼내지도 않고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는 스킨쉽은 둘 만의 비밀이죠. 짜릿하고 흥분되죠. 그러나, 그런 스킨쉽이 지속적인 애정을 의미하지는 않죠. 서로 성인이고, 합의 하에 하는 섹스는 연애의 형태를 띈 게임이죠. 몸이 아니라 마음을 주고 싶다면, 몸이 나가기 전에 정중하게 연애를 하자고 프로포즈를 하는 게 정석일 거에요. 혹은 몸이 나가는 것과 동시에라도. 혹은 몸이 나가고 난 직후에라도. 그게 맞죠. 그게 상대의 몸에 대한 예의죠. 그게 진짜 어른의 태도일 거에요.
자세히 기술하지 않으셔서 잘 모르겠지만, 그 분이 프로포즈를 하고 H님과의 스킨쉽을 시작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만약 H님이 그 분과 연애 중이었다면, 그 사람이 연락이 끊기거나 내가 다른 남자친구를 만들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 그 사람과 H님의 관계는 아마도 캐쥬얼한 섹스(혹은 어른들의 스킨쉽)를 즐길 수 있는 관계였을 거에요. 서로 상처입히지는 않지만, 의미심장하지도 않죠.
H님이 그 사람이 섹스를 제안했을 때, 장난스레 '두 남자 다를 원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마도 이전에 두 사람의 관계가 서로의 몸을 존중하지 않는 형태였기 때문이었을 거에요. H님은 과거의 관계를 쿨하게 지나가고 싶었겠지만, 여자들은 보통 1g 정도의 윤리와 도덕을 버리지 못해요. 겉보기에는 두 분 다 합의 하에 즐겼던 스킨쉽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도 없죠. 하지만, H님은 분명히 알고 있어요. 만약, 그 남자가 H님을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스킨쉽 이전에 언어적으로 두 분의 관계를 정의하려고 했을 거라는 것을요. 보통 남자가 한 여자에게 진심으로 반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나의 아름다운 뮤즈를 탐한다고 착각하죠. 그래서 서둘러 안정적인 연애 관계로 진입하자고 제안해요. 또한, 나만의 공주님의 몸을 소중하게 대하고 싶어 그녀의 허락을 기다리죠. H님은 이러한 과정을 생략하게 된 것이, 어쩌면 심술이 났을 지도 몰라요. H님은 그렇게 간단한 여자가 아닌데 말이죠.
H님이 그런 심술맞은 대답을 했을 때 그가 상처받은 것 같았다고 했죠? H님이 간헐적으로 H님에게 연락을 한 것이, H님이 소중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H님이라면 섹스를 제안해도 거절할 것 같지 않으니까, 계속 연락했다는 것이 아마도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해요. 그 분은, H님이 연애를 거론하며 두 남자를 동급에 올려놓는 순간, 자신의 과거 행동이 그렇게 예의바르고 훌륭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아서 상처입은 것처럼 행동했을 거에요. '연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H님도 그 분도 분명히 알고 있지요. 그리고, 연애와 상관없는 섹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두 분은 분명히 알아요. 그 남자는 나쁜 남자가 되기는 싫었을 거에요. 그저 아무런 전제없이 서로 몸이 통할 수 있다면 근사할 거라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H님이 찰나의 진심을 우회해서 표현한 순간, 그는 정신이 들었던 거에요.
몇달 뒤, 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연락을 했죠. 섹스는 원하지만, 여전히 연애는 원하지 않죠. 그는 H님이 연애없이도 충분히 섹스할 수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른 남자와도 섹스할 수 있다고 생각할 거에요. 보통의 남자들은, 그런 여자와 마음까지 주는 연애를 하기를 두려워해요. 그래서 연애를 거절하는 거죠. 그는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없고, H님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까요.
저는 이 남자가 연애하기에 좋은 남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는 욕망은 있으나, 사랑과 마주할 용기는 없어요. H님이 그래도 그런 남자와 좋은 연애를 하고 싶다면, H님이 좋은 여자라는 것을 먼저 설명해야 할 거에요. 그리고, 그런 설명을 하기 전에, 그 남자가 좋은 연애를 할 수 있는 남자인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겠죠.
섹스 후에 사랑이 시작되는 일도 종종 있어요. 하지만, 섹스 후에 시작되는 사랑은 의심을 품게 하기 쉽지요. 누구와도 이런 식으로 시작할 거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조건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몸이 원하는 것을 적당한 타이밍으로 미루고 미룬 다음, 서로의 신뢰를 확보하고 나서 섹스를 하려고 하죠. 사람들이 보편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이유가 있는 거랍니다.
좋은 섹스는 반드시 감정을 불러와요. 이제는 정말로 정의를 내릴 때가 온 것이죠. 좀더 어른이 되어서, 그와 대화를 하시기 바래요. 아마도 그 사람보다는 H님이 용기가 있는 사람이어야 할 거에요.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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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3/01 22:02 | LOVE&MEMORY(101st~)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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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는 다르지만 섹스 자체로도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삶의 목적 자체가 육체적 쾌락을 위해 사는 키레네 학파 사람들도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