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70th prescription

J님 :

저는 네살 연하 여자친구가 있어요. 우리는 외국에서 함께 살고 있지요. 그런데 제 여자친구가 비자 문제로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해요. 저는 당연히 그녀와 헤어지기 싫죠. 그렇지만, 방법은 있어요. 만약 우리가 결혼만 하면 그녀는 계속 저와 같이 살 수 있거든요.

그녀는 술과 여자, 대마초에 쩔어 살던 저를 구원해준 천사같은 여자에요. 제 인생은 그녀를 만나기 전과 만나기 후로 완전히 나뉘죠. 저는 그녀를 만난 후에 정신을 차리고 사람이 되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신앙도 깊어졌죠.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편부 집안의 아이이고, 아버지의 재혼 후에는 완전히 연락을 끊고 지낸다는 거에요. 온전히 홀로 서야 하는데, 저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고 그녀와 함께 살고 싶고 결혼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이제 겨우 스무살인 탓에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주변에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찾아봐도 그런 사람이 없구요.

사실 몰래 결혼 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저도 이제 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잖아요.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신중하고 싶어요. 같이 고민해주셨으면 합니다. 








J님, 닥터 엘입니다.

사랑하면 결혼하는 수순이 당연한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죠. 결혼이 잘못되면 이혼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없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많이 다치게 되죠. J님이 결혼과 장래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J님의 나이는 사랑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는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결혼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선뜻 결정하기에는 이른 나이일 수도 있죠. 신중해야 하고 냉정해야 하고 대담해야 할 거에요. 이제부터 J님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야 합니다.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해요. 그리고 한 여자를 책임지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결혼식만 해치웠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죠. 대부분의 부부들이, 집안에서 준비해주는 비용과 절차에 따라 결혼식만 치루고, 그 이후에 닥치는 일들에 되는대로 대처하며 부대끼다가 적응 불가를 깨닫고 이혼하곤 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그대로 잘 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지없이 불행을 맛보게 됩니다. 결혼이라는 시스템에서 중요한 것은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 그 자체의 의미랍니다.

J님은 결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녀와 계속 함께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 물론, 지금은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할 거에요. 하지만, 결혼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인생이죠. J님은 내 여자와 계속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 여러가지 것들을 준비해야 해요. 인생에 있어서 스무살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 있을까요? 내 인생에 불가항력적으로 닥쳐올 위험과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J님은 결혼은 물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상상해보세요. 어떤 학교를 언제 가서 언제 졸업하고 무엇을 전공해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가정을 꾸릴 것인가. 어떤 아빠가 되고 어떤 남편이 될 것인가. 그리고, 아빠, 남편, 직업인으로서의 모든 외피를 벗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나는 결혼과 가정을 내 인생의 중심가치로 두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 개인의 자아실현과 자기만족이 중요한 사람인가. 나는 사랑을 위해 많은 것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문제가 생겼을 때 회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나왔다면, 그 다음에는 J님의 사랑스러운 그녀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해보세요. 두 사람은 아마도 당장 답을 내놓지는 못할 거에요.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대화하고 서로가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해보세요. 맞는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을 거에요. 양보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절대로 용납못할 부분도 많이 있을 거에요. 이래서는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되는 점도 있을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점도 있을 거에요.

모든 것은 두 사람이 합의한 다음 결론내려야 한다는 것이에요.

J님이 그랬잖아요. 그녀가 그렇게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는지 다 알지 못했다고 말이죠. J님이 그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어요. 그녀와 함께 그 문제를 풀어가도록 하세요. 어떤 문제들은 시간이 오래 걸릴 거에요. 평생 동안 풀어야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어떤 문제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쳤더니 의외로 금방 해결되기도 할 거에요.

J님, 결혼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결혼식 자체가 중요한 결혼도 있고, 서류 절차가 중요한 결혼도 있죠. 가정을 꾸리고 아이의 출산과 양육이 중심이 되는 결혼이 있고, 그저 소박하게 함께 밥을 먹고 아침에 함께 눈을 뜨는 것만으로 온통 행복한 결혼도 있어요. 내 가족에게 축복받는 것이 중요한 결혼이 있고, 세상 사람들을 배제하고 온전히 두 사람만을 생각해도 괜찮은 결혼이 있죠.

J님의 결혼과 그녀의 결혼은 정확하게 일치하나요?

결혼은 그냥 결혼이 아니랍니다. 두 사람이 답을 찾는 것에 따라 그 결혼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거에요. 자, 이렇게 하세요.

1. 나 자신의 답을 찾는다.
2. 그녀의 답을 듣는다.
3. 두 사람의 답을 찾는다.
4. 부모님께 상의드린다.
5. 그녀와 다시 한번 상의해서 결정한다.

과정은 다섯개 밖에 없지만,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 지는 몰라요. 지금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녀와 꼭 행복해지시기를 바랄게요.












by | 2009/03/16 14:45 | LOVE&MEMORY(101st~)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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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3/16 15: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3/16 16:17
제가 복을 차근차근 모아서 한번에 행복하려고 지금 이렇게 힘든 시기를 지나나봐요. 비공개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ㅅ^
Commented at 2009/03/16 15: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3/16 16:18
오랜만입니다! ^ㅅ^

사랑하니까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있고 싶으니까 결혼하고 싶다는 그 사고방식이 저는 못견디게 사랑스러운 걸요. 제 남친도 3년 전에는 그랬죠. 지금은 다 커서, 결혼은 현실이야, 라고 말하지만요. ^^
Commented at 2009/03/16 17: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3/16 18:18
우리 커플도 그래요.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좀 다르죠. 하지만, 사랑하는 건 여전히 사랑하고 헤어질 수는 없고. 우리도 계속 얘기하면서 고민해보기로 했답니다. ^ㅅ^ 분명히 달바다님에게도 저에게도 답이 있을 거에요.
Commented at 2009/03/16 17: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3/16 18:20
저도 잘... ㅠㅅㅠ 그저 그렇다는 얘기지요.
Commented at 2009/03/16 18: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3/16 18:21
ㅠㅁㅠ 블로그에서 데이트 메이트라도 찾아봅시다! 음악회나 영화라면, 취미 친구로부터 시작해서 좋은 인연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맑음뒤흐림 at 2009/03/16 20:34
(아니 왜 다들 비공개이신 겁니까... ;;;)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면, 부모님께 상의드리는 게 맞다고 봅니다. J님을 암흑에서 구원해 준 그녀를 부모님이 싫어할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Commented by 물빛바람 at 2009/03/16 20:47
아들이 대마와 술이라는 암흑속에 있었다는걸 모르셨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팡야러브 at 2009/03/16 21:38
물빛바람님의 말씀에 엄청난 공감을 느낍니다 ^^
Commented by at 2009/03/16 22:26
굳이 부모님께 모든 것을 다 고백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은 일단 정신이 제 자리로 돌아왔잖아요. 그 이후의 일부터 얘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ㅅ^
Commented by 지그 at 2009/03/17 02:35
스무 살 무렵의 남자아이는 결혼에 대해서, '좋아하는 사람과 항상 함께 있을 수 있다'만 생각하고 강하게 불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너무 사랑스럽지만!^^
부모 친척 관계, 또 아이가 태어나면 상황이 바뀌는걸 상상도 못하다 닥치면 어 이게 아닌데 하고 방황하는 남자아이들도 있더라구요. ㅜㅜ 바부
사전에 많이 많이 생각하는건 아무리 해도 부족하지 않은 것 같아요.
Commented by at 2009/03/17 12:34
음... 맞아요. 불타는 건 사실 오래 안 가니까요. 좀 오래가면 좋으련만. ㅠㅠ
Commented by 메리쫑 at 2009/03/17 15:11
아무리 생각해보고 고민해보고 따져봐도.. 나이가 어리다는 건, 경험해 본 것들과 보고 듣고 아는 것들이 부족해서 그런지.. 다양한 경우들에 대해서 고민해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설사 고민해봤다고 해도 실제로 그런 경우에 처했을 땐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것 마냥 당황하게 되고요. 아마 제가.. 많이많이 고민해보고 결정했다면 이렇게 일찍 결혼하지는 않았을거에요 ^ ^;;; 화르륵 불타서 결혼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하고싶은 것들도 매우 많았거든요. 조금더 차분차분 깊이 생각해보는 성격이었다면 조금은 달라졌겠죠? 하하하
Commented by at 2009/03/17 22:40
음... 메리쫑님이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았는지는 저도 잘 알지요. 갑자기 짜잔~ 하고 아기와 나타났을 때는 엄청 놀랐지요! ^ㅁ^ 하지만, 가족이 생겨서 더 행복한 것도 있고, 나중에 서른이 되었을 때는 가족이 없이 서른이 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수도 있겠죠.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니까 5년 뒤, 10년 뒤를 준비하고 꿈꾸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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