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st prescription_필름이 끊어지고 눈을 떠보니 모텔이었습니다.

K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저는 이십대 초반의 여대생입니다. 우연히 알게 된 우리는 친밀감을 쌓아가며 좋은 느낌으로 데이트를 여러 번 했죠. 대화를 나누다보니 저는 그가 점점 좋아졌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점점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어요. 의아해하는 저에게 그는 할말이 있다면 하라고 기회를 주더군요. 제가 솔직하게 오빠의 태도가 나를 헷갈리게 만든다고 하자, 그는 나이차 때문에 교제가 망설여진다고 했어요. 그는 이십대 후반이거든요. 그는 자신이 진지하게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해야 하는데, 서로 잘 알기 전에 이렇게 가까워지는 게 겁이 난다고 했어요. 저는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마음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죠. 

그러다, 우리는 술을 마시게 되었어요. 그는 예전과는 달리, 자신의 연약한 부분도 많이 드러내더군요.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이고 모텔이었어요. 다행히도 우리는 그저 쿨쿨 잘 자고 있더라구요. 아침에 헤어지고 나서는 겁이 덜컥 났어요. 우리는 사귀는 상태도 아닌데, 아직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서로 필름이 끊어지고 모텔에서 일어났어요. 헤어질 때까지 우리는 안고 있었죠. 낯선 사람과의 스킨쉽을 극도로 싫어하는 저인데도, 이상하게도 편안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이렇게 가벼운 애가 아닌데 하는 자괴감과 부모님에게 혼날 생각에 너무나 혼란스러워요. 왜 내가 술을 그렇게 먹었는지 후회되고, 별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쉬운 여자가 된 것 같고, 나를 택시 태워 집에 보내지 않은 그 오빠는 나쁜 남자 같아요. 친구들도 그 오빠가 개념없고 나쁘대요. 저는 이제 내 마음도 모르겠고, 그 오빠 마음도 잘 모르겠어요. 




K님, 닥터 엘입니다.

이십대 초반에는 경악할만한 사건이, 이십대 후반에게는 가끔 있을 수도 있는 일이 됩니다. 스무살 즈음엔 영화나 드라마, 음악의 감동도 거대하게 다가오죠. 나이가 들수록, 좋은 영화, 좋은 음악을 접해도 그 감성이 몇분을 못갑니다. 사람은 비슷한 자극에는 무뎌지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할 때는 늘 깨어있어야 하고, 늘 새롭게 호흡해야만 내 인생을 만끽할 수 있는 거랍니다.

K님은 지금 심장이 시키는 대로 팔랑팔랑 나비를 쫗아가고 있지만, 오빠는 이미 모든 계산이 끝났고 시나리오도 다 짜놓았습니다. 그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그의 나이가 그렇게 시킨 거랍니다. 그는 K님과 연애할 경우와 연애하지 않을 경우, 자신에게 미칠 영향과 상처를 미리 다 계산해놓았습니다. 그가 하나를 내보이고 두발짝 물러서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죠. 그는 손해보는 연애를 할 생각이 없고, K님이 받을 영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물론, 나이들수록 사랑에 풍덩 빠지는 미덕이 필요하지 않냐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들수록 방어적이 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결혼적령기란 무척 짧고, 관습법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는 좋은 결혼을 원하는 보통 사람이고, 그래서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나, 그도 냉정하기만 할 수는 없었을 테고, 술을 마시고 일부러 의식을 놓았던 걸 지도 몰라요. K님 역시 그랬겠지요. K님도 그 오빠도, 맨정신으로 상황을 정리하기에는 용기도 없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 없으니까요. 모텔에서 아무 일 없이 아침에 깬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안타깝게도 아직도 많은 남자들이 술자리에 동석한 여자가 정신을 잃을 경우, 게다가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판단될 경우, 동의없이 섹스를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K님이 아무 일이 없었던 이유는, K님이 너무 어려서 배려받은 것이거나, 그 오빠가 희박한 확률로 제대로 된 섹스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은, 그 오빠도 너무 취해 뭘 할 정신이 아니었던가. 

술자리에서 가장 바람직한 엔딩은 K님의 친구들이 말한대로, 택시를 태워 집으로 돌려보내는 거죠. 아니, 아예 술에 취하도록 술을 마시게 하지 않고, 자신도 취하지 않는 것이 맞죠. 그러나, 두 분은 서로가 연애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전제였기 때문에, 그는 남의 귀한 집 따님을 새벽까지 붙잡아도 어느 정도는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K님은 자기 자신의 주량을 몰랐고, 밤늦게 단둘이 남자와 술을 마신다는 것이 어떤 위험을 담보로 하는지 몰랐고, 그 오빠 역시 자신의 주량을 콘트롤하지 못했죠. 이십대의 많은 술자리가 자기 통제를 잃어버리면서 사건사고를 마주하게 되지요. 청춘의 한 때란 그렇게 필름이 끊기면서 지나가기 쉽상이죠. 만약 그 경험이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단지 한번은 겪어야 할 교훈을 지금 체득했다고 생각하세요. 저 역시 내 주량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낯선 곳에서 일어나고 패닉 상태에 빠졌던 적이 있으니까요. 많은 언니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킨쉽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도, 불안하고 낯선 곳에서는 누구라도 익숙한 체온에게 의지하고 싶은 기분이 되서 그런 거에요. 그러니까, 그 스킨쉽에 많은 의미를 둘 이유도 없답니다.

그리고, 아마도 술을 마시면서 그 오빠가 보여준 마음의 틈이나 흔들림은 K님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될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교제를 시작하고 나서도 필요하게 될 수많은 방어막을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진짜 남자라면, 그런 장치를 하기 전에, 여자가 안심할 수 있고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겠지요. 그런데, 그는 아직 K님에게 프로포즈할 생각이 없고, 다만 적극적인 K님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K님은 먼저 정신을 바짝 차리시기 바래요.

만약 그 오빠가 진심으로 K님을 원한다면, 언제라도 다시 맨정신으로 프로포즈를 할 테니까요. 좋은 인연이라면 분명히 다시 예의를 갖추어 자신의 진심을 꺼내보일 겁니다. 만약 그 오빠가 그 이후로 연락이 없다면 본인의 노선을 결정한 탓이겠지요. K님이 먼저 연락할 이유는 없습니다. K님이 해야할 일은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진지하게 그를 향해 있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에게 연락이 온다면, 정식으로 교제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질문하고 답을 받도록 하세요. 그가 대답을 제대로 못하면,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달래고 얼러가며 연애하기는 힘드니까요.








* 관련하여 아래의 이북을 참고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HOW2LUV: 연애부적합유형_남자편>

<HOW2SEXPART1>

<HOW2SEXPART2>





덧글

  • 낭만여객 2009/03/30 15:33 #

    그 오빠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렸네요. k님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선택하셨으면 합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시고 상황을 봐서 냉철히 판단하시길...
  • 2009/03/30 15:35 #

    그 오빠는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볼 때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아요. K님보다 더 흔들리고 더 정리를 못하는 듯 하거든요. ^^
  • nabiko 2009/03/30 15:55 #

    맞아요맞아.아 엘님 주옥같은 상담이었어요.
    정말 테그처럼 불분명한 남자는 끝이 좋지 않죠.그나저나 엘님 책내셔야하는 거 아니예요?ㅋㅋ
  • 2009/03/30 17:10 #

    살금살금 진행 중이랍니다. ^ㅅ^
  • 맑음뒤흐림 2009/03/30 16:46 #

    역시 태그에 모든 걸 담아내는 엘님의 센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 찾아올 사랑을 잘 선택하시길 바래요. ^^*
  • 2009/03/30 17:13 #

    ^ㅅ^ 사실 낭패스러운 경험을 하기 전에는, 잘 모르지요. 술 깨보니 낯선 곳이었더라, 이런 상황을 처음 겪었을때의 당혹감이란 진짜...... 말로 다 못하지요. 허허허.
  • 2009/03/30 17:0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3/30 17:12 #

    저는 무허가 무자격 상담이랍니다. 오로지 제 과거의 경험과 사람에 대한 애정만으로 시작한 일이에요. 저도 형편 피면, 상담 관련 공부를 정식으로 하고 싶어요. ^ㅅ^
  • 2009/03/30 19:1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3/30 20:53 #

    8살 연하라도 정신만 똑바로 박히면 괜찮아요. 대신 우리 나이가 결혼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니, 제대로 직업이 있는가, 체력은 튼튼한가, 술담배 안하나, 이런 것들을 꼼꼼히 살펴보세요. 만약에 애가 마냥 어리기만 하면 사실... 힘들죠. 연하라도 속이 꽉차야지,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면, 어따 쓰겠어요. ㅠㅠ
  • 2009/03/30 19:2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3/30 20:54 #

    공부라면 그저 책 읽고... 그런 것 뿐이고. ^-^

    그저 어려서 고생고생하며 살다보니, 뭐... 허허허허.
  • 팡야러브 2009/03/30 22:30 #

    나이는 숫자일뿐... 인데 저는 왜 이십대 초반임에도 후반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ㅁ-;;; 심장이 시킨 팔랑 나비 쫓음은 찾아오기도 전인데 말입니다 ㅠ
    제가 중학교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님께서 서른다섯살 하고 대화하는거 같다고 하시더라는.... ㅡ_ㅡ;;
  • 2009/03/30 23:07 #

    일찍 철든 것도 복이지요, 뭘. ^ㅅ^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그래도 진짜 사랑이 닥치면 미쳐 계산할 틈도 없다능. ^^
  • 2009/03/31 09:1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4/19 15:20 #

    저도 비공개님과 똑같은 상황을 겪었거든요. 나이가 있는데 설마 허투루 하겠어, 하고 내심 긍정적인 예상을 했는데, 나이와 어른되는 건 하등 상관없더라구요. 나이가 많다고 다 잘 알고 잘 하는 건 절대 아니지요. 어쩌면 비공개님이 야무지게 마음먹고 정리정돈 해야할 지도 몰라요. ^^
  • 2009/03/31 12:3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3/31 16:07 #

    아직 사랑을 논할 단계는 아니고 호감 단계니, 그렇게 행동이 되지 않은 듯 해요. 눈뜨고 낯선 곳인 걸 발견했을 때, 저는 혀깨물고 죽고 싶더라구요. 허허.
  • 메리쫑 2009/03/31 16:00 #

    정말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천만다행이네요! 휴..
  • 2009/03/31 16:06 #

    그 오빠도 필름이 끊어지는 상태였대요. 그래서 다행인 듯.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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