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14일
203rd prescription
I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저는 다섯살 차이 선배와 서로 사랑하며 잘 사귀고 있었어요. 남자친구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서는 자주 못만났지만, 오히려 저는 그를 이해하고 격려했죠.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서 그는 왠지 멀어진 듯 느껴졌어요. 그는 자신이 장래를 준비하느라 신경쓰는 데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죠. 저는 이해했어요.
그리고, 최근 그는 드디어 취업을 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힘든 일정으로 업무에 돌입해야 했어요. 자는 시간은 서너시간에 불과하고 그 중간중간에도 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죠. 그러면서도 일주일에 반나절 정도 쉬는 힘든 일정이에요. 당연히 우리의 관계는 예전과 같지 않아졌죠. 몇달이나 문자도 겨우 주고 받는 상황이 되자, 저는 너무나 힘들어졌어요. 견디다 못해 며칠 전 저는 폭발했죠. 얼굴 보는 것도 겨우 10분 남짓. 어쩌다 통화가 되어도 바쁘니까 끊는다는 싸늘한 목소리. 저는 차라리 당분간 아예 연락을 않겠다고 선언했죠. 매번 연락을 기다리고 성의없는 대답에 상처받느니, 차라리 잠시 쉬는 게 낫겠다 싶었던 거에요.
저는 이 연애가 처음이에요. 그는 앞으로 7~8년을 더 고생해야만 하죠. 막막하기만 해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I님, 닥터 엘입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면 노동인권의 문제이기도 해요. 점차 개선되고는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우리의 노동환경은 열악하기 그지 없죠. 연봉이 높으면 높은만큼 노동강도가 높고, 연봉이 낮으면 낮은만큼 소모품 취급하죠. 만약 그 사람이 어려운 길을 가기로 결정했고,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 지 정해져있는 상황이라면, I님도 각오를 하셔야하겠죠.
일단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떤 스케줄로 일하게 될 지 다시 한번 점검해 봅시다. 아시다시피, 향후 2~3년은 계속 이런 패턴이겠죠. 잠도 못자고 쉬지도 못하고 정신도 못차릴 거에요. 그러나, 그는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여유가 생길 거에요. 그의 후배들이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지옥을 물려받을테니 말입니다. I님은 그동안 그와의 데이트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요. 그를 보살피고 사랑하기 위한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모두, 스스로를 훌륭하게 만드는 일에 쏟아보도록 하세요.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면, 그만큼 그의 부재가 만들어주는 상실감도 상쇄할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그 사람도 변해야 하죠. 어떤 남자들은 밥도 먹고 전화도 받고 팩스도 받으면서 동료와 메신저로 수다도 떠는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요.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 눈앞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주위에서 부르는 목소리도 잘 못 듣죠. 연인의 속삭임과 모기가 앵앵거리는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기도 해요. 제가 볼 때, I님의 남자친구는 멀티플레이가 안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일수록, 다른 일로의 전환에도 시간이 걸리죠. 업무용 뇌와 연애용 뇌가 스윗치되는 시간이 다른 사람의 몇배로 걸리는 사람인 거에요. 동료들이 몇분 안되는 시간에 입으로 밥을 우겨넣으며 손으로는 여자친구에게 달콤한 문자를 보낼 때, 이 남자는 오로지 밥이라도 편하게 먹자, 하는 생각 밖에 못하는 거겠죠. 그가 연애할 때 반드시 해야만 할 매너와 애정표현에 대한 스킬을 익히지 못하면, 그는 몇년이라도 I님을 외롭고 힘들게 할 거에요. 남자친구가 이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도록, I님은 이야기해야만 해요. 사실, I님이 참는 것은 한계가 있죠. 그런데, 그가 노력하는 선에도 물리적인 한계는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그가 구체적으로 언제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대화를 해보셔야 해요.
예를 들어, 아무리 바쁜 연예인이라도 밥은 먹고 화장실은 가죠. 심각한 회의나 바쁜 업무 중이라도 숨은 쉬고 커피도 마시고 담배는 필 거에요. 동료들과 한두마디 농담도 주고받겠죠. 그러나, 그가 연애에 할애해야 하는 신경과 정신을 따로 확보하지 않으면, 그는 수많은 자투리 시간을 그저 멍하니 흘려보낼 거에요. 그에게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세요. 문자를 보낼 때는 애정과 성의를 담아서 보내달라. 하루에 최소 두번은 반드시 전화를 하고, 통화가 가능한 시간을 알려달라. 일주일에 한번은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하고 그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비워달라. 자주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내가 생각날 때마다 반드시 표현해달라. 그리고, I님은 그 사람에게 이렇게 제안하는 거죠. 체력이 모자라면 내가 비타민 C를 공급해주겠다. 수면이 부족하면 내가 안아서 재워주겠다. 아침에 못 일어나면 내가 모닝콜을 해주겠다. 밤에 무서운 꿈을 꾼다면 새벽에라도 언제든지 달려가주겠다. 그와 헤어지기 싫다면, 그 사람의 삶 안으로 좀더 밀착해 들어가는 수 밖에 없어요. 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일정한 선을 긋다보면, 언제 그에게 다가가야 할 지 알 수가 없죠. 내가 그를 원한다면, 그만큼 더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해요. 그가 허락하는 한 가능한한 그의 삶에 가까이 가도록 해보세요. 그렇게 하다보면, 그도 자신의 삶과 연애를 굳이 분리하지 않아도, 숨쉬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것이구나 깨닫게 될 거에요.
여러가지 이유로 떨어져 있는 커플은 많고 많아요. 그러나, 아무리 오래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마음이 이어져있다고 느낀다면 그 연애는 건강한 거에요. 자주 얼굴보고 연락한다고 해도 마음이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반드시 둘 중 하나는 외로움에 지쳐버릴 거에요.
그와 대화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면, 그도 나름대로 실천사항을 결정할 수 있겠죠. 그 다음에는 서로 노력하는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I님은 그가 행복해 할 수 있도록 충분히 애정표현을 늘리세요. 그가 없는 시간에 얼마나 그를 생각하고 걱정하는지 편지를 써요. 러브장도 만들어봐요. 혼자서 씩씩하게 버티는 자신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요. 그를 위해서 준비하는 선물들에 대한 힌트를 보내요. 챙겨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세심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세요. 그가 생각만큼 나에게 되돌려주지 못한다고 해도, 그가 노력하는 게 역력히 보인다면 조금은 인내하세요. 그가 일상에 지친 나머지 도저히 연애를 계속할 에너지가 없다는 판단이 나오기 전에는, I님도 그도 포기해서는 안되겠지요.
I님은 그와의 장래가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하셨죠. 그도 아직은 잘 모를 거에요. 그러나, 두 사람은 결혼 때문에 연애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랑 때문에 연애하는 거니, 일단은 이 사랑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셔야 할 거에요. 미래에 무엇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을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연애할 수는 없지요. 지금의 고통이 미래에 보상되리라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쟁취하고 나서,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그와의 미래로 다가가야만 해요.
지금까지도 힘껏 노력해 왔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그와 구체적인 논의를 해보세요. 아직도 서로 사랑한다면, 분명히 변화가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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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4/14 20:47 | LOVE&MEMORY(201st~)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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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도 아닌데 하루에 서너시간 자고 중간에 콜을 받으면서 일주일에 휴일도 없다면.. 정말 그 외에 아무 생각도 안나더군요.. (대학교 1학년 들어왔는데 강의,과제,행사, 등등에 서너시간 자고 하는짓을 한학기 동안 해보니 누가 건들기만 해도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남자친구분도 I님을 안보고 싶어하는건 아닐겁니다
80년생 동기 형님이 계신데 만난지 7년차 커플이었습니다.. 여자분이 20대 초반인데 학교가 의무 기숙사 제도에 주말에도 MT에 채집에 실습이라 서울-청원을 형님이 왔다갔다 하기 힘들고 해서 밤마다 전화로 싸우시더니 결국 헤어지시고 방학때 겨우 달래서 다시 사귀시던걸요.. (여자분 20대 중반쯤 되시니 서로 연락도 뜸한거 같지만요 큭큭)
어쨌든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
...무튼, 어쩌면 첫 연애라서 더욱 두려워하시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잘 이겨내실 수 있어야 할텐데.
내담자 분이 보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친구를 많이 사랑하셔서 결혼까지 고려하고 있다면 앞으로도 많은 일들을 감내하셔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내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엘님에게도 인사드리게 되네요. 좋은 글 꼬박꼬박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
덧글 남겨주셔서 반갑습니다. ^^
만약 제 상황이라면 조곤조곤 차분차분 대화하는 것도 엄두가 잘 안나는 걸요 ㅜ.,ㅜ;; 에... 뭐, 제 성격이 좀 급화르륵 타오르는 면이 있어서 그런것도 있지만요(쭈삣) 저는 예전에 연애할 때 신랑이 바빠서 그러면 막 다퉈버렸거든요. 대화로 시작했다가 결국엔 화를 막 내버린달까..? 허허허..
하지만 I님은 잘 해내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락을 원래 귀찮아하는 타잎이라면, 이 사람도 엄청 노력해야 하고, 비공개님도 조금은 참아야겠지요. 그런데, 제가 아는 어떤 커플은, 남자가 엄청 연락을 안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여자아이가 어떤 요술을 버린 건지, 연애 3년이 지나는 사이에, 모든 것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수다장이 남자로 만들어버렸어요. 그 남자는 모든 걸 여친에게 다 얘기하고 다 상담하고 자신이 결정을 내린 일도 다시 허락을 구하죠. 무슨 여자아이처럼 수다를 떨어요. 아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도 전화나 문자로 시시콜콜 얘기하더라구요. 그들은 전화량이 상당하죠. 문자량도 엄청나구요. 이건 뭐 극단적인 예지만, 이렇게 사람이 바뀌기도 한다는 말이죠. 저도 처음엔 만나서 시시콜콜 어쩌고 귀찮고 얘기하는 게 참 싫었는데, 이제는 남친과 별 것 아닌 이야기도 시시콜콜 하죠. 때로는 내가 무슨 얘기를 했지, 할 정도로 아무 말이나 마구마구 하기도 해요. 어린애 같은 짓도 하고 바보 짓도 많이 하죠. 처음에는 전혀 그러지 못했지만, 화학작용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나도 변하고 그도 변하죠.
연락의 문제나 표현의 문제는, 비공개님이 조금씩 유도하세요. 그가 쓰고 시도할 수 있는 팁이나 예를 먼저 제시하기도 하구요. 먼저 실천도 해보세요. 연락을 더 요구하고 애정표현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해달라,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게 아니에요. 그게 더 행복하다면, 그걸 모르는 남친에게 가이드라인을 주는 거죠. 저도 남친도 그런 방법으로 서로 애정표현의 역사를 쌓아왔답니다. ^^
두 분도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기도할게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