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th prescription_프로필이 사기인 남자와 결혼한 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H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소개팅으로 만난 남편과 2년 정도의 교제 끝에 결혼했고, 결혼한 지는 1년이 채 안됩니다. 저는 혼전순결주의자고 남자가 유흥업소에 다니는 것도 경멸했죠. 지난 연애에서도 스킨쉽 문제로 헤어진 경우가 몇번 있었습니다. 남편을 만날 때도 주선자가 그 부분을 보장한다고 해서 호감을 가졌죠. 남편은 제가 첫 여자라고 했고 저는 그와 결혼했죠. 그런데, 결혼 후 몇달이 지나지 않아, 우연히 남편이 저와 사귀는 중에 다른 여자와도 사귀었고 모텔도 다녔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저를 만나기 전 여자친구라고 변명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와는 계속해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확인해보니, 그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얘기나 결혼했다는 얘기도 없이 그저 그만 만나야겠다고만 했대요. 결국 그녀도 남편에게 속은 거죠.

저는 결혼 전 생략했었던 산부인과/비뇨기과 검사를 뒤늦게 받았어요. 저는 클리어였고, 남편은 성병이 발견되어 치료받았죠. 이 일이 시댁에 알려져 시할머니가 오셔서 저에게 늙은이 봐서라도 살아달라고 애원하셨죠. 저는 눈 질끈 감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 한계에요. 수면제를 먹고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어요. 그는 게임중독자가 되었죠. 잠자리도 거부합니다. 종종 이제 그만 살자는 말을 하기도 해요. 저는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참았죠. 이제는 그가 도리어 큰소리에요.

부모님에게 저는 항상 자랑스러운 딸이었어요. 문제 한번 없이 남들 부러워할만한 학교에 회사에, 좋은 결혼도 했다고 생각하시죠. 이혼해야 하는지, 참고 살아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H님, 닥터 엘입니다.

저는 H님의 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만나서 결혼하게 된 과정, 남편의 거짓말, 성병, 게임 중독, 잠자리 거부, 시댁의 이혼 만류, 도리어 큰소리까지. 제가 아는 분의 사정과 너무 똑같아서요. 혹시 그 언니가 자신임을 숨기고 메일을 보냈나 몇번이나 다시 읽었죠. 마음이 아픕니다. 이 결혼은 H님이 원하던 결혼이 아니지요. 이 결혼에서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H님. H님의 결혼관을 다시 한번 되짚어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부모님을 위해 결혼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조건도 맞고 결혼관이 일치하면, 죽도록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할 수 있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는다면, 결혼해서 훌륭한 가정을 꾸릴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반듯하게 자랄 수 있겠지요. 굳이 사랑이 아니라 파트너쉽도 결혼을 위해서는 충분한 전제조건이 됩니다. H님과 남편분의 결혼관은 얼마만큼 일치하나요?

안타깝게도 H님과 남편분은 충분히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나서 결혼한 것으로 보입니다. H님은 사랑의 시작이 서로 간의 신뢰라고 생각했고, 남편분의 가치관은 아쉽게도 그렇지 않지요.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그는 금방 밑천이 드러나는 거짓말로 일관하고 상황을 도피하려고 할 뿐, 결혼 시스템을 원활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지요. 남편분은 지금 자신이 해 온 거짓말을 덮으려는 노력도 없어보입니다. 자기 기분대로 하고, 이후에 일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죠. 헤어지자고 큰소리치는 것은, H님이 부모님과 사회적인 체면을 생각해서 이혼은 하지 않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H님은 사실 여러 번 이혼을 결심할 타이밍이 있었죠. 처음 그의 거짓말을 발견했을 때, 남편의 성병을 확인했을 때, 그가 게임중독자가 되어 자신의 무시할 때, 잠자리를 거부하며 대화를 거부할 때, 최초로 큰소리치며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그러나, H님은 이혼하려고 하지 않았죠. 남편의 잘못을 참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반복될수록, 남편분도 죄책감이 희박해졌겠죠. H님은 극단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죠. 그래서, 남편분은 이 시스템이 견고하다고 믿고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만약 두 분이 그저 서로 성실한 파트너쉽을 맹세한 후 결혼했다면, 남편이 결혼 직전에 양다리를 걸친 것이나, 게임중독에 걸려 대화를 중단한 것이나, 섹스리스로 생활하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결혼의 외적인 부분에서 균열이 생길 정도만 아니면, 두 분은 회사도 잘 다니시고, 각자 마음에 드는 이성과 데이트도 하고, 시댁과 친정에도 주기적으로 인사도 드리면서, 살아갈 수 있겠지요. 아이가 생기면, 두 분의 사랑을 증명하지는 못해도, 사람 간에 예의 지키고 사는 모습은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H님의 결혼은 분명히 사랑을 전제로 시작되었다는 거죠. H님은 지금 자신의 결혼관을 변경할 수 있나요? 그리고, 남편은 이 결혼생활에 충실할 각오가 되어있나요? 이제부터 시작되는 섹스리스의 나날과 의도적인 무시, 대화 불통의 시간을 견딜 수 있나요?

제가 볼 때는 어느 쪽도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마음이 행복한 쪽으로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그는 분명히 또 실수도 하고 거짓말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게임으로 도피도 하고 부모님에게 상처도 줄 사람이죠. 그러나, 사회 생활은 멀쩡하게 하겠지요. 그런 그와 결혼생활을 유지할 가치가 있다면, 그렇게 하세요. 이 결혼을 유지해야게다는 결심에는 온전하게 H님의 마음만이 중심이 되어야할 거에요. 부모님과 친구들, 친척들, 시댁 식구들을 생각하면, 오랜 세월 남편들의 바람과 불륜과 거짓말을 인내하며 자식들만 보고 살아온 불쌍한 우리 어머니들의 전철을 밟는 셈이 될 테니까요.

물론, 이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혼을 각오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이유가 있죠.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했던 사람들입니다. 누구도 가족들 얼굴을 떠올리면 이혼할 수 없습니다. H님은 자신의 마음에 거짓말하지 않는 것과 가족의 체면 중에서 어느 쪽이 중요한지 결정해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의 하나, 두 분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그 다음에는 더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만약 그가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할 시 전재산을 위자료로 준다는 각서라도 쓰고, 무릎꿇고 빌며, 밤이면 참회의 기도를 하고, H님이 감동할만큼 매일같이 사랑을 쏟는 노력을 한다면, H님도 재고할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죠. H님은 더욱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하고 행복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온전히 자신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H님이 사랑을 믿는다면, 다시 사랑은 옵니다. 그러나, 이게 마지막이라고 주저앉으면 H님에게 진짜 사랑은 영영 다가올 기회를 잃어버릴 거에요. 부디 행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덧글

  • 팡야러브 2009/04/25 22:35 #

    아이가 없다면.. 해결이 좀 쉽겠네요..
    저는 마누라가 성병 있다면 오늘부로 도장찍습니다..;; 성병의 무서움은 전공책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ㅁ-
  • 2009/04/25 22:44 #

    결혼 전 바이러스 검사 후 치료하면 뒤늦게 도장 찍을 일도 없겠지요. ^ㅅ^
  • 메리쫑 2009/04/27 16:48 #

    정말 아이가 생기면 해결하기 더 어려워져요..
    저도 결혼한 사람이지만 제가 저런 입장이라면 이혼하겠습니다. 사랑이 없더라도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 전에 상대방을 위해 노력하고 가정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할 거에요. 그런데 H님의 남편분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으니.....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사람은 정말 어지간해선 변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생겨도 부모의 불화를 보면서 자라는 것 역시 결코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아요. 그리고 제 생각엔, 그런 사실을 부모님이 아신다면 되려 잘했다고 하시지 않을까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잖아요.
  • 2009/04/27 18:15 #

    메리쫑님 정말 어른이 다 되신 듯! >ㅅ<
  • 메리쫑 2009/04/27 19:07 #

    앗! 부끄럽게시링....>ㅅ<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고도 멀었답니다(....)
  • 2009/04/28 01:56 #

    ^ㅅ^ 저도요. 같이 노력합시다!
  • apoptosis 2009/04/28 00:23 #

    아,,,,
    이런...
    뭔가 해 줄 말이 참 많은것 같은데..
    할 수 있는 말이 없군요...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

    ㅜ,.ㅡ;;

  • 2009/04/28 01:56 #

    ㅠㅁㅠ 그래도 하루하루 힘내서 살아갑시다
  • apoptosis 2009/04/29 16:51 #

    힘이 넘쳐서.. 주체를 못해서 문제인걸요..ㅋㅋ
  • 2009/04/29 17:15 #

    오오 넘치는 것은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하하하.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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