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55th prescription

C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저는 연애경험이 적고 제대로 사랑받은 기억도 없는 것 같아요. 늘 상대에게 잘해주다보면 상대는 저를 편하게만 대하죠. 노력하고는 있지만 쉽게 달라지진 않아요. 전 상대의 호감이나 애정을 늘 늦게 눈치채죠. 보통은 연하남들이 저에게 접근을 해와요. 그러나, 저는 경계하고 긴장하는 편이라, 늘 감정의 발전이 없죠. 
 
한 모임에서 알게 된 연하남이 힘들어했을 때 위로해주었다가, 술자리에서 그가 저에게 키스했어요. 오래 알던 지인이었는데, 최초의 스킨쉽에서 저는 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생겼어요. 그는 소심하고도 신중한 성격이라, 이후에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저에게 예전에 감정이 있었다고 얘기는 하면서도 다른 일상적인 얘기를 하며 가볍게 넘기더라구요. 다른 날 만나서 진지하게 질문했더니,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답도 했죠. 그러나 저는 계속해서 그의 감정이 궁금해서 고민을 하다가, 이후에 다시 만나는 날 그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예전 여자친구 얘기를 꺼내길래 저는 쿨하게 일어섰죠. 이후로, 그는 연락이 없었어요.

연애도 아니고 지인도 아니고 그저 누나동생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제가 연애나 사람의 마음을 몰라서 많은 것을 놓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너무 성급하게 몰아붙여서 둘 사이의 감정이 발전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해요. 

아주 많이 시간이 지나서 그에게 연락을 했더니 반갑게 안부를 전하더라구요. 저는 다시 조심스럽게 연락을 해보고 싶은 마음인데, 어떻게 하면 될 지 모르겠어요. 

 






C님, 닥터 엘입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그 친구에게 연락하지 마세요. 그리고, 가장 먼저 하셔야 할 일을 알려드릴게요. 그를 대신해 그 사람의 사정을 해명하고 이해하고 변명하는 일을 그만 두세요. 지금까지 C님이 하신 행동들은 모두 올바르고 정당한 일들이었어요. 타인에게 다정하게 대한 것, 타인의 애매하고 모호한 호감 표현에 경계심을 세우신 것,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스킨쉽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것, 그의 감정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요구하며 질문한 것까지 어느 하나 잘못 하신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하나는 맞아요. C님은 연애 경험이 적고, 상대의 마음을 잘 모르지요. 그러니까, 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늘 제대로 된 질문을 해서 답을 받으면 되는 것이랍니다.

저 역시 똑같은 경험이 있답니다. 한 모임에서 알게 된 남자와 술자리에서 이야기가 잘 통했고, 비공식적인 주변의 격려로 인해, 어느새 커플처럼 여겨지게 되었지요. 그는 스킨쉽을 했고, 저는 그 의미를 알고자 했어요. 그는 저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했지만, 당장 사귀자는 프로포즈는 하지 않았죠. 제가 며칠 동안이나 고민하는 사이, 그는 그 일을 없었던 일로 하고 다른 곳으로 피했더라구요. 저는 우리가 둘 다 성인이고, 만약 술자리에서 잠깐의 실수라면, 그렇게 정리하고 넘어가고자 했어요.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술자리에서의 행동에 대해서는 실수라고 인정하기 싫어해요. 자신의 감정은 진지했다고 진심이라고 변명하죠. 그러나, 이건 절대로 잊지 마셔야 해요. 술의 효능은 뇌의 일부를 마비시키면서부터 시작되죠. 제가 모든 상담에서 술은 끊어라, 데이트할 때 술을 마시지 말라, 술은 절제하라고 부르짖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랍니다. 취중진담, 이라는 말은 곧 맨정신으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정도의 진실이라는 뜻이에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취중헛소리만이 존재한다는 거죠. 주류 회사들이 참으로 싫어하겠지만 제 신념에 따라 선언하자면, 약간 과장해서, 술은 연애할 때 생기는 모든 악의 50%를 담당하는 약물이랍니다.

앞으로는 술자리에서 참으로 좋았고, 참으로 달콤했고, 정말로 마음과 마음이 통했던 키스도 카운트하지 마세요. 굳이 물어봐서 무엇하겠습니까. 술자리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그저 술자리에서 완결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사람은 소심하고 신중한데, C님은 그저 그 사람을 당황하게 하고 밀어붙여서 인연이 안 된 것 뿐일까요? 절대 아니에요. 그 사람은 그저 술마시고 잠깐 실수한 것 뿐이에요. 의미는 없어요. 그리고, 그가 가졌던 과거의 애정은 그저 과거에서 끝난 것이에요. 그가 이런저런 화제로 말을 돌리고 C님의 질문에 제대로된 답변을 할 의지가 없어보이는 것은, C님과 사귈 생각이 없어서이죠. 구구절절 사연이 생기고 이유가 있는 것은, 그가 NO라고 말할 위인도 못 되어서에요.

물론, 그는 매력적이고 멋진 남자였을 수 있어요. 그러나, C님이 만나야 할 남자는, 좀더 C님의 내면을 사랑하고, C님의 불안한 마음의 벽을 깨뜨리고, C님을 신뢰할 수 있게 하는 남자여야 해요. C님은 지금까지 하시던 대로, 마음껏 신중하고, 마음껏 경계하고, 마음껏 제대로 질문하고 답변을 구하는 여자여야 해요. 그래야 진짜 내 남자를 골라낼 수 있어요. 만약 그 연하남이 진짜 남자라면, 그 날의 스킨쉽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던가, 아니면, 그 날의 키스를 시작으로 진지한 연애관계를 시작하고 싶다고 프로포즈했을 거에요. C님이 아무리 서로의 나이차가 걱정된다고 해도, 연애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 지 두렵다고 해도, 너에게는 더 많은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설득한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을 넘어서 다가왔을 거에요. 저와 제 남자친구도, 그런 벽을 넘어서 그렇게 연애를 시작한 걸요. 인연은 모든 불가능을 넘어서, 그렇게 시작하는 거랍니다. 정말로 그 연하남과 C님이 인연이었다면, C님이 발버둥쳐도, 그 남자는 우리 사랑하자고 C님을 반드시 설득시켰을 거에요.

C님, 선택당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선택할 수 있는 여자가 되세요. 괜찮은 매력적인 남자가 있다면, 그게 연하이든, 연상이든 고민하지 마시고, 차 마시자고, 밥 먹자고, 불러내세요. 내가 만약 상대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면, 먼저 데이트를 신청한다고 해서 남자가 물러서거나 도망가지는 않아요. 오히려 자신의 수고를 대신 해준 여자에게 백만점 플러스를 해줄 거에요.

C님의 행동은 훌륭하기만 해요. 생각만 바꾸세요. 그리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가시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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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 2009/05/18 17:46 | LOVE&MEMORY(201st~)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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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슈 at 2009/05/18 19:19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답도 했죠. "
-> 이미 답은 나오셨네요.
그 사람은 정말 잘 모르는 거죠. 본인의 감정도 모르고, C님의 감정도 모르고.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런 사람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다보면 남는 건 자신에 대한 환멸(쉽게, 싸게 굴었다는) 뿐인 것 같아요.
"늘 상대에게 잘해주다보면 상대는 저를 편하게만 대하죠." -> 저도 이런 유형이라 늘 혼자 의미 부여하다 늘 당하고 결국 스스로만 잔뜩 비난하면서 끝나죠..
Commented by at 2009/05/18 20:35
꺅꺅. 아슈님, 자신에 대한 환멸이나 비난은 필요없답니다. 술자리에서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어떤 맥락에서 서로 스킨쉽을 하게 될 때가 있어요. 그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에요. 중요한 것은 이후에 어떻게 정리를 할 것이냐죠. 잘 정리했다면, 그것은 자신을 비난할 이유가 될 수 없답니다.

스스로를 상처입히지는 마세요. ^^
Commented at 2009/05/18 21: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5/18 21:40
비공개님은 너무 이해심이 깊은 것 같아요. 비공개님이 만약 그 아이에게 제대로 질문했다면, 그도 제대로 답을 했을 거에요. 그 아이가 긍정적인 대답을 했는데도 비공개님이 못 알아들은 것은 아니었겠지요. 당연히, 그는 비공개님과의 일은 그냥 지나가고 싶었던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요.

그리고 비공개님이 그에게 여러 번 정확한 답변을 요구하고 질문한 것은, 절대로 '압박'한 것은 아니에요.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제대로 행동하신 것이죠. 저 역시, 이런저런 일을 겪을 때는, 비공개님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상처입히고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혼자 도망가고 울고 고통스러워했었어요. 대인공포에도 빠지고 영원히 연애 같은 것은 안하리라 몇번이나 다짐했죠. 남성혐오도 심했었구요.

하지만, 인연은 자연스럽게 다가온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를 제대로 대접하고 살자, 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다가오더라구요. 그리고, 굳이 꼭 사겨야 하고, 꼭 결혼해야 하고, 이런 강박을 벗어버리면, 자연스런 데이트도 경험할 수 있어요. 내가 마음을 편하게 오픈하면, 그 때 다가오는 인연들도 감정이 자연스럽게 시작이 되지요.

나이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기 바래요. ^^ 만약 다시 그에게 연락을 했다면, 마지막으로 차 한잔 같이 마시고, 솔직히 그 때 감정 이야기하고 툭툭 털어버리세요. 그와 다시 연애가 가능할 지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가 비공개님을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하거나 그렇지는 않을 거에요. 왜냐하면, 그 즈음의 아이들은,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일이고,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책임감이나 죄책감도 희박해져있는 상태거든요. 그저 잠시 사이 좋았던 누나로 기억할 거에요.

그저 비공개님의 진심을 전하고, 그걸로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면, 만나서 차 한잔 하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요.
Commented at 2009/05/18 21: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5/18 21:42
음... 그렇군요. 안부 문자는... 상대 입장에서는 굳이 답을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요. 연락이 없으면 그냥 잊는 게 나을 수도 있고요. ^%
Commented by 위시 at 2009/05/18 21:41
같은 남자지만... 정확히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술자리에서 키스하고 그러는 자체가 이해가 안 갑니다;;;; 뒷감당은 어찌 하려고... 본인의 감정을 몰라서 갈팡질팡한 걸까요 정말.. 꼬꼬마 같아보여요. 그리고... C님의 행동을 보면 엘님이 항상 일러주시는 걸 그대로 지키시는 것 같아보이네요. 대단해요..
Commented by at 2009/05/18 21:43
그쵸. C님은 정말 멋지세요. 그런 태도라면 앞으로 좋은 연애를 못할 수가 없죠! ^ㅅ^

그리고, 술자리의 키스는 분위기 상...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도 있지요. 중요한 건 나중에 잘 정리하는 태도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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