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83rd prescription

A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1.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했더라도, 서로 연애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감정을 접을 수 있고, 연애하다가도 한쪽만 마음이 변해도 헤어지기도 하지요. 그건 왜인가요? 자신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소중한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괴롭게 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엘님의 말씀처럼 고통이라는, 마음이 보내는 구조신호를 캐치했기 때문인가요?
 
2. 저는 늘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보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더 중요했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절 사랑해준들 의미가 없었습니다. 왜 저는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보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더 중요한걸까요?

3. 왜 저는 저를 괴롭게만 하는 사람에게서 정을 뗄 수 없는걸까요?

4. 어떻게 하면 남보다 저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나요? 어떻게 하면 마땅한 이별 앞에서 굳건할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제가 소중하기 때문에, 저를 위해서, 오로지 저 자신만을 위해서 보답받지 못할 사랑을 끊어낼 수 있나요? 
 
5. 저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앞으로도 그럴 사람이 사랑스러워보이는 건 대체 왜일까요?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그 사람이 하는 행동에 괴롭지 않아지는 것도 아닌데... 다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영영 만나지 않을 생각을 하면 생살을 뜯어내는 것처럼 아프고, 무섭고, 두렵기만 합니다. 
 
6. 대부분의 정상적이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여성들은 깊게 사랑했던 연인이 변심하거나 해서 떠나갈 경우 어떻게 이겨내나요? 자신이 괴롭더라도 견딘다면 계속 만날 수 있는 관계라고 가정했을 때, 비참하더라도 참고 만나자는 유혹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나요? 사랑했던 사람을 끊어내는 괴로움에서 어떻게 굳건히 버틸 수 있나요? 
 
7.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엔 어떤 게 있을까요? 
 






A님, 닥터 엘입니다.

인류는 신화의 시대에서부터 불가능한 사랑을 찬미하는 역사를 밟아왔습니다. 이루어진 사랑은 흔하디 흔한 이야기로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지만, 고통받는 사랑, 보답없는 사랑, 목숨을 버리는 사랑은 마땅히 칭송받고 노래해야할 서사로 취급받아왔죠.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랑의 주류 담론도 서서히 변해왔어요. 지금 중요한 것은 사랑이 개인의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행복해야 하고, 내가 행복해야 상대도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관계죠.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리하자면, 사랑은 상호적인 것이나, 내 사랑의 주체는 나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거죠. 내가 불행한 사랑은 일시적으로, 나의 행복추구의지를 마비시키고, 그 안에 빠져들도록 합니다. 완전한 자유의지의 상실, 충실한 감정적 복종의 상태는 어떠한 극한의 쾌락을 담보할 수는 있죠. 오로지 상대의 행복과 만족만을 목적으로 할 때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관계의 발전도 궁리하지 않아도 되고, 관계의 결말을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어떤 시기에, 이러한 완전한 굴종의 관계에 경도되기도 합니다. 어떤 변화도 지향하지 않아도 되고, 어떤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고, 관계를 끊는 것만이 아니라면 어떤 선택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굉장한 쾌락이 됩니다.

그저 수용만 하는 상태는 갓난아기의 상태죠. 인간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호받고 사랑받던 시절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 완벽한 사랑을 타인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독립합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완벽하던 갓난아기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거에요. 저도 가끔은 인생이 힘들고 연애가 막막할 때 생각하거든요. 엄마 뱃속으로 다시 돌아가면 좋겠다고.

A님이 보답없는 사랑에 애착관계를 형성한 것은, 그것이 불가능한 사랑이기 때문이에요. 무기력한 사랑, 나의 자유의지가 통하지 않는 사랑, 일방적인 사랑이죠. 내가 끊어내지 않으면 그 관계는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죠. 어떤 책임도 선택도 없어요. 이 완벽한 무기력의 상태는 너무나 매력적이라서, 중독되면 벗어나기 힘들어요. 그러니까, A님은 이제부터 나의 이 욕망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이해하고, 자신의 심장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제대로 가려내야 해요. 고통은 계속해서 건강해지자고, A님을 독려해요. 그 부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세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연애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도와주는 특별한 인간관계죠. A님은 갓난아기처럼 온전하게 사랑받고 보호받는 경험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자유의지를 가져도 되지 않는 관계로 스며든 거에요. 그 관계에 애착을 형성하고, 매달려온 거죠. 그러나, A님은 더이상 갓난아기가 아니죠. 어른이 되기로 마음먹는다면, 그 관계에서 벗어나올 수 있어요.

그럼, 번호 순서에 맞게 답 드릴게요.

1. 연애에서 한쪽만 변해도, 그 관계가 이별로 이어지는 것은, 연애가 상호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그래요. 연애는 두 사람이 하는 것이고, 감정이 두 사람 사이의 빈 공간을 지나 서로에게로 흐르는 관계지요. 연애는 혼자일 때는 할 수 없어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하죠. 주체도 있어야 하고, 대상도 있어야 하죠. 어느 한쪽에만 문제가 생겨도, 그 관계는 불가능해지는 거에요. 자신을 존엄하게 지키기 위해 관계를 포기한다기 보다는, 일방이 문제가 있을 경우에 생기는 연애 관계의 불능성 때문이죠.

2. 저 역시 제가 사랑하는 게 더 중요했어요. 그런데, 내가 흠뻑 사랑받고 나니, 사랑받는 것도 중요하더라구요. 저는 이제 사랑받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둘다 중요해요. A님도 사랑받는 연습을 해보세요. 사랑받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그러고 나면, 내 감정만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아실 거에요. 사랑은 상호적인 거죠. 상대가 날 아무리 사랑해도, 내가 줄 수 없으면, 1.과 같은 이유로 그 관계는 존립할 수 없어요. 당연한 거에요.

3. 이미 그 사람과 단단한 애착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에요. 한번 애착관계가 형성되면, A님만 힘든 게 아니라 다 힘들어 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애착관계가 형성되는 건 아니죠. 물건에도, 행위에도, 자연에도, 감정에도, 사람에도 애착관계가 형성될 수 있어요. 담배, 약물, 쇼핑, 돈, 명성, 인기에 중독되는 게 다 이런 거죠. 인간은 타인이 있어야만, 자아를 구별할 수 있거든요.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애착을 가져야만 존재할 수 있어요. 그것이 건강한 애착이냐 건강하지 못한 애착이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4. 당분간은 혼자가 되어보세요. 그리고, 자기자신과 대화를 하세요. 자신의 진짜 욕구와 욕망을 끝까지 찾아들어가요. 과장되고 뒤틀린 모든 감정의 거품을 걷어내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요.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폭력적이지 않았나 점검해봐요. 역시 [비폭력대화]를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이 나오거든요. 저에게도 매우 도움이 되었어요.

5. 이것은 3.의 답과도 같아요. 누구라도 애착을 끊어내기 전에는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오지 못해요.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는 어린아이를 생각해봐요. 엄마에게 맞으면서도, 그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놓치 못해요. 그곳 이외에는 갈 곳을 모르거든요. 다르게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르거든요. 하지만, A님은 이제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그 관계를 끊는 것이 중요하지요. 애착관계를 끊으면, 빈공간이 생기고, 거기에 서서히 자기애가 차오르는 거에요. 자기 자신과의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건강한 연애도 할 수 있어요.

6. 건강하게 서로 주고받는 연애를 하고 나면, 상대가 나를 배신해서 헤어졌다고 해도, 자기애가 사라지지 않죠. 오히려 더 강해지죠. 그래서, 그 사람들은 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에요. 자기애와 자존감은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A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져 있을 거에요. A님을 괴롭히는 나쁜 감정과 집착을 끊어내면, 자신 안에 숨어있던 자기애와 자존감은 서서히 날아오르게 되어요.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7. 기다리세요. 시간을 주세요.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배우세요. 다들 그렇게 한답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드릴게요. 저 역시 어떤 날은 거울을 보며 생각하죠. 내가 매일매일 세수를 하고 얼굴 마사지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이 여드름들도 없어지고 나는 더 예뻐질 텐데. 그러나, 나는 게으름을 부리고, 나의 피부를 내버려두고 가꾸지 않죠. 모공이 늘어지고 여드름이 심해지고 나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해요. 더 이상은 안돼. 이제 한계야. 이대로는 안돼. 이대로 더 방치하다간 할머니가 되어버릴 거야. 나는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더 가꾸어야 해. 나도 예뻐지고 싶어. 나도 사랑스러워지고 싶어. 그리고, 다시 매일매일 세수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생활을 천천히 시작하죠. 그러나, 또 금방, 아이구 다 귀찮아, 하는 무관심한 상태로 돌아가기도 해요. 자기애도 노력이랍니다. 그리고, 꾸준한 도전이죠. 좌절에도 굴하지 않는 근성이랍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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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 2009/06/05 18:03 | LOVE&MEMORY(201st~)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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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6/05 18:2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6/05 19:10
사랑받는구나... 하는 건 넘치게 사랑받으면 쪼꼼씩 감이 와요. 처음에는 주는대로 꼴깍꼴깍 천천히 삼키다가, 나중에는 그 사랑이 더 받고 싶어서 덥썩 물게 되죠. 저는 그렇더라구요. 시간이 지나서야 감사하더군요. 배가 차고 나니까, 이게 선물이구나 혜택이구나 싶고. 그 전에는 내 맘에 없는 남자들이 아무리 나에게 사랑한다 어쩐다 울고불고 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어요. 내가 사랑이 뭔지 모르는데요 어찌 알겠습니까. 이제는 알죠. 아이고, 나는 사랑받는구나, 내가 사랑하는구나.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생각하고 공부하고 노력하고 타인을 관찰해보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실패도 하며. 그렇게 사랑을 천천히 깨닫게 되겠지요.

그리고, 섹스는... 성욕과 스킨쉽은 본능이죠. 인간은 엄마의 양수에 빈틈없이 둘러싸여 편안함을 학습했거든요. 몸은 만져져야 해요. 고양이도 개도 마찬가지죠. 쓰다듬어 달라 안아달라 인간의 손 밑에 머리를, 몸을 들이밀죠. 그게 필요하니까요. 갓난아이도 안아달라 울잖아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에요. 인간의 몸은 만지고 쓰다듬으라고 있는 거에요. 그래야,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걸 알죠. 연인의 몸을 만져봐야 그가 내 손끝에 존재하는구나 알죠.

섹스는 본능의 영역이에요. 가치관과 기준이 있다면, 그 다음에는 다 잊고 몸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테이블 매너를 가장 근사하게 소화하는 방법은, 모든 에티켓을 다 숙지하고, 그 다음에 편한대로 하는 거에요. 가치관이 있고 내 기준이 있다면, 비공개님이 무엇을 하든, 크게 틀리지 않을 거에요.
Commented at 2009/06/05 18: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6/05 19:03
천천히 마음 정리하시고 들러주세요. ^^
Commented by MrCrazyani at 2009/06/06 00:58
홀로서기는 어렵죠. 인간은 본질적으로 단독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고독해요. 제 생각인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 개인에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어떤 개인이 자신의 실존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다고 해도, 아무리 억울한 상황에 있다고 해도, 아무리 세계가 나를 부정하려고 해도, '그럼에도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이요. 그 생각이 드는 이유가 바로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한 개인의 기본을 이루는 그것,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실존 근거의 정당성이 본질적으로 훼손되면 사람은 자살에 이르고(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그것이 확실할수록 자신감이 높아지죠.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실존이 무엇보다도, 이 세계보다도 앞선다는 것을 안다는 거예요.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이 세계도 존재할 수 없어요. 타인이 A님의 존재 근거가 될 수는 없어요. A님의 존재 근거는 오로지 A님에게서만 찾아질 수 있죠. 그것을 찾으려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조금 상투적인 질문으로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가 될 거예요. 나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 나 자신을 규정하려는 노력, 나 자신을 인식하려는 노력이 나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너무 현학적으로 써서 죄송합니다 ㅠ_ㅠ 쉽게 쓰는 건 정말 어렵네요 ㅠ_ㅠ;;
Commented by at 2009/06/08 16:45
끝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는 그 자아가 '나'겠지요. 내가 누구인지 하는 질문은 가끔 잊어버릴 수는 있어도 평생 따라오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가끔 새삼스럽게 다잡지 않으면 슬슬 흐릿해지고 말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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