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27일
309th prescription
I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2년 정도 사랑했고, 그 중 절반은 함께 살았죠. 우리는 결혼하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가 바람이 바람이 나서 헤어졌죠. 설상가상으로 저에게는 이별의 아픔과 함께 대내외적으로 좋지 않은 일들이 연속으로 닥쳤어요. 저는 일년이 넘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었죠. 힘들었어요. 친구들의 도움으로 얼마 전에야 겨우 세상 밖으로 나왔죠.
소개팅으로 사람을 만났어요. 그가 곧 프로포즈했죠. 우리는 사귀게 되었어요. 그런데, 얼마 안 가 그가 무뚝뚝해졌어요. 표현도 없고, 말도 툭툭 내뱉고. 저와 있는 것보다는 친구와의 술약속이 우선이더군요. 그가 경제적으로 힘든 것 같아, 데이트 비용도 대부분 제가 댔죠. 심지어 그가 저에게 돈을 빌려달라 해서, 주선자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깜짝 놀랐어요. 그는 재밌는 사람이고 돈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당황하더라구요.
어느 날, 그가 또 저와 함께 있는데도 술약속을 우선하며 가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섭섭하다고 하자, 그가 화를 내더군요. 제가 서로 좀더 노력하자고 노력할 생각이 없다면 이쯤에서 관두는 것을 나을 지도 모른다고 했죠. 그러자, 그만하자고 해서 우리는 헤어졌어요.
겨우겨우 세상으로 나와서 만나게 된 남자인데, 이런 식으로 끝나다니 좀 어이도 없어요. 저는 힘들어서 밤에 울어요. 다시 잡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이것이 사랑인지 미련인지, 집착인지 모르겠어요. 저와 맞는 것도 없고 잘해준 것도 없고 마지막도 어이없었던 사람인데, 왜 이렇게 생각날까요?
I님, 닥터 엘입니다.
지난 사랑이 상처로 남았다면, 다음 사랑에서는 보상이 있기를 기대하게 되죠. 힘들고 어려운 불행을 지나게 될 땐, 누구라도 그를 상쇄할만한 행운이 올 거라고 말하며 털어버려요. 그리고 나서, 정말로 좋은 일이 생기면 세상은 역시 공평하다며 안도할 수 있죠.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불행만이 찾아오지요. 좌절과 고통 속에 잠기다보면, 행복이 지나가도 미쳐 보지 못하고 지나쳐요. 왜냐하면, 행복은 아주 작고 사소한 얼굴로 자주 찾아오거든요. 불행은 그렇게도 크고 무겁고 잘 보이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오직 불행, 불행, 불행만 보이죠. 하지만, 잊지 마세요. 누구의 인생에도 행복과 불행은 항상 손을 잡고 와요. 누구와 더 친해질 지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랍니다. 나에게 큰 불행이 닥친다면, 작은 행복들을 모으는 일에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해요. 내일 아침이 오는 일, 시간이 차곡차곡 지나가는 일, 내가 건강한 일, 오늘 일용할 양식이 있는 일, 나에게 친구가 있는 일, 내 한몸 누일 방이 있는 일, 하루하루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일, 슬퍼할 심장이 있는 일, 꿈꿀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일부터 감사하고 만끽하고 즐거워해야만 하죠.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은 불행으로부터 한걸음씩 벗어나는 것이랍니다. 나쁜 일은 잊어버려요. 잊으려하지 않아도 시간이라는 지우개는 언젠가는 나쁜 기억을 지워줄 테죠. 어쩌면 세상은 온전하게 I님의 편인 지도 몰라요. 사랑했던 남자가 나를 배신했던 상처보다는 그와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I님은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고, 사람을 만났죠. 그리고, 또 한 명의 별볼일 없는 남자가 지나간 거에요. I님은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랍니다.
I님은 단지 하나의 연애에 실패했을 뿐이에요. 다행히 시간도 짧았죠. 그와 많은 것이 맞지 않았고, 그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성의없는 사람이었죠. I님은 옳은 선택을 했어요. 그는 I님의 이별 제안을 냉큼 수락했죠. I님은 이보다 훨씬 더 크고 힘겨운 상처도 견디고 극복한 강한 사람이죠. 그는 가볍고 무책임하고 빨리 도망가고 싶어했어요. I님은 그런 그에게도 예의를 갖추고, 몇번이나 그에게 맞추려고 했고 배려하려고 했죠. I님은 좋은 태도를 지켰어요. 그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죠. 저는 I님의 이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어요. I님은 더 좋은 인연과 더 좋은 연애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니까요.
I님은 그 사람이 자꾸만 생각나고,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눈물지으시죠. 하지만, 그것은 이별이라는 강렬한 드라마가 가져온 감상에 불과하답니다. 누구라도, 이별 직후에는 상대방을 모든 시간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게 되어요. 아무리 나를 상처주고 나와 맞지 않았고 기꺼이 내가 버려 마땅했던 남자라도, 이별 직후에는 가장 이상화되죠. 내가 뛰어가서 다시 잡아야만 하는 이상의 존재로 잠시동안 탈바꿈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상은 진짜 감정이 아니랍니다. 가까이 있었던 체온을 잃게 되면, 누구라도 그 공허에 몸을 떨어요. 나를 상처줄 지언정 가시에 찔릴 지언정, 나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그 체온에 안기고 안도하고 싶어져요.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손 치더라도, I님은 다시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올 테죠. 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인연이었다면, 두 사람은 어떤 우여곡절이 있어도 헤어지는 선택만큼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I님의 지금 감정을 잘 들여다보세요. 그것은 막연한 상실감이고, 잃어버린 체온에 대한 그리움이고, 처음부터 있었던 외로움이에요. 그것은 사랑이 아니랍니다. 미련도 집착도 아니랍니다.
I님의 감정이 아무리 진지하고 강하다고는 해도, 최소한의 성의도 없는 남자와는 연애할 수 없어요. 대부분의, 그러니까 80%의 남자들이 그래요. 처음엔 긴장된 목소리로 프로포즈하며 좋은 남자인 것처럼 위장하죠. 그녀가 마음을 열고 안도하면, 원래의 매력없는 남자로 쉽게 되돌아가요. 그녀들은 변한 남자와 울고불고 싸우다가 이별을 택하죠. 다행히, I님은 이런 모든 과정을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끝냈어요. 그러니, 얼마나 효율적인 이별을 한 셈인지 아시겠지요? 그래서, 저는 I님의 이별을 축하드리는 거랍니다.
I님, 저는 I님이 저에게 메일을 보낸 시점보다는 훨씬 더 마음이 정리되었으리라 생각해요. 그와의 연애는 그냥 지나가는 연애였어요. 내년 이맘 때면 잘 생각도 안날 사건이 될 지도 몰라요. 이런 지지부진하고 흐지부지한 연애가 얼마나 많던가요. 저 역시 그런 관계들을 거쳐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날 수 있었지요. I님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걸어나가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자신을 더욱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요. 그렇게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I님은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여자들은 언제나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성숙해지는 거랍니다. 누구라도 그래요.
# by | 2009/06/27 04:35 | LOVE&MEMORY(301st~)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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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담아갑니다. 눈물이 나려고 해요.
앞으로는 좀더 심장이 살아있는 인연 만나시길 빕니다. ^^
I님이 보다 더 좋은 분을 만나셨으면 하는 바램을 저도 가져봅니다 :)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