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89th prescription

K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저는 양성애자입니다. A에게 사랑을 느꼈지만 고백하지 못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어요. 그녀 역시 레즈비언이었고, 우리는 서로의 성향을 알게 되며 절친이 되었어요. 저는 그녀의 연애 상담역이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우정마저 깨질까봐 제 마음을 말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우리에게 새 친구 B가 생겼죠. A는 B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고등학생이 된 B는 친구들인 A와 저를 무시했어요. 한번은 싸움이 났는데, 저는 혼자였고, A와 B는 같은 쪽에 서 있었죠. 저는 결국 그녀들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어요. 이후에 A는 B에게 따돌림을 당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결국 저는 다시 A를 받아주었고,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갔어요. 그러나 제가 아파서 학교를 쉬게 된 탓에 자연스레 멀어졌지요.

저는 복학한 뒤 C라는 새로운 친구를 사겼어요. 우리는 서로 연애상담을 해주는 친구사이였어요. 그러다, C는 A와 친해졌고, 결국 사귀게 되었어요. 저는 배신감에 힘들었지만, 그들을 축하할 수 밖에 없었죠. 저는 그게 너무 힘들어, 그들과 거리를 벌리려 했고, 결국 소원해졌어요.

그들은 저보다 1년 먼저 졸업했고, 얼마 뒤 헤어졌대요. 저는 나름대로 감정 정리를 하고 대학에 진학했죠. 그런데, 얼마 전 A가 싸이로 연락을 해왔더라구요. 저는 그냥 무시했죠. 그런데도, 아직도 가슴이 뜁니다. 마음이 편하지도 않죠. 죄책감도 생겨요. 아직도 꿈에는 그녀가 나오죠. 저는 꿈속에서 A에게 쩔쩔매지요.

저는 이제 평범한 여대생이에요. 남자와도 사귀고 싶고, 예쁜 여성에게도 끌리죠.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도 해보고 싶어요. 누군가 좋아지려고 하면, 그녀의 망령이 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 벗어나고 싶어요.












K님, 닥터 엘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마음 속으로 가보고, 그 길에 닥칠 리스크를 재다보면 그 길을 아예 없는 길인양 접고 살아가기도 하죠. 그러다가도 어느날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갔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도 할 거에요. 하지만,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자신이 지나온 길이 바로 그 사람이 선택한 길이겠죠. 인생을 가장 가치있게 사는 방법이 있다면,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지 않는 마음일 거에요. 삶은 수없는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지지만, 때로는 선택하지 않고 남은 선택지가 자신의 선택이 되기도 하죠. 그럴 때에는 선택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도 생깁니다. 그러니까, K님의 고민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이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인 셈이죠. K님은 그와의 우정을 선택했어요. 그녀와의 사랑을 포기한 것이 아니랍니다. 만약 K님이 당시에 우정보다 사랑을 선택했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도 져야했을 거에요. 하지만, K님은 사랑이 가져올 우정의 손실을 걱정하고 그것을 막고자 했죠. 그래서, K님은 우정을 선택했던 거에요. A와 K님의 우정은 그래서 몇년 동안이나 유지될 수 있었지요.

당시 K님의 기준은 자신의 사랑을 구원하는 일에 있지 않았어요. 단지 A의 존재 옆에 가까이 있는 것, 둘의 우정이 손상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요. 그러나, K님의 사랑은 늘 아우성을 치고 있었어요. K님이 스스로를 더 돌보겠다는 자존감이 컸다면, 사랑을 억누르지 않았을 거에요. 상대에게 그 감정을 전하고자 했을 거에요.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을 각오하고, 그 감정이 상대에게 전달되어 어떠한 결과를 목도하는 것을 결심했을 거에요. 하지만, K님은 자신의 사랑을 구하는 일은 자꾸만 뒤로 미루었지요. 그래서, K님의 짝사랑은 그렇게 오랫동안 가녀린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K님은 오랜 시간 동안의 짝사랑이라고 계산하고 있으셨지만, 사실은 그렇게 오랜 시간도 아니었답니다. 생각해보면, K님은 다른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다른 우정도 경험할 수 있었고, 자기애도 성장시켜 나갔지요. A가 없어도 잘 지내는 시간도 있었고, A를 잊으려고 한 시간도 있었지요. 그러니까, 그 시간은 온전히 A만을 향해 있던 시간도 아니었어요. A는 처음부터 내 연인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A의 입장을 생각해볼까요. 그녀는 K님과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였고, 고민을 털어놓는 상담역이었고, 문제가 생기면 쉽게 기댈 수 있는 존재였죠. 그리고, 어느 순간에서는 A는 K님의 감정을 알게 되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녀는 K님을 선택하지 않고, 항상 다른 연인을 선택했어요. K님의 감정이 전해졌다고 해도, K님은 아마도 그녀의 거절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을 가능성이 크죠. 그러나, K님은 고백을 미루고 미루다가, A의 NO만큼은 절대로 피하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보내고 그녀를 보내고 지금 여기까지 왔어요. 

A와 K님은 한때 좋은 친구였어요. 그러나, 모든 친구들이 오랜 지인으로 우정의 향기를 피어올리는 것은 아니죠. 지나간 우정도 있고, 상처입은 우정도 있고, 단지 그 때였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우정도 있는 법이에요. 만약 K님의 지난 우정이 지금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안기는 것이라면, 오히려 그것을 툭툭 털고 내일로 걸어가는 것이 더 현명할 지도 몰라요. A는 영민한 여자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애정과 호감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 지 알죠. 기꺼이 상대를 선택하고, 누리고, 상처도 받고, 또 다시 도전하는 여자에요. K님의 불안하고 여린 속내를 알면서도 안아줄 여유는 없죠. 자신의 인생과 사랑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K님도 A의 그런 특징을 잘 알고 있죠. 그래서 꿈속에서도 그녀와 행복할 수 없었던 거에요.

그러니까, K님. 이제 그 마음 내려놓아요. 그녀는 한 때의 짝사랑이었어요. 그녀는 언제라도 받아줄 엄마품을 찾아 돌아온 탕아죠.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언제라도 그 관계는 정리할 수 있어야 해요. K님은 지난 세월동안 받지 못한 사랑을 꼭 A에게 돌려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거절한 그녀의 연락, 그것이 바로 자신을 위한 선물이었다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녀와 좋았던, 행복했던 기억만 간직하세요. 그리고, 더 좋은 사람, 더 뜨거운 사랑을 향해서 날아가세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실패하세요. 남자도 만나고, 여자도 만나요.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보고, 내가 좋은 사람도 만나봐요. 언제나 기준은 자신의 행복에 두세요.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상대를 만나요. 사랑받고 싶을 때는 사랑받아야 해요. 그래야 우울하지 않아요. 사랑하고 싶을 때는 감정을 전해야 해요. 그래야 영혼이 시들시들 말라가지 않아요.

아직 너무나 어리고 여린 나이에요. 이제부터 각오하고, 천천히 걸어나가도 조금도 늦지 않아요. 어린 시절 짝사랑 한번 못 해본 사람 없죠. 그런 기억조차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프고 그 아픈 걸 극복하는 여자가 훨씬 더 아름다운 거에요.

A는 K님의 발목을 붙잡고 있지 않아요. A도 K님도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죠. 자유로워지길 원한다면, 자유를 선택하면 된답니다. 그 유령은 그저 자신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깨닫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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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 2009/09/17 16:31 | LOVE&MEMORY(301st~)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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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9/18 11: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9/18 14:33
저희 학교는 남녀공학 학교였는데도, 공식적인 레즈 커플이 있었어요. 그들의 애정행각을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수군했죠. 그러나, 나이 들고보니 그들도 헤어지고 나서 남자들과 연애하고 결혼도 하더라구요. 성적 정체성은 나이를 먹어가며 변화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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