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03일
401st prescription
W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2년을 연애하고 헤어진 지 몇달 되었어요. 그는 정말로 헌신적이었죠. 사랑이 깊어지며 자연스레 결혼 얘기도 나왔어요. 서로 집안인사도 했었습니다. 저는 그와 결혼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일이 너무나 많아서 오랜만에 그를 만났어요. 그가 오랜만에 저를 보니 스킨쉽을 하고 싶었나봐요. 저는 몸이 좋지 않아서 시큰둥했죠. 그가 그동안 힘들었대요. 저는 일이 피곤하고 힘들면 그와 관계를 가질 마음이 들지 않아서 거절하곤 했거든요. 그는 그럴 때마다 결혼에 대한 의지가 약해졌고 다른 여자를 만날 생각도 했대요. 저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아 그에게 나가달라고 했어요.
그가 돌아가고 그는 저와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했죠. 저는 그를 붙잡았고 여느 때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는 솔직하게 말했고, 이런 맘을 가진 지 오래되었다고 했어요. 서로 시간을 좀 갖자고 했는데, 결국 그는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돌이킬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는 언제나 중요한 것이 '섹스'였고, 저는 로맨틱한 섹스가 아닌 너무나 일상적이 된 섹스가 싫었어요. 제가 분위기를 바꿔보자고 하면 그는 귀찮아했고, 저는 그게 섭섭해서 그와의 섹스를 거절했었죠. 나중에 지인에게 전하는 말로는, 그는 제가 자신 때문에 너무나 우울해해서 그게 힘들었대요. 싸울 때마다 제가 말도 없고 전화도 안받는 것이 괴로웠대요.
그는 거의 정리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정리하는 게 안될까요? 심지어 저는 아직도 그가 돌아오길 기다려요. 하지만, 그는 너무나 단호하죠.
W님, 닥터 엘입니다.
두 분의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연인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됩니다. 하나는 말로 하는 소통, 또 하나는 몸으로 하는 소통입니다. 두 분은 서로 의견 차이가 생기거나 감정이 상할 때는 말로 싸우셨지요. 두 분은 분명히 매우 친밀한 사이였던 듯 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감정이 북받치는 만큼 서로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도 하셨겠죠. 거친 말이나 하고는 후회할 말들도 주고받으셨을 거에요. 때로는 연락을 거부하거나 일방적으로 귀를 닫기도 하셨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랫동안 각자의 인생을 살아온 타인이었던 두 남녀가 서로 부딪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조금이라도 폭력(상대를 상처주는 말도 광의의 의미에서는 폭력입니다)이 섞여있거나 단절이 되면 곤란합니다. 두 분은 잘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고, 공부하지도 못했죠. 소통하지 못하면 불통이죠. 불통이 오래되면, 서로 멀어지게 됩니다. 여자는 남자가 원망스럽고,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생각하고 다른 곳에서 위안을 찾게 되죠.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좋아해도, 통하지 않는 일이 쌓이게 되면 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말로 하는 소통이 조금 서툴더라도, 몸으로 하는 소통이 원활하다면, 그 관계는 또 유지가 됩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몸으로 하는 소통은 때로는 언어가 담당하지 못하는 더 큰 소통을 성취시키기도 하거든요.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결국은 너도 사랑받고 싶어하고 사랑하고 싶어하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로구나, 라고 확인하는 것이 몸으로 하는 소통이죠. 서로 말로 상처입힌 날이라도, 밤이 되어 외로운 서로의 몸을 달래고 위로하다보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런 방식으로 많은 연인들과 부부들이, 낮에는 싸우고 밤에는 화해하는 패턴으로 관계를 이어나가지요. 그게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고 있고, 말로 하는 소통을 연습하다보면, 결국에는 말의 소통도 몸의 소통을 따라오기도 합니다.
두 분은 몸으로 하는 소통마저 원활하지 못했지요. 두 가지의 커뮤니케이션 툴 중에서 하나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문제였으니, 마음도 몸도 멀어지고 말았던 것이지요.
W님, 잘 생각해보세요. W님은 그가 헌신적이었다 하셨지요. W님은 당연히 그 헌신의 상실을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져본 자만이 상실의 의미를 알죠.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은 잃어버리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W님은 사랑을 가진 자였고, 헌신을 누린 자였죠.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주었고 기다렸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그가 처음 연애하며 서로 소통하기 시작했을 때는 W님도 그도 서로에게 더 많이 주는 것만이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둘의 관계가 일방이 조금 더 기다려야만 하는 불균형한 곳으로 흐르고 말았지요. 그는 자신이 주고 기다렸던만큼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했을 거에요. 그 기대가 자꾸만 무너질수록 불행해졌을 겁니다. 그가 W님이 애타게 이별을 되돌리기를 기다리는 마음만큼, 이별 이후를 단호하게 지켜가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그는 이제 더이상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W님을 예전처럼 보듬을 수 있다는 자신이 없으면서도 우유부단하게 관계를 되돌리는 것보다는, 지금 매몰차게 끊어내는 것이 어쩌면 W님과 지난 연애에 대한 예우를 다 하는 멋진 행동일 지도 몰라요. 차라리,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그의 태도를 높이 사주세요.
W님, 만약 두 사람이 과거의 연인관계로 돌아간다 해도, 두 사람의 소통은 여전히 문제로 남을 것입니다. W님은 바쁜 일상을 쪼개서 그를 더욱 돌볼 수 있으십니까? W님은 그가 로맨틱한 섹스의 코드를 모른다고 해도, 그에게 자신의 욕망을 차근차근 솔직하게 설명할 수 있나요? W님은 그의 헌신에 시간이 날 때마다 감사를 표하고 그것에 갚하는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할 수 있나요? W님은 둘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를 상처주지 않는 방식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으신가요? W님은 처음에는 완벽했던 섹스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을 기억하고 그 시점에서부터 발생한 문제를 그와 논의할 수 있나요?
W님은 그와의 연애에서 어떤 것을 바라시나요? 그의 변하지 않는 헌신과 애정, 그리고 결혼인가요? 그는 W님과의 연애에서 어떤 것을 바라고 있을까요? 두 사람은 가끔 그러한 서로의 희망과 의미를 맞추어보셨나요?
W님, 지금의 상실감과 외로움을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마음을 정리해보세요. 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W님과 그의 사랑은 서로 같은 의미였는지 되짚어보세요. W님은 그가 W님에게 헌신하지 않고, 섹스가 서툴고, 말로 하는 소통이 서툴러도 사랑할 수 있나요? W님이 그를 어떤 조건에서도 사랑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내세요. 손으로 쓰는 편지도 좋고, 이메일도 좋아요. 그에게 확실히 전달될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해서, 그간의 마음을 다 담아보내세요. 그리고, 그에게 진심이 전해지기를 다만 기도하세요.
그리고, 답장이 오지 않아도, 그가 돌아오지 않아도, W님은 행복해야만 하죠. 그는 W님이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그동안 충분히 보여주었잖아요. W님은 앞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인연도 더욱 소중하고 현명하게 누릴 수 있을 거에요. 저는 W님의 연애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W님은 분명히 사랑받았죠. 그리고, 사랑도 했을 거에요. 이제는 그 의미를 찾아 자신의 영혼에 새길 차례에요. W님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어떤 의미를 담을 지는 누구도 몰라요. 부디 좋은 답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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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0/03 02:22 | LOVE&MEMORY(401st~)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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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성별을 불문하고 전화받지 않는 행위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인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