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07일
404th prescription
Z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어린 시절 가까운 지인에게서 성폭행을 당했어요. 이후 저는 중학교 때 온라인으로 알게 된 남자와 만나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되었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얼마 안 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죠. 저는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를 올라와서도 공부는 잘 했어요. 하지만, 담배와 술을 통해 일탈에 빠졌어요.
그러다 저는 오빠를 만났죠.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술취해서 몸을 못 가누는 제가 스무살인 줄 알고 모텔에 가자는 식으로 말했었죠. 저는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와 관계를 가졌어요. 얼마 안 가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고, 저는 자주 저의 고민을 털어놓았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에게는 여자친구도 있었어요. 우리는 대화와 섹스를 거래하는 관계로 정기적으로 만나며 시간을 보냈어요. 어느새 저는 그의 세컨드가 되었고, 그가 말로는 저를 더 좋아한다면서도 여자친구와 헤어지지 않는 것에 지쳐갔어요.
저는 그와 헤어지기로 했고, 오빠는 몇주간 저에게 매달렸죠. 저는 오빠가 싫은 게 아니라 여자친구의 존재 때문에 제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싫었던 거라, 우리의 관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어요. 이후에도 많은 일이 있었죠. 제가 오기로 다른 남자를 만난 적도 있고, 그도 저도 직장이 결정되었고, 몇번이나 헤어지자는 말도 했었죠.
그는 저의 말과 행동 때문에 저를 믿을 수 없다고 해요. 저는 그를 위해 모든 걸 바꿨는데도요. 저는 친구, 습관, 생활패턴, 말투부터... 모든 걸 바꾸었어요. 그렇지만, 그는 아직 여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아요. 제가 끼어든 거죠.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정 때문이고 정보 때문이래요. 저는 가끔 제가 처참하게 버려지는 건 아닌가 두렵기도 하죠. 그는 매번 여자친구와 헤어진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요.
그를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아요. 저는 헤어지라고 충고하셔도 제 첫사랑이니까 바보같이 참고 헤어지지 않을 거에요.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연애에요. 3년을 만나며 우리는 결혼까지 얘기한 적도 있어요.
Z님, 닥터 엘입니다.
제가 Z님에게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Z님은 조금도 나쁘지 않고 더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폭력은 교통사고처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만이 모든 고통을 떠안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환경과 법을 탓하고 사회인식을 탓할 시간이 없습니다. 법이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성이 모두에게 공평하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Z님의 삶은 충실하게 가고 있죠. 마냥 기다리지 마세요. Z님은 먼저 스스로를 보듬어야 해요.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몸에 상처 하나쯤 새기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부디 그러지 않았으면 하지만, 아직은 그렇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가까운 지인에게서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고, 누구에게도 그것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커서도 낯선 타인에게서 그런 경험은 반복되었고, Z님처럼 스스로의 몸을 아무곳에나 던지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섹스에서도 상대가 나를 보호해주기를 바랬지만, 그것은 막연한 희망에 불과했었죠. 저는 반복해서 스스로를 상처입히는 경험을 수없이 하고서야, 모든 것에서 벗어나오는 방법은 오직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저는 늦게 그것을 깨닫고 걸어나왔어요.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Z님은 아직도 어리고 여리고 모든 것이 시작인 나이입니다. 전혀 늦지 않았어요.
Z님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나쁜 친구들을 만나서, 일탈을 하는 그 순간에도, Z님은 스스로가 더욱 사랑받아야 하고 소중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죠. 하지만, 행동은 반대로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극단으로 치닫다보면, 어딘가에 도착하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거에요. 하지만, 분명히 Z님도 답을 알고 있지요. 스스로를 더욱 대접하는 방법,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는 방법, 나를 함부로 대하는 인연을 끊어내는 방법. 다만, Z님은 이 문제를 벗어나서 또다른 불행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뿐이에요. 하지만, 벗어나오면 반드시 답을 만나게 되어있어요. 그것을 믿으세요.
저에게는 Z님에게 닥쳐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더 보입니다. Z님에게는 현실의 고민과 미래의 꿈을 나눌 어른이 옆에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아이에게는 좋은 어른이 옆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Z님에게는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군요. 저는 Z님이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어른이 있었으면 합니다. 대부분의 아이에게 그런 존재는 부모님이 됩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님들이 자신의 삶조차도 버거워 아이들을 보살피지 못합니다. 그럴 때는 친척이나 선생님이 좋은 어른이 되어주면 됩니다. 그런데, Z님은 아직 그런 어른을 찾지 못한 것 같아요. 꼭 어른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조금 어른스러운 친구, 조금 어른스러운 연인이라도 좋습니다. 하지만, Z님의 곁에는 진짜 어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요.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속으로 끙끙 앓고 모든 화살을 속으로 돌리고 있을 Z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Z님, 혼자일 때조차 사람은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스스로를 돌보고, 스스로의 진정한 욕망을 대접하고, 스스로에게 늘 질문을 해서 답을 찾으세요. Z님이 자신을 바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세상도 서서히 Z님을 대접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Z님은 다른 모든 생명과 마찬가지로 소중하고 대접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Z님이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에도, Z님이 존귀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Z님이 하셔야 할 일은,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Z님이 우주에서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자신을 대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용기가 꺾이고 좌절하기도 하겠지만, 모두가 그런 고비를 넘고 넘어서 진짜 자신과 만나기 시작합니다. Z님도 이제 그것을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Z님. Z님의 문제는 그 오빠와의 연애가 아닙니다. 그는 몇년 간이나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Z님의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고,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 때문에 Z님을 버릴 수 없는 나약한 사람입니다. Z님을 울게 하는 사람이고, Z님이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고, Z님보다 다른 여자가 더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는 처음보는 술취한 여자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성의식을 가진 사람이고, 미성년을 보호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고, 여자친구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비밀을 가진 사람이고, 자신의 사생활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이고, 이 연애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결단력이 없고, 욕심이 많고, 우유부단합니다. 그는 핑계가 많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Z님을 존중하지 않고, 또한 자신의 여자친구와의 연애도 존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Z님. 결코 그는 고결하고 Z님이 나빠서 그 중간에 끼어든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고자 안간힘을 쓰십니까? 차라리 Z님은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고 세상이 나쁘고 그 사람이 나쁜 놈이라고 소리를 치세요. Z님은 더 사랑받아야 하고 더 대접받아야 하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리치세요. Z님이 원하는 것이 단지 그와의 연애에서 퍼스트가 되는 것 뿐입니까? 3년 간이나 Z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남자에게?
Z님, 진정한 자신과 만나세요. 두려워마세요. 누구나 애착을 붙잡고 삶을 살아가요. 좋은 애착도 있고, 나쁜 애착도 있죠. 어쩌면 Z님의 삶을 지탱해준 유일한 애착이 이 남자와의 연애였을 수도 있어요. 그의 체온이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누구에게도 두 번째의 삶을 시작할 권리가 있는 거에요. 용기를 내세요. 그를 그의 여자친구에게 보내주세요. 그가 대롱대롱 매달려도 분연하게 일어나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세요. 그는 좋은 남자가 아닙니다. 그에게 첫사랑의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누구라도 나쁜 애착에 매몰되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진짜 욕망도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이렇게 상담 메일을 보내는 행동은, Z님의 삶이 좀더 풍요로웠으면 하는 강한 욕망이 건강하게 살아숨쉰다는 것을 증명하죠.
Z님. 그와 헤어지고, 미래를 준비하세요. 그가 없어도 건강하게 생각하고 훌륭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때, 좋은 인연을 만나요. 어른이 된 Z님을 소중하게 대접하고, Z님의 몸을 고귀하게 대하는 남자를 만나요. 사랑을 온통 받는 경험을 하면, Z님도 좋은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어요. 스스로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죠.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바꾸고 희생하지 않아도, 좋은 연애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거에요. 또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가 자신의 몸에 선물해주는 기쁨도 알게 될 거에요. 몸이 닫혀있고 느낄 수 없는 섹스를, 단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거에요.
몸은 더렵혀지거나 나빠지는 것이 아니에요. 몸은 Z님의 영혼을 담는 그릇일 뿐이에요. 늘 새롭게 마음을 채우고, 건강하도록 돌보고, 즐거움을 느끼도록 보살피세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누구라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죠. 매일매일 새로 태어나세요. 나쁜 것, 건강하지 않은 것에서 매일매일 걸어나가세요. Z님. Z님은 아직 새싹일 뿐이에요. 망설이지 마시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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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0/07 00:49 | LOVE&MEMORY(401st~)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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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비공개님은 어른이 될 준비를 해야할 나이지요. 자신을 둘러싼 환경, 인간관계에서 실망하고 상처입는 일을 졸업하도록 하세요. 내가 강해지면, 그들도 더이상 나를 실망시키거나 상처입히지 않아요. 오히려 부족하고 얉팍한 그들을 내가 먼저 보살피고 포용할 수 있게 되지요.
비공개님이 감정적 자립을 결심하고 준비하면서, 그와 당당하게 대화할 수 있었으면 해요. 비공개님의 기준에서 그가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선택을 못하는 남자라면, 비공개님은 단호해야 할 거에요.
제가 독하게 말씀드린 것이라기 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기술한 것은 아닐까 싶어요. 사실관계만 놓고 본다면, 비공개님의 연애를 응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요. 그러나, 남녀관계는 당사자만이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지요. 그 안에서 의미를 끌어올리는 것은 온전하게 비공개님만의 몫이에요.
저는 지금껏 똑같은 상처의 길을 지나온 모든 언니들을 대표해서, 언니들의 걱정어린 마음을 잠깐 보여준 것 뿐이랍니다. 비공개님이 되도록 덜 다치는 방법으로, 스스로의 손으로 선택해서, 현명하게 길을 가시기를 빌 뿐입니다. 멈추지 말고, 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 성폭행은 교통사고와 같다는 말이 콱 박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