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3일
428th prescription
X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작년에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요. 작년에는 그 아이의 인상이 좋지 않았죠. 겨우 인사 정도 하고 지나치는 사이였는데, 얼마 전에야 처음으로 같이 밥도 먹고 진지한 얘기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아이 나와 성격이 너무나 비슷한 거였어요. 제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죠. 저와 취향, 생각,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겹치는 것이 많더라구요. 놀랄 정도로요. 호감이 생겼죠. 그런데 문제는 그의 단점도 보인다는 거에요. 만약 그와 가까워지면 이런 점 때문에 상처입고 속상하겠구나, 하는 것이 다 보여요.
좋아지기도 전에 너무 재고 따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죠. 엘님은 남자친구를 만났을 때 단점이 먼저 눈에 보이셨나요? 보통은 시간이 지나야 단점도 보이는 게 아닐까요? 제가 지금 그에게 이런 감정이 생긴 것이 외롭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걱정도 되어요.
X님, 닥터 엘입니다.
X님. 선입견이나, 상대의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보이는 것은 우리가 나이가 먹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방어기제랍니다. 연애 경험이 전무하면, 상대가 어떤 타잎인지, 어떤 단점이 있는지, 처음부터 잘 보이지 않죠. 막연한 연애 기준을 가지고서는 선입견도 잘 안생길 거에요. 하지만, 서툰 연애를 몇번 보내고, 이런 상처 저런 상처도 받아보고 나면, 딱 한번 보아도 십년 본 것 마냥 견적이 나오죠.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자동 연산 프로그램이 이미 아웃풋을 내어놓아요. 누구라도 첫인상에 의지해서 그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하지요. 본능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랍니다. 그 위에 구체적인 배경이나 조건에 대한 정보가 더해지면 사귀지 않아도 이미 언제 어떻게 사귀고 헤어질 지 시나리오가 다 나온답니다. 저는 20대 내내 그런 연애를 했던 것 같아요. 짐작과 추리, 전략과 방어로 관계를 주도하고 싶어했지요. 상처입기 전에 빠져나오려고 했고, 상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일일이 점수를 매겼어요. 남자들을 평가하고 분류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에서 모든 예측을 깨는 Mr.RIGHT가 툭 튀어나오길 바랬죠. 실제로 나의 짐작과 판단은 그럴 듯 하게 맞아떨어지기도 했지요. 나이가 들수록 제 연애 시뮬레이션은 정교해졌어요. 이상적인 기준을 세우고, 그 선에 근접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떨어뜨리려고 안달이 났었어요. 그것이 연륜이고 지혜라고 자신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사랑은 그런 게 아니더라구요.
사랑은 처음 연애하는 것처럼, 자신과 상대에게 정직할 때만이 꽃피는 거더라구요.
저 역시 지금의 제 남친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답니다. 그의 첫인상. 눈웃음이 과한 그를 보고 마냥 행복하고 단순한 아이일 거라 생각했죠. 누나들과 친한 걸 보고 바람둥이일 거라 진단했죠. 말이 청산유수인 것을 보고 더욱 그 심증을 굳혔어요. 제가 나이를 밝혀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어서 못 들은 줄 알았어요. 나중에 프로포즈를 할 때 자기가 어린 것을 내세우길래 그의 애정은 단순한 호기심인 줄 알았죠. 하지만, 제 예상은 전부 다 빗나가고 말았답니다. 아무리 진지해도 두어달도 못 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사년 차 중견 연애인이 되었죠. 연애는 시나리오대로 되는 건 아닌가봐요. 그러니까, X님도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 그에게 다가가보세요.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날 지, 어떤 사랑이 발견될 지,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닐까요.
그리고, 외로움이란 종종 연애로 들어가기 전 필수이수과목랍니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그 사람을 좀더 만나보도록 하세요. 그 사람도 X님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자라는 중이라면 좋겠네요. 따끈따끈하고 멋진 겨울이 되시길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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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1/03 21:24 | LOVE&MEMORY(401st~)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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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이에요 ;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