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4일
429th presctiption
Y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그녀는 저보다 연상이고 우리는 결혼에 대한 말도 했었지만, 저는 확신이 없었죠. 저는 그녀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나봐요. 그동안 그녀는 몇번이나 헤어지자고 했죠. 저는 자주 그녀가 우선순위가 아니었고, 그녀는 그것 때문에 힘들했어요.
저는 제 일도 신경쓸 것이 많죠. 친구를 만나도 아주 가끔 만나는데, 그 때마다 시간 맞춰 연락하는 게 갑갑했어요. 제 마음 속의 우선순위는 그녀였지만, 그녀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봐요. 저는 그녀가 저를 좀 이해해줬다면 좋았겠다 생각하죠.
제가 못해준 것도 많아요. 우리는 성격도 취향도 너무나 틀렸죠. 지리적 여건 상 차가 없으면 불편해지는데, 그것도 더욱 힘든 일 중 하나였죠. 그녀는 시간이 없고 저는 능력이 없는 걸 지도 모르죠. 저는 제대로 된 연애가 이번이 처음이에요. 버림받고 싶지 않아요. 더 잘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못하고, 그녀는 마음을 버린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못해요. 저는 이 연애가 특별하다 생각했고 지키고 싶었지만, 사랑한 건 맞는 건지 헤어지고 나니 담담합니다. 심장이 아팠었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담담해요.
Y님, 닥터 엘입니다.
왠지 한참 지각 처방전이네요. 지금은 얼마만큼 마음이 가라앉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분일초가 한시간 같은 하루가 지나면,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고,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고, 어느새 한달이 지나지요. 몇번이나 이별 전으로 돌아가셨나요? 얼마나 그녀의 그림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바쁘고 지친 일상 사이사이로, 그녀는 여러 번 Y님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다녀갔겠지요. Y님이 끝끝내 전하지 못했던 말은 없었나요? 그녀에게 꼭 들었어야만 하는 말은 없었나요? 이별에서 영혼이 아픈만큼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발견하게 되신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아픈 것은 아파야만, 그 성장도 볼 수 있는 거겠지요.
Y님과 그녀와의 상황이, 제 연애에서 많이 멀지 않아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여자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다가올수록 초조감이 깊어지지요. 그녀가 급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급합니다. 실제로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결혼 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는 여자는 희박하죠. 저 역시 결혼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가늠하다보면 머리가 복잡해지곤 하니까요. 급하게 결혼하여 방황하는 언니들과 일찌감치 결혼하여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영민한 후배들을 보면, 꽁무니에 불이 붙은 듯 급박하다고 생각도 합니다. 그럴 때 사랑하는 연인이 아직도 결혼에 대한 정답을 못 찾고, '우리'보다 '각자'가 우선인 걸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슬프고 좌절감을 느끼고 막막해집니다. 굳이 결혼에 대한 약속이 없더라도, 연인이 충분히 사랑에 빠져있고 그 애정이 만발하여 행복하다면 결혼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Y님은 스스로의 삶만으로도 피곤하고 복잡하고 무거웠지요. 사랑해도 사랑에 빠져 즐거운 비명을 지를 여유는 없었지요. 둘의 사랑이 싱싱하고 화려했던 날은 아마도 연애 초기에 이미 지나갔으리라 생각합니다. 불에 덴 듯 화끈한 연애의 처음이 지나가고 나면, 은은하고 끈끈하고 포근포근한 시기가 오는데, 두 사람은 이 시간을 다르게 지나가고 있었겠지요. 한 쪽은 관계가 익숙해져서 잠시 신경을 놓았을 것이고, 한 쪽은 덜해진 애정표현에 마음이 불안해졌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답니다. 저는 사랑이 이대로 사라지는 건가 의아했어요. 사랑이 이렇게 변하는 건가 궁금했지요. 몇번이고 물어보고 불안해하고 울고 발버둥을 쳤지요. 그 때마다 인내심있게 일일이 대답하고 도닥이고 안아주면, 사랑은 또다른 색으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한 쪽이 버둥대는 대로, 그대로 밀려나버리면, 두 사람은 그 고비를 넘지 못하고, 사랑의 진짜 모습을 못보고 포기하는 셈이지요. 마라톤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워밍업만 하다가 집에 가는 격입니다. 하지만, 연애의 산전수전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사랑이 변한다고 누가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사랑은 변화하고 성장하고 달라지는 건데 말입니다. 누구도 사랑이 그런 거라고 알려주지 않더라구요. 참내.
제 남친도 Y님과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구요. "자기가 좀 이해해주면 안돼?" 이게 반복되면 한쪽은 늘 이해만 하고, 한쪽은 늘 이해만 구합니다. 익숙한 구도가 되면, "전에는 잘 참다가 이제와서 왜 이래?" 하고 더 바라게 되지요. 하지만, 이해와 배려도 사람마다 한계가 다르답니다. Y님은 두 분의 관계가 깊어지는 만큼 그녀가 더 포용해주리라 기대했을 테고, 그녀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Y님의 사랑이 좀더 자주 증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서로가 기대하고 바라는 게 다른 것을 몰랐고, 그래서 이별 연습을 몇번이나 하고, 그렇게 헤어지는 수순을 밟았던 것이겠지요.
이별 후에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찾는 것은 당연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다르고 이상하고 맞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연애는 그런 기적의 연속이 아니던가요. 분명히 두 분 사이에는 어떤 기적이 있었고, 그 기적은 유효기간을 다해 사라졌지요. 두 분의 사랑은, 연애는 특별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심장이 아프지도 않았을 테고, 또 아프게 될까봐 이별의 온갖 이유를 찾느라 바쁘지도 않았겠지요.
Y님. 그녀가 좀더 Y님에게 원하는 것을 잘 전달할 수 있었다면, Y님이 그녀가 바라는 것을 조금만 더 자주 떠올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언젠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Y님은 지금 그녀에게 해주었던 것보다 조금은 더 많이 새로운 연인에게 줄 수 있을 거에요. 그것을 온통 그녀가 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연애는 쉽게 되돌려지는 것은 아니지요. 분명히 Y님에게도 그녀에게도 이 사랑은 깊게 새겨졌을 거에요. 지쳐서, 시간이 다해서 놓아버렸지만, 두 분은 추억은 오래오래 간직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좋은 기억만 가져가시기 바래요.
# by | 2009/11/04 00:39 | LOVE&MEMORY(401st~)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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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태그 중에 '대화하세요'가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네요 ;ㅅ;
나도 힘들다, 나도 괴롭다, 서로에게 나부터 먼저 도와달라고 으르렁대면, 그 연애는 금방 지옥이에요. 한 사람은 져야 해요. 먼저 져주고, 먼저 다 내어주고, 그 다음에 사랑받기를 기대하세요. 물론, 내 여자다, 싶은 생각이 있다면 말이죠.
확신이 없다면, 빨리 포기하겠다 선언하는 것도 좋아요. 두 분이 커뮤니케이션의 룰을 정하고, 약속을 하고, 지키고자 노력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면, 지금의 연애도 훌륭해요. 부디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는 연애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사랑하게 된 것을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