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7일
430th prescription
Z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저희는 부모님들의 격려와 사랑 속에서 동거부터 시작한 커플입니다. 우리는 내년에 결혼도 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저와 제 남친은 가정환경이 정반대입니다. 저는 가정의 단란함을 만끽하며 자랐고, 남친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죠. 그리고 그는 제가 싫어하는데도, 술과 담배, 친구를 참 좋아해요. 저는 남친에게 사랑을 알게 해주고 싶었어요.
저는 모든 계획이 다 되어있었죠. 언제 얼마의 돈을 모으고, 언제 이사를 가고... 그런데, 그는 여러가지 변동사항이 생기며 제가 꾸려가는 살림의 계획에 맞추어주지 못했어요.
급기야 얼마 전, 그가 만취해서 결혼을 미루자고 하네요. 제 가족이 부담된다는 얘기도 했어요. 그동안 제가 우리의 계획이라는 미명 하에 그를 너무 괴롭혀온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는 사랑한 게 아니라는 모진 말도 했죠. 저는 눈물만 흘렸어요. 밤마다 울지만, 일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요.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죠.
저는 늦게서야 깨달은 게 많아요. 그가 우리를 놓아버릴까 걱정입니다.
Z님, 닥터 엘입니다.
두 분의 문제는 돈 문제나, 사랑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환경의 차이도 아니고, 사랑을 믿고 안믿고의 문제도 아니에요. 분명히 사랑했기 때문에 함께 있는 것을 선택했고, 당연하게 미래를 꿈꾸었지요. 하지만, 두 분은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달랐어요. 또한, 가족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하지도 못했지요. 게다가 두 분은 속내를 털어놓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쌓아놓고 참고 짐작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내 방식이 상대에게도 당연히 옳을 거라 생각하고, 사랑한다면 당연하게 가족을 꾸리는 것이 맞다고 가정한 연애를 했지요.
제가 말씀드린 세가지 측면에서 두 분의 연애를 좀더 들여다보도록 합시다.
1.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문제
두 분이 연애를 시작할 당시, 두 분의 사랑관은 달랐죠. 그러나 어떠한 기적에 의해 두 분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고, 함께 살게 되었어요. 데이트로 이어지는 연애와 일상을 함께 보내는 동거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사귐의 방식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두 연인이 동의한 '사랑' 뒤에 따라오는 여러가지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사랑은 그저 감정상태와 지향성을 말하는 단어일 뿐, 삶의 방식이나 일상의 스타일, 동거나 결혼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규정하지 않는답니다. 연애하고 동거하고 결혼으로 이르는 과정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러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답니다. 왜냐하면, 연애도, 동거도, 결혼도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문제이고,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결합방식이거든요. 두 분이 연애해서 사랑하는 데에 잘 맞고 행복했다고 해서, 동거와 결혼까지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게다가, Z님은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복한 결혼에 대한 비젼이 있으시지만, 남친은 그렇지 않잖아요. 막연한 희구와 현실적인 비젼은 다르답니다.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을 장담할 수는 없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이란, 어떤 사람에게는 오래 고민하고 각오하고 공부해야만 하는 꿈 같은 것일 수도 있어요.
사실 동거로 이르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결혼은 조금 더 엄격한 약속이지요. 두 사람은 이제서야 관계의 진짜 밑바닥까지 내려온 거에요. 어떤 연인들이라도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랍니다. 그러니까, 우리만 이런 것 아닌가 걱정하지 마시고, 결혼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이를 처음부터 고민해보세요. 결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라는 기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해도 좋아요. 그리고, 가족의 의미와 목적, 경제관념, 주거방식, 원가족(부모님과 자신으로 이루어지는 나의 가족)과의 관계, 자녀계획, 좋은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것, 결혼식의 주체, 비용, 의미, 목적까지 모든 토픽을 꺼내서 논의해보세요. 많은 예비부부들이 결혼을 준비하다 헤어지곤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랑도 연애도, 결혼의 필수요소는 아니기 때문이에요. 결혼은 현실이죠.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여러 조건들을 맞추어야 하고 파트너쉽을 확인해야 하는 엄숙한 약속이고 계약이에요. 결혼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죠. 어떤 사람은 결혼에는 무조건 사랑이 우선순위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조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가 맞고 틀린 것은 아니에요. 서로의 가치관과 비젼이 맞는지 틀린지 하는 것은, 연애 기간 동안 충분히 숙고하고 고려되어야 하죠. 그러나, 대부분의 예비 부부들은 낭만적인 프로포즈가 연애의 종결과 결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생각해요. 결혼을 원한다면, 결혼과 정면으로 맞부딪혀야 해요. 연애는 그저 사랑하고자 하는 시스템이잖아요. 결혼하고도 남편하고 평생 연애하세요. 그러나, 결혼하기 위해서는, 과연 결혼이 무엇인가, 서로 마음을 맞추셔야 한답니다.
야무지고 현명하게 자란 여자들이 보통, 결혼과 가정을 꾸려나갈 때 남자보다 더 많은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짜고 꼼꼼하게 실천하며 목표를 이루어냅니다. 언제 무엇을 사야 하고, 무엇을 투자해야 하고, 언제 이사를 가고, 얼마만큼의 돈을 모아야 하는지 계획하고, 살림이 계획대로 되는데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요. 아내를 신뢰하는 남자들은 모든 경제권과 결정권을 다 맡겨놓고, 돈버는 일에만 집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행복의 균형을 이룬다면 다행이지만, 그러한 체제가 문제가 생긴다면 변경을 해야할 필요도 있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은, 모든 것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결정하는 것입니다. 가계 운영과 가사 운영도 적당하게 서로 나누어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여자라서 어떤 일에 면제되고, 남자라서 어떤 일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두 사람이 공평하게 모든 의무와 책임을 나누는 것이 좀더 양성평등, 인권가정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어느 한쪽이 한 분야를 전담해서 평화로워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Z님과 남친은 어떤 시스템을 선택하시겠습니까.
2. 가족으로부터의 독립
부모님이 건재한 경우, 부모 세대의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받지 않는 결혼은 드물지요. 우리나라는 계층 간 이동이 어려운 사회이고, 한 세대 안에서 전 세대만큼의 부를 축적하는 것은 매우 힘들죠. 가족끼리 연대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오늘이 아닌가요. 때문에 요즈음의 결혼이란, 더욱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 되기 십상이고, 그것이 경제효율적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요. 두 분은 양가의 인정 하에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를 해오셨지요. 때문에 Z님과 남친은 각자 원가족의 의견과 입장을 대변할 수 밖에 없었을 거에요. 서로가 상대의 가족에게 더욱 성실하기를 원했을 것이고, 나와 함께 내 가족에게 예의를 갖추기를 기대했겠지요. 아직 결혼 전이지만, 결혼 이후에 기대되는 각자의 가족에 대한 신의와 의무를 은연 중에 강요했을 수도 있어요. 그것이 지금의 관계에 대한 당연한 책임이고 도리라고 생각하기도 했겠지요. 물론, 결혼이 아닌 연애와 동거에도 상대의 가족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당연히 있어야 해요. 하지만, 모든 연애와 동거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연애와 동거는 결혼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원가족과의 관계는 매우 섬세하게 구분되어야 한답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랑을 보내준 당신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경의를 표하는 것은 좋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키워주고 돌보아준 나의 부모님에게 자주 애정을 표하고 물질적, 정신적인 효도를 하려는 것도 좋아요. 그러나, 두 사람이 사랑하고 연애하여, 결혼까지 계획하고 있다면, 두 분은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셔야 해요.
두 사람은 온전하게 두 사람으로 완결되는 가정을 꾸려내야 합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과 노력으로 두 사람의 원가족을 챙기는 겁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남편이 아내의 친정을 먼저 챙기고, 아내가 시댁을 먼저 챙기는 것이지요. 양가의 어르신들이 두 부부에게 의무를 강요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안부와 인사를 챙기는 형태가 되어야 하지요. 만약, 두 사람의 결혼으로 인해, 양가에서 또다른 노동력이나 경제주체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다면, 그 결혼은 부담을 안고 시작하는, 더욱 어려운 결정이 될 것입니다. Z님, 자신의 결혼관과 환경을 다시 점검해보세요. 그리고, 남친의 결혼관과 조건을 질문해보세요. 두 분이 꿈꾸는 결혼은 서로 일치하나요? 두 사람이 원하는 결혼이 만들어지고 있나요? 두 분의 가족들은 어떤가요? 두 분의 가족들은 두 분의 결혼에 어떤 것을 원하고 있나요? 두 분의 가족들은 두분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요? 또한, 어떤 의무가 발생한다고 예상하고 있을까요?
Z님. 두 사람이 힘을 합해서 두 사람의 결혼을 만드세요. 그리고, 각자의 가족들의 동의를 얻으세요. 상대의 가족을 만나야 할 때, 아내는 남편의 편을 들어야 하고, 남편은 아내의 편을 들어야 해요. 그래야 그 결혼은, 두 사람의 행복을 향해서 정확하게 출발할 수 있답니다.
3.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지금부터라도 진짜 대화를 하는 연습을 하세요. 모든 대화는 질문으로 시작한답니다. 상대의 감정과 의견과 생각을 질문하세요. 상대의 대답을 잘 듣고, 자신의 감정과 의견과 생각을 전하세요. 서로의 생각을 맞추세요. 양보할 것과 배려할 것을 찾으세요. 내가 힘들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 연애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거에요. 상대에게 그것을 알리세요. 또한, 상대가 힘들고 행복하지 않은지 항상 살피세요. 그가 미쳐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면, 더욱 다정하게 질문하세요. 상대가 나에게 모든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항상 마음을 열어두세요. 마음을 열어두었다고 자주 말하세요.
더 잘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해요. 그리고, 실제로 대화법에 대한 책도 읽고 약속도 정하고 지키려고 해보세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세요. 그리고, 내 진심을 전하는 일을 연습하세요. 대화는 쉽고도 어려운 일이랍니다. 하지만,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사랑의 기술이기도 합니다.
제가 답을 드리는 것이 많이 늦었어요. 두 분이 결국 화해에 이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셨다 해도, 두 분이 원해서 다다른 결론이기를 바랍니다. 만약 두 분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Z님이 남친분보다 조금은 더 양보하고 포용한다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급하게 생각마시고, 돌아가더라도 부디 신중하게 한걸음씩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 423rd prescription by 엘
- 425th prescription by 엘
- 419th prescription by 엘
- 420th prescription by 엘
- 427th prescription by 엘
# by | 2009/11/07 05:51 | LOVE&MEMORY(401st~) | 트랙백 | 덧글(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무언가 동일한 문제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참 힘들지요..
자기 자신의 존재와 행동을 결단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떤 조건 하에 있는지 알 필요가 있죠.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중요하고 유효하답니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