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th prescription_반복되는 이혼과 재혼, 양부모의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R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저는 재혼가정의 아이입니다. 친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저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학교를 들어가서도 이혼가정의 아이라는 것 때문에 왕따를 당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는 새아버지를 데려오셨죠. 어머니가 이혼을 하실 때나 재혼을 하실 때나, 저와 동생의 의견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언제나 혼자서 결정하셨습니다. 

어느날 새아버지가 제 성적을 문제삼아 저를 때렸고, 어머니는 그걸 보고 또 헤어졌습니다. 

시간이 또 흐르고, 어머니는 지금의 새아버지를 데리고 오셨어요. 이 분은 주사가 심하시고, 성적 문제로 매를 들기도 했어요. 또한, 일도 제대로 안했고, 제 물건이나 집안을 부수기도 했죠. 저는 우울증이 심했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새아버지는 체벌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우리에게 너희가 원하면 헤어지겠다고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꾹 참기로 했습니다. 몇년만 지나면 이곳에서 독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부모님과 저는 진학문제로도 많이 부딪혔고, 무엇도 제 뜻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새로 진학한 학교에서도 왕따로 지내야 했습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밤마다 울었고, 부모님은 저를 이해하지 않고 다그치기만 했습니다. 한번은 제 사정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고, 어머니가 저에게 사과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저는 제가 생각하는 길로 갈 수가 없고, 부모님은 저를 반대만 하십니다. 제가 늘 발등을 찍었다고 하시죠. 왜 그러시는 건지, 제가 잘못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R님, 엘입니다.

지금은 21세기지만, 우리는 18세기, 19세기를 사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인권의식 수준은 사람마다 사회마다 가정마다 아주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에서는 유명한 인권후진국이기도 하구요. 가부장제가 가지는 폭력성을 반복하며 가정이 유지되는 일도 부지기수고요. 결혼하지 않고 출산과 양육을 감당하기 힘든 사회기 때문에, 원치 않는 결혼생활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사람은 다 사람인데, 그게 당연한데. 인권은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생기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알지 못합니다. 여성과 아이들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는데, 이 당연한 이야기를 어떤 사람들은 죽어도 이해를 못합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존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이에게만 주어지는 슬픔은 아니랍니다. 아이를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자기돌봄이나 자존감도 높지않은 경우가 많아요. 아이에게 마땅한 존중과 사랑을 주지 못한다면, 자신 또한 돌볼 에너지가 없다는 뜻이죠. 

R님의 어머니를 한번 보세요. 그녀는 자신을 훌륭하고 멋진 여성으로 완성시켰나요? 안전한 일상을 누리고 사랑을 나누는 생활을 확보하였나요? 아니면, 지긋지긋한 일상에 시달리고, 안팎에서 일어나는 스트레스를 감당 못하고, 자신은 물론 자녀들까지 괴롭히고 있진 않나요. 

아이를 울게 한다면 자신도 웃고 있진 못한다는 얘깁니다. 그녀가 어머니가 아닐 때조차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죠. 자신 몫의 행복을 못 찾는 사람은,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도 모릅니다. 사랑은 관계에서 경험해야 하는데, 사랑도 연습이고 실험인데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노력은 영영 멀기만 하거든요. 

많은 부모들이 준비없이 부모가 됩니다. 아이들은 지배받고 상처받고 소외되죠.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인권의식이 낮은 사회의 흔한 비극입니다. 

만약, 어머니가 좋은 양육자가 되는 메뉴얼을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나쁜 부모들이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을 모릅니다. 심지어 자신이 나쁜 부모라는 것조차 모릅니다. 부모가 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얼마나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 자리인지 모른답니다. 누가 알려줘도 들으려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자신의 불행을 껴안고 숨쉬는 것만으로도 모든 힘을 다쓰고 있을 때, 아이의 비명은 들리지 않아요. 그녀는 어쩌면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R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방법이 틀렸다는 걸 모를 뿐이죠. 안타깝게도.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은 많지 않아요. 가장 유효한 방법은 대화죠. 오랫동안 단절되고 뒤틀린 낡은 관계도,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은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연민하며 시간을 보내는 연습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큰 단점이 있어요. 상대가 대화조차 거부할 리스크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이죠. 아이도 부모도 서로를 밀어내고 무시하고 거절할 수 있죠. 하지만, 함께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툴고 못났고 버둥대는 데칼코마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R님.

물론, R님이 그녀를 다 이해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답니다. 사실 R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도 동생도 아니고, 오로지 R님 자신이니까요. R님이 행복해야 타인의 고통도 입장도 보이게 되지요. 어떻게 하면 R님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가족이 재앙일 때, 우리는 어떻게 이걸 해결할까요. 

대화도 좋고 탈출도 좋고 법적 해결도 좋아요. 하지만, 제일 유연한 방법은 법적 성인이 됨과 동시에 독립하는 선택입니다. 이미 R님도 아는 방법이죠. 대학을 진학하고,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집에서 독립하세요. 

R님의 어린시절은 수많은 아픔과 고통들로 채워졌지만, R님은 어른이 될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죠. R님이 아이로서의 행복에 매달리면 R님이 행복해질 수 있는 확률은 적어요. 아이의 행복은 부모에게 의존적이니까요. 

R님이 어른으로서의 행복에 새롭게 도전한다면 R님이 행복해질 수 있는 확률은 훨씬 커집니다. 고아가 아닌 이상, 부모는 쉽게 고를 수 있는 관계가 아니죠. 그렇다면, 아이가 아니면 되는 거랍니다. 

R님, 깊은 숨 들이쉬고 눈을 감고 상상하세요. 어머니도 새아버지도 R님도 모두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들이죠.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배할 수 없어요. 지배 당할 이유도 없죠. 모든 것을 다 버릴 수도 있다 생각하세요. 내 행복을 관계에 의존하지 마세요. 

그들보다 더 큰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들이 나에게 부당한 말이나 행동을 할 때, 한 인간으로서 존중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들이마시세요. 그들에게서 상처입지 말고, 그들에게 길을 보여주어요. 잘 듣지 못할 때도,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세요. 

그들의 논리는 대부분 틀렸고, 가끔 남들이 하는 그럴 듯한 말로 R님을 구속하려 하겠죠. 그러나, R님이 더 큰 존재가 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강해진다면, 그들은 단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R님을 괴롭힐 수 없어요. 

그들보다 세상을 더 먼저 보세요. 가정 내에서 돌아가고 있는 권력의 흐름을 보세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보세요. 어떻게 하면 균형이 유지되고, R님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지 보세요. 이제는 R님이 방한구석에서 눈물을 삼킬 때는 아니에요. 지금은 R님이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전략적인 준비를 할 때죠.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셔야 해요. 많은 책을 읽고, 강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연습하고, 배울 때죠.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R님. 

자신과의 대화 시간을 늘리세요. 부정적인 대화보다 긍정적인 대화가 늘어난다면 좋은 신호에요. 목표를 정해요. 가정 내에서, 학교 내에서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해요. 어떤 길을 가야할 지 늘 생각하세요. 

부모와 최대한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궁리해보세요. 그들이 얼마나 폭력적인 언사를 일삼는지 자각하면 좋겠지만, 아마도 그들은 그것이 부모의 권리라 생각하겠죠. 힘들 테지만,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읽어보고, 부모님께도 권해보세요.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들과 동거하는 중에는 되도록 평화를 유지하고, 대화하려는 노력도 하세요. 

대화가 실패해도 놀라지 말아요. 불행한 습관을 깨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모든 가족이 행복하지는 않아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흔하게 서로를 미치게 만들고 지배하고 지배 당해요. 
 
가능하면 가족 내에서 동지를 찾아요. 안된다면, 학교 내에서 한 사람이라도 동지를 찾으세요. 또래가 아니더라도 선생님이라도 좋아요. 그게 힘들면 상담소 선생님이라도 좋아요.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무엇보다 큰 위안이죠.  

R님.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힘내자! 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세요. 자기 자신을 믿으세요. 사람은 자신이 믿는만큼 성장할 수 있거든요. 우주만큼이라고 정하고 매일매일 우주만큼을 꿈꾸면, R님은 누구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요. 행복해지는 방법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죠. 가족과 잘 지내는 게 행복인 사람, 매일의 일상이 평화로운 게 행복인 사람, 부자되는 게 행복인 사람, 남을 돕는 게 행복인 사람, 가난해도 춤추고 노래하는 게 행복인 사람... R님의 행복을 반드시 찾아내도록 하세요.

R님. 

제가 R님에게 부모님과의 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답을 드리진 못했어요. 하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게 삐걱거린다는 것과 노력하고 연습하고 울고불며 행복을 찾아간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나를 지배하고 무시하는 타인들에게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온전히 내 삶이 된다 말하고 싶어요. 

내가 살며 거쳐가는 수많은 소속들은 모두 일시적이에요. 가족도, 학교도, 회사도, 친구들도 계속 흐르고 바뀌죠. 내가 선택하려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갇혀 살아야 해요

많은 아이들이 전사로 살아요. 부모되는 법을 교육받은 부모는 거의 없어요. 부모라는 무게에 휘청대기 십상이죠. 행복하지 않은 아이였어도, 자신의 아이는 행복하게 키우기도 해요. 아이는 부모를 사랑하고 증오하며 어른이 되죠. 부모는 있어도 없어도 재앙일 수 있어요. 하지만, 양육자가 내 삶을 다 결정하진 못합니다. 그럴 권리가 없으니까요.  

저는 R님이 그렇게 다른 길을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역시 똑같은 길로 걸어왔으니, R님도 할 수 있어요. 차근차근 천천히 가시기 바랍니다.











(* 2015년 12월 10일 리라이팅.)






덧글

  • 2009/12/24 20:1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12/27 23:32 #

    구구절절 사연이 없을 수 없죠. 그러한 부모님에게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성숙한 태도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들의 양육 방식이나 태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가정 내의 폭력(그것이 물리적인 폭력이든 무시나 방치든 언어적 폭력이든 모든 폭력은 같습니다)은 흔히 외부에서 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기 쉽습니다. 어린이 및 청소년의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는 너무나 멀리에 있기 십상이죠. 비공개님이 이러한 사회 상황을 이해하였으면 좋겠고, 자신을 지킬 첫번째 전사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딴 애들은 사랑만 받고 사는데 왜 나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 하고 땅파고 들어가면 자신만 힘들답니다. 삶에는 다양한 고통이 있고, 내 경우에는 이것이 부모와의 관계로구나, 하고 해석하면 조금 편해지실 거에요.)

    자신에게 맞는 다른 상담기관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구요,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정말로 훌륭한 태도입니다.

    내면아이의 문제는 모든 어른들이 안고 가는 문제랍니다. 관련하여 책도 찾아보시고, 자기치유의 방법을 모색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 apoptosis 2009/12/26 02:44 #

    음...
    외면하고 싶은 상담 내용이군요....

    못 읽은척 넘어 가려다 핑계가 되겠지만...
    R님의 부모님과 같은 길을 걸어 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마디 한다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은 여러가지 형태가 있을터이지만...
    피로 엮인 인연에 대한 애정은 다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름으로의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 생각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경우일 수도 있을꺼고요..
    대화나 자식의 의견을 묻는 일을 생략하게 된 이유도
    무시하기때문이 아니라 아이의 사고가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미쳐 하지 못했거나..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성격 또는 나름의로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선택이란
    판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눈에서 멀어지면 맘에서도 멀어지지만
    부모의 사랑은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줄거나 의문을 가지진 않는듯 합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환경에 100% 만족 할 수는 없을 겝니다..
    환경을 탓하는 일보다... 환경을 인정하고 당당해지는 일이..
    남은 생을 비참하지 않게.. 혹은 행복해 질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품게 되는 일이라
    믿습니다..
    R님이 누구보다 더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R님.. 그리고 엘님...
    좀 늦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 2009/12/27 23:40 #

    어팝님은 아이를 분명히 사랑하시고 늘 아이의 말을 들어주시지요. 늘 고민하시고, 이것이 맞나 저것이 맞나 많은 생각을 하시지요. 완벽한 부모는 없지요. 진행형으로 살아가는 부모가 진짜 부모될 자격있는 사람이 생각해요.

    모성애나 부성애를 이상화하거나 천부적이라 보는 시각에는 저는 동의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어팝님 같은 부모님들이 있다는 것에는 정말 큰 위안을 느낀답니다. 가끔 아이의 모습이나 작품을 포스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멋진 아빠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웃음짓기도 하지요.

    저는 사람들이 연애도 결혼도, 출산과 양육도 관계에서 필연하는 의무감이 되기보다는, 매번 축복처럼 선물받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면 좋겠어요. 관계를 이루었다고 사랑이 반드시 발생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그것이 법칙이라 한다면, 너무나 많은 예외가 있는 거잖아요.

    관계는 인연이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사랑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상처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적어지리라 상상해봅니다. ^^

    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apoptosis 2009/12/28 04:34 #

    나이를 먹으면 세상이 단순하게 보이더군요..
    내가 아는 것 만큼..
    내가 겪은것 만큼..
    내가 믿고 싶은 만큼...요..

    모성애나 부성애를 이상화 하고자 하는 맘은 없음니다만..
    늘 예외란 것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사람이나 동물이나 피가 섞인 자식에겐
    끌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부적이란 단어의 어감과는 좀 차이가 있지만,,
    동물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인생이란 너무나 많은 변수와 스스로의 의지를 무력케 만드는 환경이니까요..

    여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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