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th prescription_자신이 초라해 고백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용기내어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X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사춘기 때는 정말로 고백하고 싶었는데, 고백해서 어색해지면 어떨까 망설이다 시간만 지나갔죠.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사정이 생겨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는데, 그러다 저는 연애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저에게 고백해오는 여러 명의 여자들과 데이트를 했어요. 그 연애들은 대부분 짧았고, 재미없게 끝난 적도 많았죠. 

그러다 저는 집안사정상 대입을 포기했고, 입대와 제대를 하게 되었어요. 그녀는 성적도 우수하고 집안도 좋았고 대학생이 되었죠. 저는 너무나 초라했어요. 그녀는 충실한 대학생활과 연애로 행복해보여, 우울증에 인생을 허비하기도 했어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못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뭐든지 하던 나날에, 우연히 길에서 그녀와 마주친 적이 있지요. 우리는 친구로 잘 지냈어요.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지만, 좋아한단 말은 결코 할 수 없었죠. 시간도 꽤 흘렀고, 저는 이제 초라한 어린아이는 아니에요.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데, 아직도 그녀와 비교하면 패배감을 지울 수 없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고백을 하려고 해요. 어떻게 고백하면 좋을지, 그녀가 받아들여줄 지, 사귀게 되면 잘 해줄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녀와 끊어지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지도 걱정입니다. 늦은 욕심이지만, 힘을 주세요. 







X님, 닥터 엘입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삶이 기우뚱할 때는 일단은 바둥바둥 버텨보는 것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길이 어디를 향하는지, 내가 진정으로 살아있는지 고민할 여유조차 없는 시간도 분명히 있지요. 그럴 때는 외롭다는 감정조차 사치인 것 같아, 사람 사이에 마음 주는 일도 맘처럼 못하지요. 인생이 고달픈만큼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커져도, 또 그만큼 상처입을 기회도 많이 생기는 것이 가난이 주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내가 초라하다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는,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흔한 행복에 인생을 쉽게 보내는 사람보다는, 밥 한끼 먹는 시간에도 살겠다는 의지를 꾹꾹 눌러담아 농밀한 생명을 먹는 것이 가난한 사람의 특권이라 생각하신다면 조금 위안이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통의 밀도를 행복한 자가 어찌 알겠습니까. 

X님이 버텨오신 지난한 삶의 여정에도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하나 있었으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X님에게 축복보다 염려의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어둠 속에서는 촛불 하나도 감사한 빛으로 다가올 수 있으나, 입김에도 쉽게 꺼질 수 있는 것이 연약한 촛불입니다. 연애도 사랑도 X님이 그간 걸음걸음 밟아온 다른 삶의 모습과 똑같은 무게로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쉽게 말해서, 연애는 인생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프로즈도, 다른 모든 인간관계와 똑같이 좋게도 이어지고 허술하게 끊어지기도 할 겁니다. 지금까지 넘어오신 고개를 또 하나 넘는다는 담담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가고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그녀의 대답을 들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두 분의 관계가 오랜 지인이든, 연인이든, 친구이든, 동지애든, 되도록 투명하고 정직하게 흘러갔으면 합니다. 어느 일방이 마음을 숨기고 그 숨긴 마음을 담보로 말과 행동을 무리하는 관계는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남녀 관계도 다른 모든 인간 관계와 똑같이 그저 삶의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어보자는 제안이고, 삶의 일부분이지요.  X님이 지금까지 자신의 삶에 충실했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알고 그것을 대접하려 하였다면, 지금의 프로포즈도 그렇게 온당하게 대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심이 전해지고, 그녀의 진심 또한 X님에게 잘 도착하였으면 좋겠습니다. 

X님. X님은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고생해오셨습니다. X님 자신에게는 많은 기회를 포기하게 하는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해봅니다. 만약  X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망설이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도 더 큰 꿈을 선물하고,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욕심을 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떤 가족이라도 자신의 몫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법입니다. 너무 혼자서만 모든 것을 짊어지려하지 않았나 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X님은 산전수전 다 겪어서, 이제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독일만큼 성장하셨습니다. 그렇지만, X님은 아직 얼마든지 꿈꾸어도 되는 나이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리광을 부려도 되는 나이이고,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해도 되는 나이입니다. 미래라는 것은 대비하며 살아도 감당못할 때도 생기고, 대충 사는 데도 살아지기도 하니까요. 모든 걱정을 앞당겨 할 필요는 없답니다. 그러니까,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스스로를 좀더 다독이고 고단함의 보상을 위해 더 좋은 경험들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나가시면 좋겠습니다. 매일 다시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공부도 하고, 이것저것 기웃대보기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도 내고, 힘들 때는 쉬기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X님은 제 걱정보다 더 훌륭히 살아내시고 계시겠지만요. 

마음을 전하는 일에는 전략도 전술도 필요없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충분히 해서 마음을 정리하세요. 그리고, 그녀와 밥먹는 자리, 차마시는 자리, 대화하는 자리 만들어서 어렵고 수줍게 말을 꺼내시기 바랍니다. 서툴러도 두근대도 최선을 다해서 마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다음을 그녀와 함께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하든, X님의 소중한 삶은 여전히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마시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덧글

  • MrCrazyani 2010/02/09 20:19 #

    저도 X님이 그러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멋진 분이신 것 같아요 ^^
  • 맑음뒤흐림 2010/02/09 22:58 #

    꼭 상대보다 나은 조건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야만 한다면 누가 누구를 만날 수 있겠어요.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니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남은 건 용기뿐이지요. 힘내세요!
  • 하하하 2010/02/10 19:56 #

    용기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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