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8th prescription_또 상처받을까 두려워 진심을 전할 수도 없어요

A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연인이 있으면서도 저에게 명확하지 않은 태도로 은근히 접근하던 사람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죠. 그는 즉답을 피하며 애매모호하게 도망갔어요. 저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다 결국 마음 정리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말라고 했죠. 그는 결국 비겁한 인간이었던 거에요. 저는 진지하지 않은 상대에게 호감을 가졌던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자아비판했어요.

그러다 얼마 전 알게 된 사람은 주기적으로 연락을 해 와서 같이 밥을 먹어요. 그 외에는 일체의 연락도 표현도 없죠. 저는 그 사람이 저를 왜 만나는지 몰라요. 그는 진지한 사람이고 예의 발라서 호감이 가요. 하지만, 그의 마음이 단순한 우정이라면 저는 또 실망하겠죠. 저는 그가 저에게 베푸는 친절이 이제는 부담스럽습니다.

저는 이제 용기 내서 질문하고 싶지 않아요. 진심을 내는 용기가 다시 상처받기를 원치 않거든요.

연애 문제가 아니고서도 제 삶은 너무나 힘들고 외로워요. 연애는 삶의 해결책이 아닌데, 그렇다면 무엇이 삶의 해결책인가요? 저는 조건없는 애정이 필요하고 위로받고 싶어요. 힘을 주세요.













A님, 닥터엘입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실존의 고민이군요. 종교는 자유의지를 신에게 위탁함으로써 구원교환권을 발급하죠. 완벽한 사랑이 있기만 한다면야, 세상의 모든 불완전한 것을 뛰어넘어 끝없는 행복을 약속할 거에요. 아무리 가족을 최우선순위로 하고 사랑을 바쳐도, 그곳에서는 결코 애정의 등가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아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계층을 뛰어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의 이미지는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선명하지만, 행복이 스스로에게 실현되는 순간은 오직 해당 상품을 구매할 때 뿐이죠.

구원이요? 도대체 그건 어디에 파는 걸까요? 얼마면 살 수 있나요? 얼마면 되나요?

제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드릴게요.

Maslow라는 유명한 심리학자는 자기실현 self-actualization 을 이룩한 인간의 특징을 아래의 10가지로 기술하였어요.

1.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수용한다.
2.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본능적 욕구의 충족도 진심으로 즐긴다.
3. 자기 표현에 당당하고, 타인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는다.
4. 메타 욕구(학문적 욕구, 예술적 추구, 삶에 대한 성찰 등)를 만족시키기 위해 매진한다.
5.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며, 자족적이고 자기 기준에 따른 선택을 하고 만족한다.
6. 아이의 마음으로 언제나 새롭게 세상을 즐긴다.
7. 감동, 경외, 경이, 무아지경의 절정 경험을 자주 한다.
8. 이타적 사랑과 깊은 우정을 추구한다.
9. 유머감각이 있다.
10. 중용, 절제, 균형을 실현한다.

어떤가요? 상상해보세요. 만약 위와 같은 특징을 가진 사람이라면, 삶에 있어 어떤 일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을 테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거에요. 항상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테고, 힘든 일도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이겨내겠죠. 그가 하는 사랑은 아름다울 테고, 그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겠죠. 어려운 문제도 현명하게 풀어내고, 언제나 당당한 태도로 세상을 살아갈 거에요.

저는 Maslow가 정리한 ‘자기실현인’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우울해졌죠. 역시 난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네. 난 안 될 거야, 아마. 그리고, 다음 순간 소리쳤어요. “아니. 이렇게 완벽한 인간들은 어디에 있는 거야? 일단 나는 아니고, 내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들도 아니고, 내 주변에는 한 명도 없는데,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어느 동네 가면 만날 수 있지?”

만약 A님이 위와 같은 삶의 태도를 갖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느끼고 판단하였겠나요? 어쩌면 A님은 저에게 질문하기 전에 이미 현명한 결론을 내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용감하게 움직였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A님처럼 작은 문제 앞에 무너지고 삶의 모든 문제가 막막하고 버거워요. 왜냐구요?

Maslow는 자기실현을 이룩한 ‘자기실현인’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여 위와 같은 특징들을 정리하려고 하였다고 해요. 그런데, 그는 이 연구를 진행하기로 하고 얼마 못가 큰 난관에 봉착했죠. 당연히 몇몇 케이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건만, 어디를 찾아도 살아있는 자기실현인은 없었던 거에요. 결국 자기실현인이란 현존하지 않았고, 그가 위에 정리한 특징은 이미 죽은 사람들, 즉 역사 속 위인들의 특징이었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 자기 실현의 추구는 언제나 이상이고 과정일 뿐이라는 얘기랍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어찌 되었든, 그 쪽 방향으로 향하는 거에요. 한걸음이라도 옮기는 거죠. 어차피 죽을 때까지 자기실현이라는 것은 완성되지 않아요. 완전한 행복도 없죠. 다만, 일시적인 행복과 불행, 혹은 이도저도 아닌 일상이 번갈아 찾아올 뿐이에요. 그렇다면, A님에게 있어 가장 현명한 선택이란,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먼저 찾아내고 누리는 능력, 행복을 발견하는 능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덜 불안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 뿐이지요.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A님의 불행과 불안은 Must-have item을 가지지 않아서이고, 누군가의 Wannabe 가 아니어서 생기는 거에요. 대중 미디어를 통해 학습된 비교열위 때문에 오는 고통이죠. A님이 지금 만나고 있는 그 남자는 예전에 만났던 그 남자가 아니에요. 그는 진심을 진심으로 돌려주지 못하는 남자였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는 어떤 남자인지 아직 결정된 것이 없지요. A님이 그와 좀더 진지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면, 결국에는 용기를 내서 물어보는 수 밖에 없지요. 나에게 친절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잖아요. 그는 물어보기 전에는 답하지 않을 거에요. 만약, 묻기도 전에 나를 좋아한다며 고백한다면 참으로 드라마 같은 결론이겠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잖아요.

자기실현인의 특징 중 1, 2, 3 항목을 떠올려 보세요.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직면하는 수 밖에는 없죠. 그리고, 결과를 수용하는 거죠. 더 편하고 싶고, 더 좋은 위치를 얻고 싶고, 더 발전하고 싶다면,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는 수 밖에는 없고요. 그 때 그 때의 좌절과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몇가지의 방법들을 개발해 놓는 수 밖에 없고요. 물론, 자신과 맞는 상담사를 만나 필요할 때마다 상담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고요. 그래서 제 결론은 언제나 “구원은 셀프” 랍니다.

용기 5cc 처방할게요. 힘내시기 바랍니다.













* 참고 : 위에서 Maslow의 자기실현인의 특징에 관련한 내용은 <심리학> (김시업 역, 문음사)에서 참고하였고, 이해하기 쉽도록 제 방식대로 변형, 요약 기술한 거라 레퍼런스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덧글

  • 2010/10/02 23:3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0/10/03 00:40 #

    성 가치관은 부모 세대, 교육기관이나 또래 집단, 미디어를 통해 형성되지요. 자신의 성적 가치관을 전면 재검토하고 공부하고 새롭게 구축하고 상대와 합의한다면, 가장 바람직하죠. 혼전섹스에는 4가지 입장이 있지요.

    1. 무조건 절대금욕 2. 애정 조건 부 허용 3. 애정 없이도 허용 4. 남자는 괜찮고 여자는 안됨

    비공개님 생각에는 어느 것이 맞나요? 21세기에는 아마도 2번이 대세인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아직도 1번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3번이나 4번도 물론 있겠죠.

    중요한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 섹스하는 거에요. 그게 확인이 불가하다면, 아예 안하는 것이 속편할 거고요.

    이왕 첫경험을 하셨다면, 스스로를 믿으세요. 불안함도 천천히 나누도록 하세요. 처도 예전에 그렇게 하였답니다. 풋풋한 연애, 행복하게 즐기시기를 빌게요! ^^
  • 헤니히 2010/10/02 23:55 #

    오늘 말씀은 마음에 참 많이 와닿네요. 제가 상담 요청한 분은 아니지만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 2010/10/03 00:40 #

    덧글 고맙습니다!
  • 한번만더 2010/10/04 20:19 #

    구원은 셀프! 저에게 알려주신 내용과 연결 되네요~^^ 이 글도 그렇고 저에게 해주신 이야기도 그렇고...특히 이번에 해 주신 말씀은 정말 와 닿았어요. 요즘 이것저것 해 볼까 마음막 먹던 걸 실천하고 있거든요. 그런 와중에 엘님 말씀을 들으니까 더 힘이 나고 용기가 나네요. 엘님 정말 감사해요! ^0^
  • 2010/10/04 22:21 #

    어떤 것을 실천하고 계신가요? 궁금~ ^ㅅ^ 좋은 일 생기면 얼마든지 와서 자랑해주세요!!!! ^^
  • 샤랄라선비 2010/10/05 09:50 #

    핫... 제 친구가 닥터엘님의 상담이 어렵다고 말을 했어요!
    제 친구 한명이 얼마전에 소개팅을 했는데, 괜찮은 남자를 만나기는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프로포즈를 안한다카네요....
    그래서 얼마전에 제가 이 곳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그 친구에게 추천해줬는데, 그 친구가 너무 어렵다고 하는 거였어요. 매슬로우 나오고 그런다고..ㅎㅎ 이걸 봤었던거군요.
    전 대학 때 매슬로우는 하위욕구가 충족되야 상위욕구로 나아갈수 있다 이렇게 간단한것만 배웠거든요. 그 분이 저기까지 자세하게 연구한지는 몰랐네요.^^ 배우고 갑니다~
  • 2010/10/05 10:35 #

    아웅. 제 글이 어렵다니. 더 쉽게 쓸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 매슬로우의 이론은 더 공부해볼만한 것들이 많답니다. 하위욕구의 충족에서 상위욕구로 상승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별, 개인별로 하위욕구보다 상위욕구의 충족이 더 중요할 때도 있고, 때로는 단계를 다 밟지 않고 상위욕구의 충족이 우선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매슬로우가 너무 유명하니 다들 간단하게만 알고 지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괜찮은 남자를 만났다면 시간 보내지 마시고, 얼른 프로포즈하라 하세요. 여자가 프로포즈하면 더욱 바람직한 연애 되겠습니다!
  • 샤랄라선비 2010/10/05 11:10 #

    헛.. 제가 알고 있는게 약간 오개념이 있었군요.!
    시험친다고 달달외워서 그런가봐요. 오개념 체킹!

    저도 엘님의 조언에 따라 그리 하랬는데, 자존심이 허락을 안한다는 둥, 어떻게 여자가 그러냐는 둥, 아직 환상 속의 도도함을 지키고 싶은가봐요.^^
  • 2010/10/05 12:06 #

    교과서에 아마 그리 나와 있다면 시험칠 때는 그게 답이죠. ^ㅅ^ 연애의 판타지가 더 중요한 소녀라면 아직 급하지 않은 게지요. =ㅅ= 더 겪어보면 알게 되겠지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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