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5th prescription_짧았던 첫 연애가, 이렇게 끝이 났어요

F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그가 새로운 직장을 구하며 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물었어요. 그는 당장 앞날을 알 수 없다며 나몰라라 하더라고요. 저는 정말로 상처받았죠. 현실에 부딪힌 우리는 표면적인 관계를 이어가다, 그가 최선을 다해 보자 하더라고요. 저는 그가 저에 대해서는 어떤 고려도 하지 않고 자신의 장래를 혼자서 다 결정해버린 것이 섭섭했죠. 저는 아직 제 삶의 목표를 정하지 않았지만, 그는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명확하죠. 저는 남친과 함께 하고 싶어서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꾸는 것 같기도 해요.

그가 헤어지자는 말을 하기 싫어서 이 관계를 계속 끌어간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연애 기간이 짧았던 만큼 그가 이 관계의 중요성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고요. 첫 연애라 저만 이렇게 진지한 건지 싶기도 해요. 이런 마음이 집착인지도 모르겠구요.

그러다 그가 결국 헤어지자고 그저 친구로 지내자고 마음을 전하더군요. 저는 그와 만나서 계속 사랑하고 싶었는데, 욕심이었나봐요. 저는 이별만큼은 제대로 마주보고 하고 싶었는데, 그는 그런 용기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와 친구로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F님, 닥터엘입니다.

첫 연애에 거는 기대만큼 터지기 쉬운 것이 또 있을까 몰라요. 로맨스라는 사건은 참으로 어렵게 찾아오죠. 잘 모르는 타인이 나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처럼 느껴지지요. 사랑받는 기쁨을 알고 나면, 자신이 사랑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죠. 서로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고 나면, 이보다 더 쾌락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어요. 행복하다는 것은 좋은 것이죠. 좋은 것은 옳은 것이죠. 옳은 것은 영원해야 한다 생각해요. 그래서, 연애 또한 여느 인간관계와 똑같다는 진실을 모른 척 하고, 연애에 완벽한 사랑이라는 명예를 수여하여 그것이 지켜져야 한다 생각하게 되어요.

하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연인들도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헤어지기도 하죠. 아니. 더욱 유동적이고 변하기 쉽고 거짓이 끼어들기 쉽죠. 아닌 척 하고 모르는 척 하고 탓하기 쉽고 책임지기 힘들어요. 연애는 사실 도박에 가까운 투자에요. 세상에 좋은 사람이 드물다는 걸 알면서도, 내 한번의 선택이 완벽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잖아요. 안 그런가요?

F님의 첫사랑도 안타까운 종말을 맞이했죠. 하지만, 슬퍼할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대부분의 첫 연애가 꼬리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비하면, 이 연애는 갖추어야 할 것은 다 갖추었으니까요. 달콤했던 첫 부분도 있었고, 갈등에 고민에 시간을 보내는 휴지기도 있었고, 눈물 흘리며 진심을 나누는 대화의 시간도 있었죠. 관계를 되돌리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고, 되도록 이별을 유예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죠. 해야할 일은 다 하였죠. F님은 사랑을 고민했고, 삶을 고민했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죠. 자신의 몸을 새롭게 발견하였을 것이고, 타인과의 소통이 주는 희로애락을 다 경험했을 거에요. 그렇다면, 이 연애는 최악은 아닌 거죠. 아니. 오히려 훌륭한 연애였죠. 비록 마지막의 이별이 완벽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F님이 느낀 본능적인 두려움, 상실감에 대한 예감,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질감, 원망과 후회는 너무나 마땅하게 온 것이라 생각해요. F님은 첫 연애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싶었고, 상대의 ‘사랑한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한하다 생각했죠. 그래서, 짐작과는 다른 그의 행동이 더욱 원망스럽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F님은 이 연애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을 거에요.

너를 영원히 사랑해, 라는 말은 그저 지금 너와 함께 있어서 행복하고 즐겁다는 뜻이에요. 사람은 영원히 살 수도 없고, 그래서 영원이라는 약속은 성립되지 않아요.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로 여러가지를 포함할 수 있죠. 단순히 너를 만지고 싶다거나, 섹스를 하고 싶다거나, 너에게 호기심을 느낀다거나, 너와 있어서 즐겁다는 말일 수도 있어요. 물론, 너와 나의 미래를 함께 하고 싶고, 결혼을 하고 싶고, 너와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말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한 ‘사랑’이라면, 현실적인 대화가 이어져요. 달콤하고 막연하고 지킬 수 없고 동화 같은 말들은, 그저 나를 그만큼 좋아한다는 뜻일 뿐이죠. “서너 달 정도는 너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달콤한 나날들을 보내보고 싶어, 그 다음은 나도 잘 몰라.” 라고 솔직하게 프로포즈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왜냐하면, 헤어질 지도 모르는 관계를 선뜻 시작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니까요. 설사 지켜지지 못한다 해도, “너를 만난 순간 운명이라고 느꼈어. 나는 정말로 진지한 사람이고 너와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라고 말하는 쪽을 신뢰하고 싶은 것이 소년소녀들의 마음 아니겠나요. ‘영원한 사랑’이라는 신화를 공유하고 그것을 추구해보는 쪽이 훨씬 의미심장하고 아름다워보이잖아요. 순정과 로망을 포기하지 않은 연애인이라면 누군들!

F님. 그렇다고 사랑에 대한 신화를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에요. 사랑은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어떤 깨달음이랍니다. 그것은 그저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거랍니다. 매번의 연애는 다 다르죠. 매번의 데이트도 매번의 섹스도 다 달라요. 많이 부딪히고 많이 고민하고 많이 깨닫는 기회를 가지세요. 결코 첫술에 배부를 수 없어요. 만나고 보내고 또 만나고 보내보아야 해요. 아프고 쓰러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몇번이나 반복해야 하죠. 물론, 이러한 지난한 과정 사이에도 분명히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많이 일어나요. 그러니까, 늘 새롭게 기대하세요.

잘 보내고, 마음을 비우고, 또 자신의 마음을 채워줄 누군가를 만나요.

F님의 연애시대는 이제 시작이죠.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꿈을 찾아요. 남자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실수를 줄여가도록 해요. 가고 싶은 곳을 모를 때는 여행을 떠나보세요. 낯선 작가의 글을 읽어보세요. 세상은 언제라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죠. 어떤 비젼을 선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F님의 몫이에요.

연애하며 애정과 관심과 집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거에요. 상대보다 더 좋아할 수도, 덜 좋아할 수도 있죠. 서로를 얼마만큼 끌어안을 것인지는, 처음에는 알 수 없어요. 이별하는 방식을 합의보고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들은 거의 없죠. 그러니까, 이 연애에 대한 지난 후회는 금물이에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였고, 자신의 방식대로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면 훌륭한 거랍니다. 조금만 울고 다시 씩씩하게 일어서시기를, 빌어드리겠습니다. 힘냅시다.










덧글

  • 아슈 2010/10/08 03:13 #

    이번 상담, 누가 따뜻한 손으로 잡아주는 느낌이네요. :)
  • 2010/10/08 13:58 #

    *^-^*
  • sui_ 2010/10/08 07:45 #

    시즌 1이 끝났으니 다음 시즌을 향해 가야겠지요. 그 다음 시즌 피날레는 어떨지 모르는 것이지만요 ^^; F님께서 얼른 힘내시고 얍 하고 금새 일어나셨으며 좋겠어요 :D
  • 2010/10/08 13:58 #

    얍얍!
  • 2010/10/08 18:0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0/10/08 18:15 #

    요새 개인적인 기록은 거의 안 해요. 게을러져서... ^^;;;; 그러게요. 고양이 사진들... 영화 리뷰들... 일상에 대한 기록들.. 다 느슨해져버렸네요. 얼른얼른 자신을 다잡아야겠어요. ^^
  • 2010/10/19 11:2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0/10/19 14:27 #

    ^ㅅ^ 저에게도 힘을 주는 덧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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