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2nd prescription_우연히 보게 된 동성애 장면에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F님 :

(아래는 요약내용입니다.)

저는 평생 제 성 정체성에 대해서 의심해 본 일은 없습니다. 여자친구도 몇 번이나 사귀었고, 잘 지냈었거든요. 그런데 남자와 남자가 나오는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역겨운 생각이 들어 금방 동영상을 껐는데, 그 뒤로 가끔 그 장면이 생각나는 겁니다. 혼자서 내가 정말로 동성애적 경향이 있나 자료도 찾아보고, 동성 친구와 만나도 무심코 그의 몸을 관찰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놀라기도 하죠.

지금의 제 관심과 욕구가 호기심인지, 진짜 제 취향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성과 동성에게 동시에 흥미가 생기는 것이 정상인가요? 제가 양성애자인 걸까요?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F님, 닥터엘입니다.

자신의 생물학적 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죠. 하지만, 성 정체감 sex identity 의 형성은 가정환경, 또래집단, 미디어의 영향으로 완성됩니다. 만약, F님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다면, 남자라면 여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고를 하고 있겠죠. 하지만, F님이 고대 그리스에서 태어났다면, 게이, 레즈비언 섹스에도 아주 관대하였을 겁니다. 만약 F님이 특정 종교적 환경 속에 자랐다면, 부부 관계, 이성애, 일부일처제 외의 성적 욕망은 ‘죄악’이며 ‘타락’한 것으로 교육받았겠죠. 우연히라도 프로이트를 공부하였다면, 또 달랐을 거에요.

21세기의 상식이라면, 성적 지향성이 여러 방향으로 기능한다는 것도 알고 있겠죠. 이성애도 동성애도 양성애도 가능한 일이죠. 생물학적으로는 여자로 태어났는데, 사회적 성은 남성을 택하여 살아가는 사람도 있죠. 반대로 생물학적으로는 남자로 태어났는데, 사회적 성은 여성을 택하여 살아간다든지. 혹은 드문 경우이긴 해도 생물학적으로 양성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인터섹슈얼로 태어나서, 살아가며 한쪽 성을 선택한다든지, 때로는 양성으로 살아간다든지.

자신의 성 정체감, 성 윤리와 섹스 스크립트는 타인/외부/사회로부터 부여된 것이죠. 의심할 여지없이 주어진 세계관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인생은 문제없어요. 하지만, 다양한 섹슈얼리티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살며, 한번쯤 ‘내가 게이가 아닌가’, ‘그는 게이가 아닌가’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한 의문이 내 세계의 바깥에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항상 안전지대만 걸을 수는 없는 일이죠. 자신의 가치관을 전면 재검토하고 구축하게 되는 일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그것이 성적 가치관이라 해도 마찬가지죠.

이성과 동성에 동시에 성적인 흥미가 생기는 일이 어떻게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정상이 무엇이고 비정상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요? 그것은 언제라도 F님 자신이 되어야 해요. 엄마아빠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의사 선생님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에요. 세상에는 다양한 기준이 있죠. 물론, 다수와 소수는 있어요. 다수에 속하는 것이 안심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다수에 편입되려는 욕구는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소수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죠. 모든 선택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으니까요.

새로운 성적 자극에 한동안 혼란을 겪는 일은, F님이 살아가며 수 차례에 걸쳐서 일어날 거에요. 저는 어린 시절 아빠를 따라 목욕탕에 갔을 때 내 코 앞을 지나간 낯선 남자의 성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는 길쭉하고 두꺼운 살덩어리가 세 개나 달려있었죠. 실제로는 그럴 리가 없으니, 그는 아마도 외계인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으로 폭력적인 포르노를 봤을 때는, 한달 내내 악몽에 시달렸고 섹스도 하는 어른들을 혐오하기도 했죠. 미장원에서 본 여성지의 섹스 기사에서는 저질스럽다 생각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중학교 때는 바지 앞부분이 불룩한 남자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이 수군댈 때마다 아닌 척 하면서도 계속 시선이 가는 스스로를 변태라고 생각했어요. 어른이 되어 데이트 성폭력을 경험하고 나서는 남자들은 악의 축이라고 생각했고, 레즈비언 친구에게 고백 받았을 때는 이것이 진짜 사랑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내가 일하는 분야에는 게이들이 많구나 알게 되었죠. 처음으로 행복한 섹스를 경험했을 때는, 일주일 아니 한 달이 넘게 머리 속에서 빅뱅이 일어나 제 정신이 아니었죠. 우여곡절 끝에 이성애 연애를 하는 현재까지 왔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죠. 여기가 종착역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이란 알 수 없는 일 아니겠나요.

생각과 가치관, 자기 기준의 변화는 언제라도 일어나죠. 중요한 것은 지금/여기의 자신을 알고 있느냐입니다. 내가 어떤 사실에 의문을 가진다면, 그것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가능한 지는 누구도 처음부터 정해놓을 수 없어요. 대부분의 성적 기호는 내가 결정하기 이전부터 학습되죠. F님에게 익숙한 관점은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고 이것이 여성을 조명하는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시점이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도 ‘남성의 시선’에 익숙해지도록 학습하게 되어요. 이것이 사회적인 ‘남성화’고 ‘여성화’죠. 이러한 주류의 경향성에서 벗어나는 ‘남성이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선’을 마주치게 되었을 때는, 깜짝 놀라게 되고 호기심이 생기고 알고 싶어질 수 밖에 없죠. F님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발견이니까요.

심리학도들은 다양한 질병과 증상에 대해서 공부하죠. 알면 알수록 ‘내가 바로 이 병이야’라고 스스로를 자가진단하게 되어요. 병명을 부여하는 순간, 그것에 지배당하는 거죠. 진단은 절대적인 지표는 결코 아니에요. 자신의 성 정체감이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의심할 수 있어요. 이것이 일시적인 고양감인지, 지속적인 경향성인지는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게이들의 특징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F님은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잘못된 이미지나 정보에 매달릴 수도 있죠. 하지만 게이어도 게이가 아니어도, 똑같은 인간이에요.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특정한 행동 습관이나 신체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 자료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동성애를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시선일 뿐,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지는 않을 거에요.

너무 당황하지는 마세요. 성적 취향과 실제적인 성적 경험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아요. 성적 취향이 이성애나 동성애나 양성애라고 결정된다고 해서, 정해진 대로의 인간관계만 형성되는 것도 아니에요. 실제의 연애 관계가 형성되고 그래서 상대와 성적 경험을 나누게 될 때 그 때는 명확하게 알게 되겠죠. 무리해서 당장 실험을 해보겠다고 허둥대지만 않는다면, F님은 지금의 혼란을 잘 수습하고 정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답니다.

세상을 더 넓게 보시기 바래요.












* 관련하여 아래의 이북을 참고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HOW2SEXPART1>

<HOW2SEXPART2>





덧글

  • 2010/11/08 17:5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0/11/09 19:50 #

    길은 하나이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내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겠다, 라고 다짐하면 고민하고 고심하는 그 모든 것이 답이 되고 길이 되겠지요. ^ㅅ^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 2010/11/09 10:51 #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는 의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오히려 강한 관심처럼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겠군요. 참선에서 마음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너무 하게 되면 그게 오히려 마음을 비우지 못하게 하는 집착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처럼요.

    스님 두 명이 강가를 따라 걷다가 다리가 무너져 강을 건너지 못해 쩔쩔매는 처자와 만났습니다. 한 스님이 그 처자를 업고 헤엄쳐 강을 건너게 해 준 다음 다시 돌아와 길을 걷는데 다른 스님이 '어찌 출가한 몸으로 아녀자를 품는단 말인가?'라고 타박하자 이렇게 대답했다는군요. '난 그 처자를 아까 저 강 너머에 보내줬는데 자넨 아직도 업고 있구만.'
  • 2010/11/09 19:51 #

    고마운 말씀 감사합니다. ^ㅅ^
  • 제트 리 2012/09/12 21:11 #

    저도 요즘은 관용을 지닐려고 노력중입니다
  • 2012/09/13 01:39 #

    관용. 내가 더 우월한 시민이 된 듯한 느낌을 주죠. 관용은 좋은 겁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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