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th prescription_가끔 섹스를 하지만, 우리는 사귀지 않아요

X님 :

우리는 잠깐 사귀는 듯 하다가 금방 헤어지는 일을 반복했어요. 연인이 아닌데도 그는 잊을만 하면 연락을 해오죠. 제가 만취해서 그를 찾은 적도 있죠. 저는 종종 술을 마시면 생각지도 못한 실수를 하기도 해요. 저는 술이 깨고 나서 무척 후회하죠. 그와 저는 서로에게 보험같은 존재입니다. 저는 막연히 그가 저를 좋아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나고 보면 항상 아니었죠.

결국 우리는 가끔 만나 섹스만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귈 수 없다고 선을 긋죠. 그래도 저는 그의 말실수나 장난 같은 말에 희망을 겁니다. 저는 그가 나를 다시 믿고 좋아하게 되면 좋겠어요. 나의 실수로 그가 나를 밀어내는 것 같습니다. 그에게 잘해주어서 사귀고 싶고 결혼하면 어떨까 생각도 합니다.

제 마음이 알고 싶습니다. 그의 진심도 궁금합니다. 그를 다시 만나면 안되는 것일까요?










X님, 닥터엘입니다.

섹스는 해도 교제는 불가능한 남자의 진심을 왜 저에게 묻습니까. 그에게 여러 번 질문하지 않았나요. 그는 여러 번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답 없는 곳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죠. 그는 X님이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교제를 허락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그의 여성관, 섹스관, 연애관, 결혼관은 X님과 다릅니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섹스할 수 있는 여자와 굳이 결혼까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죠. 그러면, 제발 그의 말을 믿으세요. 그는 X님이 어떤 정성과 애정을 주어도, 변하지 않을 거에요. 그는 X님에게서 섹스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거든요.

연애는 사실 무척 에너지가 드는 일이에요. 섹스에는 그 시점의 다정함과 체력만 있으면 되지만, 연애는 지속적인 관심과 연락과 소비와 정성과 신경이 필요한 일이죠. 많은 철없는 남자들이 '잠만 잘 수 있는 여자'를 찾죠. 결국 자신이 결혼할 여자들이 다른 남자들에게 그렇게 가볍게 대해졌던 여자라는 것을 모른 채. 인간관계는 진심을 주고 받는 일이죠. 상대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적당히 이용하는 일은 나쁜 거에요. 그러나, 그녀도 그것을 원하였다며 자기 정당화를 하고 있겠죠. 그래서 양심의 가책이 덜어진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X님. 잘 생각해보세요. 그는 수없이 X님에게서 도망갔어요. 서로에 대한 신뢰를 거론할 시점은 이미 지났죠. X님은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 때문에, 헛된 관계를 꿈꾸고 있어요. 이쯤에서 번쩍번쩍 정신을 차리고, 귀한 자존감을 붙잡고 벌떡 일어서야 해요. 익숙한 섹스 파트너를 떠날 수 없는 것은 흔한 일이죠. 다정한 체온의 유혹이란 정말로 거부하기 힘든 거잖아요.

하지만, 섹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 자신이에요. 진지한 태도로 서로를 존중하고 존중받는 아름다운 연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 주지 못하는 것은, 다름 아닌 X님 자신이죠. 왜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나요?

X님은 더이상 어린아이도 아니고 꼬꼬마도 아니에요.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어른이죠. 이미 여러 번의 성취를 이루어냈고, 자신 안에 원대한 우주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연애에서만큼은 마음이 아직 아무 것도 각오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가끔 술을 마시게 되고, 현실을 피하려고 하고, 나쁜 인연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는 거에요.  

어쩌면 X님은 누군가에게 응원의 말을 듣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긍정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X님은 이미 자신에게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것과, 각각의 가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거든요. 때로는 정답을 알면서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오는 확신이 필요해서, 망설이게 되기도 하지요. 

X님. 누군가와 진지한 연애 관계가 되고, 섹스 뿐 아니라 일상을 나누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행복을 꿈꾸는 것은 정말로 훌륭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좋은 바탕과 좋은 인연과 좋은 시간이 필요한 거랍니다. 그 사람은 물론 X님에게 의미있는 지인일 지도 몰라요. 그러나, 명백히 연인은 아니죠.

자신을 더 돌보세요.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데이트를 해보세요. 술 마시는 친구들 말고 차 마시는 친구들을 만들어보세요. 자신의 몸이 외로워졌을 때,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공부해보세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것들을 발견하세요. 그리고, 앞으로의 인연은 스스로 선택하겠다 다짐해보세요.

X님은 귀하고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덧글

  • 2011/01/04 22:5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1/05 09:39 #

    동감입니다.
  • 발라 2011/01/05 01:15 #

    여기서 말하는 남자가 부럽습니다... 라고 하면 몇대 맞나요(...)
    '섹스는 좋지만 연애는 심적, 물적 소모가 심해서 힘들다'라는 남자가 의외로 많습니다.
  • 2011/01/05 09:39 #

    100대 맞아요.
  • 2011/01/05 01:3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1/06 12:41 #

    진정으로 원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 관계에 머무르게 되는 일도 생길 수 있죠. 누구나 잘못된 선택도 하고, 잘못된 기대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일어서야 할 때 일어설 수 있는 용기겠지요.
  • Rottenapple 2011/01/06 23:20 #

    그럼 섹스도 끊어야지요. 집에서 딸이나 치라고 합시다.

    술도 끊읍시다-_- 술에서 손뗀지 1년된 1인 ㅋ
  • 2011/01/07 00:00 #

    술을 끊으면 치명적인 사건사고가 절반 이하로 감소하죠. 절주는 중요한 듯. ^-^
  • 스피드박 2011/01/08 02:32 #

    사랑에 대해 스스로 꼭 필요한 원칙을 정하세요! 그리고 그 원칙을 그에게 알리세요!
    만약 그가 그 원칙을 깨버린다면 그냥 보내주세요~ 그리고 그와의 인연은 거기까지라고 믿으세요~
    님이 만든 소중한 원칙을 어기는 사람은 님과의 사랑보다는 더 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랍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님과의 사랑보다 우선해도 좋다면.. 계속 사랑하는 것도 좋겠네요..
  • 2011/01/08 11:17 #

    고마운 조언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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