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4th prescription_우리 가족은 너무나 심각합니다

F님 :

반년 동안 엄격한 식이요법에 성실한 운동까지 지키며 건강한 다이어트에 성공했죠. 그런데, 몇번의 과식 이후에는 빠진 만큼 도로 찌더라고요. 저는 죄책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요. 

요즘은 폭식 증상이 생겨 먹고 또 먹어요. 공부할 의욕도 안 생기죠. 책을 찾아보니 폭식의 원인은 가족 문제에서도 온다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은 심각하죠. 아빠는 너무 바쁘셔서 저와 대화할 시간이 없으시고, 엄마는 저를 비난하거나 명령하는 말 뿐이죠. 저는 엄마에게 말로 받은 상처가 너무 많아 억울하고 화가 나요. 엄마, 언니, 저는 모두 사이가 좋지 않고, 서로를 미워하죠. 저는 친구의 상냥한 엄마나 다정한 언니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 한탄스럽기도 하고 그래요.

저는 제 폭식증을 고치고 싶어 가족과 함께 병원에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막말을 하며 저를 비난했고, 아빠는 사회적 불이익이 올 지도 모르니 병원에 가지 말라고 했어요. 

저의 폭식 증상과 가족과의 불화를 털어놓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어요. 

너뮈 외롭고 힘들어요. 열심히 노력하고 잘 해보고 싶은데, 이제는 지쳤어요. 










(위 내용은 요약내용입니다.)

 


F님, 닥터엘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의 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다함께 가족 상담을 받는 일이죠. 말로 누군가는 상처를 주고 누군가는 죽어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죠. 가족 안에서도 상호 존중과 예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평생 몰라요. 존중도 배워야 아니까요. 

가족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명의 한 형태에요. 단순히 생식을 계기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랍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아니라 가족 안에 남기로 한 구원성의 선택이에요. 좋은 소통이 없는 가족이라도, 가족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는 의미가 있는 것이 분명하답니다.

한 가족이 어떤 방식의 소통을 선택할 지는 보통 부부의 손으로 결정되죠. 아이들은 가족 외의 사회를 경험하면서부터, 소통에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아이에게 부당하고 폭력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가족은 셀 수 없어요. 아이가 생활이 아닌 생존을 하도록 만드는 수백가지의 이유들이 있죠.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거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창조주들과 싸워야 해요. 좋은 방식이든 나쁜 방식이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관계들을 견뎌야 하고 적응해야 하고 누려야 하죠. 운이 좋다면, 전쟁보다는 상생의 소통이 그 가족의 소통이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신의 다음 세대를 생산하기 전, 행복하고 균형잡힌 소통의 방법을 깨닫고 시작하는 부모들은 지극히 드물답니다. 겉보기에는 모두 조금씩 우리 가족보다 훌륭해보이지만 말이에요. 

생각해봅시다. 

F님이 먼저 그 가족을 선택한 것은 아니죠. 나를 마음껏 통제하고 비난하라고 결정한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F님의 가족들은 서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빈약한 소통을 할 뿐이에요. F님은 분명히 다정하고 포근한 소통을 원할 거에요. 어쩌면, F님의 가족들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소통을 잘 알고 있을 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들은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이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하는 걸 지도 몰라요.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실천하지 못하는 건지도 몰라요. 이렇게 F님을 아프게 하는 방식으로 소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죠.

그런데,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죠.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이렇게 밖에는 못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비난하고 막말을 하고 상처를 주는 것이니까요. 나름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거에요. 그들 나름의 기준과 가치관과 습관에 의해서. 그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요. 그들도 우연히 이 가족 안에 불시착한 여행자들일 뿐이니까요. 만약 다르게 살 수 있었다면, 화목한 가족이 될 수도 있었겠지요. 

F님이 태어나보니 F님의 가족은 이러하였어요. 쉽게 바꿀 수 없죠. 그러나, 꼭 가족 안에서만 나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에는 안정된 양육 환경이 필요하죠. 짧게는 성인이 되기까지의 몇년 간, 길게는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까지의 십여년 간, F님에게 이 가족이 필요할 거에요. 하지만, 가족이 영원히 나를 통제하는 것은 아니에요. F님이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이 지낼 수 있고 멀리 지낼 수도 있어요. 자신의 삶을 가족에 종속되지 않은 삶으로 만드는 일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힘든 만큼 의미있는 일이고 멋진 일이기도 하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의 행복을 가꾸는 일은, 언제 이루어져도 이루어져야 할 일이죠. 지금은 막막하게만 느껴질 지 몰라도, F님이 스스로를 믿는다면 그 일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질 수도 있어요.

나 자신도 다 이해하고 돌보기 힘든데, 내 가족의 이유와 원인과 맥락을 따지는 일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죠. 물론, F님의 무의식은 자주 그런 일을 반복하며 틀린 곳을 고치려 하겠지만, 사실 그 일은 불필요한 일이랍니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더 잘 알고 더 잘 돌보고 더 사랑하는 일이에요.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딸로 살아가는 부분이 나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가족이거나 아니거나, 나에게 상처주는 타인이 있다면 F님은 스스로를 지켜야 해요. 말의 폭력이 나쁘다는 것을,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상처주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려야 하죠. 그리고, 자신을 존중해달라 설득해야 하죠. 지금까지와의 접근과는 다른 방법도 시도해 보아야 하니까요. 어차피, 지금 당장 독립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비폭력대화]를 찾아서 읽어보고, 나를 공격하는 상대와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세요. 나와 좀더 편안한 대화가 가능한 사람과 연대해보세요. 먼저 진심을 털어놓아보세요. 도움을 요청해보세요. 내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울음을 꾹 참고, 반복해서 진심을 전하도록 해보세요. 변화가 생길 때까지 노력해 보세요. 지칠 때는 쉬어가기도 하면서, 가능한 일들을 시도해보세요. 미워하는 일을 멈추고, 그들의 소통이 얼마나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드는지 연민의 마음을 가져보세요. 나를 위로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보세요. 더 많이 책을 읽고, 더 많이 상상을 하세요. 학교에 상담 교사가 있는지 찾아보고, 도움을 요청해보세요. 정부에서 운영하는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무료 상담을 받아보세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내에 무료 상담 기관이 있는지 검색해보세요. 종교가 있다면,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어른들을 찾는 것이 더 쉽겠죠.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도록 해보세요.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메일을 보내보도록 하세요. 답을 구하기 위해 여러가지 선택들을 해보세요.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기운 빠지지 마세요. 혼자서라도 묵묵히 길을 가면, 분명히 도와주는 손길도 만나게 되는 법이니까요. 시간이 걸린다 해도, 영영 만나지 못한다 해도, 스스로를 돕는 일은 의미있고 근사하고 훌륭한 일이라는 것도 기억해두시고요.  

가족이 아니더라도 삶은 자주 전쟁터가 되죠.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일이죠.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녹록한 일은 아닐 거에요. 나를 가두려는 수많은 편견과 폭력과 싸워야 해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지키며 나를 찾으며 살아가는 일이에요. 별다른 노력 따위 하지 않아도 평안하게 일상을 꾸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도, 어쩌면 매일의 몫만큼 세상과 싸우고 부딪혔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에요.
 
힘들면 쉬었다 가요. 지쳤다, 라고 인정할 날도 있는 거죠. 막다른 길의 끝에서 또 길이 시작되는 거죠. 내가 허공에 디디는 발걸음이 바로 길이 되는 거죠.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 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고 하잖아요. 

내 몸을 잘 돌보는 일도, 결코 쉽지 않지요. 내 몸에게 늘 물어보세요. 무엇이 필요한 지 물어보고, 그것을 해요. 음식이 필요하지 않은데 음식을 원하는 것은 마음의 빈 곳을 채우기 위한 목적인지도 모르겠어요. 몸을 건강하게 채우고 비워내는 일은, 누구에게도 참으로 힘든 일이랍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시행착오도 해야 하고, 연습이 필요한 일이에요. 한두 번의 다이어트 시도가 성공했다 실패했다 하며 스스로를 짐지우지 마세요. 어차피 평생 써야 할 몸이잖아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용하고 싶다면, 내가 매일 할 수 있는 자기 돌봄의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에요. 천천히 하고, 꾸준히 하고, 어딘가에서 기우뚱 하더라도, 다시 벌떡 일어나서 길을 가면 되는 거에요. 누구나 평생을 살며 몇번이고 넘어지는 거니까요.

가족이 나를 지지하지 않아도, F님은 스스로를 응원하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인정하여야 합니다.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님도 언니도 친구나 선생님도 아니에요. 오로지 F님 뿐이랍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몰라도, F님은 유일하고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에요. 누군가 자기 자신에게는 그러하도록 신이 정해놓으셨거든요.

부디 좋은 답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덧글

  • sui_ 2011/01/23 00:46 #

    저 역시 폭식증을 경험했었던지라 남 일 같지가 않네요 (...) 제 보상행위는 구토가 아닌 몸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운동이었지만요.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공허한 마음에 그 것을 음식으로나마 채울려고 했었던 것 같더라구요. 내 자신을 다른 방법으로 위로해주는 방법을 찾는게 제일 중요했었던 것 같아요. 그 것을 안 다음에는 제가 폭식증이 왔을 떄에는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서 음식을 먹는 고리였기 때문에 그 것을 끊기 위해 최대한 기숙사 방이 아닌 다른 곳에 있으려고 노력했었어요. 친구를 만들어서 같이 어울렸고 식사도 가급적이면 혼자 하는 것을 피했었구요. 그러니까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더라구요.
    어쩌면 F님은, 가족으로 인한 공허함에서 그렇게 폭식이 이어지고 있으신게 아닌가 싶기도 한걸요. 잘 해결되셨으면 좋겠습니다! F님도 힘내시길 :D
  • 2011/01/24 09:25 #

    마음의 빈 곳을 채우는 일을 남에게서 찾으려 하면 힘들지요. 먼서 스스로를 채우는 노력을 하다보면, 좋은 인연이 와서 도와주기도 하겠지요. 폭식도 거식도 분명히 그렇게 하지 않는 최초의 고리가 있을 거에요. 그것을 멈출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미자씨 2011/01/23 00:58 #

    폭식증에서 거식증으로 이어지면 사람이 죽습니다, 정말요. 폭식증은 살이 찔지언정 영양공급이 되지만, 거식증은 목숨을 위협하거든요. 폭식증의 보상방법이 거식증이 되기도 해요. 여기서부터는 생존의 문제가 되는 거에요.
    부모님의 반대, 설득...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일단 살고 봐야죠.
    무조건 병원 가시길 바랍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병원부터 가세요.
  • 2011/01/24 09:25 #

    혼자서라도 병원이나 상담 기관을 찾는다면 좋겠지요.
  • 비버 2011/01/24 04:05 #

    식이 장애는 지배적인 어머니, 무관심한 아버지 속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하더라구요. (정신의학책에 있는 통계적 사실입니다.^^)
    제 말이 너무 문자적인 이야기로 들리시겠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식이장애를 이겨낼 수 있는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꼭 힘내시길 바랍니다. ^^
  • 2011/01/24 09:26 #

    맞습니다! 스스로를 챙기는 일을 연습하는 것! 화이팅!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상담 상태

상담상태클릭


처방전 검색기

Loading

노란리본

2013 대표이글루

위즈덤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