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3rd prescription_저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하고 그가 떠났어요

Y님 :

오래 사귀던 남친과의 만남이 지루해질 때쯤 새로운 남자에게서 고백을 받았고 저는 백번 고민할 끝에 새로운 남자를 선택했죠. 전남친은 저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제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는 저의 이상형에 가까운 새로운 남자를 선택한 거죠. 그런데, 누군가를 상처준다는 사실에 너무나 죄책감이 들어 죽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었어요.

사실 저는 긍정적인 사람이지만, 새로운 남자친구에게 위로받는 게 좋아서 늘 힘든 척을 했죠. 그런데 그는 저를 늘 받아주고 달래주는 게 너무 힘들었나봐요. 갑작스레 이별 통보를 하더군요. 그는 제가 긍정적이 되면 돌아온다는 말을 남겼죠. 사실 저는 긍정적인 사람인데도, 거짓으로 꾸며댄 모습에 그가 떠난 거에요.

해명하긴 이미 늦었으니 그를 그냥 보내야 할까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Y님, 엘입니다.

연애를 시작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다릅니다. 많은 여성들이 수동적인 자세에서 상대의 구애를 허락하는 방식으로 연애 관계를 시작하고는 하죠. 일단은 나를 좋아한다니까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 연애가 사랑이 싹틀지 안틀지는 누구도 모르죠. 연애를 한다고 무조건 사랑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건 아니죠. 연애라는 것은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가고 좋아질 수 있을 지 시험해보자는 약속 같은 거니까요. 물론 좋으니까 만나기 시작하겠지만, 연애라는 시스템이 좋은 건지, 연애에서 생기는 효용이 좋은 건지, 그 좋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지나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지요.

연애의 끝도 마찬가지죠. 연애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니, 내가 이 연애에서 얻을 게 없다 생각하면 상대가 나에게 목숨을 걸든말든 알 바 아닙니다. 각자의 몫만큼 관계에서 가져가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관계에서 무엇을 얻을 지 하는 거죠. 상대만 신경쓰면 내 행복은 누가 책임지나요. 그가 나에게 계속해서 나를 사랑한다 말한다지만, 그것 또한 그가 선택한 거죠.

그리고.

내가 상대에게 깊은 애정이 없는데, 상대가 혼자서 나에게 깊은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상호적인 관계가 아니라 연애감정 자체에 대한 애착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을 잘 알기 전의 호감은 분명히 막연한 지향성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랑이라고 단정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답니다. 사랑은 어떠한 감정 상태라기보다는, 두 사람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감정과 상태와 경향성에 대해서 사랑이라는 꼬리표를 쉽게 붙일 수 있습니다만, 사랑이 사람마다 의미가 다른 이유는 인간이 타인과 관계맺는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일 거에요. 사랑은 결코 고정된 개념일 수 없지요.

그러니, 연애하고 헤어지셨다면 상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겁니다. 죄책감이요? 관계가 끝났을 때 상대에 대해서 책임져야 할 부부분은 두 사람의 지난 관계에 대해서 떠들지 않는 일 정도 뿐입니다. 어차피 그 사람의 심장은 그 사람이 Y님이 아닌 다른 인연을 만났을 때 다시 작동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연애는 삶의 일부죠. Y님은 연애할 때도 그 사람에게 목숨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관계가 끝난 후에 미안한 마음에 목숨까지 걸어야 할까요. 그러지 마세요. 연애는 연애고, 인연은 가고 또 옵니다. 그 사람에게도 예외는 아니니까요. 

Y님은 사랑받는 것이 좋아서 연약한 척을 하였다가 상대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일 기회를 잃고 거절당하고 말았죠. 제가 답을 드리는 것이 늦어, 이후에 어떻게 대처하셨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저 그 사람에게 Y님의 진심을 담은 편지를 쓰세요. 마음에 한방울의 미련도 남지 않을 만큼 솔직하게 그 간의 사정을 쓰세요. 사랑받고 싶어서 너의 다정함이 좋아서 일부러 힘든 척 꾸며댄 거라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다시 기회를 갖고 싶다고 쓰세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전하고, 마음을 모두 털어버리세요. 

정말로 인연이라면 Y님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어서 다시 다가올 지도 모를 일이지요. 인연이 아니라면, Y님이 진심을 전한다 해도 다시 이어지는 일은 없겠지요. 마지막 진심을 전해보지 않으면, 인연일지 아닐지 모를 일이랍니다. 

연애의 달콤한 앞부분에서는, 자신의 본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더 많이 사랑받고 사랑하려고 애쓰게 되지요. 연애는 특별하게 달콤한 거니, 그래야만 그 달콤함이 유지될 거라 오해하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연애도 인간관계의 일종이랍니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정직과 신뢰죠. 연애도 마찬가지지요. 정직해야 하죠.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그래야 서로의 진짜 모습에 다가갈 수 있고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이 연애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어요. 그 사람과 어찌 되든 간에, Y님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연애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니까요.













덧글

  • 2011/02/25 00:4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2/25 09:11 #

    저도 그렇기는 해요. ^ㅅ^ 혼자라면 넘어져도 울지 않았을 텐데, 같이 있으면 "괜찮아?" 한마디에 앙 울어버린다든지.
  • 뒹구르르 2011/02/25 22:54 #

    자신의 본모습이 아닌게 확실하고... 그 사람도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돌아오겠다고 했으니 엘님의 조언대로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써보는건 필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로 '일부러' 그 사람에게 기대고 연약한 척을 한건지 누군가를 버리고 그 사람을 택했다는 일종의 보상심리로 그 사람에게 기대고 확인하려고 한건 아닌지.... 일부러 연약한 척을 하면 떠날만큼 질리지는 않을것 같거든요.
  • 2011/02/26 12:13 #

    마음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는 아니었을까요? 이것은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꼬꼬마 여자아이들일수록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쪽으로 행동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머리가 아프다든지, 속이 울렁거린다든지, 어지럽다든지, 우울하다든지, 하루종일 울었다든지... 하는 신체적/ 감정적인 부분을 호소하고 그것을 걱정하는 상대의 반응으로 만족하는 거죠.
  • 2011/02/26 09:1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2/26 12:19 #

    흐미. 어쩝니까. 저는 비공개님이 연애를 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스탠다드하고 훌륭한 행동들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상대를 잘못 골랐을 뿐이죠.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지요. 그러니 너무 낙담 마세요. 비공개님이 지금과 같은 시행착오를 좀더 겪으시면, 그 때는 정말로 내 인연을 만나는 겁니다. 처음으로 용기내어 우여곡절 끝에 사귀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내 진짜 사랑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몇번이고 사람을 만나고 보내보아야 합ㄴ다. 저도 서른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연애에서 진심이 통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알게 되었는 걸요. 그 전에 만났던 모든 인연들은 그저 바람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겠더라고요. 하지만, 그 바람들도 다 그 순간의 의미는 있었던 거죠. 시간이 지나면, 오늘 만나고 헤어진 그녀와의 기억도 비공개님에게는 큰 재산이 된다는 걸 아실 날도 올 거에요.

    자신을 향한 화는 거두시기를 바래요.
  • 2011/03/05 08:4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3/05 21:48 #

    저 역시도 철없던 시절에 겪었던 모든 연애활동의 90%는 꽝이었어요. 만약 지금의 나라면 결코 만나지 않았을 인연들도 잘도 만나고 다녔죠. 그런데 지금의 인연도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결코 만나지 않았을 인연이기도 해요. 연애가 매우 즐겁고 행복할 확률은 적지요. 삶의 모든 부분들이 그렇듯. 외부의 환경에 덜 휩쓸리는 자신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연애도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힘이 생길 거에요.

    힘이 되었다니 다행이고요 ^^ 당장은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더라도, 지나고 나면 꽤 멀리 왔구나 싶은 날이 있을 겁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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