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3rd prescription_이제는 제가 잘해줄 차례도 되었는데, 그는 지친 것 같습니다

M님 :

그는 내가 첫사랑이라 했고, 저를 정말로 사랑해주었죠. 저는 이전 연애에서 너무 헌신하다 헌식짝 된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그 때마다 그는 저를 달래주었어요.

롱디 커플이다 보니 우리는 주말마다 만났는데 그가 너무나 바빠져서 잠깐 밖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그에게 짜증을 냈죠. 게다가 저는 PMS도 심했고, 이런저런 상황이 겹쳐서 잠시만 연락하지 말자고 했어요. 제 기분이 회복될 때까지는 서로가 거리를 두는 것이 더 나으리라 생각했던 거에요.

그러는 사이, 그는 갑자기 이별 선언을 했죠. 자기가 너무나 지쳤고 이전처럼 제가 좋은 것 같지는 않다 했어요. 우리는 다시 만나서 차근차근 얘기를 해보기로 했어요.

친구들의 말로는 지쳐서 동굴에 들어간 남자에게 자꾸만 채근하지 말라고 했죠. 늘 그 사람이 시간이 나기만을 기다리는 제가 부담스러웠을 지도 몰라요. 저는 그동안 너무나 미안했다고 사과했지만, 그는 자신이 나빴다고만 했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좋은 시기를 보냈고, 시들해지자마자 끝을 맞이한 것 같아요. 저는 각오를 했어요. 정확하게 그의 마음을 물어보고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저도 수긍하는 것으로요. 

저는 정말로 그에게 좋은 여자친구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M님, 엘입니다.

이별을 겪는 일은 사실 슬퍼하기만 할 일인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이별이 있다는 것은, 이별을 하기 위한 연애가 있었다는 거죠. 개인의 역사가 그만큼 쌓였다는 뜻이고, 개인의 내면에는 성장과 발전의 씨앗들이 뿌려진다는 뜻이지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겪다보면, 인간과 인간이 어떻게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서로 간의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

그래서 M님은 첫 연애의 교훈을 소중히 하여, 이번 연애에서는 전략을 바꾸어 보았죠. 헌신하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우선하고, 상대의 애정과 배려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M님은 사실 좋은 전략을 취하신 것이고, 그 의도는 여지없이 효과가 있었지요. 상대는 M님을 애지중지하였고 잘 돌보아주었으니까요.

처음에 그는 진심으로 M님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며 노력하였을 거에요. 그런데, 인간의 체력과 돈과 신경은 한정되어 있답니다. 처음에는 10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 생각하고 그녀를 바라볼 수만 있어도 행복하죠. 그러나 개인차에 따라 다르긴 해도, 5를 주어도 자신이 돌려받는 것이 적은 것 같아 계산하는 날이 옵니다. 사랑이 식어서는 아니지요. 익숙해질수록 상대의 본질이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10을 주어도 부족한 것 같았던 천사가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는 것이지요. 이럴 때 사랑, 연애의 판타지에서 눈을 번쩍 뜨게 되죠. 심봉사가 눈을 뜨면 실망할 확률이 클까요, 만족할 확률이 클까요?

연애에서 최초의 갈등 상황에 맞부닥치면, 누구나 이전과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하게 됩니다. M님의 경우에는 연애에 대한 기대와 욕망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는 피곤한 일상 때문에 연애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행복하기 위해 연애하고 있는데, 감당해야 할 의무와 불편이 더 커졌죠. 개인의 삶은 지속적으로 변화해요. 내면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삶의 변화에 따라 연애의 양상도 달라지지요. 그렇다면, 두 사람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M님은 친구들의 조언을 통해 연애 중일 때도 적절한 휴식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어요. 연애 중일 때도 자신 감정의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요. 반성도 했고, 사과도 했죠. 그런데, 같은 연애를 하면서도 상대는 다른 사고 경로를 통해 다른 결론에 도착할 수도 있어요. 같은 상황이라도 입장은 다 다르니까요.

첫연애에서 많은 것을 걸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남자들이 많죠. 한 사람에게 같은 수준으로 지속적인 배려와 사랑과 관심과 양보와 선물을 베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처음에는 상대가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인 것 같고 오아시스인 것 같아서, 자신이 바칠 수 있는 구애의 표현을 총동원하여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지요. 자신에게 과분한 행운과 행복의 근원이 상대방이라 생각하면, 누구라도 적절한 댓가를 치르려고 할 거에요.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자신이 갖게 될 보상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급격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어쩔 수 없어요. 5백원에 살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굳이 1000원에 살 이유는 없으니까요. 아이스크림이 아무리 맛있더라도.

그러므로, 여기서 한가지 교훈.

남자도 여자도 지속가능한 애정표현을 하셔야 합니다. 자신이 평균적으로 꾸준하게 줄 수 있는 애정표현이 5 정도라고 한다면, 특별한 날은 7 정도, 피곤한 날은 4 정도, 일생일대의 특별한 날은 10을 주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많은 연애인들이 처음에는 10을 주다가 점차 그 수준이 7, 5, 3으로 떨어지고 말죠. 연애 경험이 적을수록 자신이 상대에게 어느 정도를 줄 수 있는지 가늠을 못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10을 쏟아붇다가 체력과 돈과 신경이 고갈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10을 받던 연애인은 상대가 7을 주고 5를 주기 시작하면, 처음의 10에 비교해 자신이 부당한 처사를 당한다 생각해서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사랑이 식었니 어쩌니 따지게 되죠. 하지만, 그 사람은 처음부터 5를 유지하는 연애인이었던 것입니다. 10은 그저 오프닝 이벤트였을 뿐이에요. 10이 실체인지 5가 실체인지는 연애해보기 전에는 모르죠. 3만큼 하던 연애인이 5를 하면 감동스럽지만, 10만큼 하던 연애인이 5밖에 못하면 비난을 받죠.

상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상대를 실제보다 더 좋게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고, 상대가 나를 모르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도 하고 포장도 하죠. 문제는 자신이 얼마만큼을 줄 수 있는 연애인인지는 스스로도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죠. 10만큼 주다가 자신이 5 밖에 못한다는 걸 알고, 좌절할 일은 아니에요. 5만큼이라도 꾸준하게 평생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의미있는 사랑이죠. 늘 10을 줄 수 있는 데도, 이 사람한테 2, 저 사람한테 3 하는 식으로 이리저리 애정을 남발하는 것보다는 백번 나아요.

그러니까, 연애를 할 때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한껏 사랑하세요. 천천히 다가가고, 충실히 만끽하고, 조금씩 마음을 열고, 신중하게 사랑을 쌓아나가요. 상대가 행복해서 주는지 잘 관찰하세요. 내가 행복해서 이 사람 옆에 있는지 항상 생각하세요. 

M님의 남자친구가 이전처럼 사랑하는 것 같지 않다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이에요. 불타는 마음은 짧아요. 눈에서 항상 하트가 뿅뿅 나오는 시기는 금방 끝나죠. 연애의 에센스는 그 다음이에요. 상대의 맨얼굴과 맨살에 익숙해지고 난 다음. 더 이상 새롭지도 않고, 더 이상 설레지도 않는 그 순간. 장점도 결점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숭숭 뚫린 모공만큼 커다랗게 보이는 때 말이에요. 그 때야말로 진짜 연애를 시작할 타이밍인 거에요. 낭만적인 감상에 취해 돈만 쓰는 데이트에 물릴 만큼 물렸다면, 그 때부터가 본 게임이에요. 이 사람이 내 사람인지, 이 사랑이 무한한지 유한한지, 이 연애가 내 삶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의미인지 그 때부터 진실의 저울 위에 올려보는 거에요. 

겁먹지는 마세요. 지쳐서 못하는 연애도 있어요. 사람은 좋았다가 싫었다가 진절머리가 났다가 그래도 이 사람이다 싶기도 하죠. 습관적으로 만나는 날도 있어요. 문득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나게 고마운 날도 있죠. 어느 날은 좋고 어느 날은 이게 사랑일까 피식 웃음도 나죠. 이 모든 것이 연애의 과정이에요.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 누가 말할 수 있겠나요. 

참으로 다행인 것은 두 사람이 이별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기회는 남아있다는 거죠. 

변해가는 두 사람의 생각과 감정, 연애관, 사랑관, 인생관에 대해서 논할 수 있다면 다행이죠. 예쁘고 달콤한 것만이 사랑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에요. 시큼하게 변해가는 맛까지 견디고 넘어서면 어느새 와인향기 같은 사랑을 꿈꿀 수도 있는 거죠.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모든 것을 넘어서는 거에요. 굳이 끝까지 손을 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한 사람이 내기라도 하면, 이야기는 그 순간 끝나고 말지만 말이에요.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마음을 모두 털어놓고 대화해보시기 바래요. 제가 답을 드리는 것이 늦어서 어떤 결론을 얻으셨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저 전화나 문자로 헤어지지 않는 것만 해도, 정말로 멋지고 훌륭한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덧글

  • 푸른미르 2011/05/29 22:10 #

    연애만이 아니라 인생까지 적용할 수 있는 글을 보면서 링크하기를 잘했구나 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사람이 정신적이라도 슈퍼맨,슈퍼걸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못하고 영원히 사라지는 지점까지 달려야 하는 숙명을 지닌 존재로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영원할 수 밖에 없겠지요.
  • 2011/05/30 08:53 #

    저도 하루에도 백번씩 고민합니다. 여기가 맞나. 이 길이 맞나. 어젯밤에도 제가 시험을 치는 꿈을 꿨어요. 답을 알 수 없는 시험지를 받아들면 막막해지죠. 게다가 그 시험지가 나의 것이 맞는지 제대로 도착한 건지 시험관들은 공정한 건지 점수에 따라 어떤 결과가 오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공포죠. 시험 같은 삶을 살면 안되는데, 모든 것을 흐르는 대로 받아들이고 누리는 공력이 저는 아직 없나봐요.

    덧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 2011/05/30 00:2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5/30 08:50 #

    두 분 분명히 많이 사랑했을 거에요. 그런데, 사랑은 사랑이고 연애를 감당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같이 극복하는 걸 포기하면, 그건 이별이죠. 이별 후에도 편하게 보자고 하는 사람은, 자신은 이별의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은 심리일 수도 있어요. 연인은 아니지만, 여전히 좋은 지인으로 남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러면 안되죠. 부담 버리고 부담가지 않을 만큼만 만나자는 게, 여전히 마음이 접어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겠어요.

    그 분이 연애 경험이 적어서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그 분도 납득할 거에요.

    잘 대처하셨습니다. 제가 처방전이 늦어서 도움은 안 되었지만,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도 전에 너무나 훌륭하게 잘 대처하신 것 같습니다. 마음이 빨리 편해지시기를 빌게요.
  • Raymundo 2011/05/31 15:21 #

    오 이번 답글은 즐겨찾기 해놨다가 두고두고 연애상담글에 링크로 던져주고 싶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상대의 사랑이 식었다고 고민하는 글들이 많지요.
  • 2011/05/31 23:11 #

    뭐 식기도 할 테고. 열정은 식고 정은 깊어지고 그런 포트폴리오도 있겠고. 여러가지겠지요. ^ㅅ^ 계속 낭만적인 연애관을 고수해주면 참으로 좋으련만, 첫눈에 홀딱 반해 몇달을 몸살처럼 앓던 남자들도 결국에는 심봉사 눈 뜨듯 번쩍 현실감각을 찾아가더라고요. 그래도 처음에 여자를 그렇게 감동시켰으면, 현실에 눈 떴다는 티 안나게 유연하게 넘어가주면 좋으련만. 우흐흐. -ㅁ-
  • 노디 2011/06/08 12:53 #

    좋은 글이네요 . .매번 공부많이하구갑니다, 저도 즐겨찾기 해놓아야겠어요 :)
  • 2011/06/09 09:55 #

    고맙습니다. ^ㅅ^
  • 2011/06/12 10:4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6/13 10:59 #

    >ㅅ< 사과할 수 있는 용기도 중요하지요.
  • 2016/05/02 13:1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5/02 22:11 #

    구애기간에 잘 해주는 걸, 그 사람의 진짜 인격으로 알고 홀딱 넘어가면 안 될 일입니다. 일시적으로 착한 행동, 다정한 말투, 친절한 사람인 척 하는 건 얼마 못 가요. 그러니까, 잘 봐야 해욤. 관계가 안정된 후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걸 잘 살펴야 하지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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