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8th prescription_평생 계속되어온 아버지의 바람과 불륜으로, 어머니는 이제 지쳐버린 것 같아요.

V님 :

집안 간 대립, 아버지의 바람끼 덕분에 부모님의 결혼 생활은 순탄한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아버지가 저에게 들키는 외도를 시작하셨죠.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우리들 때문에 참아왔다고 하셨어요. 이기적인 어린 마음에, 저는 어머니가 희생해서라도 우리 가족이 깨어지지 않길 바랬죠. 

요즘 어머니는 갱년기라 많이 예민하세요. 그런데 아버지는 정신을 못차리고 계시고 어머니와의 간극은 점차 벌어지죠. 그동안 두 분 결혼의 기념일은 챙긴 적 없으면서, 그녀와는 기념일에 선물에 착실하게 연애를 하시더라고요. 

저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나지만, 아직 어머니에게 제가 알게 된 진실을 말해드리진 않았어요. 두 분이 이혼하신다 해도, 이렇게 자세한 정황까지 알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분명 큰 상처가 될 테니까요. 저는 이제 다 컸고, 어머니가 이혼을 원하시면 그러시라고 하고 싶어요. 어머니가 저한테 한풀이를 하셔도, 저는 이제 다 참을 수 있는 걸요. 

하지만, 더이상 어머니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못 보겠어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
 
V님, 엘입니다.

많은 부부들이 제대로 된 결혼관을 갖기 전에 결혼하죠. 결혼 제도에 대해 이해를 갖고 결혼하기보다, 나이가 되었으니, 부모님에 효도해야 하니까, 늦으면 결혼을 아예 못할까봐, 남들도 다 하는 거니, 아이를 책임지려고, 혹시나 결혼하면 삶이 더 좋아질 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결혼하기 쉬워요.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어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했는데, 결혼이 자신이 예상했던 삶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기도 부지기수죠.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막연히 '행복한 결혼'을 위해 결혼했으니 결혼이 위태로운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에요. 행복한 결혼 따윈 없죠. 내가 나의 삶에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가 관건이지.

이렇게 결혼하고 나면, 아침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들이 다 튀어나오는 게 보통일 거에요. 시댁과의 갈등, 경제적 불안, 아이 양육과 맞벌이의 이중부담, 고부간의 전쟁, 가벼운 바람에서 본격적 불륜, 섹스리스 부부, 아이에 대한 집착, 가족 간 대화 단절, 사교육 전쟁, 그 외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아이들이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은 돈 잘 버는 아버지와 자상한 엄마, 귀여운 바둑이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가족상이에요. 편부편모 가정이 얼마나 많은데. 이혼재혼가정이 얼마나 많은데. 보호자가 조부모인 경우도 많죠. 소년소녀가장들도 많고요. 돈 못 버는 아버지도 많고, 자상하지 못한 어머니도 많죠. 안 사랑하는데 결혼한 부부도 얼마나 많겠어요.

아이가 발견한 자신의 가족은 이상향에서 한참 멀죠. 모든 아이들이 자의식을 가지면서부터 자신의 가정이 이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고 괴로워하죠.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힘든데, 자신을 태어나게 한 부모들은 더 문제투성이인 거에요. 스스로를 바꾸는 건 미약한 노력이라도 할 수 있죠. 그런데, 부모님은 나의 과거에요. 과거를 어떻게 뜯어고치겠습니까. 정신차려보니 나는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버렸던 거에요!

그러니까, 빨리 포기하도록 해요. 두 분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부부'간 의무와 책임에 대한 이해가 달랐죠. 그러니, 각자의 결혼을 꾸려나갈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어머니는 아마도 결혼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부부를 꿈꾸었을 거에요. 그런데, 자신이 선택한 남자는 제대로 된 결혼-윤리관이 없는 사람이었죠. 젊었을 때는 철이 없어 그렇다 생각하고 자신이 참으면 곧 서로 간 균형을 이루는 날이 오리라 생각했을 지도 몰라요.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가정은 필요하니, 남편의 불륜으로 가정을 무너지는 건 막아야한다 판단하였겠죠. 아쉽게도 어머니의 예상은 빗나갔고, 아버지는 여전히 가정의 바깥에서 사랑을 찾아야해요. 맙소사.  

남자가 바람을 피는 것은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못할 짓이지만, 법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아요. 당장의 불이익이 없죠. 그래서 남자들은 바람을 피워요. 최악의 경우 이혼 절차를 밟으면 될 뿐이에요. 많은 아내들이 어머니로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혼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 때문에, 남자들은 자신의 가정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혼외 연애를 해요. 배우자의 불륜을 막는 방법은 없어요. 응당한 법적 처벌을 내리는 방법도 없죠. 이혼 외에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는 어머니도 알고 V님도 잘 알아요. 바람피는 유전자가 갑자기 생존의 원칙을 수정할 확률도 희박하죠. 어머니는 자신의 결혼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받아들여야 해요. 어떤 방식으로 이 결혼을 감당할 것인가는 어머니가 결정하실 일이죠. 아버지와 정면으로 대화하여 이 문제를 풀 수도 있지만, 어머니는 계속해서 간접적인 방식을 택하셨어요. 그것도 어머님의 선택이에요.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없죠. 그저 어머니가 어떤 선택을 하셔도, 옆에서 지켜보고 지지하는 존재가 되는 것 밖에는 없어요. 

그러나, V님은 가족의 일원으로서 두 부부의 일에 개입할 수는 있다 생각해요. 어머니가 자신의 현실을 감당하는 사이, V님은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을 거에요. 정면으로 마주보세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하고, 아버지가 가장으로서의 자리를 지킬 것인지 아닌지 질문해보세요. 아버지가 결혼을 인해 얻고 있는 많은 편의가 부부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제공되는 것임을 상기시켜주세요. 몰랐으면 몰라도, 모든 것을 다 알고서 모르는 척 하는 일은 피말리는 일이죠. V님과 같은 가정 환경에서 자라 온갖 상처를 받고 견디는 아이들이 많고 많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아버지가 자신의 선택에 어떤 책임을 지는지 지켜보세요. 아버지가 자신의 현실에서 도망가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 떠요. 만약 아이의 눈을 보고서도 자신의 혼외 연애를 수습하지 못한다면, 그 아버지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도 저버린 거에요. 도리가 없죠. 그 때는 정말로 포기하세요. 아버지가 가족 모두의 외면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자신이 자초한 일일 거에요. 

한 남자가 있었어요. 그는 결혼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여자가 필요했죠.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했고요. 자신의 온갖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아내가 여전히 자신과 시댁을 모시기를 주장했어요. 아이들이 자신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효도해야 한다 주장했죠. 제발 이혼하라는 말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요. 아이들은 아버지의 역할, 남편의 역할을 외면하는 그 남자 때문에 경제적,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죠.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다행인 걸까요.

결론적으로, 그 남자는 혼자 남겨졌어요. 그는 자신이 결혼으로 이룬 가족들이 어디에 사는지도 몰라요. 누구도 나머지 가족들의 거주지를 알려주려 하지 않으니까요.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건만, 그는 조금도 변한 데가 없었어요. 몇번이나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 일러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가장으로 군림하고 아내를 착취하며 아이들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인간적으로는 불쌍하지만, 전혀 동정심 따위 가질 필요없는 불우이웃이죠. 그가 자신이 선택한 비참한 말로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V님의 아버지가 얼마나 미래를 예상하고 행동하는 사람인지 몰라요.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도 안전하리라 착각하는 것일수도 있어요. 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지금은 20세기가 아니죠. 아내도 아이들도 각자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시대에요. 그가 과연 얼마만큼의 각오를 하고 혼외 연애를 하는지는 알 수가 없죠.

어머니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세요. 결혼과 이혼이 어머니의 삶을 망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어요. V님은 여전히 어머니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해주세요. 포기해야 할 것을 한시라도 빨리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말씀드리세요. 결혼해서 남편 덕 보며 사는 운좋은 여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받아들이셔야 하죠. 결국 결혼도 삶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시작도 끝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려요. 가족의 의미를 지키는 구성원만이 진짜 가족이라는 것도. 반드시 모든 십자가를 혼자서 지고 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요.

결혼하여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면 좋겠지만, 결혼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해도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죠. 어머니가 어떤 선택을 해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고 마음이 편해지신다면 좋겠습니다. 바람피는 남편 따위에 불행해지지 않기를 응원하겠습니다! V님부터 힘내세요!







덧글

  • 2011/08/18 22:1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8/19 13:10 #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불륜의 증거를 저와 동생들에게 들켰을 때, 어머니에게 얘기하지 않았어요. 이유는 아마도... 엄마가 더 불쌍해질 것 같아... 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버지는 바뀌지 않았고, 두 분의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죠. 비공개님이 그냥 모르는 척 해도, 언젠가는 터질 거에요. 안 터지고 평화가 유지된다 해도, 그 기간은 거짓과 기만의 시간이지요.

    솔직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안정과 물리적인 평화에요. 두 부부의 사랑은 부차적인 문제죠. 그건 꼬꼬마 때에 중요한 문제고요. 부부가 서로 안 사랑하면 어떤가요. 그건 부부 사이의 문제니까요.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안전하게 있기만 하면 그만이죠.

    그런데, 여자아이들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두 분의 삶이, 곧 나의 미래의 결혼상이 될 수도 있죠. 나의 결혼관, 나의 이성관, 나의 부부관... 모든 것을 뒤흔드는 경험이죠. 엄마의 삶이 나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공감하기 때문에, 남자들이란, 결혼이란, 저렇게 기만적인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죠. 동지의식을 가지고 엄마를 인간적으로 연민하기도 해요. 어머니도 딸도 '여자'니까. 더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거에요.

    만약 비공개님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서로 간 유대가 좋다면, 서로 동등한 가족의 일원이라는 의식이 있다면, 대화도 가능하겠죠. 그런데, 비공개님은 아직 아이의 마음이에요. 엄마 아빠가 서로 헤어지면, 나는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고 있죠. 그런 마음으로는 "인생 교통 정리 좀 잘 하시죠. 그게 가족에 대한 예의 아닌가요." 하고 당돌하게 따져묻기 힘들 것 같기도 해요.

    가족의 겉만 유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도 지혜로운 선택이에요. 그런데, 진실한 삶을 사는 아버지를 보고 싶다, 라는 의지가 있다면, (그것도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그런 마음이 들겠죠) 오빠와 상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오빠와 비공개님의 유대와 신뢰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같은 경험을 하여, 비공개님의 아버지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어요. ㅠㅅㅠ 저는 바람피는 아버지가 싫었고, 내 남편이 바람피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싫을 것 같아요.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실까요? 저희 어머니는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나니, 개인으로서의 선택을 하기 위해 뒤늦게 노력하고 계세요. 그런데, 만약 어머니가 빨리 자신의 삶부터 생각하고 선택하는 결단을 내렸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저는 오히려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요.

    아버지가 비공개님의 가족의 모든 생계를 책임지고 계시나요? 그렇다면, 우리를 버리지 말라, 라고 말할 수도 있죠. 그런데, 각자가 각자의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반대로 말할 수도 있죠. 우리 가족에서 나가고 싶냐? 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생물학적으로는 일부일처제는 정말로 문제가 많은 결혼 시스템이라고는 해요. 그런데, 바람피지 않고 잘 사는 가정들도 분명히 있잖아요. 진화의 방향은 일부일처제를 지향하도록 되어 있지 않을까요. 가치관에 따라 그저 공간과 가족만 공유하고, 연애와 섹스는 자유롭게 하는 선택도 가능하겠지만, 그러한 시스템이 과연 사랑의 소중함을 말할 수 있을까요. 만약 이것이 의미가 없다면, 애초에 인간, 신뢰, 가족, 사랑, 약속, 생을 걸쳐 한 사람만을 지향하는 에너지... 이런 가치관은 왜 생긴 걸까요.

    복잡복잡한 문제죠. 그렇게 복잡한 시스템이 있다면 왜 하필이면 일부일처제 가족인가. 인간에 대해 가족에 대해 부부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답이 나오겠지요. 언제나 그렇듯 정답은 내 마음 속에!
  • 2011/08/22 16:3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8/22 16:43 #

    어떠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난 행복할 거야, 라며 지금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뒤로 미루지 않는 일이랍니다. 행복의 조건에는 수백, 수천가지가 있습니다. 비교열위를 생각하면 끝없이 불행해져야만 하죠. 자신이 지금 갖고 있는 것, 갖고 있는 상황, 자기 자신을 잘 알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입니다.

    감기가 아파 일주일 정도 죽도록 고생하다 다 나은 날은, "건강하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구나!" 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감기가 걸렸을 때는 "아 내가 과로해서 쉬어야 한다고 내 몸이 알려주는구나!" 하고 쉬는 시간이 생긴 것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일상과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생기지 않습니다. 내가 남보다 못한 것을 따지는 데에 시간을 다 쓰면, 불행하기만 하죠. 세상의 수많은 기준들에 압도당하지 않을 것. 그리고, 자신의 기준으로 행복해질 것.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을 것.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찾는 것.

    할일들은 많지요. ^ㅅ^ 사람마다 다른 행복의 기준과 방법을 찾아야 하지요. 내 힘을 사는 내 세상이 되어야, 행복한 거랍니다. ^ㅅ^
  • 2011/08/23 00:2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8/23 09:10 #

    네. 트라우마가 되죠. 저는 다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텍스트를 대하면, 저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흘려요. 제어가 안되죠. 그런데, 그 원인을 아니까, 곧 수습이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도 좋아져요. 아이가 '엄마 아빠 행복한 우리집'에 대한 이상을 버리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행복한 우리집' 그 까이꺼 내가 만들면 된다, 라고 생각할 여유도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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