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th prescription_동성 친구의 아름다운 몸을 보고 스킨십을 하고 싶어졌고 그런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N님 :

어리광 부리는 성격의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어요. 저는 언제나 엄마처럼 언니처럼 그녀를 보듬고 다독이고 챙겨주었죠. 팔짱을 끼거나 허리를 감싸안는 친밀한 스킨십도 많았고요, 그녀에게 남친이 생겨도 저는 좋은 인연일지 불안불안해서 걱정을 많이 했죠. 

어느날은 학교 행사에서 친구들 여러명과 함께 샤워한 일이 있어요. 같은 여자들끼리이지만, 저는 평소 대중목욕탕도 안가는 성격이라 그런지 또래 친구들의 알몸을 보는 게 참 어색하고 이상한 기분이더라고요. 특히 그녀는 몸이 너무나 예뻐서 왠지 제가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 친구집에 놀러가서 같이 자게 되었을 때는, 너무나 두근댔고 키스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지만 스스로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나 싫었죠. 

지금은 그녀와 멀어져서 자주 연락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녀를 멀리서만 봐도 혼자서 매우 어색합니다. 

저는 이상한 사람인가요? 만약 어른이 되어도 동성에게 이런 감정이 생기면 어떡하죠? 저는 동성애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제가 그녀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분명히 좋아하는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는 절대로 이런 고민을 얘기할 수 없어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N님, 엘입니다.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는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있지요. 훈련에 의해 오른손잡이라도 왼손을 잘 쓸 수 있고, 왼손잡이라도 오른손을 잘 쓸 수도 있죠. 양손잡이로 훈련할 수도 있고요. N님은 왼손잡이를 반대하거나 싫어하지는 않을 거에요. 이건 사람이 다 다르게 생긴 것처럼 그냥 그 사람의 특징이니까요. 성적 취향이나 연애 성향, 성적 아이덴티티도 마찬가지이죠. 연애를 놓고 볼 때 N님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양성애자인지 아님 박애주의자인지 연애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무성애자인지는 태어날 때는 알 수가 없는 거에요. 당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사람이 누구일 지, 어느 누가 미리 미래를 결정해놓을 수 있단 말인가요.   

주변 어른들이 N님이 이성애자로 자라도록 학습시켰겠지만, 나중에 N님은 쭉 이성애를 고수하거나 변경할 수 있죠. N님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지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건 하나님 정도입니다. 하지만 바쁜 하나님은 실제로 개인에게 나타나서 이것저것을 선택하라고 지시하지는 않을 테니까, 결국 모든 것은 N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얘기랍니다.

물론, 많은 문화권에서 이성애는 권장사항이에요. 이성 간의 섹스에서만 새로운 생명(이라 쓰고 '경제단위'라고 읽는다)의 탄생이 가능하니, 집단의 유지/보수에는 이성애가 유리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동성애는 죄악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고 질병도 아니에요. 당신의 혈액형이나 별자리가 무엇이든 사람들이 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갖는 개개의 특징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몸'을 숨기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자라도록 합니다. 특히나 여성의 몸은 더욱 그러하죠. 몸은 그저 유기체의 정신과 영혼을 담는 컨테이너일 뿐입니다. 몸에는 한톨의 죄악감도 묻어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몸이 원하는 타인의 체온, 성적 욕망, 쾌락 지향성, 안전과 위생을 추구하는 것, 아름다움과 건강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들 모두 비난받고 판단당할 이유가 없는 것들이에요. 몸이 나에게 거는 수많은 말과 이야기들을 잘 듣고 돌보는 것이 모든 생명들이 할 일이죠.

그런데, '몸'을 지배하고자 하는 외부의 권력들이 자연으로서의 몸 위에 여러가지 기호와 상징들을 덧붙였어요. 사람의 몸을 자연으로 보지 못하고 성적인 상징으로만 보게 만드는 시선은 학습으로 인해서 구축된 것이죠. 사람의 몸은 다 다르게 생겼어요. 나의 기준에서 아름다운 몸도 있고, 나의 시선에서 예쁘지 않은 몸도 있을 수 있죠. 그러나, 자연이 잘 생겼다 못 생겼다 나눌 수 없는 것처럼 몸은 그저 그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일 뿐이에요. 내가 낯선 타인의 몸에서 여러가지 감상을 갖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죠. 몸에는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동성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이성) 연애에서 주로 보여지는 애교애교-보듬보듬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연애라는 것은 그저 인간관계의 일종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 우정도 되고 연애도 되고 가족애도 되고 동지애도 형제애도 되는 거에요. 자신이 보호하고 싶은 존재를 보듬는 것을 '인지상정'이라고 해요. 어린아이가 물가에 가면 누구라도 어이쿠 하며 달려가 안아드는 거죠.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에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친구에게 가는 것도 동생에게 가는 것도 반려동물에 가는 것도 아이돌이나 귀여운 캐릭터나 물건에 가는 것도 다 자연스러운 일이고 보통스러운 사건이랍니다. 

타인의 몸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도 이성애 스토리에서는 흔한 서사잖아요. 자신의 성적 취향이 이성애(라고 스스로 결정한 바 없지만)이기 때문에, 동성의 몸에 끌리는 마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 또한 흔하게 겪는 사건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지 N님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여성의 몸에 성적인 호기심과 호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에요. 단지 머릿속으로는 누구와 무슨 짓을 해도 정말로 괜찮답니다. 꿈속에서도 범죄를 저질렀다고 현실에서 쇠고랑 차는 거 아니잖아요. 

내 안의 생각과 상상과 욕망과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생각이나 감정, 충동을 느꼈다고 괜한 참회를 하거나 회개하느라 현실의 시간을 낭비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랍니다. 

연애감정은 어디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발현될 지 알 수 없는 거랍니다. 그것이 동성의 친구일수도 있고 이성의 친구일 수도 있죠. 심지어 형제 사이에서나 친척 간에도 이러한 감정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그 감정을 현실로 이어가고자 한다면 그것이 이성애도 되고 동성애도 되는 거죠. 그 감정을 굳이 연애가 아니라 우정이나 동지애나 가족애, 인류애로 이어가고자 한다면, 그것 또한 관계의 당당한 이름이 되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지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나를 둘러싼 가까운 인간관계들에서 이전과는 다른 색다른 감정과 생각을 느끼게 되는 일도 분명히 일어납니다. 아직 본격적인 연애 관계도 섹슈얼한 경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몸과 마주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어린 나이에는, 아주 작고 사소한 촉매로도 성적인 판타지나 충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명 친구 사이인데도 연애 상대에서나 느낄 법한 스킨십/ 성적 충동을 느끼는 일도 결코 드문 일은 아니랍니다. 실제로 스킨십이나 성적인 경험을 하는 경우도 물론 있죠. 하지만, 이것이 자신의 성적 자아와 연애 성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자연스러운 일이고 괜찮은 일이고 성장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었을 지도 몰라요.  

저 역시 10대 시절에는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껴보았고, 제 주변에서는 본격적으로 동성 커플로 연애를 하는 케이스도 있었죠. 그 친구들은 20대로 넘어가며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며 다시 이성애자로 돌아갔고, 저는 내 안의 성적 지향을 검토하기 전에 이성애 경험을 하게 되었고 결국 이성애자로 살아가고 있죠. 하지만, 제가 죽을 때까지 이성애자일까요? 그건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내가 바이 섹슈얼이 아닌가, 남성혐오로 인해 동성애를 지향하지는 않을까, 내가 저 사람에게 느끼는 것이 정말로 연애감정일까, 인간에게 연애라는 게 꼭 필요한 걸까. 살다보면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질문해야 하는 순간도 많이 경험하게 될 거에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느끼는 것은 제 친구들은 물론이고 생각보다 세상에는 다양한 연애 성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죠. N님의 주변에도 이성애자들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거에요. 

결론을 정리하자면, N님의 생각과 느낌과 감정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랍니다.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지는 N님의 선택이에요. 이성애에서조차 감정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친구에게 느끼는 것이 연애감정이 명백하다 해도, 그 안에는 분명히 우정도 있고 호기심도 있고 인간적인 끌림도 있고 동경이나 동지애, 미움, 질투, 증오, 실험정신, 성적 욕망은 물론 정의내릴 수 없는 몽실몽실한 구름 같은 것도 다 뒤섞여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N님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덧글

  • 발라 2012/08/22 23:24 #

    얼마전에 '나의 피코'라는 야애니를 봤습니다. 그리고 외쳤지요. Y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o!!
  • 2012/08/22 23:50 #

    좋았다는 건가? 야애니는 무엇인가? 야한 애니메이션? 성인용 애니메이션? 19세 이상 관람가 애니메이션? 아직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 루미 2012/08/23 16:44 #

    해석드립니다.^^;;;

    - 좋았다는게 아니고 "놀랐다는" 뜻 입니다.

    - "나의 피코"라는 일본 19금 애니메이션을 보고 한 외국인이 유투브에 Yooo!라고 외치는 감상을 올렸습니다. 한때 서브 컬쳐 커뮤니티에서 굉장히 유행했습니다. 거기서 파생된 대사입니다.

    - 야애니 : 야한 애니메이션(즉 19금 대상 성인)
  • 라비안로즈 2012/08/24 15:21 #

    Yoooooooooooooooo!!는.. 그냥 놀람과 환희에 대한 감탄어이지요....
  • 2012/08/24 16:00 #

    아. YOOOOOOOOOOOOO! 이거 요새 유행인 거에요? 라비안로즈님도 알고 계시고??? 친구들한테 써도 될까????
  • 발라 2012/08/24 20:38 #

    요새는 아니고(...) 그냥 한참 된거랄까요.
  • 2012/08/27 13:22 #

    이 '나의 피코'라는 야애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여자애 그려놓고 남자애라고 우기는 수준으로 예쁘장하게 생겼습니다. 사지오지 멀쩡한데 생긴건 완전히 여자애 수준인 사내자식들끼리 잉야잉야 하는 내용이죠. 어떤 양덕이 그걸 보고 충격받아서 Yoooooooooooo!!!!!!!!라고 괴성지르는데서 나온 말입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여자일 리 없어'란 괴상한 유행어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시대는 大항해시대도 아니고 大해적시대도 아니고 大게이시대라나요.
  • 2012/08/28 00:09 #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여자일 리 없어. 피코 월드에선 그런 겁니까. 이 말 알아듣는 사람 있나 써먹어봐야지 ㅎㅎㅎㅎ
  • 발라 2012/08/28 06:13 #

  • 2012/08/28 15:31 #

    오오 신세계. 함부로 뛰어들 수 없겠다. 너무 방대해.
  • MCtheMad 2012/08/23 01:58 #

    와 어려운 질문인 것 같은데 정말 명쾌하게 대답하시네요 매번 구경만 했는데 정말 감탄하여 이렇게 감탄사를 남기고 갑니다.
  • 2012/08/23 02:51 #

    와와 덧글 고마워요. 새벽인데 못 자고 있어요. 우어엉. ㅠㅠ
  • 2012/08/23 09:0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23 23:2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8/23 21:4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23 23:3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8/24 00:5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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