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th prescription_막상 결혼하려고 보니 원하는 조건이 아니었고 자꾸 방황하게 됩니다.

O님 : 

남자친구가 많이 연상이다 보니 제 어리광을 잘 받아주는 그 사람과 알콩달콩 잘 사귀며 결혼까지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려고 보니 그가 딱히 자산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전 사회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모아놓은 돈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결혼보다는 차라리 편하게 연애만 하는 또래들이 부러워지더라고요. 

전 남친을 두고 다른 데이트를 하며 방황하기 시작했어요. 그 중 한 명과는 남친보다 더 자주 만나고 스킨십까지 하게 되었죠. 우리는 서로의 연인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귀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사람을 들여다보니 실망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어린아이였어요. 그래서 저는 금방 그와 헤어졌습니다.

저는 방황을 끝내고 남친에게 돌아와 다시 잘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저에게 마음이 남은 그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계속 제 주변을 맴돕니다. 저에게 차인 그의 눈빛이 너무나 불쌍해서 마음이 아파요. 

남친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데 왜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넘어갈까요? 왜 자꾸 더 좋은 남자가 있을까 기웃거리게 될까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O님, 엘입니다.

O님이 방황하는 이유는, O님이 권력지향형 인간인데다 거짓말에 능수능란하고 우유부단하기까지 하기 때문이죠. 또한 O님은 남친을 정말로 사랑하지 않아요. 두 사람 사이에는 진실된 감정적 커넥션이 없어요. 그래서, 남친은 쉽게 속아 넘어가고 쉽게 이별을 되돌릴 수 있는 거죠. 

O님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이 너무나 좋아요. 그게 싫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러나, O님은 진정으로 사랑해서 행복한 마음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때문에 연애하면서도 온갖 계산이 가능하고 다른 데이트도 가능한 거에요. 

정말로 한 사람을 지향하게 되면, 아무리 완벽한 조건의 다른 사람이 나타나도 결코 눈이 돌아가지 않아요. 낯선 타인들이 연인이 되어 둘만의 우주를 구축하게 되면, 세상 모두가 내 사람이 부족하다 욕해도, 내 눈에는 그 사람이 보석처럼 보여요. 관계가 깊어지면 연애가 시간을 빼서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 되고 생활이 되고 삶이 되죠. 타인이었던 그가 내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의 단점과 결점까지 감사하고 예쁘게 보여요. 바라는 게 점점 없어지고 감사할 것들이 늘어만 가죠. 다른 연인들들 바라보는 시선도 관대해지고 세상의 불합리도 감당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죠. 두 사람이 구축한 세계가 건실해질수록 인류를 사랑하게 되고 타인에게 친절해지게 되고 세상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되어요. 사람을 보는 눈이 또렷해지고 얄팍한 유혹 앞에 흔들리지 않게 되죠.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단지 시간에 비례해서 단순하게 증가하는 것은 결코 아니죠. 두 사람의 연애 기간은 사랑의 순도에 대해 무엇도 증명하지 못해요. 두 사람이 정말로 통하고 사랑했던 시간은 한줌도 안되는 시간이었을 지도 몰라요. 

사랑, 사랑, 사랑. 말은 참 쉬워요. 세월이 흐를수록 흔해지는 말이 사랑인 것 같아요. 우리가 고객님으로 살아가는 이상은, 우리가 연애 활동을 하는 한은, 누군가의 엄마나 아빠라면 반드시 사랑한다는 말을 듣겠죠. 사랑합니다 고객님. 사랑해 자기야. 사랑해요 엄마, 아빠. 당신은 이 넘치는 사랑 속에서 왜 외로워야 하고 방황해야 하죠? 왜 물건을 사면 살수록 물건이 더 필요하죠? 왜 연애 중인데도 다른 사랑이 필요하죠? 어릴 때는 분명 사랑하는 부모님이었는데 나이가 들면 왜 말도 통하지 않죠?

그 이유는 사랑은 당신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삶의 일부라서 그래요. 사랑은 그저 삶이에요. 다른 누구의 삶도 아닌 당신의 삶. 사랑은 그래서 동사에요. 주체가 있어야 하죠. 당신이 지금 여기의 관계를 가꾸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면, 사랑은 없어요. 사랑이 아니에요. 삶은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면 나를 채우는 의미를 담을 수 없어요. 사랑이라는 삶은 당신이 살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고 즐길 수 없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곳에는 사랑이 없는 거에요. 당신의 삶이 제대로 중심잡고 있지 못한 거죠. 

지금 여기를 산다는 주문은 참 쉽지 않아요. 세상은 너무나 자극적이고 계속해서 우리를 세뇌시키니까요. 생각하지 않고 움직이게 하고, 쉼없이 새로운 물건을 사도록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코드들을 학습시켜요. 우리는 늘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고 신체의 한계를 넘어 빠르게 이동해야 하고 동시에 너무 많은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어요. '지금 여기'를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데, 어떻게 내 앞의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겠어요. 내 삶이 내가 움직이고 살아내는 내 삶이 아닌데. 

연애하고 사랑하고 둘만의 우주에서 행복해지는 일은 정말로 어려워요. 그러나, 시도해볼만한 가치는 있는 일이에요. 지향해야 할 목표여도 될만큼 충분한 의미가 있어요. 사랑한다는 일은 진짜 나로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자신과 내가 선택한 사람과 더욱 진실해지고 행복해지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니까요. 

O님. 왜 연애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세요. 결혼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고 남친과 합의보세요. 상승혼을 계획한다면 지금의 남친은 적당하지 않죠. 더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원한다면, O님부터가 스펙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죠. 단지 어리고 예쁘다고 선택당하는 시절은 매우 짧으니까요. 하지만, 결혼시장에서도 연애시장에서도 상도가 있는 거에요. 마음이 있는 걸 알면서 친구라는 미명 하에 어장의 물고기를 관리하겠다는 건, 이미 남친에게 선물한 배신의 가짓수를 늘리는 짓이에요. 남친이 이 모든 걸 모를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는 딱 O님에 대한 애정만큼만 진실을 알고 있을 거에요. 남친이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면, O님에 대한 애정이 겨우 그 정도거나 아니면 O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당신의 배신까지도 용서한 이유일 거에요. 

O님. O님은 남친에게 반한 건 아니죠. 그래서 자꾸 다른 남자들에게 눈이 돌아가요. 하지만, 이제 성숙해가는 여인이 되기 위해, 상도는 지키는 준법연애인 되도록 해요. 다정도 병이라 하여 도무지 우유부단한 게 고쳐지지 않는다면, 한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본격 결혼 시장에 뛰어들고 연애는 자유롭게 하는 전략을 선택하세요. 사랑만으로 하는 결혼은 사실 희박한 확률이잖아요. 연애하며 사랑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자신이 어떤 연애와 결혼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잘 알고, 어른스러운 선택을 하시길 바래요. 충분히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덧글

  • 꿈꾸라 2012/08/24 08:01 #

    정말 핵심을 찌르고 너무나 공감되는 처방전이군요..^^
    사랑은 동사이고 주체적이여야 하며 추구할만한 가치가 넘치는것이란것을요
    정말 둘만의 우주란게 무언지 그것을 만들고 싶네요.. 언젠가는 우주가 나타나길 빌어보면서요.
    항상 엘님의 처방전으로 힘이 나는 저입니다. 영원히 뽀에버 해주세요.^^
    모든일에 사랑과 열정이 넘치기를~~
  • 2012/08/24 15:51 #

    >ㅅ<////// 저도 뽀에버 하고 싶어요. 그럴려면 여러가지 상황이 더 좋아져야할 텐데. 덧글 고맙습니다. ^ㅁ^
  • Raymundo 2012/08/24 21:30 #

    늘 지혜롭고 현명한 답변글들 감탄하며 읽습니다.

    이번 질문하신 분은... 엘님께 썼으니 그나마 이렇게 다정한 답변을 듣지 어디 네이트판이니 하는 곳에 쓰셨으면... ^^;
  • 2012/08/24 23:14 #

    네이트판... ㅠㅅㅠ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블랙홀.
  • 2012/08/27 13:24 #

    몇몇 개념판 빼면 나머지는 디시, 일베보다 심하면 심했지 나을 게 없어보이더군요.
  • ranigud 2012/08/24 22:12 #

    오우... 첫문장부터 날카로우시네요.

    엄정화가 부릅니다 '몰라'
  • 2012/08/24 23:14 #

    엄청화 언니는 정말 멋져요. ^ㅅ^
  • pando 2012/08/25 22:41 #

    와.. 글이 너무 멋져서 몇번을 더 읽었네요..
  • 2012/08/27 23:01 #

    고맙습니다. >ㅅ<///////
  • 2012/08/27 13:26 #

    비겁하군요.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고, 키보드로 흥한 자 키보드로 망하고, 어장관리로 흥한 자는 어장관리로 망할 각오부터 한 다음에 시작할 일입니다.
    망할 짓 애초에 안 하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 2012/08/27 23:20 #

    겹치기, 양다리, 눈치보기는 좋지 않죠. ^ㅅ^
  • 유 리 2012/08/29 13:35 #

    결혼 같은 거 생각하시기엔 아직 한참 먼 것 같네요. 제대로 된 연애부터 하셔야 할 것 같은데;
  • 2012/08/29 14:53 #

    연애 없이 결혼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ㅅ^ 제 지인들 중에는 조건 맞춰 결혼하고 나서 나중에서야 사랑의 신화(인상적인 첫만남/ 서로의 사랑이 깊어가는 추억들/ 약간의 갈등과 감동적인 극복/ 멋진 프로포즈)를 구축하느라 없는 스토리 짜내는(데이트 횟수가 적어서 별로 추억도 없는 것) 사람들도 꽤 있는데. 그래도 잘 살더라고요. 척 보기에도 서로 별로 안 사랑하는 것 같고 별로 친해보이지도 않는데, 결혼들은 잘 하는 듯.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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