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th prescription_내가 아니면 안되는 두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사랑합니다.

D님 : 

너무나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집안에서 자라 철저한 금욕주의로 살아왔습니다. 저에게 사람들은 깊은 속내를 털어놓으며 다가왔다 떠나갔죠. 저는 사람들의 상처를 차례차례 돌보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전 제 가치관을 바꾸었습니다. 사람을 마구 만나기 시작했죠. 그러다 정말로 헌신적이고 나를 여자로 보아주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가 자신의 프로필을 속인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연애하는 생활이 의지가 되고 재밌었기 때문에 용서했습니다. 섹스는 별로였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러다 친한 지인과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따뜻한 손길을 거절하지 못했죠. 각자의 연인들에게는 비밀로 하고서, 우리의 관계는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중생활은 서로에게 독이었죠. 헤어지자는 말에 항상 매달리는 그를 내치지 못했던 저는, 그가 자신의 연인과 헤어지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만큼 그와 있는 게 좋았어요. 

지금은 제가 너무나 지쳤어요.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모두 저를 기다립니다. 전 두 사람 다 연인으로 지내기 싫습니다. 그들은 제 앞에서 당당하고 정직하지 못하지만, 항상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아픔을 꺼내며 다가오죠. 전 그저 두 사람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합니다.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D님, 엘입니다. 

연애에 대한 기준을 걱정하기 전에 인간관, 인간관계에 대한 기준을 먼저 고민해보도록 합시다. 한국 기독교에서는 보통 자유의지를 버리고 신의 뜻을 따르라고 하죠. 원죄로 태어난 개인의 욕망은 엄격한 신적 기준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관리되어야 하고, 내가 선택하는 가치관과 기준은 신의 뜻 아래에서만 유효합니다. 사실 저는 종교가 피지배계층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목적으로 성장해 온 사회/문화적 도구라고 보는 입장인데, 종교인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겠지만요. 

세상만물을 창조한 것만으로도 신은 너무나 엄청난 짓을 저지른 셈이죠. 기독교에서 신은 주로 사후세계에서 인간을 평가하고 지옥과 천국을 운영하느라 너무나 바쁘시잖아요. 매우 바쁘신 덕택에 인간들을 위해 수많은 대리자들을 두셨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신의 창조 이후에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들이 어떻게 부대끼고 어떻게 소멸할 지는 살아가며 각자가 고민해야 할 몫이에요.  

그러므로, D님도 나의 인간관, 인간관계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오롯이 혼자 고민해봅시다. 연애요? 내가 섹스하는 상대를 고를 기준이요? 그것 또한 내가 인간을 대하는 기준, 인간관계를 운영하는 기준만 있다면 크게 고민할 것도 없답니다. 신이 나에게 주신 소명 같은 건 생각하지 마세요. D님의 안에 신이 있다면, D님이 선택하는 것이 바로 신의 뜻이니까요. 

사실 인간관계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일은 그리 어렵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편하고 누릴 수 있는 만큼만 인간관계를 운영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람이 피곤한 사람은 사람을 덜 만나고, 사람이 좋은 사람은 사람을 많이 만나기 위해 노력하면 되죠. 중요한 포인트는,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만 기다리면 내가 원하는 사람을 덜 만나게 되고, 내가 만날 사람을 먼저 선택하면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죠. 인간관계를 선택하고, 운영하고, 책임지는 일. 그 기준은 언제나 나 자신의 행복이어야 하죠. 그리고, 상호존중과 예의. 네, 언제나 제가 강조하는 것들이죠.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고 서로 간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덜 상처입고 덜 상처줄 수있으니까요.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누구도 상처입지 않고 조금도 다치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나를 가장 먼저 지켜야 하고, 상대를 그 다음으로 배려해야 하죠. 나를 사랑해야 하고, 그 다음에 상대를 사랑해야 하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과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경주할 수는 없답니다. 나와 너가 우리가 된다는 완벽함에 이르면, 더이상의 고민도 없겠지만.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하나가 될 수 있는 순간은 심각하게 찰나예요. 그러니까, 기준은 언제나 나 자신이라는 걸 잊지마세요. 

D님. 

D님이 자신의 인간관계 기준을 세우는 데에 염두하셔야 할 게 있죠. 그것은, D님이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점입니다. 누가 나에게 힘든 얘기를 털어놓으며 다가와요. 그걸 왜 거절하지 않나요. 그것은 D님의 소명이 아닙니다. D님은 목사도 스님도 아닙니다. 상담사도 아니죠. 친구끼리 지인끼리 가족끼리 연인 사이에서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토닥여주고 의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나를 상담역으로만 이용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D님이 명확하게 구분하셔야 해요. 내 삶을 누릴 시간도 부족한데, 타인의 아픔을 돌보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다니. 그런 일은 저같은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시고, D님은 자신의 삶을 사세요. 자신이 선택하는 사람과 삶을 나누고, 즐거움을 누리고, 행복해지세요. 

물론, 타인과의 거리를 조절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D님만 자기 기준이 명확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나에게 목적이 있어서 급히 다가오는 사람, 구별하는 눈은 내가 의지를 가지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호의와 애정, 보려고 하면 분명히 보입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기준이 전혀 다른 사람은 나와 함께 웃고 있어도 내 마음을 뻥 뚫리게 하죠. 

내가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분명 소수입니다. 나와 파장이 맞고 나를 행복하게 즐겁게 만드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요. 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진짜 내 인연은 언제나 드물게 찾아오죠. D님이 그걸 알고 있다면, 나에게 쉽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경계심을 가지면 됩니다. 나에게 존중과 예의를 갖추는 사람, D님은 그걸 알아볼 수 있겠나요? 

나에게 남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하는 속내를 꺼내는 사람은 분명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키죠. 어떤 사람도 타인의 아픔과 고통 앞에서 웃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아픔과 고통이라도 나에게 죄책감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분노와 화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아픔과 고통이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듣는 사람의 마음에도 반드시 영향을 줍니다. 그것은 치유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그저 흐릿해질 뿐이에요. 그래서, 상담사들도 정기적으로 마음의 그림자를 치유하기 위한 상담을 받습니다. 그런 과정없이 남들의 고민과 고통을 듣고만 있다면, D님의 마음은 점점 지치고 어두워지고 힘겨워질 뿐입니다. 

D님. 타인이 들어달라는 목소리를 거절한다고 해서 그 사람과의 인연 자체를 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내가 아니면 죽는다고 하는 사람을 내친다고 그 사람이 정말로 죽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아니면 안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생긴다고 내 존재 의미가 더욱 단단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죠. 자신을 꼬옥 끌어안으세요. 내가 나의 존재를 이렇게나 인정하고 긍정하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를 더해야할까요. 관계는 내가 누릴 수 있어야 의미 있습니다. 나를 죽이고 나를 시들시들하게 하고 나를 짓누르는 관계는,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직장이든 당장이라도 싸워야 하고 도망쳐야 해요.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은 내가 있어야 부차적으로 생기는 관계이고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D님. 무엇을 어떻게 거절하고 수용할지 고민해 보세요. 

그리고, D님이 거절하지 못하는 두 연인의 케이스로 돌아옵시다. 두 사람은 모두 D님에게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하면서, D님에게서 원하는 것만 취하죠. D님은 두 사람이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고 기술하셨습니다만. 실제로는 D님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이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두 사람은 각자의 일상이 있습니다. 심지어 둘 중 하나는 대외적으로까지 인정받는 연인도 있죠. 나에게 그렇게도 연약한 속내만 보이면서 나 밖에 없다 매달리는 건, 그 사람이 나를 도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뜻하죠. 서로의 상처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친해지자는 제안은 언제나 경계해야 해요. 내가 더 커지고 더 깊어지고 더 자유로워진다면, 그 관계는 멋져요. 하지만, 우리가 되는 순간부터 둘만의 비밀이 생기고, 마음이 무거워지고, 좁아지고, 얽매인다면 그 관계는 나를 살릴 수가 없죠. 사랑은 고통이라고요? 그렇지 않아요. 그 관계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든 D님의 자유지만, 사랑은 적어도 세상의 좋은 것을 더 누릴 수 있게 만들어야만 의미있어요. D님이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그게 무슨 사랑입니까. 그런 사랑이라면 백번 버려도 좋아요. 

누구나 자신의 마음이 보상받고 싶은 결핍을 목적하며 인간관계에 기대를 걸죠. D님이 선택한 모든 과거의 인연은 그 당시에 D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결핍을 보상하며 머물렀을 거예요. 그러니까, 지난 시간을 반성하지는 마세요. 다만 D님은 현재의 인간관계를 교통정리 잘 하시면 되는 겁니다. 

나에게 각자의 원하는 것을 가져갔던 그 두 인연, 깨끗하게 정리하세요. 그들은 D님에게 진실하지 않았고 존중하지 않았고 예의를 갖추지도 못했고, D님을 빛나게 하지도 못했어요. 길어질수록 마음을 굳어가게 하는 관계는,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정리를 시작하면 늦지 않아요. 그리고, 이미 낡은 그 관계에 대한 애착을 덜어냈을 때, D님이 무엇을 재료로 하여 삶을 누릴 것인지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래요. 새로운 선택을 하고, 철저하게 혼자도 되어보고, 용감하게 시행착오를 각오하며 앞으로 나가세요. 

D님. D님은 이미 자유롭다는 걸, 기억하시고 용기내세요. 

  



덧글

  • 미자씨 2013/01/29 10:40 #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호의와 애정, 이건 너무 한눈에 딱 보이지 않던가요;;; 이게 한창 역겨워졌을 시기에 사람을 뭉텅이로 잘라냈더니 정말 속이 시원했다는.
  • 2013/01/29 16:42 #

    ^ㅅ^ 인간관계도 선택하는 건데, 그걸 모르던 시절에는 마냥 괴롭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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