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1st prescription_놀림받은 기억 때문에 저는 아직도 주눅 들어 있습니다.

E님 : 

한때 몸무게가 정상체중보다 늘었던 적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고 도망친 기억이 지금까지 저를 주눅들게 해요. 지금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해줄 정도로 몸무게도 빠졌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욕할까봐 제 인간관계는 항상 극소수죠. 전 다이어트를 늘 하고 메이크업과 패션에도 신경쓰고 쇼핑도 열심히 하지만,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아요. 폭식증도 생겼어요. 누군가의 호감을 사도 이유를 모르겠고 새로운 인간관계의 제안도 언제나 거절하죠. 전 콤플렉스를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죠. 연애에 관심없는 사람, 대하기 어려운 이미지라는 게 차라리 나은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연애도 하고 싶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싶고 걱정없이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 싶습니다. 외모 때문에 도망쳤던 기억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E님, 엘입니다. 

사실은 자기애가 잔뜩 흘러넘치는 E님. 엄마아빠에게 흠뻑 사랑받고 싶은 E님. 꾸미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도 예쁘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칭찬받고 싶은 E님. 어디서나 당당하고 싶은 E님.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다가와 인기쟁이가 되고 싶은 E님. 연예인처럼 마르고 싶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패셔니스타가 되고 싶은 E님. 먼저 선택하지 않아도 마법같은 인연이 다가와 멋진 연애를 하고 싶은 E님. 어쩌면, E님은 너무나 여린 마음의 소유자라 세외당하기 쉬운 성격이 문제였는지도 몰라요. 

E님은 완벽주의자죠. E님이 꿈꾸는 세상은 언제나 먼 곳 어딘가에 있어요. E님의 이상은 너무나 이룩하기 어려운 조건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E님의 워너비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아요. 내가 나를 괴롭히는 '완벽한 세상'이라는 괴물을 얼른 깨부숩시다. 무지개처럼 평생 쫒아다녀도 결코 잡히지 않는 그 완벽한 세상은 대략 이런 것이죠. (: 이후에는 내가 바로 보아야 할 현실을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1. 엄마아빠는 아이들을 조건없이 사랑해야 한다. 
: 조건없이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아빠는 EBS 청소년드라마 속에서나 존재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아이를 지배하거나 망치는 부모가 80%고 그나마 아이의 인권과 삶의 행복을 고려하는 부모는 20% 이하. 우리 부모가 이상적으로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건 시간낭비.  

2. 아름다운 피조물만이 존재가치가 있다. 
: E님이 아는 모든 미적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그 시대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자본의 요구일 뿐. 예쁜 아이들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예뻐지려고 작정하면서부터 미인이 된다. 내가 보고 배우는 드라마와 영화, 잡지, 광고 속의 연예인들은 시간과 비용과 과학기술과 노력을 들여서 아름다운 것이다. 노력해도 안되는 연예인들도 많잖아, 사실. 억지로 33 사이즈 44 사이즈 만들고 성형해서 예뻐진 아이들, 50대 때도 웃을 수 있나 잘 봐봐. 미모로만 인간을 평가하다니 바보 같은 짓. 인간은 껍데기만으로 사는 게 아니다. 

3. 애정결핍은 나의 굴레 
: 애정결핍과 관심병, 허세병, 자기연민, 우울증, 온 인류의 고질병. 닥터엘도 마찬가지. 누군가의 애정을 원하는 마음, 사랑받고 싶은 욕망은 나를 변화하게 하는 에너지다. 나를 망치는 방식이 아닌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집중하면 된다. 정보수집과 시행착오, 도전과 실패는 당연한 옵션. 

4. 협소한 인간관계를 벗어나고 싶다. 
: 나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해보이는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 행복하기만한 인간은 없고, 콤플렉스 없는 인간도 없고, 인간관계에서 편하기만 한 인간도 없다. 내 인간관계가 협소하다면 사람들과 치여서 힘든 게 덜해서 좋고, 인간관계가 넓다면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았을 수도 있다. 협소한 인간관계의 장점도 많다. 내 사람을 더욱 속깊게 챙길 수 있고, 낯선 이에게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고,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다. 

5. 나는 완벽하고 멋져야 한다. 
: 기억하기 싫은 사건사고 한번 없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찌질한 흑역사 없는 인간은 없다. 말할 수 없는 챙피한 기억 하나쯤 없는 사람도 없다. 나약하고 바보같고 멍청한 부분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내 단점과 장점, 나의 존재가치를 남들과 비교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 비교비교 스킬은 내 삶에 스트레스를 더하는 기제일 뿐. 불완전하고 부실하고 불명확한 모든 것도 충분히 의미있고 괜찮고 문제없다.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 과정을 살 뿐이다.  

6. 멋진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며 행복해지고 싶다. 
: 연애인들은 생각처럼 흔하지 않다. 행복한 연애인들은 더욱 드물다. 삶의 행복도 연애의 행복도 사실은 찰나다.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이 무엇인지 역설하는 것. 타인의 행복이 부럽다면 채워야 할 나의 결핍이 무엇인지 기억해두면 될 뿐. 모든 불만족이 채워지는 연애나 사랑은 없다. 있어도 찰나. 그 찰나를 오래 늘리는 것이 연애, 인간관계의 기술이다. 

7. 인기쟁이가 되고 싶다.
: 인연은 다가오기도 하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는 선택을 할 때 훨씬 행복하다. 기다리는 수동성만으로는 내가 원하는 인연을 만들 확률이 희박하다. 워너비 인간관계를 꾸려가는 사람을 골라서 잘 관찰하고 따라해본다. 타인의 입으로 듣는 내 이미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타인의 평가는 언제나 일시적이고 나를 지배할 수 없다.  

물론, 이외에도 E님을 괴롭히는 잘못된 명제들은 많지만, 이 정도에서 정리하도록 합시다. 제가 E님에게 발견한 것은, 어쨌거나 저쨌거나 E님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자신을 다그치는 것도, 신체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열망하는 것도, 정보수집을 하고 선택을 하고 소비를 하는 것도, 어휴, 그거 보통 에너지로 할 수 없죠. 더군다나 E님은 상상력도 뛰어나죠. 단지 부족한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그림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겁니다.  

침착하세요. 현실적으로 사고하세요. 남들이 나를 무턱대고 해치거나 욕할 정도로 관심과 의지가 넘치지는 않는다는 걸 기억하세요. 스트레스로부터 적당히 도피하는 취미활동을 개발해보세요. 이미 얻게 된 스타일링 테크닉, 화장법, 옷과 구두, 악세사리들을 좀더 사랑하고 활용해보세요. 정말로 나를 나타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지려고 해보세요. 남욕하는 사람들의 저렴한 인격, 일일이 생각하지 마세요. 콤플렉스는 24시간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좌절과 비교비교에 의한 열등감은 지나가는 느낌이라는 걸 명확히 하세요.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으세요. 비교비교가 아닌 다름다름을 선택하도록 하세요.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는 일, 참 어렵죠. 그런데, E님은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그것을 이루어왔어요. 그것들에 더 높은 포인트를 주고 인정하면 되는 겁니다. 먼저 다가가서 대화하고 낯선 사람들과 편안해지는 일은, 스킬인 동시에 연습이죠. 영어공부할 때 숙어와 같아요. 인상좋고 대화가 유연한 사람들의 말투, 뉘앙스, 말하는 타이밍 같은 것을 잘 관찰하고, 적시에 써먹어보세요. 나의 콤플렉스만 붙잡지 말고, 타인들의 평범함과 특별함에도 좀더 관심을 가져보세요. 

부모님이나 연인의 무조건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좀더 든든하고 힘이 될 것 같기도 하죠. 하지만, 내가 나를 지지하는 것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기는 더 어렵겠죠. 우린 어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다독일 수 있다면 괜찮은 걸로 해요. 그래도 당장 필요한 애정결핍은 우쭈쭈 해줄 수 있는 친구들 만나요. 그런 친구 없나요? 그렇다면, 우쭈쭈 해줄 수 있는 남친을 만들려고 노력해보아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보통스런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떠는 시간도 가져보세요. 이미 익숙한 친구에게 하소연이나 한탄 비슷한 걸 하며 크게 웃어버려요. 정말로 별 것 아니라서 괜찮은 게 아니라, 문제를 꺼내고 그게 별 것 아니라고 말하면 괜찮아지는 거랍니다. 

누구나 당장 자신을 구하는 선택을 하게 되어있죠. 어떤 것을 극복하거나 노력하거나 애써야 하는 선택을 비하는 것이 평범하고 보통스런 선택입니다. 지금 E님이 누리는 모든 현재는 E님이 원하는 것을 꾸준히 선택한 결과입니다.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목표 설정을 명확히 하고 없는 용기를 짜내어서, 절벽에서 뛰어내린다는 각오로 훌쩍 날아올라야 하죠.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 허공에 던져지는 순간부터 날기 위해 무슨 수라도 내게 된답니다. 자신을 좀더 믿어보세요. E님은 생각보다 마음이 강하고 튼튼한 사람일 지도 몰라요. 

지금도 보세요. 문제에서 도망가지 않으려 자기 자신과 마주보았잖아요. 이제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죠. 용기 5cc 처방합니다. 행운이 있길 빌게요. 










덧글

  • Lena 2012/10/01 09:12 #

    늘 애정결핍이 문제였다고 생각했는데 이 처방전이 제게도 제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 같아요.
    늘 좋은 말씀 감사해요 ^.^
  • 2012/10/01 23:23 #

    저도 감사합니다. 저도 가끔 제 처방전 읽고 기운내고 그래요. 어허허허.
  • 녹두 2012/10/03 21:48 #

    4번은 정말 공감가는 명제네요...
    저도 넒은 인간관계를 부러워 합니다.
    저의 협소한 인간관계도 나쁘지만은 않고, 오히려 협소해서 좋은것들도 느끼지만...
    그래도 넓은 인간관계를 부러워 하는건 없어지지 않네요...
  • 2012/10/04 00:42 #

    저는 넓은 인간관계가 부럽기도 하지만, 새로운 관계가 늘수록 피곤도 늘어나기 때문에 그냥 지금에 감사합니다 ^ㅅ^
  • 2013/01/30 15:3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1/31 12:36 #

    그쵸그쵸. 그래서 제가 블로그로 처방전을 발행하는 거랍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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