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8th prescription_너무나 냉정한 부모님 때문에 우울하고 힘겹습니다.

V님 : 

부모님은 저에게 너무나 냉정하고 엄격합니다. 아빠는 제가 울거나 소리지르면, 물리적인 폭력을 쓰겠다는 위협을 줍니다. 전 자주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합니다. 엄마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농담으로 웃어넘깁니다. 저는 서러워서 펑펑 울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제 감정을 전혀 이해 못합니다. 하지만, 항상 저에게 관심을 갖고 있어서 통하지 않는 대화는 계속 됩니다. 엄마와 아빠는 한편이죠. 부모님은 제가 나약하다고만 생각합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기대하지도 말고 의지하지도 말라고 하죠. 

부모님은 저에게 따뜻한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어서 칭찬할 수가 없대요. 

너무나 집을 나가고 싶지만 겉으로는 웃으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날까지 두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는 자신이 싫어요. 늘 모멸감과 죄책감을 느낍니다. 자존감이 낮아져서 인간관계에서도 늘 눈치를 봅니다. 타인의 별것 아닌 한마디에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습니다.

저는 독립 전까지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대화활동을 통해 인간관계를 넓히려고 노력 중이죠. 당당해지고 싶어요. 자신과 세상에 화내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V님, 엘입니다. 

모든 부모가 부모 자격을 갖추고 부모가 되는 건 아니랍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80프로의 부모는 쌍방간 합의된 부모의 의미, 역할, 목표없이 부모가 될 겁니다. 남들 다 결혼하니까 결혼하고, 다 아이 낳으니까 아이 낳고, 다 조기교육 시키니까 조기교육 시키고, 다 유명한 교구 사니까 이런저런 쇼핑을 하고, 다 놀이방과 학원에 보내니까 우리 아이도 보내고. 그런 거죠. 부모 학교가 없잖아요, 사실. 연애 학교, 결혼 학교도 없는데, 부모 학교가 있겠습니까. 다들 자기 부모 보고 본받거나 반면교사 삼거나 그런 건데, 부모들도 참 힘들다고요. 준비없이 의식없이 이즘없이 부모 되어서, 아이가 고통받는 걸 책임지려니 답이 없거든요. 그렇다고 맘이 편하겠습니까.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건 알 겁니다. 그러나, 그들도 대안이 없습니다. 그들도 그렇게 자라왔고, 남들도 그렇게 살고, 내탓보다 자식탓 하면 편리하거든요. 

그러니까, V님. 부모님들에 대한 기대를 빨리 버리세요. 그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객관적인 그림을 봤을 때, 두 분 부모님은 V님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크십니다. 그런데 표현을 못하시는 거죠. 부모자식간 대화량도 상당한 편입니다. 자녀가 집에서 제대로 생활할 수 있게, 가정가사에 대한 지원 정도도 나쁘지 않아요. 애정도 있어요. 기대도 있고요. 다만, 어쩜 그렇게 똑같이 어머니, 아버지, V님까지 표현이 서투신 겁니까. 말 한마디에 천냥빚도 갚고, 말 한마디에 가슴에 대못이 박히기도 하는데, 그걸 전혀 모르시죠. 게다가 다같이 비교비교 전문가시고, 애정표현에는 소질이 없으시고, 남들 눈치 보며 살고, 자신을 믿지 못하죠. 가족이 모여살 수 있다는 건 정말로 큰 축복인데, 그걸 누리는 방법은 모르죠. 가부장적인 사고방식, 부모가 자녀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세대여서 사랑으로 관계를 가꿀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요. V님이 아니라 부모님들부터 먼저 상담을 받으셔야 하지만, 과연 그 분들이 상담에 응하실까요. 

V님. 내가 아닌 타인을 뜯어고치기는 힘든 일이랍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원망과 분노의 대상을 부모님에게 돌리지 말고, 그저 포기하는 걸로 합시다. 그분들은 여태 그렇게 살아오셨으니 그게 맞는 겁니다. V님은 지금까지 지원받은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다르게 채울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인정하는 부모와 아이. 그래요, 지금의 부모님들은 좋은 반면교사입니다. V님은 어쩌면 굉장히 커다란 걸 이미 얻어낸 것인지도 몰라요. 

아이들은 받은 사랑만큼만 내면의 세계를 구성합니다.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세상의 전부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갓난아기 때는 삶에 있어 선택의 폭이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게 되면 엄마와 아빠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게 되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떼를 쓸 수도 있고, 타협할 수도 있고, 노력하여 얻기도 하고, 양보할 수도 있고, 때로는 폭력을 쓸 수도 있죠. 나이가 들수록 부족한 사랑을 요구해야 할 대상이 부모님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스스로를 사랑하는 노력으로 삶은 얼마든지 변하거든요. 자신 안의 빈 곳을 채우는 선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면, V님은 더 많은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죠. 

아이도 어른도, 사랑해달라고 울며 떼쓰다가 그것이 얻어지지 않을 때는 좌절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 익숙해진다는 거죠.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었어야 마땅하나 그런 방법 따위 몰랐던 부모님과도 언젠가는 헤어집니다. 나를 목숨처럼 사랑한다던 연인이나 부부 사이도 헤어지죠. 십년지기 친구와도 사이가 틀어져서 헤어집니다.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죠. 그들과 화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갈수도 있지만, 평생 그런 시도조차 못하고 떠나보낼 수도 있죠. 사랑했었나 안했었나 고민마세요. 모든 것은 어차피 지나가고 떠나가니까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 지금 내가 사랑하는 자신, 지금 내가 누리는 관계들입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의 원가족이, 나를 온전히 사랑하리라는 기대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어느날은 머리가 차가워지기도 할 것입니다. 사랑은 항상 약간씩 늦게 부족하게 조금씩 존재합니다. 매달 찾아오는 동그란 보름달처럼 당연하지 않습니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홈 스윗 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들은 전부 판타지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사랑받겠다는 욕망은 빨리 포기하세요.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가면서, V님은 엄마 아빠도 나와 똑같이 연약하고 겁먹은 아이들이었다는 걸 깨닫을 겁니다. 그들을 증오하고 미워하다가 어느날에는 포기하는 법도 알게 됩니다. 과거에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더이상 욕망하지 않아도 되는 때는 분명히 옵니다. 스스로 자신을 끌어안으면 된다는 것, 내가 내 사람들을 더 사랑하면 된다는 것,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됩니다. V님은 지금 어느 과정까지 도달하였습니까. 

아이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세상을 넓혀 나갑니다.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받죠. 움츠러들기도 하고, 도망가기도 하고, 맞서 싸우기도 합니다. 삶을 누릴 수만 있으면 좋은데, 때로는 생존조차 버겁기도 합니다. 삶이 축복이기도 하지만, 저주이기도 하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인데, 아이들은 그 선택의 권리와 의무가 자신에게 있다는 걸 잘 모릅니다.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지만, 다르게 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죠. 

어떻게 하면 분노가 사라질 수 있을까. 방법은 참으로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삶이 저주이지 않을까. 역시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저 나의 삶에 존재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안정화될까. 상담을 받고 자료를 찾고 공부하면 됩니다. 길은 언제나 천천히 가야 하죠. 급하게 달리면 넘어지기 십상이거든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비교하지 마세요. 스스로에게 먼저 다정해지세요. 나를 안아주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신경을 끄세요. 혼자인 것을 두려워마세요. 나에게 생활의 여러가지 것들을 지원해주는 사람들과 잘 타협하세요. 이용하세요. 모든 사람들에게 솔직할 필요는 없어요. 때로는 편리한 가면을 써도 됩니다. 남들이 나에게 하는 말은 언제나 절반은 버리고 절반만 걸러 들으세요. 당장의 우울함과 슬픔과 분노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세요. 건강가정지원센터나 정신보건센터를 알아보세요. 생각보다 무료나 온라인으로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많습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세요. 우울증이나 분노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책을 읽어보세요. 도서관은 언제나 가장 편리한 휴식처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리지 마세요. 한걸음 한걸음 떼는 모든 걸음이 모두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하세요.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하세요. 사실 웃지 않는 날이 지속되면 웃는 근육이 모두 잠들어버려서요. 참 잘 안 웃어진답니다. 코미디 프로를 보거나 웃기는 동영상을 보거나, 웃는 연습을 하는 시간을 만드셔야 해요. 그리고, 매일 마주치면서 나에게 다정한 눈길 한번 안 주는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고 씨익 웃을 수 있나 도전해보세요. 한번도 해보지 못한 말, "사랑해요." 라는 말을 할 수 있나 시도해보세요. 늘 면박주고 협박하고 탓하고 부정하는 사람 앞에서, "그래도 귀한 딸인데 어쩔 거예요. 이렇게 예쁜 딸 흔하지 않아요." 하고 너스레를 떨어보세요. 내키지 않아도 한번쯤은 엄마한테 어깨 주물러드린다고 애교도 부려보세요. 아빠가 좋아하는 요리에 도전해서 귀여움 받을 수 있나 실험해보세요. 억지로 사랑을 해보란 얘기는 아닙니다. 내가 받기만 기다려서는 결코 사랑이 오지 않죠. 내가 먼저 주고 나서 받을 것을 계산하지 않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단 얘기죠. 그리고, 이런 별것 아닌 시도들이 독립 전까지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줄 지 누가 압니까. 내가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만큼, 그들도 똑같을 거잖아요. 사랑이 넘쳐났다면, 그거 V님에게 주었지 안 주었겠습니까. 

V님. 사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지만. 끝없이 길어질 것 같아서 이쯤에서 줄입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덧글

  • Lon 2012/10/22 01:56 #

    슬프게도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잘 모르고 자식도 부모를 잘 모르죠.
    잘 안다고 하면서도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것도 어려워들 하시구요.
    부모됨이 너무 어렵고, 나랑 맞지 않는 부모님을 인정하기도 어려워요.

    엘님의 말씀들이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네요.
    알면서도 실천하기는 더 어렵네요.
  • 2012/10/22 02:05 #

    사실 건설적인 조언이라면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보라고 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편리한 게 걍 포기하는 거죠. 얼른 포기하고, 얼른 독립하는 게 젤 속편하죠. 다만, 부모님에게 여러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되도록 장기적으로 관계는 좋게 가져가는 게 좋겠죠.

    가족 간에 사랑이 당연하다는 선입견. 자식은 효도해야 하고,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 위대해야 하고, 아버지는 당연히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런 프레임들이 모든 가족들을 병들게 하는 듯. 가족 안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들은 전부 권장사항이죠. 안되는 사람은 안해도 되는 걸로 해주면 서로 속편할 듯.
  • 밤비뫄뫄 2012/10/22 11:46 #

    아동학대 중에서 감정적/심리적 학대인거 같군요. 이런 보이지 않는 학대가 성적/신체적 학대보다도 더 나쁘다고 하죠...
    가슴이 아픕니다. 부디 좋은 도움을 받으시고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나시길...
  • 2012/10/22 14:09 #

    어린이, 청소년의 인권이 사회적으로 자각되기 시작한 건 근세기의 일입니다. 아이들도 독립된 인격체이며 어른들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아직도 잘 알지 못하지요. 학대나 폭력이라기보다는... 무지에서 일어난 비극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밤비뫄뫄 2012/10/22 15:03 #

    제가 심리학 전공이었는데요, Emotional Abuse 라는게 엄연히 아동학대 중에 한 카테고리로 존재합니다.
    남들에겐 눈으로 보이지 않아서 더 발견이 힘들고요, 어떤면에서 아주 심오한 영향을 미치는 종류입니다.
    실제로 감정적 학대를 당한 사람들은 정신적, 신체적 독립이 아주 힘들어서 몸이 성인이 되어도 학대에서 벗어나기가 더 힘든거구요.
    상담신청 하신 분이 제발 적절한 도움을 받아 건강해 지시면 좋겠습니다. 경제적 신체적 독립이 일단 중요하니까요.
  • 2012/10/22 16:1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0/22 16:5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0/22 17: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0/23 16: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푸른미르 2012/10/22 12:31 #

    그래서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정말 축복받은 아이들이지요^^
  • 2012/10/22 14:09 #

    제 주변에는 멋진 어른들 잘 없는데. 푸른미르님 주변에는 좋은 부모의 롤모델이 있나요? ^ㅅ^
  • 푸른미르 2012/10/22 14:30 #

    저도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는 현명하다고 할 수 없는 분이죠. 다만 아들들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나에게 좋은 부모가 없다면 당대에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뿐이죠.
    좋은 사람이 좋은 부모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 2012/10/22 16:05 #

    명답이십니다. ^ㅅ^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상담 상태

상담상태클릭


처방전 검색기

Loading

노란리본

2013 대표이글루

위즈덤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