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4th prescription_가해자를 찾아갔지만 그는 사건을 회피하기만 했고, 저는 출구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L님 : 

회사 연수에서 못 마시는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동료 한 명이 들어오더니 저의 몸을 만지면서 좋아한다고 했어요. 저는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정신이 없는 상태여서 반항하지 못했는데, 나중에서야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시간이 흐른 뒤, 저는 용기를 내서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기억을 못하는 척 하며 긍정도 부정도 사과도 인정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회피했습니다. 전 너무나 화가 났지만 그 사람도 죄책감으로 힘들어서 저러는 거려니 싶어서 그냥 참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몇달이 흘러도 마음의 상처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렵게 얘기를 꺼내 친구들에게 상담했는데,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냐고 오히려 저를 다그쳤고요. 한번이라도 그 사람이 그 때 있었던 일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준다면 좋겠는데, 다시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L님, 엘입니다.

피해가해 상황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가장 먼저 겪어야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이 상황을 초래했다는 느낌, 내가 반항하지 않아서 일이 커졌다는 생각, 상대를 미워하고 단죄하지 못하는 나약한 마음에 대한 자괴감, 즉시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마땅히 고통받는다는 체념 같은 것들이죠. 내 안으로 날카롭고 깊게 파고드는 자책감이 나를 더욱 힘들고 아프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내가 나쁘거나 잘못했기 때문에 마땅히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성폭력을 경험한 모든 피해자들이 차례차례 겪게 되는 마음의 변화랍니다. 성폭력은 다른 폭력과 똑같은 폭력인데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심적 고통은 사뭇 다른 양상이죠. 가해자는 이미 도망친 뒤인데도, 피해자는 마음 속에서 수백번이고 똑같은 장면을 리플레이하며 자신이 겪은 일을 고쳐보려고 헛된 노력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어떤 대처를 했어야 했나, 상대가 어떤 의미와 의도였나, 끝없는 질문 속에서 어떻게든 마음의 균형을 잡아보려 애쓰죠. 

어렵게 어렵게 감정과 생각의 평정을 찾아서 주변에 도움을 청할 때 역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건, 대부분 피해자를 향한 비난이죠.그 피해자가 겪은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교통사고 같은 사고라는 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마음을 털어놓은 상대는 언제나 내가 가장 믿는 사람,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이해할 줄 것 같은 가까운 사람이죠. 하지만, 나를 가장 먼저 안아주고 보듬어주어야 할 그 사람들은 보통 내가 했어야만 하는 행동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훈계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나의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선후배나 동료기도 하죠.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 가장 차가운 이야기들을 꺼내죠. 피해자들은 자신이 겪은 일을 입밖으로 내는 순간, 또다시 2차 가해를 겪습니다. 물론, 그들은 나를 해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폭력을 겪지 못한 사람들은, 아니 그들도 성폭력을 경험하여 보았으면서도, 막상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도무지 자신 앞의 피해자를 다독이는 방법을 알지 못하죠. 

그들이 피해자를 잘못 위로하는 방법은 대략 아래와 같죠. 

1. 왜 거기까지 갔어?
2. 왜 술을 마셨냐?
3. 왜 사람을 믿니?
4. 남자들은(여자들은) 원래 다 그래. 넌 그런 것도 몰랐어?
5. 왜 웃고 서 있었어? 왜 가만히 있었어?
6.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랬잖아.
7. 그런 데를 왜 가?
8. 그런 말에 속냐 보통? 너 바보냐?
9. 사람 많은 데는 가지마.
10. 원래 걔네들은 그래. 
11. 왜 반항 안했어? 왜 소리라도 안 쳤어? 왜 도망 안 쳤어? 왜 나한테라도 전화 안했어?
12. 왜 지금 얘기해? 이미 지난 일이잖아. 
13.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데?
14. 그 사람(가해자) 그럴 사람 아냐.
15. 니 착각이겠지. 
16. 니가 잘못 안 거야. 우연히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17. 니가 뭐 잘못한 거 아냐?
18. 니가 빌미를 제공했네. 
19. 왜 신고 안 했어?
20. 괜히 소문 만들지 말고 니가 참아.
21. 살다보면 그런 일 한두번 없는 사람 없어. 별 거 아냐. 
22. 내가 평소에 너 얌전한 옷 좀 입으라 그랬잖아. 
23. ........ (무반응)
24. 야 나도 그런 적 많아.
25. (못 들은 척) 아, 그래서, 밥 먹었어? 
26.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외에도 나를 상처주는 말에는 수없이 많은 배리에이션이 있겠죠. L님을 괴롭힌 말이 무엇이었든 간에, 사람들이 다시 나를 찌르는 이유는 그들은 제대로 위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하세요. 폭력이 무엇인지 폭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한번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하세요. 어린이집에서도 폭력의 피해가해를 모르면서도 흔하게 폭력을 주고 받아요.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어떻게 상대의 상처를 연민해야 하는지 어떻게 위로하고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죠. 어른이 되어서도 폭력의 의미, 폭력의 대처방법, 폭력의 피해가해를 이해하는 방법을 모르면, 누구나 쉽게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나요. 내가 폭력의 어떤 조건을 만들었기 때문에 폭력이 일어나는 게 아닌데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폭력의 이유를 내탓으로 만들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죠. 

폭력은 물론 성폭력은 정말로 흔하디 흔하게 널려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영혼과 정신을 담은 소중한 개체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 말, 행동은 모두 폭력입니다. 웹 상에 끝없이 부유하는 자극적이고 성적인 광고들, 인간의 몸을 그저 성적인 도구로만 보는 선정적인 게시글과 사진, 동영상들,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결코 웃으며 보지 않을 포르노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인파로 붐비는 거리에서, 직장에서, 연인 사이에서, 부부 사이에서, 그저 친구 사이에서, 학교에서, 권력차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모든 성적인 의도에서, 술집에서, 클럽에서, 우연히 옆 테이블에 앉은 가게 손님들 사이에서, 동호회에서, 소개팅이나 미팅에서, 흔하디 흔한 게시판에서, 블로그에서, 인터넷 댓글에서, 개그 프로그램에서,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에서, 각종 매체의 기사에서 우리는 폭력의 얼굴과 마주칩니다. 바야흐로 야만과 폭력의 시대죠. 존중과 예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건만, 우리는 폭력 속에서 자라고 폭력에 둔감해지고 폭력의 피해와 가해를 번갈아 경험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요. 우리는 몰라서 폭력을 휘두르고, 알면서 휘두르고, 아는데 다들 그렇기 때문에 눈을 감고, 피해 경험 때문에 가해자가 되기도 해요. 

언제라도 "이건 폭력입니다. 사과하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 "정말로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라고 즉시 무릎 꿇을 수 있는 세상. 제가 너무 대단한 걸 꿈꾸나요. 

타인을 나와 똑같은 생명과 존엄을 가진 존재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성폭력 가해자들이죠. 무엇이 가해이고 무엇이 폭력인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합니다.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죠. 시간이 지나서야, 그의 말과 행동이 성폭력이었구나 깨닫기도 합니다. 나를 존중하지 않고 나에게 예의를 갖추지 못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폭력입니다. 생각의 폭력이고 마음의 폭력이고 몸의 폭력이 되기도 하죠. 폭력을 휘두르지 않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닥터엘 역시 마찬가지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어린아이 역시 마찬가지죠. 연인 간에도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타인의 생명과 존엄이 다치지 않도록 언제나 조심하고 심사숙고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게 되지는 않을 지라도. 

L님. 가해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착한 마음은 일단 접어두도록 해요.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일을 머리속에서 리플레이하는 일도 멈추도록 합시다. 이미 수백번 그 일은 L님 안에서 반복되었잖아요. 그가 왜 그랬나, 어떤 생각으로 그랬나, 어떤 의미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나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 안에 내재된 폭력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거죠. 나에게 존중과 예의를 갖추지 못하는 사람의 어떤 말이나 행동도 폭력이죠. 그는 존중과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죠. 타인의 몸을 함부로 만지면 안된다는 것, 유치원만 나와도 알 수 있는 당연한 도덕율을 무시했죠. 그가 좋아한다고 말하며 나의 몸을 만진 것은, 그에게 이성관이란 인간관이란 섹스관이란 그 따위 레벨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성적 호감이나 성적 충동을 논하기 이전의 문제죠. 그에게는 제대로 된 인간관, 이성관이 없어요. 그래서, 그는 술김의 실수로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거죠. 그가 그 일을 겪고 나서라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폭력이었다는 걸 제대로 인지하고 반성할 수 있었을까요.  

그 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나, 그 때 내가 느낀 당혹감이나 호기심이나 호감의 마음이나 두근거림이나 원망과 두려움, 공포, 분노, 답답함은 모두 마땅하게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고 생각입니다. 내가 막상 쉽게 움직이지 못한 일이나 마음 속으로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라 애써 부정했던 일이나 모두 마땅히 그럴 수 있습니다. 누구나 원치 않는 스킨십 앞에서는 당황하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자책할 필요 없어요. 막상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인지 인지하는 데는 수 분에서 수 시간, 수 일, 몇 달이나 몇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해요. 저는 유아 시절에 당한 성폭력의 기억을 성인이 되어서야 이해하고 힘들어해야 했어요. 대학 신입생 시절에 있었던 사건이 몇 년 전에 느닷없이 떠올라 나를 괴롭히기도 하죠. 심지어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화를 낼 수 없었고 오히려 웃으면서 뒷걸음질 치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던 기억도 있죠. 그러니까, L님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제대로 재구성하고 시간이 지나 어렵게 그를 찾아가서 그 사건을 꺼낸 일은 정말로, 용기 내신 일이고 적절하신 일이고 잘 하신 일입니다.  

L님. 자신을 다독이는 일을 충분히 하셨다면, 그를 다시 한번 찾아가서 마주하는 것도 괜찮다 생각합니다. 그 사건에 대해서 사과해주세요, 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으면 합니다. 그동안의 고통이 너무나 커서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도저히 묻어둘 수 없었다 이야기하시고, 제대로 된 사과가 없다면 별도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도 전하세요. 그를 걱정하고 배려할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그는 그 일이 일어날 때, L님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켰나요? 아니잖아요. 

회사마다 사내 성폭력, 성희롱에 대처하는 룰과 분위기는 매우 달라요. 사내 상담실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일이 처리되는지도 확인해보시고요. 만약, 제대로 처리된 선례가 있다면, 정식으로 신고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회사에서는 피해-가해가 확인되는 순간, 오히려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굳이 투사가 되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폭력을 옹호하는 거대한 세력과 싸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차라리 내 안의 고통을 잘 돌보는 일에 몰두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저에게 찾아오신 일은 정말 잘하신 거지만, 저는 사법처리까지 진행할 수 있는 기관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 개인 상담사이기 때문에, 정식으로 처벌을 원하시면 성폭력이나 직장 내 성폭력을 다루는 전문 기관에 상담을 받으셔서 정식 기록으로 남기는 게 좋습니다. 물론, 이 일을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신다면, 피해자들끼리 마음을 나누는 작은 소모님들도 있어요.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마음의 짐으로부터 벗어나온 이야기들을 듣는 일도, 나를 구하는 활동 중 하나랍니다. 

L님. 지금까지 버텨오신 것도,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꾸려오신 것도, 그 사람과 마주한 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상의하여 본 일도, 정말로 너무나 잘 하셨어요. L님 안에는 분명히 내면의 힘이 충분히 있으십니다. 언젠가는 L님도 언니가 되어서, 같은 고민을 하는 동생들을 도울 수 있겠죠. 폭력의 고리를 끊는 일, L님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L님. 제 글이 조금의 위로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덧글

  • 2012/11/28 12:09 #

    내담자의 요청으로 덧글들은 삭제하였습니다. 덧글의 작성자 중 삭제된 내용을 원하시면 저에게 따로 문의 주세요.
  • 2013/05/12 22:1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5/12 22: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5/12 22:3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5/13 11:2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5/13 13:32 #

    나쁜 새끼. 나쁜 일이 아니야, 그게? 타인의 몸을 만지는 건데? 개념이 없네요. 응징하는 방법이 있다면 응징하고 싶네요. 학내에 이런 인간들 한 둘이라 생각합니까. 많아요 엄청 많아요. 저도 캠퍼스 시절 이런저런 술마시고 있었던 사건사고가 정말로 그들이 나빠서 그랬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세월 지나고 보니 그들은 그냥 술마신 여학우는 적당히 건드려도 되는 걸로 교육받고 자랐던 거였어요. 또래 문화가 그랬고 그들의 부모들이 그렇게 가르쳤고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서 공부하고 학점 안 받아보고 자란 남자라는 게 그런 겁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지 저도 참 막막합니다. 다음에라도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인상 쓰고 한마디 해요. 술취한 여자가 깨벗고 덤벼도, 술을 마셨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고 심신미약 상태이므로 절대로 만지지 말라고요.
  • 2013/05/13 23:4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5/15 12:11 #

    뇌를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왜곡된 성관념을 가진 가해자에게서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 것은 힘듭니다. 가해자는 끝까지 피해자가 원했다는 식으로 각색했네요. 개새끼. 지금은 학생이면서 개새끼죠, 나이들면 직장인이면서 개새끼 돼요. 또 안 그럴 것 같아요? 술마시면 또 그래요.

    가해자들의 변명은 어째 이리 한결 같나요. 어디서 가해자 필수교육이라도 받나. 그들의 변명은 이렇죠.

    1. 피해자가 인식 못하는 부분은 부인하거나 언급하지 않고, 언급된 부분에 대해서만(피해자가 정확히 기억하거나 증거가 있는 부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다.

    2.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식으로 지어낸다.

    3. 피해자가 무엇인가 미숙했고, 부족했고, 잘못했기 때문에 너를 혼내려고 했다는 식으로 변명한다.

    4. 피해자가 당황하거나 힘들어하면 오히려 당당하게 나서고, 사법처리를 하려고 하면 태도가 변해서 불쌍한 척 한다.

    똑같은 새끼들 왜케 많지. 진짜 메뉴얼 나눠주나. ㅋ

    순결이 훼손되었다는 감각은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 않으셔도 됩니다. 심신미약 상태일 때는 그런 일 당하고 나서 누구나 그런 느낌을 겪습니다. '첫' 이라는 접두어에 의미부여는 하지 마세요. 왜냐면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마음으로 내가 좋아서 하는 스킨십만이 진짜 '첫'스킨십 이니까요. 저도 첫키스, 첫섹스 제 의도로 못 했어요. 당했어요. 몰랐으니까요. 어떻게 거절해야 할 지 몰랐으니까요. 무서웠으니까요. 어른들은 다들 이렇게 하는 건지 애정의 표현인 건지 만약 그렇다면 내가 참아야 하는 줄로 알았으니까요.

    만약 그가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면 비공개님은 조금씩 괜찮아졌을 겁니다. 비참하다는 생각은 하지마세요. 저는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상담을 받습니다. 내 일이 아닌데도 여전히 화가 나고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고(그런 의미에서 저도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욕지기가 나옵니다. 강간 사건도 있지만 대부분이 준강간, 성추행, 성희롱 수준이죠. 처벌을 원하는 피해자도 있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고 싶은 피해자도 있어요. 선택은 피해자의 몫이지만, 여전히 경찰서를 통하면서도 재판까지 가면서도 2차 피해의 여지가 많아요. 미칠 지경이죠. 우리나라는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지 못해, 혹은 행실이 바르지 못하니 빌미를 제공했다는 식으로 몰지 못해 안달이 나 있으니까요. 사법처리가 끝나고도 피해자는 여전히 자신을 재단하는 시선들 때문에 힘들죠.

    하지만, 주위에서 나를 어떻게 보든. 내 앞에서 돌 던지는 미친 놈들은 없으니까. 던지면 그 놈도 쓰레기. 내가 당당하면 됩니다. 그 일만 생각하면 안되어요. 즐겁고 행복한 일들도 적극적으로 도모하시고요. 계속 생각나면 다시 만나서 화가 나고 비참하고 뛰어내리고 싶다고, 내 몸이 더러워진 것 같다고 말하고 재차 사과 요구하세요. 넌 잘못을 모르는 것 같고, 그 일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데 과거의 얘기를 꺼내고, 치졸하다고 비겁하다고 논점을 벗어난다고 해요. 나를 판단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라고요. 사과가 내 성에 안 차면 신고하고 사법처리 하겠다 하세요.

    그리고, 전투력 충전되면 정말로 경찰서 가요. 옆에 같이 화내어줄 친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 2013/05/15 19:1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5/18 20:30 #

    ㅠㅅㅠ 앞으로 더 괜찮아질 거예요. 더 좋아질 거예요. 빠샤빠샤!
  • 비나비 2013/05/17 00:18 #

    바람직한 위로방식엔 어떤게 있을까요?..
  • 2013/05/18 20:29 #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내가 느끼는 바를 예의 갖추어서 전달하면 됩니다. 사람마다 바라는 위로의 말은 다릅니다. 이것이 베스트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혹은 말보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고. 혹은 옆에 있지 말고 멀리 떨어져 있어주길 바랄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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