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9th prescription_이별을 되돌린다면 저는 정말로 착한 여자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A님 : 

첫연애였고 첫이별이었습니다. 그는 착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좋은 사람인데 제가 못해서 헤어진 것 같아요. 전 철없이 가방 사달라고 조른 적도 있고, 연락도 먼저 안 했고, 항상 그가 우리 집 근처로 오도록 했습니다. 스킨십도 거부한 적 많았고, 섹스도 첫경험이라 너무 힘들고 무서워서 항상 도망갔습니다. 좋아한단 표현도 거의 못했는데, 그가 집까지 데려다주는 걸 당연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결혼하게 되면 남자가 집을 준비하고 여자는 혼수를 준비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그가 형편이 어려워서 당장 결혼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저는 같이 준비하자 말도 못했죠. 그가 정말로 저를 사랑한다면, 계획보다는 조금 일찍 결혼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먼저 헤어지자 말 꺼내고 그가 떠나가자,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지만 그는 대답이 없습니다. 주변에서는 여자가 먼저 매달리면 안된다고 해서 이제는 연락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습니다. 전 이제 정말로 다정하고 헌신하는 착한 여자친구가 될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곧 서른이기 때문에 그를 놓치면 다시는 이렇게 좋은 사람 못 만날 것 같아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A님, 엘입니다. 


연애 또한 인간관계의 하나죠. 연애니까 특별하고 알수없다, 라고 생각하면 어려운 일 투성이입니다. 보수적인 문화권일수록 여자 나이 서른만 넘어도 큰일나는 것처럼 주변에서 난리들이 나죠. 하지만, 여자는 서른도 되고 마흔도 되고 쉰도 예순도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늙어갈수록 인간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프레임을 받아들이면 당신은 갈수록 비참하게 살아야 합니다. 


인류는 진화합니다. 늙음을 욕하지 않는 성숙된 인간관이 보편화될 거예요. 그러니까, A님도 한시라도 빨리 결혼해야 한다고 조바심 내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으세요. 여자라고 해서 결혼에, 젊음에, 미모에, 여자다운 갖가지 덕목들에 발목이 잡혀서 바둥대야 하나요. 남자라고 해서 능력에, 힘에, 의무와 책임에, 온갖 남자다운 덕목들에 목이 졸려서 부대껴야 하나요. 인간은 누구라도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받고, 자신이 가진 가치관대로 살 권리가 있습니다. 연애니 결혼이니 고민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삶의 철학을 먼저 만드세요. 


이제 첫 연애잖아요. 다음 연애도 해야 합니다. 첨부터 모든 인간관계에서 유연한 사람 없어요.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서 충분히 시행착오해 보세요. 그래야 사람 보는 눈도 생기고 연애 맷집도 생기고 자기 기준도 생깁니다. 겁먹지 마세요. 연애에, 남자에, 결혼에 좌우되지 않는 인생을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고민해보세요. 


A님. 


이별 직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기 탓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상대 탓을 하거나 상황이나 타이밍이 안 좋았다, 하고 수긍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이별의 모든 원흉일까요? 서로가 서툴렀고 안 맞았던 건 아닐까요? A님은 연애에 대한 판타지가 컸고, 그래서 남친에게 솔직하지 못했죠. 연애하며 서로 나누고 즐겨야 하는데, 둘 다 그 부분은 서툴렀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감정노동, 연애노동을 해야 하는 처지였죠. 자신의 넉넉하지 못한 경제사정을 걱정해야 했고, 여친을 데리고 오고 데리고 가는 성실함을 유지해야 했고, 스킨십도 항상 먼저 시도해야 했고, 빨리 결혼해야 한다는 재촉에 마음이 불편했죠. 그에게 연애는 부담, 책임, 피로감이었습니다. 연애가 노동이 되면 어떻게 이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나요. 


만약 A님이 그를 '날 사랑하면 뭐든지 해줄 사람'이라고 보지 않고, '연애라는 관계에 1/2의 지분을 가진 나와 똑같은 인격체'로 보았다면, 그가 나를 위해서 이런저런 혜택과 봉사와 희생을 할 때, 그 짐을 나눠지기 위해 노력하거나 감사와 사랑을 표할 줄 알았겠죠. 


A님의 남친 또한 연애를 '사랑하는 사람과 누리기 위해 유지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었다면, 본인이 힘들거나 부대끼거나 불편할 때 '이러해서 그러하다' 제대로 표현했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남자들은 원래 이렇고, 여자들은 원래 이렇고, 그런 낡은 연애 프레임에 갖혀서 고생만 하다가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애초에 두 사람은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으로 소통할 수도 없었던 셈입니다. 


이별은 이미 다가왔습니다. 이별한 후에라도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열고 솔직할 수 있다면, 인간적인 신뢰는 계속 가져갈 수 있겠죠. 그런데, A님은 헤어지는 마당에도 짐작과 추리로 밤을 새죠. 미련이 남는다면, "나랑 정말로 헤어지고 싶어?"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야 합니다. 


이것은 내 연애죠. 여자가 어떻고 남자가 어떻고 주변 사람들과 내 연애를 공유하는 습관은 하루빨리 버립시다. 남들의 조언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죠. 남들의 어떤 충고도, 심지어 닥터엘의 충고도 당신의 연애를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A님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수동적인 여자가 되는 걸 멈추세요. 만약 그 사람에게 다시 우리가 되는 기회를 제안하고 싶다면 "내가 잘 할 테니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제부터는 서로 힘들지 않게 연애하자. 서로 행복한 일만 하자. 내 몫은 내가 책임질게." 정도의 프레임은 만드셔야 합니다. 


다시 시작하는 연애가 또 픽업과 귀가 서비스, 명품 가방에 고민하고, 스킨십이 언제 가능한지 망설여야 한다면, 재고의 여지가 없겠죠. 


이별을 미치도록 되돌리고 싶은 마음은, 애착관계를 잃은 누구라도 그렇게 느낀답니다. 이별 후의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과제는 되도록 빨리 현실감각을 찾는 것뿐. 서로의 연애 스타일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헤어졌다 생각해보세요. 표현의 문제도 스킨십의 문제도 서로 기준도 없었고 서툴렀고 통하는 방법을 몰랐죠. 삽입 섹스가 힘들고 어렵다면 그걸 상대와 나누어야 하죠. 그만큼 두 사람은 친하지도 않았고 마음이 통하지도 않았어요. 말도 못하는 사이인데 섹스가 될까요?


삽입 섹스가 단번에 쉽게 되는 사람 거의 없어요. 충분히 친밀해지고 익숙해지고 성적인 수치심이나 거부감이 완전히 다 해제된 다음에야 진짜 섹스가 가능해지죠. 성에 대해서 모르면 지금부터라도 공부해야죠. 상대에게만 나의 성을 맡겨두면, 결혼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A님의 섹스는 직접 결정하고 선택하고 책임져야 해요. 모른다고 모르는 채로 두면 그걸 누가 대신 해결해주지 않아요. 


A님. 


그렇다고 반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연애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정답입니다. 갑자기 인격이 바뀔 순 없고, 라이프 스타일도 그래요. 


하지만, 존중과 예의만 있다면, 연애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는 그 관계를 유지할 만한 이유 한 가지만 있으면 괜찮아요. 연애의 이유에 사랑만 있나요. 동지애, 파트너십, 성적 호기심, 외로움, 심심해서, 그냥 이성이 좋아서, 그냥 데이트가 좋아서, 섹스 파트너가 필요해서, 인생의 동반자를 찾기 위해서도 연애합니다. 서로의 목적만 맞으면 아무 문제 없어요. 다음 연애는 상대와 연애의 목적과 의미를 합의보세요. 그러면 헤맬 이유도 없지요.


그리고, 당분간은 연애관, 결혼관, 인생관을 비롯한 삶의 철학을 다듬으면서 연애를 잠시 쉬어보세요.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세요. 남자없이도 잘 살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좋다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요. 


조건 좋은 결혼이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선 시장에 뛰어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해보셔야 합니다. 결혼이 급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이 있는지 알고 싶다면, 계속 연애 시장에 머물러도 괜찮습니다. 연애와 결혼을 같은 사람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확률은 높지 않죠. 안타까워도 현실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생각해보고, 지금의 감정과잉이 지나가길 기다리세요. 그리고, 현명하게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가 A님의 진짜 연애 라이프의 시작이니, 행운을 빌겠습니다. 










(2014년 10월 18일 리라이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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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지크 2012/12/11 22:33 #

    답변 너무 멋지십니다 *_*)b
  • 2012/12/11 23:31 #

    귀여운 이모티콘 갖춘 당신의 덧글도 멋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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