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4th prescription_세상은 어렵고 힘들고 두렵기만 합니다.

T님 : 

저는 집안이 가난한데다 스펙도 낮고, 외모 자신감도 없는 남자사람입니다. 우울증과 강박증도 있어요. 어린 시절 왕따 당한 경험 때문에 아직도 사람이 어려워서 대학에 와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웠답니다. 그런 저에게도 첫사랑이 다가왔는데 고백했다 차이고는 자살 소동을 벌인 적도 있죠. 

저는 사람이 참 어렵습니다. 저는 금방 논쟁을 만들고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는 방법도 모르겠습니다. 재밌게 말하려다 오히려 상처주기도 하고요, 돈이 없어서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들고요. 알바도 도전해봤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잔뜩 혼난 경험이 있어서 그 뒤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어요. 여자라는 자체가 낯설고 어렵고,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입니다. 어떤 것도 되지 않으니, 자살충동도 심합니다.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T님, 엘입니다. 

일단 세상은 겪어봐야 아는 거니까. 자신에게만 집중합시다. 이제부터 T님은 자신과 친해지기 프로젝트부터 시작합시다. 모든 문제를 모두 섞어놓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발 동동 구르면, 시간만 슝슝 갑니다. 다 뭉쳐놓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갈라내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어쩔 수 없는 건 아예 생각도 말고, 할 수 있는 것만 합시다.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시간 모자라니까요.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T님의 삶은 금방 변하거든요. 

먼저, T님의 고민 리스트. 

1. 집안이 가난. 
2. 스펙이 낮다. 
3. 외모 자신없다. 
4. 우울증과 강박증. 
5. 왕따 당한 경험. 
6. 인간관계의 경험이 적고, 사람이 어렵다. 
7. 재밌게 말하는 걸 모르겠다. 
8. 알바도 하고 싶지만 또 실패할까 두렵다. 
9. 여자는 낯설고 어렵다. 내가 연애할 수 있을까. 
10. 자살충동. 

여기서 포기할 부분을 골라냅시다. 

1. 집안이 가난 : 내 부모의 사정은 알 바 아니죠. 지금 당장 내가 굶지 않고 있고 잠 잘 곳이 있다면, (당연히 옷은 입고 있을 테고.) 생존에 필요한 것은 갖춰진 셈. 부모 덕분에 내가 조금이라도 혜택보는 게 있다면 감사하면 됩니다. 우선 내 가난만 신경씁시다. 

2. 스펙이 낮다 : 지나간 시간은 후회하지 맙시다. 앞으로 목표로 하는 스펙이 있습니까. 많이 말고 한 개만 정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획득할 것인지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검색해보고, 도서관 뒤져보고, 선배나 교수님이나 학교 울타리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하세요. 등록금 아깝잖아요. 

5. 왕따 당한 경험 : 남들은 내 과거 따위 관심도 없고 몰라요. 어제까지 왕따였다고 오늘 내가 왕따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면 됩니다. 아니면 가능한 범위까지 도망치면 됩니다. 아니면 조력자를 찾습니다.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신이 믿기만 한다면. 내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이 녀석도 어릴 때는 왕따에 오줌싸개에 코찔찔이였을 겁니다. 알게 뭐야. 

지나간 일과 환경적인 문제는 내가 당장 바꿀 수 없으니 얼른 포기합시다. 아셨죠? 

그리고,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추려봅시다. 

3. 외모 자신없다. : 저도 외모 자신없어요. 그런데, 이 외모가 나야. 이걸 버릴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고. 그렇다면, 바꿉시다. 가능한 변화의 지점을 정합시다. 정보 모아야 합니다. 매력적인 사람들을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타인이 어렵다 그저 막막해하지 말고, 두 눈 멀쩡하니 뚫어져라 관찰하세요. 모르면 물어보세요. 여자들은 그렇게 합니다. ""어머, 이 니트 어디서 샀어?" "머리 어디서 한 거야? 얼마야?" "스키니진은 어디서 사야 돼? 피 안 통하면 어떻게 해?" "염색하면 머리 상하는데 어떻게 하면 돼? 얼마 들어?" "(길가는 사람 붙잡고) 죄송한데, 이 구두 어디 건가요?" 원빈 헤어스타일 사진 갖고 미장원 가면 그대로 안해줄 것 같아요? 돈 주면 다 해줍니다. 얼굴이 원빈이 아닐 뿐이지. 예쁜 피부, 그냥 만들어지나요? 타고난 애들 말고는, 여자들도 여드름흉터와 아토피와 개기름과 싸우며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의 예쁜 (듯한) 피부 만듭니다. 몸매요? 비율은 타고난 거니 포기. 내 스타일을 찾아야죠. 공부하고 시행착오하고 비용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는 변화가 있다면 시도해 봐야 합니다. 외모는 신경쓸수록 바뀝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얼마든지 바뀐다니까요.  

4. 우울증과 강박증 : 집안환경이 안녕하지 못하면 우울증, 강박증 생길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 가듯, 마음이 아파도 병원 가면 됩니다. 그래야 저 같은 상담사들도 먹고 살죠. 다행히, 마음의 병은 혼자서 자연치유를 도모하는 방법도 많습니다. 우울증에 지지 마세요. 강박증에 지지 마세요. 우리 학교 도서관은 공짜.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책이 있는지 아십니까. 서점에서 바닥에 철푸덕 앉아서 책 읽는 것도 공짜. 모든 신상(책)이 당신 것. 그저 조금만 부지런하면 됩니다. 할 일이 아주 많아요.    

10. 자살 충동 : 4. 우울증과 강박증 문제와 묶읍시다. 내 마음의 평화와 안녕을 도와줄 전문가를 찾읍시다. 비용이 드나요. 지역 건강가정지원센터 방문하세요. 인터넷 무료 상담소, 상담 까페 찾으세요. 학교 상담소 이용하세요. 나보다 나이 많고 돈도 많이 벌고 있는 교수님 찾으세요. 엄청 훌륭해보이는 나이 많은 선배 찾으세요. 도와달라, 솔직하세 말하세요. 자신이 못 도와주면 다른 사람이나 기관을 연결시켜 줄 때까지 민폐 끼치세요. 원래, 세상은 서로서로 민폐 끼치며 사는 거니까요. 

6. 인간관계의 경험이 적고, 사람이 어렵다. : 모르는 사람은 원래 어렵습니다. 그 사람도 T님 모릅니다. 나도 T님 모릅니다. T님도 나 모릅니다. 인간관계의 경험은 몰라몰라 우주에서 다이빙하는 기분으로 하세요. 어제까지 몰랐지만, 오늘 한 시간 유영하다보면 XP 1 올라가는 겁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싫어도 100살까지 살아야 해요. 겨우 20년 남짓 살았다고 몰라, 하고 손놓으면 나머지 80년이 아깝잖아요. 친구 많고 사람 익숙한 사람 부럽습니까. 감당할 수 있는 몫만 사람 만나면 됩니다. 친구 한 명이어도, 심지어 한 명도 없어도, 현실친구 제로에 인터넷 친구 세 명만 있어도, 내가 누리고 행복하면 그게 정답입니다. 

절대 헤어질 수 없는 T님의 절대적인 친구는 T님 자신이죠. 혼자 노는 것이 우울하면, 혼자 노는 능력이 아직은 미약한 겁니다. 내가 혼자서도 즐거운 것이 백 가지 있으면, 그것이 바로 T님의 자산입니다. T님이 혼자 놀기 자산이 풍요로워지면, 혼자 놀아도 즐거운 일에 친구를 초대할 수 있습니다. T님이 좋아하는 건 무엇입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걸 소중히 하세요. 그리고, 나와 같은 걸 좋아하는 친구를 찾으면 됩니다. 누가 나와 같은지 모른다고요? 당연히 알 수 없죠, 물어보기 전에는요. 

7. 재밌게 말하는 걸 모르겠다. : T님에게 부족한 건 타인을 관찰하는 인내심입니다. 사람들이 대화하는 걸 유심히 보세요. 드라마, 영화에서 발화와 침묵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보세요. 그리고, 관찰한 내용을 따라하세요. 흉내내세요.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반응하더라, 이 연결고리를 많이 발견하고 연습해서 체득하면서 말하는 게 쉬워집니다. 관찰하고 흉내내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지 않으면 누구도 말하는 게 편하지 않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듯이 처음부터 시작하세요. 틀려도 어색해도 용기가 없어도, 연습하지 않고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저도 여자들끼리의 수다를 처음 배울 때 완전 멘붕이었습니다. 왜 예쁘지도 않은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서로를 칭찬하는지, 왜 밥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그렇게나 물어보는지, 안 그래도 잘 가고 잘 오는데, 오느라 고생했다 조심해서 가라 불필요한 인삿말 종류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어제 보고 오늘 보는데 다 아는 얘기를 왜 시시콜콜 되풀이하고 또 물어보고 확인하는지, 말해봤자 해결도 안나는 일을 왜 끝없이 미주알 고주알 털어놓는 건지. 참 미칠 것 같더라고요. 사실 요즘도 가끔은 내 취향 아닌 대화의 스타일에 미칠 지경이 되지만, 이제는 수다의 의미를 아니까 잘 참습니다. 가끔은 나도 똑같이 즐기기도 하고요. T님은 얼마만에 사교를 위한 언어를 익히게 될까요. 한번 실험해보세요.

8. 알바도 하고 싶지만 또 실패할까 두렵다. : 또 잘 안 될까 걱정되면, 비교적 친절한 교내 알바 알아보세요. 그리고, 알바 구하는 사이트에서 사람 덜 대면해도 되는 알바 찾아보세요. 돈 없으면 알바 해야죠. 도리 있습니까. 틀리면, 죄송합니다. 야단 맞으면, 다음에는 잘 할게요. 뭐라고 하면, 이렇게 배우는 거죠. 아직 학생이잖아요. 처음인데 어떻게 완벽할 수 있나요. 당연히 틀리고, 허둥대고, 서툴고, 배울 것 투성이. 다음부터는 잘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세요. 작은 성공에도 자신에게 큰 칭찬 주세요. 세상이 몰라도 T님은 자신이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언제나 믿고 격려해주어야 해요. 

9. 여자는 낯설고 어렵다. 내가 연애할 수 있을까. : 여자도 사람입니다. 그녀들에게 선택당하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마세요. 내 기준에서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여자 사람부터 발견하세요. 뭘 해주고 증명하고 받아달라 매달리지 마세요. 차라리 이것저것 도와달라 하세요. 친절하고 착한 사람에게 딱 그만큼만 친절하고 착한 사람일 수 있도록 하세요. 같이 놀자, 라고 편하게 다가가세요. 싫으면 말고, 라고 생각하세요. 이 사람이 아니면 저 사람에게 방긋 웃어보세요. 여자 사람이 편해질 때까지 대면하는 기회를 차근차근 늘려가세요. 그녀들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면, 언젠가는 연애도 해요. 연애는 내가 타인에게 매력적이라고 평가받아서 선택 당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인간관계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을 선택하려면 자기 기준이 있어야죠? 사람 보는 눈 생길 때까지는 연애부터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사람을 겪어나가기 바래요. 

T님. 복잡한 것들 조금은 정리되셨을까요. 

노트 하나 꺼내서 매일매일 하루를 정리하세요. 마음을 기록하세요. 계획을 세우고,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세요. 처음부터 척척 되지 않는다 좌절 마세요. 남들 저절로 잘 하는 것 같아도, 그런 사람 절대 없어요. 나보다 잘난 사람 때문에 열패감 느낀다면, 그런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공부하세요. 내가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많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을 포기하면 안되잖아요. 꼭 1등 해야 의미 있나요. 꼭 얼굴이 조인성이어야 연애합니까. 내가 공부가 꼴찌면, 내가 부모님이 가난하면,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한 개도 없겠나요. 누구나 한 개는 있어요. 아니, 한 개 이상 있어요. T님이 정하기에 따라서 T님의 우주는 내 단칸방만큼 작아지기도 하고,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지기도 합니다. 

조바심이 가장 나빠요. 마음을 다스리며 오늘도 무사히 넘겨보시기 바랍니다. 









덧글

  • ranigud 2013/03/15 15:47 #

    누구는 태어날때부터 잘하나요. 저도 예전에 급작스럽게 집안이 망해서 생판 안 해본 편의점 알바 하기 시작했는데 사기맞고 6만원 날아가고 몇천원 펑크내는 일은 다반사였죠.
    지금 일하는 곳에서도 실수는 많아요. 어제도 10분동안 같은 서류 수정해서 뽑아가지고 세번이나 boss한테 들락거린...
  • 2013/03/16 11:43 #

    저도 실수의 역사를 따지자면 하루종일도 읊을 수 있습니다. 흑역사는 내 맘속에만 간직해야지. 우흐흐흐
  • 체달 2013/03/15 18:10 #

    인간관계의 경험은 몰라몰라 우주에서 다이빙하는 기분으로 하세요
    및줄 쫙! 잘읽고 위안받고 용기얻고 갑니다!
  • 2013/03/16 11:43 #

    체달님. 및줄 아니고 밑줄. ^ㅅ^ 위안도 용기도 공짜~ ^ㅁ^/////
  • 零丁洋 2013/03/15 22:22 #

    T님은 인생의 패를 이미 다 보았군요. 어쩌면 희망을 말할 수록 점점 절망이 더 커질지도 모릅니다. 혹시 완전한 절망이 유일한 답이 아닐까요?
  • 2013/03/16 11:46 #

    기대도 희망도 적당해야 하는 것 같아요. 지나친 긍정은 항상 배신하더라고요. 잘 되면 좋고, 안 되어도 그럭저럭 살아지고. 그렇게 생각하면 속 편해요. 내가 스트레스 덜 받는 게 포인트. 어차피 변화는 천천히 오니까. ^ㅅ^//////
  • 목짧은기린 2013/03/16 20:00 #

    많다 많아.. @.@.. 에휴
  • 2013/03/16 21:04 #

    사실 고민 리스트를 만들자면야. 더 끝도 없이 만들수도 있죠. ^ㅅ^ 고민 리스트는 구체적일수록 좋은 것 같아요.
  • 목짧은기린 2013/03/17 07:35 #

    ㅠㅠ해야할일이너무많아요... 차근차근하나씩...이런기분이면좋겠는데 그냥압도돼버릴때가더많아요.. 나약하다!!!
  • 2013/03/17 13:29 #

    저도 그래요. 전 그럴 때 우선순위 10개만 적어놓고, 1번부터 해보려고 해봅니다. 10개 중에 한개만 해도 10% 달성이에요. 전 그 중에 이 닦기, 세수하기, 10시 전에 자기, 이런 것도 써놓아요. 이런 기초적인 것도 안 써놓으면 안 지킨다니까염. ㅠㅠ 게을러 게을러 ㅠㅠ
  • dada 2013/03/17 13:10 #

    저의 이야기는 아니였지만 글 읽으니 여러가지 힘을 얻고 갑니다. 모두모두 화이팅!
  • 2013/03/17 13:29 #

    우리 존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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