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7th prescription_저도 모르게 바람을 피웠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U님 : 

전 우유부단한 성격입니다. 그래서 이전 연애를 정리하지 못하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거나 바람끼 있는 회사 동료랑 어울리다가 사고도 여러번 쳤고요. 결국 들켰죠. 

상담센터에서는 저에게 착한아이증후군과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렸어요. 남친은 미리 이 일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을, 저 역시 미리 멈추지 못했다는 자책에 고통받고 있어요. 특히, 남친은 악몽에 시달리고 분노가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헤어지지도 못하고 마음이 편하지도 못하죠. 정말로 너무나 힘듭니다.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U님, 엘입니다. 

진단명 같은 건 잊어버려요. 지난 일을 후회하는 일도 멈춰요. 자신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욕심내는 일도 멈추어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건 내가 붙이기 나름입니다. 세상은, 신은 어떤 의도도 의미도 정해놓은 적 없어요. 내가 창조하는 대로, 선택하는 대로, 의미부여하는 대로 나의 우주가 반짝이기 시작하죠. U님이 암흑을 선택하면 그대로 영영 빛이 드는 일 없을 테고, 오늘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면 그대로 화창한 하루가 시작됩니다. 

U님. 당신은 우유부단한 사람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NO라고 말하는 것이 힘든 사람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자면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 싫은 사람이에요. 좀더 밑바닥까지 들어가자면 내가 나답게 사는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삶의 기준이 없죠. 사람을 사귀는 일에도, 거절하는 일에도, 바람을 피는 일에도, 내 남자를 사랑하는 일에도, 결혼하는 일에도, 거짓말을 하는 일에도 기준이 없어요. 기준이 없기 때문에 선택하기가 힘들고, 책임지는 것이 싫기 때문에 NO라는 선택을 하기 싫고, 타인에게 내 삶을 맡기기 때문에 항상 우유부단해지고, 결과가 나오면 속절없이 고통스러워져요. 

소극적인 선택도 당신의 선택입니다. 단지 거절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이 당신 삶의 선택을 피한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왕이면 내가 좋아서 하는 선택을 해서, 나다워질 수 있도록 해보자고요. 어제까지 우유부단했다고 오늘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U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요. 오늘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도, 계속 노력하다보면 오늘 나의 선택이 무엇이 될 지 자연스레 알 수 있는 날도 옵니다. 첨엔 어색하고 이상하고 낯설겠죠. 내 안에도 목소리가 있었나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자신을 피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론, 평생 자신을 책임지는 일에서 도망치며 사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봤자, 결국 죽기 전에는 펑 하고 터지고 말겠지만. 그런데, U님은 아직 어리잖아요. 지금 시작하면 조금도 늦지 않아요. 오늘부터 나답게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보자고요. 현실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해보자고요. 

그리고, 몇가지 알아두도록 하죠. 내가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였을까 자책이 심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많은 인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여자답게', '남자답게' 자라도록 강요받아요. 여자는 수용적으로, 착하게, 순종적으로, 예쁘게, 수동적으로 자라면 여성스럽다는 평가를 받죠. 남자는 이와는 반대로 행동하면 남자답다는 평가를 받죠. 

U님의 인격은 많은 부분 학습을 통해 완성되었죠. 어릴 때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삶을 선택할 지 선택하는 일에 수동적일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U님은 이제 어른이죠. 남자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나를 사냥하기 위해, 나를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내 몸을 이용하기 위해 다가온다면 NO 라고 말할 수 있어요. 상대가 의도를 감추면, 사냥하는 남자들을 모르면, 세상의 여자들을 섹스할 수 있는 여자와 섹스할 수 없는 여자로 양분하는 인간관을 가진 부류들을 모른다면, 아차 하는 사이에 자신이 장난감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우지 못했다면, U님과 같은 오류에 빠질 수 있어요. 아닌 걸 알면서도 NO라고 말하는 방법을 모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 걸어들어가죠. 한번, 두번, 세번 매번 같은 오류에 빠지고서도, 왜 그곳에 자신이 있는지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 모르죠. 어디서 어떻게 멈추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면, NO라고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사소한 이유 하나로 U님은 결국 울어야 해요. 

U님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여자가 아닙니다. U님은 장난감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사람 같은 남자들은 웃으면서 U님을 그런 여자로 대하죠.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치나 고민하지 말아요. 이런 남자들은 너무나 많아요. 저 역시 어린 시절, 저를 함부로 대하는 남자들을 만나고 내가 잘못되었었나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여자가 길거리에서 술에 만취해 깨벗고 돌아다닌다 해도, 그녀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욕해서도 안됩니다. 누구에게도 타인을 함부로 대할 권리가 없어요. 설사 부모가 버린 아이라 해도, 그 사람은 소중한 생명이고 귀한 존재입니다. 길바닥을 뒹구는 사람도, 어떤 사람에게는 감사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일 수 있어요. 스스로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것을 이용해선 안 되잖아요.  

하지만, U님은 결국 그곳을 빠져나왔어요. 제 힘이 아니라 할 지라도, 어쨌거나 지금은 혼자 서 있죠. 그리고, 큰 교훈을 얻었죠. 내가 정말로 선택해야 하는 것들. 외면할 수 없는 나의 현실. 내 삶. 나 자신. 나의 연애. 나의 미래. 내 감정. 내 행복과 불행까지도. 지금 U님이 감당하고 있는 것들이 U님을 망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단지, 누구라도 언제라도 겪을 수 있는 사건사고를 어떻게 대처하고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 U님도 U님의 남친도 받아들이셔야 해요. 

바람을 피웠다 어쨌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용서와 회복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에요. 내 삶에 적응하는 일이 시급하단 얘기죠.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입니다. 내 기준을 만드세요. 내 삶에서 도망가지 마세요. NO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세요. NO라고 말하는 기준을 만드세요. 내 삶의 주체가 되세요.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을 연습하세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질문하세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정하세요. 정말로 좋아해보고, 싫어해보세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내 삶을 채우도록 하세요. 

지나간 일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후회하는 일은 멈추도록 해요. 지금을 살도록 노력해요. 마음이 아프고 혼란스러운 일, 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둘이서 함께 노력할 일들 차근차근 해나가면 됩니다. 마음은 오늘 다르고 내일 달라요. 상처 또한 그렇죠. 지금은 막막해도 분명히 길을 찾을 겁니다.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내 관계도 괜찮아져요. 죄책감은 버려요. 내가 준 상처에 대한 생각도 버려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U님이 아니라 그 사람입니다. 상담이 필요하면 상담도 받고, 시간이 필요하면 시간을 보내야 해요. 그러니까, 손을 잡고 기다려보세요. 

U님. 

당신은 막다른 골목에 있는 것도 아니고, 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감당할 수 없는 오늘의 무게는, 정신차려보면 항상 내 어깨 위에 무겁게 올라와있죠. 내일은 또 내일의 몫이 있을테고.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결국에는 적응할 수 밖에 없고, 결국에는 괜찮아진다고 믿으세요. 그렇게 한걸음씩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덧글

  • 미자씨 2013/06/24 22:25 #

    바람이 문제도 아니고 그남자들이 님을 어떻게 대했느냐도 사실 문제가 아니에요. 착한아이 컴플렉스도 문제 아니구요.
    잘난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런것들은 아무 문제가 아니에요.
    문제는 바쁘게사는가 이거하나더라고요.
  • 2013/06/25 10:49 #

    오옷. 명답이십니다! 유효한 해결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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