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3th prescription_과거의 상처도 현재의 무게도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V님 : 

연애를 하게 되면 며칠 만에 헤어진 적도 있고요, 대부분 한달도 채 못 넘겨요. 사람을 잘 알아보고 사귀어야 하는데, 전 그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들 저의 외모를 칭찬하며 다가오고 선을 긋지 않으니 이성이 꼬입니다. 친구들은 취준생인 제가 저보다 못한 남자들을 만난다고 말립니다. 

그러다, 어릴 때 잠깐 사귀었던 구남친을 만났고 저에게 호의적이길래 사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겐 여친이 있었고, 하루만에 헤어졌다며 저와 사귀자고 했어요. 우리가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 그는 구여친이 걱정된다며 돌아갔죠. 전 너무 황당했고 절망했습니다. 저는 아쉬울 게 없어서 자살시도를 했고, 자살은 실패해서 입원 중입니다. 

저는 저를 있는 그대로 봐줄 사람을 기다립니다. 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자살하려고 했는지 왜 제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이 힘들다며, 이렇게 힘든 저를 떠나가는 사람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어린 시절 내내 겪었던 가정 폭력과 가난, 외로움이 절 괴롭힙니다. 이런 저를 계속 사랑해줄 사람은 없는 건가요. 제가 계속 밝은 가면만 쓰면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을까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V님, 엘입니다. 

이제 바깥의 이야기는 멈추고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해볼까요. 과거의 이야기보다 현재와 미래에 촛점을 맞추도록 해볼까요. 자신의 삶에서도 허덕이는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는 대신, 내가 나를 돌보는 일을 시작해볼까요. 연애나 사랑이 나를 구원하리라는 신념 대신 내가 나를 책임지는 현실의 삶을 받아들여볼까요. 어때요. 이 모든 제안들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V님. 

V님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가요. 자신 안의 욕구와 욕망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제대로 대접하겠다 각오하지 않으면 저절로 모든 게 좋아지진 않아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정하지 않고, 내가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만족스럽지 않다 탓할 수 없어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리플레이하고 탓하느라 현재의 시간을 써버리면, 그만큼 나는 삶을 누릴 수 없어요. 

자신 안의 가능성과 선택지를 무시하고,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겠다 멈추어서면 변화는 찾아오지 않아요.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 주인공들이 고통받는 현실에서 어떤 구원자를 만나 절망을 빠져나오는 서사만 학습하여 왔다면 어서 그걸 버리셔야 해요. 언제나 구원은 셀프에요.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내가 나를 존엄하게 여기지 않으면,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할 수 없어요. 환경이 나쁘면 내 발목을 잡는 인연들이 무수히 닥쳐오죠. 내가 있을 곳이 여기가 아니라면, 한걸음이라도 멀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요. 

요는. 움직이세요. 

목표를 정하고 움직이세요. 아주 작은 목표라도 좋아요.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탓하고 원망하고 해석하고, 이전부터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수천번 굴러떨어졌던 슬픔의 구렁텅이로부터 빠져나오세요. 당신 등 뒤의 날개를 무시하지 마세요. 날아올라요. 다른 길로 날아보세요. 다르게 생각하는 연습을 하세요. 혼자라도 괜찮다는 걸 확인하세요.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를 받아들이세요.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연인도 날 대신 책임질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들도 그들 삶을 책임지기에도 벅차거든요. 누구나 각자의 삶만큼만 감당할 수 있거든요. 

물론, V님이 현재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책임지기로 결심하는 순간에도, 과거의 상처와 불행이 자꾸만 신경이 쓰일 거예요. 하지만, 그것들에 의미부여하고 이유를 따지고 그들이 제대로 벌을 받는지 고통스러워하는지 나에게 미안해하고 나에게 사과할 것인지 내가 힘들었던 만큼 미래가 행복으로 보상받을 것이 예정되어 있는지 고민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V님은 이미 자신의 힘으로 그들로부터 도망쳤어요. 잘 빠져나왔어요. 그들은 단지 한 때의 동거인들일 뿐이었어요. 부모 랜덤을 잘 타는 사람도 있고 비교적 안정된 가정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어디에도 완벽한 가족은 없어요. 모든 가정은 어딘가 모순되고 뒤틀리기 마련이에요. 아이들은 그저 각자 다른 가정을 가질 뿐이에요. 살아남아서 잘 도망쳐나왔다면, 뒤돌아보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V님이 선택하게 되는 앞으로의 삶은, 과거의 상처로부터 얻은 생존법칙과 반면교사들로 더욱 튼튼해질 거예요. 자신이 과거로부터 지배당할 거라고 결정하면, 애써 빠져나온 게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과거에는 어른들이 V님을 괴롭혔죠. 하지만, 이제 V님이 어른이잖아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요. 경찰 부르면 되고, 의사 찾아가면 되고, 상담사와 만나면 돼요. 남자들이 나를 쉽게 보고 다가오죠.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거절하세요. 그 전까지는 캐쥬얼한 데이트만 하면 되고, 친구로 지내보면 돼요. 긴가민가하면 아예 안 만나면 될 일이에요.  

남들에게 내 얘기 구구절절 하지 마세요.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상처들을 늘어놓아보았자, 그들도 어떤 표정을 해야 할 지 당황스러울 뿐이에요. 친구들이 내 얘기를 못 듣는다면, 나 역시도 그들을 충분히 껴안을 수 없었던 거예요. 스스로를 책임지지 않는 사람을 가까이 두려면 큰 용기가 필요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게 확실하다 해도, 그것이 내가 타인의 사랑이나 연민이나 관심을 구하는 근거가 될 순 없어요. 

V님. 

차근차근 현실에 적응해나가요. 외로움과 친해지고, 고독에 적응하고, 스스로 감당하는 일을 연습하고, 기준없이 연애하는 습관을 버려야 해요. 그리고, 여기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순 없으니까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저를 꼭 다시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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