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5th prescription_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인연, 운명이면 어떡하죠

X님 : 

지난 연애가 끝난 뒤, 저는 짐을 싸서 훌쩍 떠났어요. 이번 여행이 힐링 여행이 되길 바라면서요. 

그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게 된 그는 마치 나의 소울메이트처럼 말이 잘 통했죠. 여행 기간 동안의 데이트는 정말 완벽했고요. 그는 연인이 있었지만, 우리가 여행지에서 보낸 시간들은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았을 거라 믿었어요. 

여행이 끝나고 헤어지며 우리는 그저 친구가 되기로 했죠. 그런데, 제 마음은 자꾸만 두근거립니다.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X님, 엘입니다. 

여행지에서의 사랑은 현실보다는 꿈에 가깝고, 일상보다는 이벤트라고보셔야 합니다. 누구나 새로운 나를 연출할 수 있는 낯선 곳에서는 일시적으로 Dream girl이 될 수 있고, Mr.right가 될 수 있어요. 진짜 인연은 내 삶 안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는 안정적인 관계입니다. 연인이있는데도 불구하고, 낯선 곳에서 전혀 다른 로맨스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기본적인 신뢰도는 높지 않다는 걸 아셔야죠.

가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약혼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 그 사실을 말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떨리는 몸짓과 슬픈 눈물로 나를 놓지 못하는 상대를 보고 있나요. 그가 과거에서 지금까지 선택해 온 관계는 실수나 착각이나 누군가의 계략이고, 우리의 현재가 진실된 운명인 것 같나요. 그가 진심이 아니라면 저런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지는 않을 거라 믿고 싶나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동안 내가 꿈꾸어온 말들이라 느껴지나요. 오랫동안 혼자서 견뎌온 나에게, 신이 나에게 보내 준 선물이라 생각되나요. 

X님. 

사람들이 낯선 상대의 환심을 사는 방법 몇가지를 알려드릴게요. 

1. 예쁘다고/멋지다고 칭찬한다. 어려보인다고/젊어보인다고 칭찬한다. 패션센스를/몸매를/피부를/체형을/키를 칭찬한다. 
2. 당신은 아름답지만/멋져 보이지만, 어딘가 슬퍼보인다고 말한다. 외로워보인다고 말한다. 남들과는 다른 느낌이라고 말한다. 감추고 있지만 상처받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3.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오래 만나고 싶다고 한다.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고 싶다고 한다. 
4. 맞장구 친다. 나도 그게 좋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똑같냐고 말한다.  
5. 이런 느낌 처음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 처음이라고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 처음이라고 말한다. 
6. 이것저것 여기저기에서 결제한다. 
7. 진실된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와 아른대는 눈빛으로 찬사를 보내며...
8. 스킨십한다. 
9. 거절 안 하면 계속 스킨십 진도를 나간다. 
10. 헤어지고 연락 오면 또 만나서 1부터 반복. 

상대가 나를 목적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하는 행동과 진실된 인간관계로 대하는 태도는 쉽게 구분이 안 됩니다. 왜 알 수가 없을까. 참 안타깝죠. 영화나 드라마 보면 만난 지 0.5초만에 이미 운명을 감지하고 5분이면 침대로 뛰어들 수 있어요. 그래놓고도, 두 사람이 운명의 연인이래. 하지만, 현실은 그 뒤에 연락두절이잖아요. 

칭찬하고 잘해주고 다정하게 대하고. 그게 왜 나쁘겠어요. 분위기를 말랑말랑 하게 만들고, 기분을 우쭐하게 만들고, 내가 정말로 가치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해주잖아요. 스킨십은 어쩌면 애정표현의 연장선에 있고 오늘밤은 내일 아침을 넘어 계속해서 이어질 수도 있죠. 그렇게 운명처럼 만난 연인들도 있잖아요, 분명히.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직 신뢰할 수 없는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즐기기 위해서는, 내가 능동적인 주체로서 작동하고 있나, 늘 살펴보아야 해요. 호감이나 구애를 하는 형식은 진짜냐 가짜냐가 없죠. 매번 그 순간의 진실이니까요. 우리, 사귀자 라고 지속적인 관계를 제안하는 말조차도, 상대가 나를 목적적으로 대상으로 보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힘들어요. 연애하면서 사귄지가 얼마나 되었는데 아직도 섹스를 안해주냐고 개소리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연애인들이 자신의 연애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하기보다, '안정적이고 주기적으로 섹스도 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사람의 NO에 짜증을 내죠. 섹스는 사랑의 표현인데 왜 YES가 될 수 없냐고 하죠. 그들은 상대의 진짜 목소리를 못 들어요. 관심조차 없어요. 목적에 맞게 소비할 수 없으면 가치가 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연애니 사랑이니 하는 설정이 아니라, 개인이 갖고 있는 진짜 가치의 합의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실된 인간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1. (가장 중요) 인간관계에 대한 판타지를 버려요. 
2. 관계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3. 친밀행동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걸 나도 알고 너도 아는지 확인하고
4. 상대와 합의하는 행동과 활동만 누릴 것을 약속해야 해요. 

그리고, 

5. 영원을 약속하고 미래를 함께 할 수 있지만, 
6. 오늘 함께 하는 일이 의미있다면 그 또한 기적이고 감사라는 걸 알아야 해요. 

만약, 이런 소중한 마음이 없다면, 쉽게 상대를 지배하고, 쉽게 상대를 소유하고 싶어하고, 쉽게 화내고 짜증내게 되죠.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지 않고, 목적을 위해 상대의 목소리를 죽이고 팔다리를 묶고 싶어하게 되죠. 기대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욕하게 되죠. 

X님. 

여행지/클럽/파티장/일상을 벗어난 낯선 장소 어디에서라도 스치는 인연을 운명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내 손에 닿지않는 곳에 있는 대상에 헛된 꿈을 꾸지 마세요. 지금 명확한 것은, 당신이 절실하게 사랑을 원한다는 사실 하나뿐이죠. 연애하며 행복해지고 싶다면막연한 운명적인 느낌이 아니라 나와 함께 내 일상에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해야 합니다

 

두근대는 맘이 사라질 때까지 일상에 충실하여 보시고, 냉정한 이성이 돌아올 때까지 상처 받은 지난 연애의 정산부터 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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