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2nd prescription_오랜 짝사랑으로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조언해주고 싶어요

E님 : 

친구가 짝사랑을 오래 하고 있어요. 자기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사방팔방 소문내고 다니면서도, 막상 당사자를 만나면 인사도 못하고 도망갔죠. 심지어 선물을 건넬 때도 눈도 못 마주쳤고요.  

그런데 그 선배가 팬이 있다는 걸 선생님한테 야단 맞았고, 이후 가끔 주고받던 카톡도 완전히 없어졌어요.

수능이 끝나고 고백을 하려고 했는데, 어느덧 그는 대학생이 되었고 연애도 시작했죠. 그래도 친구는 미련이 남아서 정신 차리는 게 힘들대요. 어떤 조언을 해주면 좋을까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E님, 엘입니다. 

엄마, 아빠, 학교가 세상의 전부인 시절은 매우 짧습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연애와 섹스는 어마어마하게 의미심장하고 특별하고 멋질 것만 같죠. 동경하는 대상은 완벽할 것 같고, 운명은 어느 모퉁이에서 기다릴 지 몰라, 늘 설렙니다. 상상만 해도 심장이 터지고, 내 기대와 걱정과 불안을 공유하고 증폭시키는 친구들은 항상 가까이 있죠. 

친구의 팬클럽 활동은, 그냥 취미활동입니다. 

그가 그 사람을 짝사랑하는 활동에만 24시간 할애하는 건 절대 아니겠죠. 그와의 관계는 뇌 내 드라마이고, 현실에서 마주치는 실제의 관계 안에 그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상상과 기대만으로 현실을 살지 않습니다. 실제로 살아내야 하는 하루의 시간에는 여러가지 등장인물과 미션과 권태와 갈등과 희망과 계획이 있죠. 선택해야 하고, 쫒아가야 하는, 여러가지 활동들이 가득합니다. 생존과 생활은 어른들이 대신 책임져주고, 공부만 해도 인생이 살아질 때 우리는 연애를 꿈꾸죠. 사랑으로 구원받는 서사만 주입받고 자라왔다면, 달리 무엇을 꿈꾸겠나요. 

E님. 

그가 지난 기억들을 퍼즐맞추기하며 시간을 보낼 때, 자신의 계획에 몰두하세요. 가끔 자신이 가야 하는 목표지점에 다다르기까지 현재의 계획이 제대로 작동하나 점검해보세요. 친구가 상대와 함께 만나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혼자서 끙끙 댈 때, 가끔 초콜릿 같은 것 사주세요. 

기분이 좋아지면 좀더 현실적인 고민에 몰두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제 블로그에서 '짝사랑' 태그로 다양한 글들 읽을 수 있게 해주세요. 짝사랑은 현실의 관계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짝사랑 활동, 팬클럽 활동이 주는 이득도 있어요. 자신에게 온전히 돌려야 할 사랑을 다른 대상에게 나누어주는 연습도, 실제의 관계를 구축할 때는 도움이 됩니다. 관심과 애정을 주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늘 받기만 해서는, 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데요. 적어도 E님의 친구는 주는 방식을 얼마든지 고민해보았을 겁니다. 그리고, 상호적인 관계가 아닌 일방적인 관계의 허망함도, 곧 충분히 알게 되겠죠.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E님이 미리 얻게 된 삶의 다른 가치들을 가끔 이야기해주세요. 친구란 그런 존재 아니겠나요. 서로의 다른 세상이 만나서 더 커지는 관계. 성장과 발전을 격려하고 자극하는 관계. E님이 친구의 또다른 창문이 되어준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겠죠. 

연애나 사랑의 낭만성에 기대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멋진 어른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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