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8th prescription_제가 바라는 인간관계는 남들과 조금 다른 것 같아요

U님 : 

전 타인에게 뭔가 권하는 걸 너무 좋아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기소침해져요. 이런 제 습관을 인식하고부터는, 왠지 대화가 어색해졌죠. 

지금은 뜻한 바 있어 휴학한 상태라 맘껏 쉬면서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동안 인간관계를 넓게 가지지 않았고 굳이 깊이 사귀려고도 의도한 적 없었습니다. 연애도 한 적 없습니다. 전 변화가 싫고 가만히 있고 싶어요. 어쩌면 전 타인과 부대끼는 관계가 불편한 사람인가 봐요. 

앞으로도 계속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 걱정도 되지만, 제가 생각한 안전거리는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굳이 칭찬 받거나 관심 받고 싶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지내고 싶습니다.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정서적인 공감도 원하지 않고, 기대고 싶지도 않고, 눈치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얘기가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조금은 정리가 되는 것 같네요. 저에게 뭔가 얘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U님, 엘입니다. 

자신을 객관적인 거리에서 바라보는 연습은, 자신과 친해질 수 있게 하고 사회적응을 돕습니다. U님이 1) 타인에게 공통 경험을 권하고 2) 공감을 유도하는 시도는, 당연한 사회적 본능입니다. 제안과 거절은 쌍으로 이루어져 있죠. 3) 거절 앞에 작아지는 느낌 또한 당연한 실망이죠. 누구도 부정적인 반응 앞에 마냥 즐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U님이 거절과 거부가 나의 존재를 향한 게 아니라는 걸 알면, 덜 실망할 수 있죠. 사람마다 다른 취향과 성향이 있기 때문에, 내가 즐겁고 좋은 게 상대에게도 그러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관계지향이 내향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 이렇게 크게 두 지향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죠. 타고난 성향과 학습하고 훈련한 대인관계 기술이 쌓여서 현재의 인간관계 지형도가 됩니다.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자신이 가진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일은, 언제라도 의미심장하죠. 

지금까지는 크게 인식하지 않고 살아온 인간관계의 기준이나 습관이, 돌아보면 그렇게 기능적이지는 않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U님이 원하는 안전거리와 원하는 소셜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잘 생각해보고,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바꾸면 됩니다. 누구도 고정된 방식으로만 관계를 운영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람마다 다른 인간관계 양상을 두고, 1) 보통스런 2) 평균의 3) 바람직한 4) 정상적인 5) 남들같은, 바깥의 기준을 상상하며 자신의 관계를 비교하여 평가절하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냥 다른 겁니다. 내가 친구 하나도 없고, 가족과도 데면데면하게 지내지만, 좋아하는 고양이 한 마리만 있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모든 인간들과 공적인 영역에서만 어울리고, 사적인 영역은 온전히 비워놓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지인은 많지만 딱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없어서, 갑자기 생긴 공연표를 누구와 나누어야 하나 애매해도 괜찮습니다. 늘 일에 치어 바쁜데 당장 밥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U님이 어제까지 사람들과 어색하게 살아왔는데, 오늘부터 친구를 만들어볼까, 결심해도 괜찮습니다. 한번도 연애해 본 적 없지만, 어느날 갑자기 사랑에 빠져도 괜찮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좋아하는 작가에 푹 빠진다 해도, 관심도 없던 연예인에 빠진다 해도, 팬클럽 활동에 코스프레 활동에 해외뮤지션 공연에 취미 친구들과의 모임에 시간과 정력을 쏟는다 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타인 지향이 없고, 오로지 과업 지향으로 살아도 행복하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연애하지 않아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람들과의 애착을 누리는 것보다 혼자의 자유함이 행복한 사람도 많습니다. 

인간관계가 많다고 좋은 게 아니고 적다고 나쁜 게 아닙니다. 각자 다른 깊이와 의미와 목적이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미스테리인 자신의 내면을 탐구해도 괜찮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기도를 해도 훌륭하고, 소수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에 뛰어들어도 멋집니다. 자연보호 활동을 위해 인생을 바쳐도 되고, 과학연구를 위해 일생을 사용해도, U님이 원해서 하면 OK! 

변화를 싫어하면 어떻습니까. 저도 변화가 싫습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적당히 적응하며 살아가죠. 어느 정도가 적당히, 인지는 U님이 결정할 바입니다. 타인의 칭찬이나 관심, 인정이 필요없다면, 정말로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정서적 교감은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U님의 삶에 필수적인 건 아닙니다.

기대지 않아도 쓰러지지 않고, 눈치보지 않고도 자신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U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내고, 그것을 자신의 삶을 가꾸기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시면 됩니다.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런 말들이 들려올 때 충분히 의심해보시고, U님이 마땅하다 생각하면 맞는 말이 됩니다. 

혼자일 때의 U님과 가족과 함께 할 때의 U님과 사회생활을 할 때의 U님과 친구랑 놀 때, 동호회 활동을 할 때, 낯선 파티장을 헤맬 때, 학교를 다니고, 학원을 다니고, 직장을 다닐 때 필요한 소셜 스킬은 매번 다릅니다. 그 때 그 때 내가 접하고 있는 사회의 규칙은 달라집니다. 나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폭력으로 느껴질 때도 있죠. 내가 사람일 때, 여자일 때, 피해자나 가해자일 때, 부모가 되거나, 배우자가 될 때, 연애인이 될 때, U님과 세상의 당위가 충돌할 것입니다. 

뭐 어때요. 무엇을 기준으로 나의 삶과 인간관계를 운영할 것인가. 융화할 것인가, 적응할 것인가, 이용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잘 생각해보고, 잘 선택하고, 잘 책임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면 됩니다. 정답은 U님이 만들어가고, 실수와 오류도 U님이 만들고, 디버깅도 U님이 직접 합니다. 천천히 해도 괜찮으니, 안심하고 자신의 삶을 사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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