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3rd prescription_그 애와 사귀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N님 : 

저는 얼굴도 몸매도 예쁘지 않아요. 성격도 소심하고 친구도 많지 않아요. 그런데, 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어느날 용기를 내서 카톡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응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실망했죠.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워서 이제는 멀리서 지켜볼 수조차 없었어요. 그 애는 저를 알지도 못하는데 고백을 받았다고 무슨 말을 하겠어요. 

지금은 SNS를 열심히 훔쳐보면서 그 아이가 어떻게 살아가나 알게 되어요. 전체공개 되어 있는 SNS 계정 내용만으로도 그는 정말로 바쁘게 재밌게 살아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 애랑 사귀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N님, 엘입니다. 

그 아이와 사귀게 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그 아이가 N님을 좋아할까요? 함께 해서 즐거울까요? 함께 무엇을 하면 될까요? 두 사람은 어떤 게 잘 통할까요? 사귄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사귀면 저절로 행복해질까요? 사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은 없을까요? 사귀면서 내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무엇일까요? 사귀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N님. 

현실은 하이틴 로맨스와 다릅니다. 우리 부모님은 재벌이 아닌 소시민이고, 학교는 지루하기 짝이 없으며, 대한민국은 빠른 속도로 헬조선이 되어가고, 오늘도 급식은 맛이 없고, 나와 현실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인간들은 평범하고 매력없고 재미도 없죠. N님이 매일매일 견디고 있는 현실을 한순간에 바꾸어줄 이벤트를 꿈꾼다면, 오직 연애나 결혼이 그렇게 만들어줄 것만 같습니다. 

왜냐하면, 온갖 영화와 드라마에서 찬양하는 게 오직 남자와 여자의 연애뿐이니까요. 범죄 드라마는 경찰서에서 연애하지,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지, 성장 드라마는 학교에서 연애하고, 가족 드라마는 연애하고 나서 반드시 결혼하고, 사극은 한복 입고 연애하고, 로코물은 본격적으로 연애하고, 뭘 해도 남녀주인공은 평범하다는 설정이 나와도 죽도록 예쁘고, 티격태격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직 결론은 연애 밖에 더 있느냐 말입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수상하지 않나요. 왜 의미있는 스토리가 연애뿐일까요. 인간은 연애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아가고, 연애하며 불행한 커플들이 넘치고,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구 비율인 생애미혼율은 갈수록 늘어나는데도, 아직도 연애연애연애 하고 있네요. 이성애 연애만 연애가 아닌데도, 오직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의 연애뿐인 것처럼 보여져요. 이상해요, 정말 이상해요.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이 현실을 반영한다면, 연애하지 않는 나머지의 삶에 무엇이 있는지 더 많이 조명해야 하잖아요. 여태껏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이야기를 반복했다면, 이제는 인간이 연애해서 행복과 고통을 겪는 이야기 말고도 다른 걸 더 많이 얘기해야 하지 않냐고요. 

오직 연애에 대한 조명만이 넘쳐나는 지금에도, 실제로는 생활보다 생존을 고민하며, 불평등하고 불합리적인 세상과 맞서 싸우고,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존재해요. 

그런데, N님은 아무런 합리적 의심이나 논리적인 근거도 없이, 내가 선망하는 그러나 별로 친하지도 않고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사귀어서, 내가 지금보다 더 즐겁거나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심지어 매일매일 상상하고 실망하고 시간을 보내요. 왜 그래야 하죠. 그래서 무엇을 얻죠. 

N님은 연애를 하지 않을 때에도 N님의 삶을 살아야 해요. 내가 생존에 급급하지 않고 누군가의 양육 지원을 받는 이 시간이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여유롭고 자유로운 한때라는 걸 잊지 마세요. 무력한 노예로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어른들처럼 살지 않기 위해, N님이 지금 무엇을 고민하면 가장 좋을까 생각해보세요. 

N님의 삶에 연애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어요. 관계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어요. 결혼은 선택할 바예요. 연애나 결혼은 운명이 아니고, 오로지 N님의 선택입니다. N님은 다른 누군가가 내 선택을 지배하지 않도록, 힘을 키워야 할 때예요. 

세상은 왜 N님이 그 아이와 사귀는 것만 고민하도록 만들었을까요. 

N님. 

자신이 예쁘지도 않고 몸매도 별로라는 생각이 드나요. N님은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나요. 성격이 소심하고 친구가 없나요.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나요. 소심한 자신의 성격이 마음에 드나요. 아니면 바꾸고 싶나요. 그 아이 앞에 서는 일도 부끄럽나요. N님은 자신이 남 앞에서 부끄러운 사람이라 생각하나요.

그는 N님과 가까워질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인가요. 그의 무엇을 보고 N님은 좋아하게 되었나요. 실제로 친구조차 될 수 없는 사이라면 어차피 연애는 할 수 없어요. 한 번 거절하고 무시한 존재감이라면, 나는 그의 인생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하잖아요. 내가 없어도 즐겁고 바쁘게 사는 사람인데, 왜 알지도 못하는 N님과 사귀어야 하나요.   

수많은 하이틴 로맨스들이, 내가 의도치 않아도 학교의 킹카가 나에게 돌진해오는 전개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재벌 2세의 뺨을 때려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다는데, 애초에 그들은 내가 다니는 학교에 다니지조차 않는 걸요.

N님이 누구와 연애해도 좋지만, 그 전에 N님이 할 일이 있어요. 

자신을 먼저 좋아하세요. 먼저 돌보세요. 먼저 가꾸세요.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는지 먼저 알아내세요. 수없이 질문하고 답을 구하세요. 절망하고 분노하고 싸워보아야 해요. 의심하고 따지고 계산해보아야 해요. 이왕 태어났는데 남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살다 죽을 순 없잖아요. 어차피 늙어 죽을 테지만,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알고는 있어야 하잖아요. 남의 인생을 훔쳐보는 시간에 내 삶에 의미있는 것들을 채워야 하잖아요. 누가 찾아와도 오래오래 나와 머물고 싶을 정도로, 내 삶이 풍요로워야 되잖아요. 

N님. 

수많은 어른들도 못하는 것들을, 아직 어리고 여린 N님이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부딪혀보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우리는 매일 누군가가 자신의 눈을 가리는 것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만 보고 들려주는 대로만 듣고 시간에 쫒겨 살아가요. 가끔 멈추어도 되고 쉬어도 되고 이건 아니라고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해도 되는데, 바깥의 누군가가 나를 좋게 보지 않을 거라 막연히 상상하며 주눅 들어 살아가요. 

나와 가까운 바보들은 끊임없이 내 발목을 잡아끌고, 내가 태어난 곳이 나의 한계라고 모두가 입을 모으고,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모두가 주문을 외워요. N님이 점점 더 작아질수록 세상은 박수를 치죠. 개미처럼 작아져서 얼마든지 뜻대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N님은. 

얼마든지 세상에 저항해도 되고, 나만의 법칙을 발견해도 되고, 헬조선을 탈출해도 되고, 자신을 사랑해도 되며, 지금보다 백 배 똑똑해져도 돼요. 어떤 직업을 가져도 되고, 돈을 많이 벌어도 되고, 자신만 떳떳하면 얼마든지 당당해도 돼요. 하고 싶은 걸 얼마든지 찾아내고, 누가 날 가로막나 물어봐도 돼요. 안 되는 건 이유를 따지고, 되는 일에 몇번이고 도전해도 됩니다. 

N님. 

그 애와 사귀고 싶나요? 그렇다면 그 아이 앞에 당당하게 먼저 다가가 인사부터 하세요. 모든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니까요. 만약 인사조차 못한다면, 인사할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 제가 던진 질문들부터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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