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3rd prescription_또 똑같은 지옥에 빠진 것 같습니다

B님 : 

데이트 폭력을 몇 번 겪었습니다. 제가 상대에게 의존했고 그들의 화를 돋구었고, 그래서 제가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일들로 상담도 받았고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다시 연애를 시작했죠. 결혼을 약속했고요, 동거 중입니다. 

그는 가부장적이라 평소 여자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는 말을 자주 합니다. 주변 사람들도 제가 오빠를 잘 보살펴야 한다며 이런저런 말들을 하시고요. 전반적으로 성평등의식이 없는 문화라 제가 불쾌할만한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취미도 다르죠. 전 외향적이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지만, 그는 바뀌는 것을 싫어하고 실내생활을 추구합니다. 그는 저보다 항상 자기 취미생활과 친구들이 먼저입니다. 한번 싸우면 전 갈 데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답답해 죽습니다. 제가 감정이 상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큰소리입니다. 

갈등은 점점 심해져서 그가 제 뺨을 때리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저는 지금 말라죽고 있습니다. 취업준비도 손에 안 잡혀요. 떨어진 자존감을 되찾고 싶어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B님, 엘입니다. 

아아아, 복잡한 얘기지만, 결론은 심플합니다. 1. 짐을 싸서 2. 택배로 부치고 3. 티켓을 예매하고 4. 차를 타세요. 이것뿐입니다. 탈출만이 살 길입니다. 사람을 바꿀 순 없습니다. 여성을 사람 취급 안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획득한 B님이 살아남을 순 없습니다. 남편을 성심으로 보필하고 순종하며, 어르신들에게 고개 숙이며, 사람들이 모이면 꽃인양 예쁘고 싹싹하게, 나다운 것을 철저하게 숨기고, 기다리고 그저 기다리고, 참고 그저 참고, 아이를 낳고, 아이 엄마로 차근차근 늙어가며, 며느리로 아내로 여자로서의 삶을 마치겠다, 결심한 게 아니라면, 제발 탈출하세요. 

묘사해주신 그곳의 분위기. 우리 어머님들의 삶이잖아요. 절대로 저렇게는 살지 말자고 다짐한 그 삶이잖아요. 혼자 울음을 삼키고, 남자들은 큰소리 뻥뻥 치며, 술마시고, 유흥을 즐기고, 어린 여자들을 옆구리에 끼고, 개같이 살면서, 남자로 태어난 것이 오로지 절대권력이고, 법이고, 세상의 이치인 곳. 이 나라 어디에나 흔하게 널리고 널린 지옥이죠. 

그러니까, B님. 

이미 젠더 위계와 인권의식과 주체성과 자유의지를 논하는 지성을 가지신 B님. 당신이 그곳에서 버티려면, 뇌를 OFF 시켜야 해요. 21세기의 지성을 가진 인간이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하려고 하세요. 괜찮은 척하면서? 모르는 척 하면서? 미친 척 하면서? 그러고 살려고요? 왜요? 왜 그래야 하죠? 

피해자 경험이 반복되면 내 탓도 있나보다, 자책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B님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예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도 폭력을 쓰면 안 되는 거예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이별을 하면 되고 이혼을 하면 되고 고소를 하면 될 일이에요. 왜 사람을 팹니까. 

연애도 결혼도 B님 삶의 일부분이에요. 취업이 그런 것처럼 내가 누구를 만나 어떤 관계를 누릴 지 결정하는 건, 오직 B님이어야 해요. 아직 상견례도 전이라면서요. 잠시 같이 살 수 있죠. 하지만, 그곳을 버리고 떠나오면, B님은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어요. 

B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나를 대했는지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별로인지 생각하지 마세요.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무시했는지, 나없이 얼마나 즐겁게 사는지, 내가 잘못하고 실수했나 생각하지 마세요. 실수 없이, 상처 없이, 잘못 없이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B님은 앞으로 계속해서 상처를 주고받고,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하면서 살 거예요. 

하지만, B님은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삶을 조금씩 고쳐가면서, 적응해가면서, 도전해가면서 살 거예요. 쉽게 자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요. 우연히 내가 나로 태어났잖아요. 나의 양육환경을 내가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과거의 경험이 나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순 없어요. B님의 방향성이 B님의 실체예요. B님의 가치를 대체 누가 만드나요. 어떤 타인도 B님의 가치를 대신 결정할 순 없습니다. 

B님. 

고작 하나의 연애일 뿐인 걸요. 꽝을 고를 수도 있죠. 연이어 꽝꽝꽝, 하고 고를 수도 있죠. 99%의 연애경험이 원래 결국 꽝인 걸 확인하며 끝나요. 당연한 거예요. 좋은 연애는 언제나 찰나죠. 인생에 한번 겪기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꽝을 많이 겪으면, 다음 선택은 그나마 내 기준이 생기잖아요. 시간낭비 길어지기 전에 끝낼 수도 있잖아요. 이번 연애 실패가 인생 실패는 아니잖아요. 

B님. 

성공적인 탈출과 성공적인 취업 기원할게요. 빨리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덧글

  • 2016/06/11 17:4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6/12 21:3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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