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클리셰 스터디 6 : 달라서 끌리는/ 로맨스 코드를 가르치는 조연들


 

: 본 칼럼에서는 다양한 텍스트들을 통해, 픽션이 보여주는 연애의 법칙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실의 연애가 얼마나 다른지 차근차근 짚어봅니다.


: 상처와 고통을 겪기 전에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을, 하나라도 얻어간다면 좋겠습니다.


: 주의! 드라마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글은 아닙니다.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TEXT: [운빨로맨스 제 10화까지]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그들은 상처와 두려움을 극복하고, 함께 행복해집니다. 우리는 언제나 정답이 사랑이라는 걸 알죠. 하지만, 그들은 결코 쉽게 사랑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엔 너무나 많은 걸림돌들이 있고, 그걸 헤쳐나가야만 하는 게 로맨스 드라마의 기본 설정이죠.

 

오늘은 드라마에서 흔히 반복되는 캐릭터 설정들을 살펴봅니다. 역시 텍스트는 [운빨로맨스]입니다.

 

 

[클리셰 11 : 달라서 끌리는]

 

: 남주와 여주는 흔히들 이쪽 끝과 저쪽 끝에서 마주 봅니다. 남주가 이성과 합리의 편에 선다면, 여주는 감성과 예지의 편에 서 있죠. 남주가 과묵하다면, 여주는 재잘재잘 말이 많습니다. 하나가 양이면 하나는 음이고, 빛이면 그림자죠.

 

: 서로 다른 세계가 극적으로 만나 하나가 되는 그림은 언제나 감동적입니다. 하나가 부자면 하나는 가난해요. 하나가 감정부자면 하나는 감정결핍입니다. 특히나 남주는 업무적/ 사회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유독 사적인 인간관계만이 협소하고 서툴죠. 그걸 감정을 다루는데 익숙한 여주가 다가와 사랑으로 극복하게 만드는 거죠. 그래서 대부분의 로맨스 드라마는 판타지입니다.

 

: 남주는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다다다 따져대느라 늘 맞는 말만 하고, 그에 비해 여주는 인정이 많고 금방 살살 웃고 논리보다 정서의 동물이길 자처하죠. [운빨로맨스]에서는 여주가 미신을 믿고 운빨을 따지는데다 문제가 생기면 발을 동동 구르며 상황을 모면하려 실수를 연발하는 캐릭터입니다. 이쯤 되면 남주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문제해결사가 되리란 예측이 충분히 가능하죠.

 

: 로맨스 드라마는 계층 간 결합을 참으로 쉽게 합니다. 로맨스야말로 파워 오브 러브, 라고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 됩니다. 남주는 천재 + 미남 + 셀렙 + 우리 회사의 보스 입니다. 여주는 외모는 아름답지만 가난한데다 그저 계약직 평사원이네요. 그러나, 드라마의 결말은 사랑이고, 이 모든 격차를 뛰어넘도록 장치되어 있습니다.

 


[실제 상황]

 

: 현실에서는 계층을 뛰어넘는 로맨스는 잘 없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계층끼리 결혼하면서도 혼수를 얼마를 했느니 예단을 얼마를 했느니 따지고 싸우기 일쑤죠.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사는데, 우리는 겸손하게도 얼마 안 되는 단위의 돈 가지고도 치열하게 울고불고 할 수 있습니다.

 

: 재벌은 재벌끼리, 부자는 부자끼리, 셀렙은 셀렙끼리 만납니다. 우리는 셀렙이 아닙니다. 우리가 셀렙이 아닌 건, 너도 알고 나도 알죠. 셀렙이 첫눈에 나에게 반해서 나를 셀렙들의 세상으로 데려갈 리 만무합니다.

 

: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심히 선남선녀들입니다. 그러나, 연애는 선남선녀만 하는 게 아닙니다. 선남선녀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연애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아름다움의 기준은 각자 다르니 단 한 사람한테만 매력적으로 보이면 되거든요. 우리는 외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죠. 현실에서 우리는 보통스럽고 평범하게 각자 다르게 연애할수 있어요


: 물론, 적절한 소비 자원, 체력 자원이 없다면 연애 못 하죠. 연애욕구가 없어도 안할 수 있고요. 현실에서 연애는 삶의 필수요소나 운명이 아닌 선택옵션입니다.

 

 

[대안행동]

 

: 불가능한 조건을 따지며 운명적인 로맨스가 이루어지길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서지능의 격차가 너무 커서, 인간관계에 마냥 서툴고 감정표현이 안 되는 사람하고는 친구하기도 힘듭니다. 나에게 늘 불친절하고 따지고만 드는 사람은, 나에게 매너가 없는 거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 코드가 통하고 말이 통해야, 마음 편하게 어떤 관계라도 시작할 엄두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친절하고 다정하고 자연스러운 애티튜드를 가진 사람이, 나에게 신뢰까지 보여주는지 확인한다면 좋은 관계가 싹틀 가능성이 크죠.

 

: 감정표현에 서툰 상대의 심장을 살리겠다는 원대한 각오를 갖고, 늘 나에게 불편한 태도를 들고 오는 사람을 굳이 연애상대로 선택하지는 마세요연애가 시작하기도 전에 당신은 반드시 피곤해집니다. 연애도 우정도 사람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가며 만날 수는 없습니다.

 

: 경험이 없거나 표현이 서툴러도 괜찮지만, 최소한의 매너와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사람인지는 반드시 확인하도록 합시다.

 

: 꿈 속에서 재벌이나 셀렙과의 화려한 로맨스를 상상하는 건 좋지만, 어디서 만나든 즉시 뺨을 때리거나 물을 끼얹어서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도록 합니다. 아차 하는 사이 삐용삐용 경찰차 옵니다.

 

 


[클리셰 12 : 로맨스코드를 가르치는 조연들]

 

: 조연들은 참 전형적이죠. 여주의 베프는 1) 착하고 2) 징징대고 3) 안절부절 못하고 4) 남성/어른 앞에 쩔쩔 매고 5) 어리광 섞인 목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성인여성의 성숙한 매력보다 여리고 어리석은 미성숙함을 어필하죠. 여주에게는 상담역이지만, 자신은 여전히 짝사랑 감성에 발을 동동 구르는 순진무구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계속해서 여주에게 그게 사랑이야, 라는 암시를 하는 역할일 거예요.

 

: 남주의 어머니도 정말 재밌습니다.1) 이이잉 아아앙 하는 애교 화법을 구사하며 2) 소녀 시절의 첫사랑을 여전히 간직하고 3)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제해결보다 아들의 애정을 갈구하며 맴도는 역할입니다역시 그녀는 남주와 여주에게, 그것이야말로 사랑이야, 라는 암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 한편 남주의 베프 또한 전형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연애경험도 적고 감정표현에 서툰 남주에게, 로맨스 코드를 적극적으로주입하는 역할이죠. 심지어 잘못된 성고정관념을 강화하며 여주의 의도를 짐작하여 해설하고, 남주가 해야할 행동을 지시하기까지 합니다. 능글맞고 주책 맞으며 여자를 오직 미모로만 판단하며 말도 함부로 내뱉지만, 밉상, 진상, 화상인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는 유쾌하고 성격 좋은 인물로 긍정적으로그려지죠.

 

: 여주의 이전 회사 사장도 마찬가지의 증언을 합니다. 남주와 여주가 서로를 의식하고 있고 둘 사이에 조만간 로맨틱한 전개가 있을 거라 예언합니다.

 

: 주변의 적극적인 관심과 도움과 암시로 인해, 남주와 여주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연애가 어느새 기정사실처럼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실제 상황]

 

: 로맨스가 이루어지리란 기대와 예감을 갖고 진술하는 이야기의 편집자는 오직 나 자신입니다. 내가 어떤 편견을 갖고 각색했는지, 스스로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내 주변인들은 언제라도 나의 로맨스를 소비되는 엔터테인먼트로 즐길 준비가 되어있죠. 내 인간관계에 주변의 입김이 작용하도록 두는 일은, 정말로 위험합니다. 주변인들에게 내 인간관계를 상담하고 그들의 말대로 움직이다 보면,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 본심이 아닌 선택들로 인해 관계는 어그러집니다.

 

: 주변인들이 아무리 나의 연애를 기정사실로 증명해도, 당신이 상대와 합의한 적 없다면 연애는 결코 시작할 수 없습니다. 상대의말과 행동을 역순으로 추적하여,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고 추리하려 해도 언제나 오류는 존재합니다. 짐작과 추리는 항상 나쁘고요, 내 말을 전해 듣고 내 말을 근거로 짐작과 추리를 하는 주변인들의 결론도 항상 부정확하죠.

 

: 니네들 뭐 있지, 라는 말을 들었어도, 내가 눈치를 못 채면, 없는 캐미입니다. 주변에서 전부들 우리 사귀냐고 그랬는데 왜 그 사람은 나에게 프로포즈 하지 않냐고 많이들 상담 하시지만, 원래 없/었/던 캐미라니까. 속은 것도 배신 당한 것도 아니고, 변죽만 두드리다 끝날 정도 밖에 안 되는 감정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대안행동]

 

: 드라마에서는 주변인들이 증언하는 미래 연애가 곧 현실 연애가 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주변인들은 나의 관계자이기 때문에 내가 듣기 원하는 얘기를 해줄 뿐입니다. 상대의 의중을 내 주변인에게 묻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짐작과 추리는 언제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나의 기대와 바램을 기준으로 혼자만의 연애 시나리오를 쓰면 안 됩니다. 나의 연애는 상대와 함께 논의하고 합의하여야 합니다.

 

: 긴기민가 할 때는 제대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하면 정답은 영영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데 어느새 사랑이 시작될 리 없습니다. 연애는 내가 알고서 시작됩니다. 나도 모르는 내 연애는 없습니다.

 

: 각자 다른 자신만의 로맨스 코드로 나를 가르치려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세요. 당신은 당신의 연애를 해야 합니다. 당신이 납득하고 이해하고 선택하는 연애를 해야 합니다. 잘 모르면서 끌려가면 안 되고애매모호할 때는 절대로 YES라고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 당신의 고민이 우리가 잘 될까안 될까, 가 되면 연애는 망합니다. 잘 되는건 뭐고, 안 되는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구체적으로 방향지을 수 없는 막연한 고민은, 오직 상대의 반응에 따라 천 갈래 만 갈래로 표류할 뿐입니다. 당신의 고민이 그와 무엇을 하면 좋을까, 로 시작하면 좋은 관계가 시작될 확률은 존재합니다


: 물론,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 대체로 아닌 게 맞습니다. 믿고 싶은 걸 믿고 있지는 않은지, 늘 자신의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드라마에서는 온 세상 사람들이 연애와 사랑을 제일 우선순위로 두고 사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고 현실에서는 연애 외에도 수많은 삶의 가치들이 존재하죠.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하루를 몇 파트로 쪼개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회식하고 친구 만나고 한밤에도 새벽에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현실의 시간은 어이없이 짧고 우리의 체력은 한없이 저질이죠.

 

누군가가 나에게 로맨스 코드를 가르치려 한다면, 정신을 똑띠 차려야합니다. 당신은 오직 당신이 아는 만큼만 삶을 이해할 수 있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 대한 기준을 누가 대신 정해줄 수는 없습니다.

 

정말로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시작하지도 못한 내 관계가 여기저기에서 수없이 다른 버전으로 돌아다니도록 하지 마세요. 제대로 된 인연의 싹이 틀 때까지는 오직 상대와 함께 관계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출발선에 너무 많은 주변인물들이 등장하면 그 게임은 망합니다.

 

그럼, 다음 이 시간에 또 만나요,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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