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클리셰 스터디 14 : 눈빛은 울망울망

 

: 본 칼럼에서는 다양한 텍스트들을 통해, 픽션이 보여주는 연애의 법칙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실의 연애가 얼마나 다른지 차근차근 짚어봅니다.


: 상처와 고통을 겪기 전에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을, 하나라도 얻어간다면 좋겠습니다.


: 주의! 드라마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글은 아닙니다.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 요번 회차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라마 아직 안 보신 분은 읽지 마세요 ***

 



 

 

TEXT: [구르미 그린 달빛 제 3, 4, 6]

 

오늘은 로맨스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의 필수 애티튜드를 공부해봅니다. 순서는 울망울망, 깜짝깜짝, 딸꾹딸꾹 순서로 가겠습니다.

 

 

[클리셰 30 : 눈빛은 울망울망]

 

: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 눈물을 머금은 듯 촉촉하고, 빛을 반사해 반짝입니다. 여주의 눈빛이 흐리멍텅하고 핏발이 서고 불타는 의지로 빛나는 경우는,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죠흐느껴 울거나 울망울망 하거나 슬픔을 담아 아련하거나, 혹은 아예 눈을 내리깔아 길고 긴속눈썹을 어필하거나, 먼 곳을 바라보거나, 모쪼록 지켜보는 사람의 시선을 절대로 눈치채지 못해야 합니다.

 

: 그녀는 아름답기 때문에 당연히 주변의 시선을 끌지만, 그것을 의식하거나 자랑스러워하거나 미모를 뽐내면 안 됩니다. 남자들의시선이 끝닿는 곳에서 그녀는 비로소 아름답고 존재의미가 생기죠. 그녀가 남주의 눈과 마주친다면 반드시 울망울망 할 겁니다. 퍼피 아이스! 강아지가 간식을 조를때, 그 눈빛이 너무나 귀엽고 애절해서 나도 모르게 간식통을 열게 만드는 매직! 울망울망 눈빛은 여주의 필수 덕목이죠. 울망울망 눈빛을 누가 감히거절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인간은 누구나 귀여운 아기로 태어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귀여움이 상당 부분 손실되고, 독립적이고 성숙한 인격체로서 스스로 문제해결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유독 로맨스 코드에서 사랑 받아야 의미있는 여자주인공에게 울망울망눈빛은, 현실에서는 반드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쌓아야 하는 실제의 친밀도를 손쉽게 뛰어넘는, 연애 감정의 지렛대가 됩니다. 눈빛 자체로 이미 로맨스의 강력한 개연성이 됩니다.

 

 

[실제 상황]

 

: 강아지 눈빛이 연출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언제나 많은 것을 얻습니다.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양육자님! 이것을 저에게 주십시오!” 라고 말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죠. 그저 울망울망 하는 눈빛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진 상대와 아이컨텍트를 하면 됩니다. 눈빛으로 연출하는 귀여움은 사회성을 가진 동물의 대표적인 생존본능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어리고 무력하고 무해한 개체, , 눈빛으로 귀여움을 어필하는 존재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지는 것은, 관계를 맺고 사회를 만들며 활동하는 동물들에게 당연한 본능입니다.

 

: 울망울망 눈빛은 선의를 가진 상대에게는 서로 간의 친절과 다정을 부르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바깥 세상에는 울망울망 눈빛을 무시하거나 이용하거나 해치려는 의지를 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마냥 귀엽고 무력하고 실수해도 괜찮은 어린 시절에는 얼마든지 울망울망 매직으로 사랑받고 보호받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울망울망을 매번 연출하려다간 원하는 것을 잘못 얻거나 도리어 잃게 되는 일도 일어납니다. 타인의 힘과 의지를 유도해서, 원하는 것을 얻는 간접적인 방식으로는, 진짜 내 선택을 할 수 없어요.

 

 

[대안행동]

 

: 울망울망을 버리세요. 그리고, 언어를 가지세요. 원하는 것을 특정하고, 적극적으로 추구하세요. 가능하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얻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욕망이든 필요든 꿈이든 희망이든 원하는 것을 먼저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로맨스를 겪든 겪지 않든 비교적 일정한 정도의 행복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구체적인 언어라야 구체적인 도움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 울망울망은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지만, 상대가 나에게 사소한 친절이나 다정을 베풀고 싶어할 때 사용하시면 됩니다. 울망울망은 로맨스의 유일한 조건이나 도구가 아니라, 때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소통의 다양한 연출법 중 하나입니다. 울망울망 눈빛을 전할 때조차, 원하는 것은 정확한 언어로 전달하세요. 그래야, 제 때 제대로 즐겁습니다.

 

 

[클리셰 31 : 그녀는 깜짝깜짝]

 

: 위급하고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여주는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습니다. 마치 작고 귀여운 동물처럼 꺅! 하고 소리지르거나 발을 동동 구르거나 어찌할 지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릅니다. 마치 아기 고양이와도 같죠. 큰 소리가 나면 제 자리에서 스프링처럼 튀어오르거나 너무 놀라서 영혼이 탈출하여 몸이 얼어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간이잖아요. 마땅한 행동반사가 있을 터인데 왜 순식간에 얼어붙고 움츠러듭니까. 왜 그저 눈만 커다랗게 뜬 채 부들부들 떨어야할까요. 세상에는 큰 눈, 작은 눈, 중간 눈이 있을 텐데, 우리가 로맨스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눈은 왜 큰 눈뿐일까요. 왜 놀라움과 안타까움과 애정을 부르는 커다란 눈만이 존재할까요.

 

: 사건사고가 생겨도, 갑작스런 손목 낚아채기에도, 서로의 몸과 몸이 닿는 모든 우연한 순간에도,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깜짝깜짝 놀라고 일시정지합니다. 심지어 기절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거나 깨우는 건 바로 남자죠. 로맨스의 여주는 오직 나약하고 수동적이며 보호받아야 할 존재일 뿐입니다.

 

 

[실제 상황]

 

: 남자도 여자도 심약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위험한 순간에 얼어붙거나 놀라거나 주저앉거나 기절합니다. 어떤 사람은 똑 같은 상황에서 순식간에 주먹을 날리거나 몸을 숨기거나 꺼지라고 소리를 치거나 화를 낼 수 있습니다.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오직 남자배우만이 액션을 보여주죠. 이것은 매우 편향된 연출입니다.

 

: 대부분의 인간은 위급할 때 사용하기 위한 반사신경과 운동신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오며 계속해서 수동적인 반응만을 내면화하다 보면, 정말로 깜짝 놀라고 얼어붙는 동작밖에는 할 수 없게 됩니다. 보통의 건강한 인간은 개복치나 토끼가 아닙니다. 쉽게 돌연사 하거나 순간적 스트레스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 저처럼 안전사고 공포증이 있으면 작은 소리에도 매우 크게 놀랄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개인의 특징일 뿐입니다.

 

 

[대안행동]

 

: 지진이 일어났는데 별 일 아니니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세월호가 없었다면 가만히 있으라는 목소리에 또 따랐을 겁니다. 누군가가 나의 신체자기결정권을 침해하거나 안전사고의 위험이 갑작스레 닥칠 때, 가능한 한 적극적인 액션을 취해야 합니다. 어딘가의 누군가가 번개처럼 나타나 나를 구해줄 가능성은 극히 낫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구하고 주변의 타인을 도와야 합니다.

 

: 분명 깜짝 놀랄 만한 일에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의 상황에 맞는 대처법은 다양합니다. “불편하니, 손을 놓으시죠!” “말로 하십시오!”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 좀 물러나십시오!” “계속 이러시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라고 제대로 말해야 합니다. 내 눈앞의 사람이 어떤 권력을 가졌을 지라도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 당신이 얼어붙은 사람을 돕기 위해 상대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어떤 액션을 했을 때는, 나중에라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세요. 그래야 당신이 상대의 신체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예의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어 호감을 사고 로맨스의 시작을 의도할 수 있습니다.

 

 

[클리셰 32 : 그녀는 딸꾹딸꾹]

 

: 놀라거나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클리셰는 어디서 생겼을까요. 순간적인 쇼크로 몸이 고장나는 걸까요. 위급한 상황에서 딸꾹질로 상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걸까요.

 

: 딸꾹딸꾹 딸꾹질을 하는 그녀가 귀엽다, 라는 클리셰도 참으로 오래 되었죠. 딸꾹질의 용도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매우 귀여우라고 만든 장치인 듯 한데, 아쉽게도 딸꾹질을 제대로 연기하는 여자배우는 거의 없습니다. 누가 봐도 가짜 딸꾹질이에요. 그런데, 굳이 딸꾹질을 하고 어느 순간 딸꾹질이 멈춥니다. 이 설정은 한드뿐 아니라 일드에서도 참 자주 나옵니다. 섹시하고 강한 캐릭터의 여성은 딸꾹질을 안 합니다. 그런데 귀여운 여주는 딸꾹질을 합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딸꾹질은, 여주가 이렇게 귀엽습니다, 라고 말하기 위한 목적 외에는 없어요. 여주가 딸꾹질을 안 하는 로맨스 드라마 보고 싶습니다.

 

 

[실제 상황]

 

: 딸꾹질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을 귀엽다는 듯 지켜보지 마세요. 물을 권하거나 등을 두드리거나 설탕을 한 스푼 먹이거나 합니다. 딸꾹질도 오래 되면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죠. 유난히 딸꾹질이 잦다면 이때다 하고 건강검진도 받아봅시다.

 

: 딸꾹질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아니라, 그저 흔한 신체증상입니다.

                                     

 

[대안행동]

 

: 시도때도 없이 이유없이 딸꾹질이 계속되면 기가 허하다는 증거이니, 가까운 병원을 내방하여 적절히 치료하고 몸을 보하거나 체질 개선을 도모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어때요. 여주가 되려면 세 가지를 기억하세요. 눈빛은 울망울망, 놀랄 땐 깜짝깜짝, 가끔 딸꾹딸꾹. 아셨죠? [구름이 그린 달빛]에서 우리 김유정 배우님은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입도 예쁘고, 클로즈업 할 때마다 존재 자체가 개연성이라 모든 클리셰를 수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유해합니다, 배우의 존재감은.

 

김유정 배우님이 앞으로도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고요, 드라마에서조차  고생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보는 이모팬, 배우님 고생할 때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아파트 뿌시고 싶어요. 여주의 수난기를 오래오래 감상하고 나서야 그 보상으로 로맨스가 온다는 클리셰, 너무나 식상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명절 스트레스 없이 각기 다른 방법으로 즐겁게 보내시기 바라면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PS. 아파트 뿌시고 베란다 뿌시고 벽 뿌시고, 이런 표현 많이들 쓰시더라구요. 최애가 예쁜데 왜 건물을 파괴하지, 생각했는데, 자주 보니까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해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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