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클리셰 스터디 16 : 나 화 났으니까 집에 간다

 

: 본 칼럼에서는 다양한 텍스트들을 통해, 픽션이 보여주는 연애의 법칙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실의 연애가 얼마나 다른지 차근차근 짚어봅니다.


: 상처와 고통을 겪기 전에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을, 하나라도 얻어간다면 좋겠습니다.


: 주의! 드라마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글은 아닙니다.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 요번 회차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라마 아직 안 보신 분은 읽지 마세요 ***

 

 

 

TEXT: [구르미 그린 달빛 11]

 

오늘은 로맨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갈등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펴봅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반드시 갈등과 문제를 포함합니다. 연애 관계가 쾌적하기 위해서는, 행복할 때 어떻게 행복할 것인 것 하는 문제보다, 갈등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지가 관건이죠.

 

사랑도 우정도 남남끼리 만나 하는 사회활동입니다. 인간관계의 기본원칙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존중하고 예의 지키고 룰을 합의하면 됩니다. 하지만, 많은 로맨스 드라마가 상호존중이 깨지고, 예의 따위 안 지키고, 룰을 합의하지 않아도, 러브러브 해피엔딩이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합니다.

 

애틋하고 아련하고 슬프게 연출되는, 연인 간의 갈등상황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나 살펴봅시다.

 

 

 

[클리셰 36 : 나 화 났으니까 집에 간다]

 

극 중 두 사람은 저녁산책 데이트를 예쁘게 하고 있었죠. 서로 대화하던 중 여주가 남주를 배려하여, 남주의 신분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국혼을 거절하지 말라 충언합니다. 그러자 남주는 버럭 화를 내고는 휙 돌아가서 갈 길을 갑니다. 이 행동이 정당해지는 이유는, 남주의 기분이 상했다면 상대를 배려하는 것보다 자신의 감정만을 우선해서 행동하는 쪽이 남자답다, 라고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 여주는 어떤 반응을 하면 좋을까요.

 

드라마에서 여주는 어떤 말도 못하고, 붙잡지도 못하고, 뒤돌아서서 홀로 남아 눈물을 삼킵니다. 분명 입장도 있고 감정도 있고 생각도 있을 텐데, 그냥 눈물을 지을 뿐이죠. 신분 차이를 극복하여 연애 관계를 이어갈 힘이 있다면, 여주 쪽일까요, 남주 쪽일까요. 남주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여주의 마음은 얼마나 더 참담할까요. 그런데도, 남주는 자신의 감정만 중요합니다. 데이트 하다가 자기 화 났다고 길바닥에 사람 버리고 갔어요. 남겨진 사람이 얼마나 힘들 지는 안중에도 없어요.

 

갈등상황에서 한 사람은 액션을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상대의 액션에 대해 반응을 합니다. 왜냐하면, 여주란 눈물을 흘리고 있을때 더욱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무력하고 그럼으로 해서 사랑 받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액션은 남성의 몫, 눈물은 여성의 몫. 어떤 말도 못하고 남겨진 그녀가 처량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네요. 이 로맨스 클리셰가 무서운 이유는, 남자를 화나게 한 여자가 무시 당하고 남겨진 상황을 감수하면서 상대의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데, 그런 행동이 마땅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분노 감정을 다루는 다양한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버럭버럭 화만 낼 겁니다.

 

 

[실제 상황]

 

데이트 하다가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되는 대화는 종종 일어나요. 그럴 때 화도 나고 상처도 받고 무력감에 좌절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남겨놓고 벌떡 일어나 도망치면 어떡하죠. 데이트하는 중이에요. 밖이에요. 길 위라고요. 갑자기 한 사람이 화 내면서 집에 가요. 그럼,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되죠어이 없겠죠. 당황스럽겠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슬프고 화가 날 겁니다. 그리고, 그의 기분을 거스르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일어날 거라 생각하게 되겠죠.

 

데이트 하다 화가 났다고 벌떡 일어나 집에 가는 행동은 절대로 나빠요. 이 행동은 상대의 생각과 감정과 입장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행동입니다. 말하는 중인데 갑자기 화 내면서 집에 가버리면, 남겨진 쪽도 화가 나요. 무시 당했잖아요.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다른 의견과 생각을 표현했다고, 대화하던 중에 자기가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뜰 수 있나요. 엄마한테 혼났다고 방문 쾅 닫고 들어가는 어린아이와 무엇이 다른가요.

 

존중도 없고 예의도 없고. 존중과 예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래요. 저하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여인이기 이전에 신하로서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은 신분사회 아니고요. 현실세계에서는 대화 도중에 1. 갑자기 버럭 화내면 안 되고, 2. 데이트 도중에 갑자기 집에 가면 안 됩니다.

 

그러지 맙시다.

 

 

[대안 행동]

 

데이트 상대가 나를 너무 화나게 한다면 물론 꼴도 보기 싫고 말도 하기 싫고 당장 집에 가고 싶어집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내일부터 안 볼 사이라면 화나는 대로 화를 내고 벌떡 일어서 집에 가도 됩니다. 그런데, 정말로 오늘부터 이별 1일할 건가요.

 

아마도, 아닐 겁니다. 이별 결정은 욱하는 마음에 할 수 없어요. 물론, 상대가 그렇게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욱하고 떠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지막 데이트라고 정말로 확신하나요.

 

누구나 대화하다 화가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좋은 감정으로 만난 사이라면,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도 존중과 예의가 필요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화가 나면 왜 화가 났는지 얼마나 화가 났는지 화가 나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상대에게 잘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대화가 싫고 집에 가고 싶다면, 그렇다고 말하고 집에 가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는 당신의 행동을 이해하고 보낼 수 있습니다.

 

화가 나지만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든지, 혹은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다든지, 화가 나서 생각 정리가 필요하니 이만 데이트를 종료하고 집으로 각자 돌아가자든지, 당신의 다른 선택은 많이 있습니다.

 

소통은 완벽할 수 없지만, 소통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대가 무례하게 벌떡 일어나 가버리고 남겨진 쪽이 당신이라면, 자기 연민에 빠져 눈물 지을 게 아니라, 상대의 무례한 행동이 얼마나 부적절했는지 꼭 알리고 사과를 받도록 하세요. 사과 여부에 따라 그와 데이트를 계속할 지 말 지 결정하면 됩니다.

 

서로 마음이 상한 채로 헤어졌는데 다시 마주치게 되면 참으로 어색하죠. 늦더라도 자신의 행동이 감정적이고 무례했다고 말하고 사과를 하면 괜찮습니다. 아마도,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용서해줄 겁니다. 아마도요.

 

우리는 로맨스 드라마를 보고 자신의 연애가 드라마 같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남자다운가, 여자다운가 배우기도 합니다. 감정을 다루는 방법과 소통의 예의를 배우기도 합니다. 드라마가 매번 존중과 예의가 깨지는 모습만 보여주면 큰일입니다. 버럭버럭 하는 감정과잉만이 연애의 속성이라 알게 되면, 평탄하고 균형잡힌 소통을 하고 있을 때 연애가 재미없고 의미없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오늘은 여기까지.

 

구르미가 끝나서 삶의 낙이 없어졌습니다. 신분 차이, 계층 차이로 갈등 겪지 않는, 분노조절 잘하는 연애인들 나오는 드라마가 있다면 제보 주세요. 예쁜 연애 이야기 보면서 힐링하고 싶네요.

 

다음 이 시간에도 흥미진진한 로맨스 코드들을 찾아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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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무식한 북극여우 2016/10/21 13:15 #

    현실에선 데이트 중 나 삐졌어 하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뒤 가버리는건 여자가 대다수란게 함정 ㅋㅋ 참 멋진 클리셰네요.

    결국은 그냥 갑이 버럭하면 을은 깨갱하는게 일반적이란 결론. 현실연애는 여자가 갑인 경우가 많고 저 드라마는 남자가 갑이고.

    따라서 '액션은 남성의 몫, 눈물은 여성의 몫'이라던가 '남자를 화나게 한 여자가 무시 당하고 남겨진 상황을 감수하면서 상대의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데, 그런 행동이 마땅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는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얘기.
  • 2016/10/22 01:08 #

    나 삐졌어, 는 남자고 여자고 둘 다 하면 안 됩니다. 상대가 버럭, 한다고 깨갱, 하면 안 되지요. 현실 연애에서도 갑이다 을이다 위계를 세워야 하는 관계라면, 안 하느니만 못한 인간관계입니다. 존중과 존엄이 사라진 관계에서 무엇을 얻겠습니까.

    몸에 해로운 클리셰를 하나하나 배우고 익혀, 쾌적한 현실 연애 만들어가요. ^ㅅ^
  • wish 2016/10/24 17:57 #

    글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대부분 남녀 성별의 구분 없이 사람이 사람을 배려하는 방법이네요. 남/녀의 성별을 구분짓고 성역할을 주입하는건 유해하다는데 동감합니다. 특히 로맨스 드라마는 뇌내위안이라는 측면에서 포르노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도 있구요. 물론 포르노를 죄악시하는건 아닙니다.

    잘 보고 갑니다.
  • 2016/10/26 09:03 #

    세뇌죠 세뇌. 이게 연애야, 이게 사랑이야, 이게 남자와 여자의 마땅한 반응이야. ㅠㅅㅠ 전 포르노를 죄악시하진 않지만, 지양해야 할 매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포르노 산업은 노동인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주로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만 주목하고 성을 과장하기 때문에. 누구의 존엄도 해치지 않는 포르노가 있다면 원츄입니다. (그러나 그런 건 없엇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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