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클리셰 스터디 17 : 착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


 

: 본 칼럼에서는 다양한 텍스트들을 통해, 픽션이 보여주는 연애의 법칙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실의 연애가 얼마나 다른지 차근차근 짚어봅니다.


: 상처와 고통을 겪기 전에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을, 하나라도 얻어간다면 좋겠습니다.


: 주의! 드라마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글은 아닙니다.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 요번 회차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라마 아직 안 보신 분은 읽지 마세요 ***

 

 

 

TEXT: [구르미 그린 달빛]

 

연애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들은 어떤 로맨스 스크립트를 선택할까요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개성을 갖고 있죠. 삶에 있어 사랑이 어떤 의미일지는 각자가 결정할 바입니다. 어떤 연애의 이데아가 있어서, 절대적인 사랑의 룰이나 가치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닙니다. 연애가 누군가에게는 정서적인 보상일 수 있지만, 각자의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습니다.

 

연애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들은 보통 정체를 숨긴 상대와 악연으로 만나, 그와 갑을관계의 갈등을 겪고, 시련과 고통의 시기를 인내하며 지내다가, 마침내 그에게 사랑할 대상으로 인정받고 연애를 시작하게 됩니다. (왜 그렇게나 갑을관계 설정이 많은가요. 왜죠. 을을관계나, 갑갑관계는 없나요. 갑을관계, 참 지겹네요.)

 

그럼, 드라마 속 로맨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세스를 밟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텍스트로 선택한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만 정리하였지만, 어디에선가 본듯한 설정일 겁니다.

 

 

[클리셰 37 : 착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

 

극 중에서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과 우연한 사건으로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신분을 숨깁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였다면 남주는 아마 재벌 2세나 ㅊㅅㅅ 혹은 8선녀의 혈연쯤 될 거예요. 여자주인공도 역시 자신의 비천한 신분을 숨깁니다.

 

시청자들은 모두 압니다. 두사람은 계급/계층적으로 하늘과 땅 차이고, 현실적으로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을 가능성은 절대적인 우연이나 운명이 작동하지 않는 이상, 한없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 사랑하면 안 될 사람들이죠.

 

하지만, 두 사람은 모든 바깥의 권력장을 떠나, 가장무도회에서 가면을 쓴 사람들처럼 가짜인 신분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아차 하는 사이 가면이 벗겨지면, 두 사람은 순식간에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야 해요. 그럼에도, 드라마는 이 비현실적인 만남이 흔하게 이루어지는 인연인 것 같은 생생한 환영을 보여줍니다.

 

로맨스 세상은 이래요. 이상적인 왕자님이 우연한 사건으로 나에게 나타날 수 있고, 나는 이러한 희박한 우연을 기다리며 항상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죠. 그리고, 나는 나의 로맨스를 위해 아래와 같은 정서적인 반응을 합니다.

 

1. 여자주인공은 남자주인공의 정서적인 결핍에 우선 반응해야 합니다. 절대로 외적인 조건 때문에 그에게 반해서는 안 됩니다.

 

2. 남자주인공의 아주 작은 친절이나 배려에도, 그 사람의 인격 자체가 좋은 사람이라는 추정을 하고 믿어야 합니다.

 

3. 남자주인공이 자신을 믿으라고 하면,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4. 여자주인공은 정이 넘쳐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의 아픔에 더 크게 아파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늘 밝게 웃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그녀가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드러낼 때는 혼자일 때이죠. 인내심은  그녀들에게 언제나 중요한 덕목입니다.

 

5. 자신의 고통과 상처는 남자주인공이 아닌 서브남주에게 위로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힘든 티를 내면 남자주인공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서적인 문제는 다른 데서 해결하고 나서, 괜찮은 척 눈물을 감추며 남자주인공을 대해야 합니다.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의 진짜 고민과 문제를 모르다가 가장 최후에 보상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 보상은 주로 연애의 시작입니다.

 

6. 여자주인공은 남자주인공에게 정말로 사랑 받을 대상으로 인정받기 전에는, 계속 사랑을 몰래 갈구하며 힘들어해야 합니다. 짝사랑의 시련을 견디고 나서야, 그녀의 진심을 뒤늦게 전해집니다.

 

위와 같은 로맨스 스크립트를 보여주는 드라마를 보며, 우리는 이렇게 배웁니다. 처음에는 남자주인공에게 시련을 당하거나 무시 당하지만, 어떻게든 믿고 견디면 나중에는 자신의 진심이 전해지고 보상을 받을 거라구요.

 

이 클리셰가 유해한 이유는, 많은 여성들이 상대로부터 받는 무시와 학대와 상처를 나중에 보상받을 거라 생각하며 견디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한테 못하고 나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뿅 변해서 사랑으로 보상해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나의 고통은 진정한 사랑으로 가는 통과의례가 아닙니다.

 

 

[실제 상황]

 

평범한 우리들이 이상적인 왕자님을 만날 상황에 부딪힐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연애가 내 인생의 구원일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내가 피곤하고 힘들게 사는 인생이라면, 내 주변의 연애 후보자들도 비슷하지요.

 

나에게 어떤 불행이 닥칠 때 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고 싸워도 됩니다. 그런데, 모든 전투가 반드시 승리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수많은 좌절과 실패와 패배를 경험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주 찾아오는 부정적인 것들을 어떻게 관리하며 살아갈 지, 얼마나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볼 지가 내 평균적인 행복도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내가 인생을 잘 견딘다고 해서, 내가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주변에 정을 퍼주며 착하고 예쁘게 산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연애로 이어지는 주된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을 쉽게 믿는다고 해서, 믿는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나의 긍정적이고 다정다감한 애티튜드는, 그 자체로 자신에게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 받아 마땅한 덕목들을 쌓는다고 해서, 사랑이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로맨스는 상대가 나를 선택하기 때문에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나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무례하거나 존중이 없으면 보통은 앞으로도 나에게 쭉 그럴 사람입니다. 나에게 시련을 준 사람을 견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산신령 빙의해서 금도끼 던져주는 게 아닙니다. 내가 고통과 상처에 인내하는 사람이라는 걸 어필해서, 내가 늘 잘 참고 무던하고 그것이 갸륵해서 상대의 인정과 사랑을 획득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참으면 다들 그저 괜찮은 줄 압니다. 내가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내 상처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례와 무시를 참고 견디면, 나에게 마땅한 존중을 받아내기가 힘듭니다.

 

 

[대안 행동]

 

나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을 쉽게 신뢰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모든 낯선 사람들에게서 안전거리를 지켜야 합니다. 상대가 인간적인 존중과 예의를 아는 사람인지 항상 예민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갑을관계일 때 나에게 갑질을 하며 시련을 주는 사람을 연애대상으로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나의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면, 나를 보호하기보다 지배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나의 착함과 인내심과 상처와 고통을 쉽게 어필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연약한 부분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기 쉽습니다. 나의 권력없음을 가련하고 어여쁘게 여기는 사람이 나를 도와주면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만큼 나의 주체적인 삶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나를 보호 받아야 하는 존재로만 생각한다면, 내가 싸울 때의 선택들을 이해 못할 사람일 수 있습니다.

 

로맨스는 보상이 아닙니다. 나보다 조건 좋은 사람은 적극적으로 탐색할 때 만날 수 있습니다. 버럭대는 사람은 보통 조용한 목소리를 못 듣습니다. 뒤돌아서 흘리는 눈물을 모릅니다. 비명을 지르기 전에는 사람의 상처를 못 봅니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 말의 뉘앙스를 못 읽습니다.

 

내가 어떤 덕목을 갖추어야 사랑받게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원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새로운 관계의 제안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안의 거절이 나에게 상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원하는 상대와 원하는 관계를 합의할 수 없다면 안타까운 일일 수 있지만, 그것이 나의 자격없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고, 사랑 받아야만 내 존재의 의미가 생기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자신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지 언제라도 도전해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삶은 의미가 생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JTBC 8시 뉴스를 열심히 봅시다매일매일 숙제 밀리듯 볼 클립들이 늘어나네요. 정치는 정치가만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정치인권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연애 또한 다양한 젠더 정치가 작동하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드라마 속 남녀주인공 역할을 카피하지 않고, 나다운 삶, 나다운 사랑의 방식나다운 연애를 고민해야 한답니다.

 

다음 이 시간에도 흔해 빠진 로맨스 코드들을 찾아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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