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클리셰 스터디 19 : 그대만 모르는 나의 미모


: 본 칼럼에서는 다양한 텍스트들을 통해, 픽션이 보여주는 연애의 법칙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실의 연애가 얼마나 다른지 차근차근 짚어봅니다.


: 상처와 고통을 겪기 전에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을, 하나라도 얻어간다면 좋겠습니다.


: 주의! 드라마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글은 아닙니다.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TEXT: [아이언맨] 외 여러 드라마

 

자사의 을들에게 더럽게 갑질하는 진상 CEO인 남주가, 분노조절장애로 인해 공공기물 및 사유재산의 파손을 매일같이 일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의 포스터만 보고, 낮에는 젠틀한 사회인이지만 밤에는 사회악을 직접 처단하는, 브루스 웨인 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일 거라 멋대로 생각하고 관람을 시작했다가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오직 내 사정만 관건인 이기적인 성격에,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도 그저 괴롭히고 떼를 쓰는 방식으로밖에는 다가가지 못하는 남주가 왜 사귀고 싶은 남자여야 하지요. 왜죠. 왜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이어야 하죠. 현실에서 만난다면 엮여서 험한 일 겪기 전에 도망쳐야 할 인물일 텐데, 왜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이상적인 연애상대인 것처럼 그려질까요.

 

특히, 저렇게까지 세상 예쁘고 사랑스러울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과도하게 아름다운 여자주인공이 나오는데도, 남자주인공은 마치 여주의 미모에만큼은 까막눈인 것처럼 여주의 미모를 못 알아보는 치명적인 결점까지 있는데도요.

 

여자주인공이 정말 예쁜데 남자주인공은 못 보는 클리셰, 어디 한번 짚어봅시다.

 

 

[클리셰 39 : 그대만 모르는 나의 미모]

 

예로 든 드라마뿐 아니라, 제가 본 대부분의 로맨스 드라마에서 꼭 한번은 나오는 장면이 있었어요. 남주가 여주의 미모를 깎아내리는 장면이죠. [W]에서도 남주가 여주의 미모가 별로라고 지적하는 장면이 나왔고요, [함부로 애틋하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고요, [또오해영]에서도 남주는 여주의 미모를 모르고요,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도 남주는 여주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못해요. 드라마를 볼 때마다 저는 그녀들의 아름다움 덕택에 눈이 멀 것 같은데, 왜 그들은 한효주의, 수지의, 서현진의, 전지현의 미모를 못 봅니까.

 

우리나라 드라마 속 남주들은 여자주인공의 미모를 그저 보고 느끼는 대로만 솔직하게 표현하면 되는 그 쉬운 일을 못 해냅니다. 빈정대고, 깎아내리고, 없는 단점과 결점을 지어내고, 감히 그녀들의 외모를 평가하죠.

 

물론, 남주들 또한 세상 다시 없을 미모를 갖추고 있기는 합니다. 매일 거울 보고 자신의 외모에 감탄하다 보니 여주의 미모조차 평범하게 느껴질 지도 몰라요. 그런데, 당신이 우주 최고의 미모를 가졌다 해도, 타인의 외모를 평가할 권리는 1도 없지요. 외모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언행은 아주 무례한 짓임에도, 왜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빠짐없이 이런 장면이 나오는지 의아하지 않나요.

 

외모를 후려치기 당한 여주들은 한결 같아요. 사과하세요! 라든지, 니 얼굴이나 잘 하세요라든지, 화를 내고 사과를 요구하는 여주들이 없습니다. 부끄러워하거나, 수긍하며 쪼그라들거나, 기가 막혀 합니다. 왜 화내지 않나요. 왜 반격하지 않나요. 왜 그들의 무례를 꼬집어주지 않나요. 왜 열두 배 정도 구체적으로 남주 외모 평가하고 반격하지 않나요. 

 

저는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대신 화를 냅니다. 그런 저질 시력 갖고 세상 어떻게 사냐며 벽을 뿌수고 싶어집니다. 대한민국 공인 선남선녀면서 아닌 척 하는 기만을 그만 두라고 외치고 싶죠.

 

하지만, 그녀들은 남주가 후려치는 대로 그대로 휘둘립니다. 외모뿐입니까. 나이로, 경제력으로, 지적 능력으로, 학벌로, 가족관계나 계층적인 차이로도 얼마든지 후려치기 당하죠. 남주는 여주를 칭찬하고 인정할 수 없는 병에 걸려있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후려치기 하며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보이지 않는 이들은, 여주가 온갖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며 그의 연인이 되는 시점에서 비로소 심봉사 눈 뜨듯 그녀들의 가치를 알아챕니다.

 

여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하고 칭찬할 줄 아는 인물은 보통 보조남주의 역할이죠. 남주에게 깎여나간 자존감을 보조남주에게서 회복하는 여주. 여주는 자존감이라는 날개옷이 갈기갈기 찢기는 대로 남주과 갈등을 겪다가, 누더기가 된 멘탈을 남주와의 로맨스라는 해피엔딩으로 보상받게 됩니다.

 

남주는 처음부터 별 것 아니었던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헌신하는지 지켜보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외모 같은조건이 아니라 착하고 충직한 일편단심을 보고 연인관계를 이루려고 결심하죠.

 

그런데, 온전히 그녀만의 사랑이 된 남주가 후려치기를 뚝 관둘까요?  

 

그녀가 세상 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라고 알아보고 인정하고 감사할 줄 알까요글쎄요. 후려치기의 대가들은 보통 죽을 때까지 지가 제일 잘난 남자고 평생 그런 줄 알거든요.

 

그치만, 여기는 드라마의 세상. 여주는 날개옷을 잃어버리고 남주의 보호와 인정에 종속됩니다. 상호 존중의 가치가 실현되는 로맨스 드라마는 언제쯤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상황]

 

자신이 자랑스런 꼬추 달고 태어난 남자라는 사실에 취해, 어차피 내 여자 되어주지 않는 상대를 함부로 평가하고 등급 매기고 천한 표현으로 안줏거리를 삼는 사람들이 정말 많죠. 아는 사람도 평가하고 모르는 사람도 평가하고 검색하고 업로드 하고 다운 받고 성적 대상으로만 소비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된 건지 모르기조차 합니다.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데이트로 만났는데, 친구의 친구로 만났는데, 파티에서 만났는데, 잘 모르는 사람을 이러쿵저러쿵 외모 평가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자리를 비울 때 어차피 내 욕도 할 거라 생각하면 틀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환심을 사려 하고, 구애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나를 평가절하하고 걱정하고 동정하고 지적질을 한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겠죠. 내 얼굴이고 내 몸매고 내 인생인데, 누가 감히 나의 존엄을 침해하나요. 내 눈 앞에서 나에게 좋은 소리 못한다면, 어차피 오래 보아도 감사를 모르고 인연의 소중함 따위 알 리 없는 인사이니 가까이 할 이유가 없습니다.

 

누가 나보고 못 생겼다 그러면, 사과를 요청하세요. 화를 내셔도 무방합니다. 무례를 굳이 참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당신의 몸, 얼굴, 능력, 재산, 당신의 존재와 소유와 조건들 모두 당신 거예요. 누구도 타인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대안 행동]

 

상대와의 일상이 로맨스가 되길 원한다면, 시간을 내어준 사실에서부터 정중하게 감사를 표현하세요. 우리라는 관계가 되길 원한다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모든 사소한 것들에 긍정과 칭찬을 돌려주세요. 영혼 담아서 최선을 다해서 인정해주세요. 좋은 소리를 하세요. 상대를 예쁜 마음으로 보면 당신의 입술에도 아름다운 시어가 담기죠.

 

무슨 후려치기를 해서라도 상대를 내 것으로 정복하겠다, 못된 심보 갖고 있으면 무슨 말을 해도 진부하고 식상한 겉치레가 될 겁니다.

 

진심 담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평소 자신의 인연들에 얼마나 감사하고 살아왔나 돌아보세요. 그동안 마음을 어떻게 써 왔는지에 따라 새로운 사랑을 추구하는 진정성이 드러나게 되겠죠. 귀한 사람, 귀한 사랑, 가질 자격이 있나, 양심에 손을 얹고 고민도 해봅시다.

 

 

오늘은 여기까지.

 

후려치기 없는 드라마, 바람직하고 훌륭한 인정, 칭찬, 격려가 있는 드라마 보고 싶어요.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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