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클리셰 스터디 27 : 노는 남자의 진심


 

: 본 칼럼에서는 다양한 텍스트들을 통해, 픽션이 보여주는 연애의 법칙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실의 연애가 얼마나 다른지 차근차근 짚어봅니다.


: 상처와 고통을 겪기 전에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을, 하나라도 얻어간다면 좋겠습니다.


: 주의! 드라마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글은 아닙니다.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TEXT: [구르미 그린 달빛] 외 여러 드라마

 

시대극에서 발견한 로맨스 클리셰를 한번 정리해봅니다.

 

세상에는 여자를 울리거나, 바람 피우거나, 강간하거나, 살해하는 나쁜 남자들이 있습니다. 남자라니, 인간이라니, 물론, 선량한 인간들과 그들을 같은 저울 위에 올릴 순 없죠. 다행히, 세상에는 진심으로 한 여자를 사랑하는 로맨티스트들도 있다고 합니다. 어디에? 어디에!

 

신이 있다고 믿으십니까. 신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당신의 심장 속에. 유니콘 같은 존재죠, 좋은 남자.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함께 낳아 길러도 좋은, 그럴 만한 남자.

 

어딘가에 있지만 지금 당신의 곁에는 없는 그런 남자가, 바로 드라마 속에는 존재합니다. 유니콘도 무지개색 뿔을 달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도 없습니다. 볼 수 있다면 분명히 있어요. 액정맛 나는 드라마의 세계, 바로 그곳에!

 

그런데, 드라마의 세계가 정말로 좋은 남자들만 보여주고 있을까요. 좋은 남자로 추천되는 흔한 타잎 중 하나가 나쁜 남자, 하지만, 나에게는 따뜻하겠지입니다. 드라마 세계에서는 로맨틱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절대로 로맨틱하지 않은 남자, 그 남자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클리셰 47 : 노는 남자의 진심]

 

시대극이니까 설정은 이렇습니다. 이 남자는 노는 남자입니다. 유곽에서 기생들을 잔뜩 끼고 술잔을 기울이죠. 그녀들은 하나같이아름답게, 그리고, 천박하게, 과장되게 수선을 떨고 남자에 아양을 부립니다. 남자는 맘껏 플러팅을 하지만, 진짜 연애는 하지 않죠. 몸은 가도 마음은 주지 않는 고고한 원칙이 있달까요. 남자는 기생들을 그림의 모델로만 소비하고,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손님이 왕이니까 기분 나쁜 티도 내지 못하고, 적당히 배경이 되었다가 결국에는 프레임 아웃 당합니다.

 

그에 비해, 그가 여자주인공을 대할 때는 기생들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한없이 다정하고 로맨틱하고 허용적이죠. 세상사람들을 이래도 되는 사람, 저래도 되는 사람으로 분류해서, 태도를 바꾸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로 좋은 사람일까요.

 

현실세계에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존중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타인에게 공평하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야말로, 나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하고 진심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로맨스 드라마의 세계에서 노는 남자는 좀 멋지고 쿨한 남자, 여자를 다룰 줄 아는 남자, 귀한 여자와 천한 여자를 다르게 대하는 분별을 아는 남자로, 긍정적으로 묘사됩니다. 여자주인공은 그가 자신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를 보고, 자신 또한 사랑 받아 마땅한 존재라 느끼고 정서적으로 안정됩니다. 그런데, 그가 다른 여성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고도, 안심할 수 있었을까요?

 

룸싸롱에서 화려한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고독하게 술만 마시는 남자. 클럽에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도, 다음날이면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는 남자. 노는 남자고 나쁜 남자라서 여자들을 울리고 상처 주지만, 그녀들은 당해도 싸고, 여자주인공은 사랑만 받아야 하니까, 좋은 남자로 변신이 가능하다는 설정.

 

일부 개과천선하는 사람들도 극히 희박하게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매번 그런 설정만 보여준다는 게 문제죠.

 

 

[실제 상황]

 

밤의 유흥을 즐기지만, 귀한 여자에게는 다르겠지. 노는 남자지만, 나에게는 점잖겠지나쁜 남자지만, 좋은 여자에게는 특별하겠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룸싸롱 문화를 정말 싫어하지만, 친구들이 억지로 끌고 가서 어쩔 수없이, 회사에서 접대를 명령해서 피할 수 없이, 어딘지 모르고갔는데 알고 보니 그런 곳이라 나도 모르게, 전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어젯밤 처음으로, 술만 마시고 다른 짓은 아무 것도 해 본 적이 없다는 변명, 한번쯤 들어보셨을까요. 아이고, 뭔 소리래요. 정말 가당치도 않죠.

 

여자들을 숱하게 울렸는데, 나쁜 남자라고 주변에 파다하게 소문이 났는데, 심지어 내 친구도 당했다는데, 주변 친구들도 비슷한 애들뿐이라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는 다를 수도 있을까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방황하던 과거를 뒤로 하고 진정한 사랑을 만나 사람이 변하던데,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지 않나요.

 

아니요, 아닙니다. 노는 남자의 진심이 발현되는 일은, 그런 일이 희박하니까, 영화도 되고 드라마도 되죠.

 

한 가지 다행인 건,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대부분 어떤 초감각에 의해, 아니면 명백하게 선명한 간접증거들로인해,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충분히 알 수 있다는 겁니다. 평소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태도를 보면, 평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이슈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보면,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죠.

 

긴가민가할 때는, 대놓고 물어보세요그러면, 아닌 사람을 걸러내는 일은, 조금 더 빨라집니다.

 

 

[대안 행동]

 

당연한 얘기지만 또 한번 적어봅니다.

 

이 세상에는 그 사람이 여자든 남자든, 직업이 무엇이든, 밤에 지붕 아래서 자든 길 위해서 잠들든, 집냥이든 길냥이든,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생명은 없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나이가 어리다고, 학력이 낮다고경험이 없다고, 가난하다고, 착하다고, 순진하다고, 장애가 있다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유흥과 음담패설과 만취와 성희롱에 익숙한 사람이, 진정한 사랑 앞에서 제대로 된 좋은 사람으로 각성하는 일은 없습니다. 여성을 이런 여자저런 여자로 평가하고 분류하면서, 대하는 태도가 휙휙 변하는 사람이,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일 리 없습니다. 존중을 모르는데 사랑을 알 리 없습니다. 노는 남자의 진심은, 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지는 몰라도, 지구 상에는 없다고 외워두도록 합시다.

 

당신이 진정한 사랑으로 그 사람을 변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닙니다. 기계가 아니거든요. 존중의 태도가없는 사람에게 그것을 가르치는 일은 매우 지난한 일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필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드라마에서 배경으로 소비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수많은 여성조연들, 엑스트라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여성을 함부로 명명하고 멋대로 취급하는 태도들이, 현실 세상에서도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있다는 게 떠올라서 그렇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뭔지는 몰라도, 타인을 향한 존중은 모두들 알아야 하지 않나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모두에게 기본적인 예의만 지켜봅시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이 정도만 적절하게 써도 좋은 사람 코스프레는 가능합니다. 연습해보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이 시간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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