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님 :
지인 소개로 만나 몇 달 동안 연인처럼 데이트를 했습니다. 저는 그가 곧 정식으로 사귀자고 프로포즈를 할 거라 기대하고 늘 설렜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가 계속 바쁘다고 하고 약속을 미루더니, 결국에는 제 연락을 안 받고 응답도 없더라구요.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주선자에게 물어봤더니 멀쩡하게 회사도 잘 다니고 사람들도 잘 만난대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따지지도 못하겠네요.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Z님, 엘입니다.
정말로 어떤 치명적인 잘못을 해서, 두 사람이 이어지지 못한 걸까요. 아닙니다. Z님은 Z님의 방식대로 연애가 저절로 이루어지길 바랐고, 상대는 그만의 방식대로 이 관계를 누렸을 뿐이죠.
연애가 시작되고 유지되는 방식은 여러가지입니다.
사귀자, 라는 명시적인 제안과 동의에 의해 시작되기도 하고, 매일같이 만나다 보니 이미 연애관계가 되어 있기도 하죠. Z님의 관계는 연애였을까요, 연애 전의 탐색기간이었을까요, 아님 어느 쪽도 아니었을까요. 그것을 결정하는 주체는 무엇일까요. Z님일까요, 상대일까요, 아님, 운명의 신일까요. 혹은 두 사람 모두의 의견이나 의미부여가 필요할까요.
중요한 건, 연애하면서 내가 연애 중인 걸 모를 수는 없다는 사실이죠. 이건가 저건가 애매하면, Z님은 연애 중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내 연인이라 소개할 수 없다면, 그건 연애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돌아보면, 두 사람은 지난 몇 달 간 데이트메이트였을 뿐이죠.
아름다운 연애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Z님이 실수로 STOP 버튼을 누른 건 아니니, 그만 아쉬워하세요.
Z님은 그저 풍요로웠던 20세기 말의 연애감수성으로 [소개팅-데이트-애프터-프로포즈-연애] 라는 연쇄 외 다른 결말을 상상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주선자가 있는 소개팅은 교제를 전제한 약속이고, 데이트는 프로포즈를 위한 예선전이라 믿었던 뿐입니다.
하지만, 모든 주선자가 좋은 연애 에이젼시의 직원도 아니고, 의미있는 인연을 소개하거나 소개팅 후의 프로포즈 절차를 보증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저 흥미에 의해, 주변의 요청에 의해, 그냥 심심해서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별 생각없이 연결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습니다.
소개팅이 연애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신뢰로운 방법이던 시절은 오래 전에 끝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설마 하는 기대로 나왔다 역시나 하며 돌아서는, 정해진 실망의 루틴이기 일쑤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가 생존 가치보다 하위순위가 된 지금은, 연애인들이 탄생하기 참으로 어려운 시대라고 납득하는 편이 속 편할 지도 몰라요.
간단히 말해, 소개팅은 연애에 대한 어떤 약속도 전제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데이트 상대에게 소개팅의 목적과 의의를 질문해야 괜한 설렘과 기대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죠. 연애를 합의하지 않은 관계에서 데이트란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보자는 제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해요.
20세기에는, 어른들이 짝 지어주면 수줍게 만나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정해진 길일에 결혼식장에 들어서던 시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연애해도 연애하지 않아도 괜찮고, 결혼해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고, 결혼했다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고, 결혼했다가 아니면 이혼해도 괜찮고, 이혼해도 또 결혼이 고프면 결혼을 해도 괜찮아요.
인생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고, 선택마다의 다른 상처와 절망이 있고, 각자 스스로를 구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도모할 수 있어요. 연애라고 해도 이성애만이 정답은 아니며, 인간이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은, 매번 새롭게 발명하고 의미부여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비교적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지요.
Z님.
길게 썼지만, 누군가와 새롭게 친밀해지고 싶다면, 상대가 안전한 사람인지 검증하고 또 검증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치는 쪽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누구도 믿고 싶지 않았지만, 트럼프가 현 미국 대통령이잖아요. 마냥 낭만만 추구할 수는 없는 게, 앞으로의 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류는 자주 백스텝을 밟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니까요.
> 12번의 성찰: 자아성장 워크샵 20170203 (접수 중!)
> 12번의 성찰: 자아성장 워크샵 20170204 (접수 중!)
> 12번의 성찰: 자아성장 워크샵 20170205 (접수 중!)
> 유료 상담 안내
> 실시간 전화상담 안내 : TEL 060-800-1124
최근 덧글